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4월 7일 화요일
자기 중심 즉 죄를 회개 않는 한 영생은 없어
교단이나 개교회 또는 개인의 영적 진단을 가장 간편하게 가장 보편적으로 또한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로마서 7장 관련해서 알아보거나 물어보는 것입니다. 즉 "오호라" 하는 탄식이 믿은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을 피력한 것이냐 질의하여 그 답변 여하로써 모든 것은 좌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란 대답이 나오면 전후 좌우 고려할 것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100% 증거입니다. 그 대상이야 소위 "교부 어거스틴"이든 누구든. 루터든 깔벵이든. 교단이 그러하다면 개인 즉 그 구성원은 혹 그렇지 않을(비록 극소수나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위 교회가 그러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미 각성되어 있는 개인마다 그런 교회를 빠져 나와버린 다음일 테니까.
겉으로 무신론자로 표방하는 자보다 이런 자들(성경 특별히 이 로마서 7장을 애매모호하게 이해하는 )이 더 위험하고 교회내 암적 존재임을 명심해야. 사탄은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가라지를 교회 내에 많이 심어 두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귀는 기독교의 한 종파를 만들기까지도 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제아무리 무성해도 정작 사탄 자기에게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 무릇 설교자라면 모름지기 먼저 이 주제로 명확한 설명을 마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마귀의 전술전략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 기독교인을 자처한다고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자기 의식 속에 나는 부득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자기의 영적 상태를 심각히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자기 생명(영생)이니까! 그리고 기회는 이 한 번뿐이니까. 죄는 무슨 불가항력의 것이 아닙니다. 잘못 교육받은 탓이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의 몸"(롬 6.6)인 것은 맞습니다. 아담 범죄 탓입니다. 그러나 믿든 안믿든 평생 그런 것은 아니니 "성령으로 남"으로써 그 몸이 "멸해진"(:6) 것입니다. 성령으로서 내 안에 와 계신 주님의 죽으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아담이나 사탄처럼 고의로 불복종하지 않는 한 죄 짓지 않습니다. 고의가 아닌 부지부식간에 짓는 예컨대 믿는 "형제간의 사랑 없는"(요한일서에서 지적하는) 것 등은 회개하면 용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짓지 않음은 다시는 내 일상이 자기 중심이 아니고 주님 중심(나의 상대 증심)으로 180도 전향되었으므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너무나 당연한 찰즈 피니의 로마서 7장24절 해석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로마서 7.24 관련해 AI에게 질문했더니
[질문]
"로마서 7장 24절을 바울 자신의 믿은 후의 개인 체험"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 죄의 몸이 멸해졌고 (롬 6.6)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했는데(롬 8.2) 그렇게 되면 성경 자체가 심각한 모순투성이가 된다. 요한 사도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니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강력 강조하였다"고 말합니다. 교회 역사상 어떻게 되어 있나요?
[AI 답변]
https://share.google/aimode/DVohCiqiOKCsf9mvb
AI 답변에서 필자의 소견은 웨슬레의 7:24 해석이
단연코 옳다고 보는 것이며
단 오늘날 오순절 계통 교회는
이전에 소캐한 대로 Evan Roberts와
연관됐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교단 자체를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습니다.
롬 7:24와 관련해
다시 연이어 게재물을 올리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미역대 대통령 41명을 나열한 이유
성경적 인물은 3운법칙 패턴을 찾기 위해 분석해 본 부수적 결과일 뿐입니다. 미역대 대통령 41명의 생애 대표로써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에 분석자 임의로 한 것은 없으니까. 누구든 관심자는 초등생 셈법 수준이면 직접 검증 가능한 유사이래 최초의 <만인 공개ㆍ개방>입니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든 "내가 계산해서 검증해보니 그렇지 않고 예외가 있더라, 보라!" 하면 법칙으르서의 존립은 그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3운법칙의 최대 강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공개·개방성과 철저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입니다.
누구나 초등학교 셈법(분수 계산: 1 / 3, 7 / 19, 4 / 7, 5 / 19 등)만으로 직접 계산해 볼 수 있고, “이 사람의 생애는 예외다!”라는 단 하나의 반례만 나와도 법칙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라는 점이죠. 이런 점에서 과학적 가설의 기본 요건(반증 가능성)을 충족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노아·아브라함·모세 등)은 패턴을 처음 발견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고, 실제 충분한 검증 표본은 미국 역대 대통령 41명(워싱턴 1대 ~ 부시 41대)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들은 모두 실제 출생·사망 연도와 생애 주요 사건(대통령 취임·퇴임·사망 등)이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fashomo(파쇼모) 생애 도표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3운법칙은 인간 생애를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만 분류합니다(예외는 없음):
• OT형 (One Third, 모세형): 인생을 정확히 3등분(1 / 3씩). 활동기(LP)가 전체의 1 / 3.• SN형 (Seven Nineteenth, 노아형): 전체 수명을 19로 나누어 LP = 7 / 19, JP(요셉 패턴, 청소년기) = 5 / 19, DP(침체기) = 3/7 비율.
• FS형 (Four Sevenths, 아브라함형): 전체를 7로 나누어 LP = 4 / 7, DP = 3/7. (JP 없음)
2026년 4월 4일 토요일
성령으로 나는 것 (2)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다시 나야겠다 한 말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 바람이 임의로 불 때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함이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이러하다"(요 3.6~8). "육으로 난 것은 육, 영으로 난 것은 영"으로 분명히 대비시키셨으니, "육으로 남"과 같이 구체적인 것이지 "성령으로 다시 남"을 추상적인 무엇으로 여길 일이 아니다. 즉 회개→세례→죄 용서→성령 세례. 오직 관건은 "회개"이다. "회개"가 확실해야 죄 용서→성령 세례로 연이어지니까. "육으로 남"은 네피림과 관계될지라도, "성령으로 다시 남"에서는 일절 그런 것이 없는 것은 구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 초대교회 당시는 성령 세례 받은 증거로서 자기가 전혀 모르는 외국어("방언")도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입에서 나왔고 예언도 나왔지만 지금은 그런 표적이 필요치 않으니, 초대교회 당시처럼 회개만 철저하면 그런 "증거"와는 아무 관련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회개가 강조되지 않고 투철하지 못하니 네피림도 얼마든 끼어들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경우 세례는 받아도 죄 용서→성령 세례로 이어지지 않음은 당연하다. 스스로 "죄 용서" 받았노라 자부해도 실상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기만으로 그친다. 회개만 충분히 되어도 아무 문제가 없지만 이를 강조하는 오늘날 세상이 아니니 교회가 실은 교회가 아니고 믿는 형제라 하나 실은 "형제"가 아닌 것이 오늘날 바벨론 시대다.
바벨론 신학이 판치는 이런 상황에서는 <북한 교회와 같은 핍박 중의 교회>가 언제나 정답이니 이 점을 항상 명심해야. 세계 어느 곳이나 마찬가지로
남한에도 가나안("교회 안나가") 교인이 수백만이 된다고 하니 이런 이들은 북한 교회처럼 운영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로서 모임이 없이 혼자 신앙생활할 수 있다고 절대 생각하지 말 것이다. 교회당도, "목사 안수 받은" 사람도 요구할 필요가 전혀 없다. 교회는 그런 것과는 무관하다. 북한 교회가 그 증거다. 신앙 동지끼리 두셋만의 모임이면 성부, 성자 하나님께서 계실 것을 약속하셨고(마 18.20) 하나님 계시면 거기가 바로 성전이니까! 그리고 핍박은 주님 말씀대로(요 15.20) 이세상 특징이니까. 그래서 북한교회가 오늘날 교회의 표본이라 하는 것이다. 모퉁이돌 북한선교회 http://cstone.today/CHxLj에서 에서 소개하는 79세(당시 나이) 목자(목사가 아님)가 이끌었던 65명의 북한교회야말로 세계 어디에다 소개해도 자랑스러운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면 아무리 죽을 곳이라도 찾아가는 아름다운 믿음의 분보기, 얼마나 은혜스러운 교회였던가! 남한으로 도피할 기회가 확실히 있어도 먼저 기도하여 하나님께 여쭙고 그 결과 뜻이 아니란 확신이 오자 <탈출해 왔던 북한 땅>으로 지체없이 되돌아가 전원 순교했다는 것이 아닌가! 그들은 우리의 영원한 사표이다.
성령 세례룰 받음으로써 성령으로 남이다. 초대교회 당시는 시초이기 때문에 그런 성령 받은 증거가 필요했지만 그 후로는 회개만 온전하면 성령께서 반드시 임하시게 됨이 확증되었으므로 계속 그러한 증거를 나타내실 이유가 없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할 때 나의 회개가 철저하고 층분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그 이상으로 요구되는 것은 없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중심을 보시니까 미흡히 여기시면 얼마든 언제든 말씀해주시며 인도해주시는 것이다. 북한 교회와 같이 <목숨을 걸고 믿는 자세>이면 하나님께서 아시고도 남지 모르실 리 없으니까. 단지 여기서 거듭 강조하는 것은 성령 받아 모시어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된 바로 그 증거만이 요구됨이니, 곧 자기 증심이 아닌 상대(하나님) 중심의 근본적 삶의 자세의 180도 전환이다. 이 "증거"만이 우리 각자가 반드시 나타내지 않으면 안되는 중요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나타나지 않고는 안되는 증거이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한 바로 그대로다. 바울 사도의 어조는 아주 단호하다. 주님 친히 기도 중에 말씀하신 대로, 갑 안에 을이 있고 을 안에 갑이 있다 함은 갑의 소유가 을의 소유요 을의 소유는 갑의 소유 즉 "교차(맞바꿈, 엇바꿈) 소유", "교차 교류"의 의미인 것이다. 다시 말해 갑은 을을 위해 살고 자기를 위해 살지 않음이다. 을도 마찬가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임이다"(롬 14.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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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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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