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6일 목요일

머리 털 나고 처음으로 음양론이 무엇인가 하고 백과 사전류를 찾아 읽어 보니ㅡ


 
음양론을 성경 풀이에 도입한 것이 아니라, 성경의 3위1체의 법칙(짝의 법칙)을 알고 나서 음양 이론이 진실에 근거한 것임을 확인하게 된 그 사연을 여기에 피력한 것이니 오해 없으시기 바라고, 리얼로뉴즈(www.realrawnews.com) 댓글에 보니, 어떤 독자가 무슨 말 끝에, 사탄이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8:44)라 하신 것을 사탄이 "선한 천사들을 죽인 것"으로 엉뚱한 해석을 하고 예수님을 "아버지 예수님"이라 부르고 있는데 기타 여러 가지 말을 하는 중에 성경 구절을 부지런히 인용하는 것을 보아 성경에 대한 문외한은 아닌 것 같은데도 그런 말을 거침 없이 해도 이에 대해 바로잡아 주는 이가 아무도 없었습니다. 3위1체 관련한 무지와 아담의 죽음을 "영적"이라 고집하는 바벨론 신학의 혼란과 폐단이 여기서도 그대로 나타납니다. 너무나 어처구니 없는 일입니다. 이 사람이 사이비 이단은 아닌 것 같은데도 성경 이해가 이 정도로 "죽음"이 대관절 무엇인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것입니다. 





2023년 1월 20일 금요일

2023년 1월 16일 월요일

2023년 1월 15일 일요일

상호 검증보다 확실한 자체 증명은 없고 자체 증명보다 확실한 검증은 없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자체 검증되는 법칙으로
화려하게 등장하여 소개된 적이 있었던가
21세기 오늘날 "마지막 때"가 유일하다
3환법칙만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이 검증은 하나님 친히 하실 것이다
















2023년 1월 13일 금요일

아크바르(AKBAR) 앞에서 쪽도 못쓴 바벨론 신학─거짓이니까


사탄의 거짓말을 따라, 에덴을 자연계 동산이라 하고
아담의 죽음을 영적이라 하니까!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약 3:11).




 

나무위키: 악바르 대제







아크바르(최종회)




아크바르 정도만이라도 기독교도가 성경에 관심을 가졌어도
오늘날과 같은 멍청한 기독교 신학, 
바벨론 신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아크바르를 자주 언급한 것인데
바로 "주님 다시 오시는" 이유에 관해 알고 싶어 했던 것인 바
이 점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3위1체 관련해서도 그간 많은 신학 관계자들이 
노심초사하면서 궁구해보려 했지만 올바른 이해는커녕 
일절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큰 기대는 할 수 없었을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말해, 주님 다시 오심은 
<아담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제대로 풀 수 있었던 '수수께끼'였는데도
아크발은 용하게 이를 지적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통찰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즉 아담은 죽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해서 초자연적인 신령한 몸을 입은 것이었고
이제 메시야 주님께서 그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
훌륭히(아담 표상의 제1호인 십자가 죽으심을 성취하심으로)
새 아담으로 등극하신 이상 그 아담으로서의 임무 수행이
"다시 오심"으로 나타나는 것인 바 아담 왕국 통치 차원이니
아담이 죽어버리는 서슬에 그 통치가 무산되어버렸으니
이제 비로소 정상적인 본격적인 "아담" 임무 수행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 오신 것은 "아담"이 되시기 위해서,
두 번째 오심은 "아담"이 되셨으니 그 "아담" 역할을 하시려고
세상에 오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로 다시 오실 때는 범죄 전 아담의
찬연한 광채의 "영광의 몸"이심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오신 모습은 범죄한 죽은 자로서의 "아담" 이셨으나.
그래서 죄인 사형수로서의 머리이신 아담의 모습과 함께 한
그 몸된 교회로서의 수난/受難 수행/修行을 마친
다시 말해 주님의 남은 고난 내 몸에 채워 함께 고난 받은
자들만이 다가오는 천년 왕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라, 자기 부인하라, 나를 따르라" 하심이 그 뜻.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롬 8:17).
사람 살리는, 구원해내는 일에서는
고난 받음이 불가피학고 고난 없이 하나님의 일도 불가능.
주님의 고난 받으심이 우리 구원을 위함이시고
그 남은 고난 역시 우리 교회가 그 소임을 맡았기 때문.

                                               
 그에 



 

2023년 1월 12일 목요일

"AKBAR(아크바르)의 3가지 질문"에 연이어




입으로만 전도한다고 그것이 전도가 아님을 
성경은 명확히 밝히고 있다. 아무리 전도를 잘 해도 
그 일상 생활에서 그 믿는 바가 나타나 주지 않으면 
말 그대로 위선자만 될 뿐이다. 
착하지도 않은데도 착하다고 선전하는 것이라기보다 
이 경우 "자기는 믿지도 않으면서 남들에게는 믿으라고 하는
 경우"이니 믿지 않는다는 표시는 
그 생활에서 여지없이 묻어나오기에 그러하다. 
이 세상에 대한 애착이 그 하나다. 
일상생활에서의 몸 가짐, 마음 가짐이
(호화 사치로 세상을 사랑한다는 증거를 지을 수 없을 때 등)
 하나님 앞에서의 마땅한 자세가 아닐 때 그러하다. 
교회 교인이, 오는 영원 세상을 식 않고 있음을 보일 때 
그 아무리 전도해도 복음의 능력이 상대에게 전달될 수 없다.

흥미가 있어 교회당에 갔다가도 며칠 다니면서 
그 분위기 보면서 그 낌새를 알아채고는 발을 영영 끊는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다. 전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영영 전도의 문을 닫아버리는 역할만 하는 것이다. 
이런 믿음의 열매는 오늘날과 같은 가장 합리적인 
원리(법칙) 설명에 기반한 말씀 전파와 조합될 때 
가히 핵 폭발의 위력을 창출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끌어다가  넘겨 줄 때 
무슨 말을 할까 미리 염려치 말고 무엇이든 그 시에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요 성령"(막 13:11)이시라 하신 
바로 이것이 "새 방언"(16:17)인 것이다. 
주님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당일 성령이 임하실 때 
베드로가 말한 일장 연설 즉 설교(행 2:14-36)라든지, 
스데반 집사가 순교하기 직전 공회에서 유대인들에게 
말한(7:2-53) 모든 것이 다 그 예이다. 
당시 초대교회는 성령 받아 모신 증거로 즉석에서 
전혀 자신은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구사하든지, 
또는 예언을 하든지 했는데 
모두 "성령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게" 되는 경우라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바 "방언"인데 이 "새 방언"에서
 "새롭다"는 뜻은 이같이 기존의 외국 언어가 아니고 
성령께서 그 장소 그 시각에 따라 
말씀을 주시는 대로 말함이기 때문이다.  


아크바르는 "창조주"(한 분)라고 하면 간단한데 왜 "3윈1체"라 하는지 그것이 궁금해 물었던 것인데



여기서도 성경이 인위적인 거짓 즉 지어낸 것인가
아니면 진실 그대로의 진리를 말한 것인가 하는
아주 중요한 핵심적인 것이 드러납니다.
지어낸 것이라면 "3위1체"와 같은 복잡한 말을 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은 상식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제야 알고 보니 "짝의 법칙"이라는 
엄청난 진실의 근본을 바로 설파하고 있음이 아닌가요. 
놀랍고 신기한 일입니다ㅡ21세기 대발견입니다! 








 

2023년 1월 4일 수요일

"마지막 때" 20세기에 접어들면서 등장한 3운법칙










"한 때, 두 때, 반 때"로써 성경에  이미 예고된 3운법칙

"그런 증거 중의 하나"라기보다 "그 중의 최고 걸작", 또는 "최고봉"이라고 해야 더 적절한 표현일 것이다. 이런 인류사상 처음 대하는 너무나 희한한 작품을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이라고도 했지만 그 의도성과 목적성이 백퍼센트 유감 없이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즉 짝의 법칙의 도식/圖式을 그대로 옮겨 놓은 흔적이 바로 그 경이스러움이다. 이 <도식>은 처음 2,500년 전 <"마지막 때" 예언자> 다니엘에게 나타난 스랍인지 그룹인지 또는 천사인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에 의해 예고 확인되었으니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기묘한 표현이 그것이다. 그냥 "3년 반"이라든가 하는 평범한 말을 할 수 있음에도 왜 이런 언어 유희/遊戱를 했을까. 그동안 오랜 세월에 많은 사람이 이 수수께끼를 풀고자 했지만 21세기가 되도록 그 가닥을 
도무지 잡지 못한 것인데 이제 21세기 짝의 법칙이 등장함으로써 그것이 다름아닌 "1, 1×2, 1÷2" 임이 간파된 것이다. 이것은 짝의 법칙 도식대로 하면 다름아닌 ●, ◐, ◑가 되는 것이니 즉 1에서 나와 짝을 이룬 2가 ×, ÷라는 정반대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는 바로 그 의미인 것이다. 지금까지 그간 많이도 설명해 왔지만 최종 정리라는 뜻에서 다시 되짚어 보는 것이다. 

(a), (b), (c)에서 지금 이 검은 바탕의 c가 현재의 a, b로 짝을 이루었다는 뜻인데 그 짝이 되어 있는 둘의 성질이 정반대라는 뜻을 , ◑로 나타내고 있는 것이며 바로 그 형용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때, 두 때, 반 때"에서는 "1"이 ●이고, ×2가 , ÷2가 ◑이다. 짝의 법칙에서는 이상 기호를 읽을 때 를 각각 a(갑), b(을), c(병)로 불러 3자 구도를 설명한다. ◐, ◑를 a, b라 함은 현재 둘로서의 짝으로 정착되어 있기 때문에 원래의 ●는 "과거에 갑 홀로 있을" 때, 그리고 현재 "둘이 하나되어 있는" 상태를 보이는 것이므로 'c'(병)로 물러나 있는 형국이 됨은 마땅하니 이제 주축은 어디까지나 a, b 즉 갑과 을로서의 '짝'이기 때문이다. 현재의 갑이, 과거 짝을 이루기 전에 'c'(병)이었던 것이다. 그 'c'(병)가 지금도 엄연히 존재하고 있음과 같은 모습이 되어 있는 것은 갑과 을이 따로 분리되어 있지 않고 하나로서 존재하고 운동하기 때문이니 즉 'c'(병)로 존재함이다. 그래서 "3위1체"다. 이렇게 셋으로 언제나 나타낼 수밖에 없어 "정립/鼎立"이란 말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이요 세 발(tripod) 솥의 형용이다. 처음에는 홀로 있다가 둘로 갈라졌으나 처음의 그 하나로 되어 있을 계속 유지한다는 그런 간단한 이치이다. 여기서 "귀소본능"이란 말도 생겨나는 것. "삼위일체"의 정확한 정의라 해도 무방할 정도이다.   






"19"라는 난데없이 나타난 숫자

이 클로버(clover) 도식은 "3위1체"의 문양이기도 하다. 그냥 셋이 함께 있다는 뜻이 아니라 아래의 둘을 바탕으
로 위의 하나를 이루어 있어 <하나이되 둘>, 또 <둘이면서 하나>라는 점을 시사한다. 애초 이 둘이 하나에서 출발했음을 또한 가리킨다는 짝의 법칙만의 고유한 특징적 설명인 것이다. 바로 이 짝의 법칙의 도식을 3운법칙의 얼개(구조, 짜임새)가 위의 그림에서 보듯 그대로 묘사해내고 있다는 것이 이 설명에서의 압권이다. 즉 a(갑)에 해당하는 OT는 '갑과 을'에서의 주격/主格답게 균일하게 1/3씩 3등분이다. 반면 그 종격/從格인 b(을)로서의 SN은 난데없는 19라는 뚱딴지 숫자가 튀어 나와 19개로 쪼개지니 한 마디로 살풍경이다. c(병)인 FS만 해도 OT에 준하는 아담한 모습으로서의 7등분인데 그러하니까. 여기서 당연히 이 불청객같은 "19"가 여기서의 이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 그 정체를 알면 그렇다는 것이다. 그 정체가 무엇인가. 바로 a의 정반대 성질이라는 뜻으로 a를 거꾸로 뒤집어(전도/轉倒) 놓은 것이다. 거꾸로 뒤집어 놓았으니까 볼썽사나운 아주 괴상망측한 모양새이니, 다시 말해 소위 "신/神의 숫자"라고 말하는 7도 아니고 3도 아닌 꼴불견의 "19"인 것이다. 그래도 다른 둘인 OT와 FS를 결사적으로 흉내는 낸다는 뜻으로 "7"은 함유하고 있으니 그래서 LP, DP가 각각 7/19로 양분되고 그 나머지 JP가 5/19이다. 이로써 "19"의 정체가 훌륭하게 밝혀진 것이다. 

OT, SN에만 있고 FS에는 없는 JP의 정체

두 번째로 3운법칙이 짝의 법칙 도식을 그대로를 훙내 내고 있다는 것은, 앞서 설명한 ◐, ◑,  ●를 역시 꼭 그대로 반영시키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가령 검은 바탕()으로서의 FS를 OT와 SN이 말 그대로 반분/半分하고 있는 모양새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는 바, 그것이 바로 JP이다. 왜 그렇게 해석하느냐 하면 JP의 LP, DP가 FS의 LP, DP와 똑같은 4/7, 3/7으로 나가기 때문이다(고로 JP는 OT, SN에만 있고 FS에는 없음). 그래서 JP는 FS의 축소형이라고 말한다. ●, ◐, ◑에서 볼 때, 는 ●를 반으로 갈라 서로 나누어 가지고 있는 형국 바로 그것이기 때문이다. 바로 처음의 ●가 , 로 나누어졌다는 뜻. 바로 아래와 같이 형용함이다.

 

그러니 "19"만큼이나 경이로운 JP의 역할이 아닌가! 짝의 법칙 도식을 쏙 빼닮은 모습 그대로가 아닌가! 성경은 영물 즉 천사를 "신/神"(고후 4:4)이라 하는데(아담은 이 신들 위에 있어 그들을 다스린 것인데 범죄로 인해 자연계 육체로 격하, 전락한 것) 멸망의 대상인 악령들을 제외하고는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예외 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일을 수행하는 고로 천사들이 한 것은 다 하나님 친히 하심이 된다. 고로 이런 3운법칙 정함도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여기서 LP, DP, JP의 용어 설명을 하면 LP는 Lively Period(활동 기간)의 약자이고, DP는 Dull Period의 약자, JP(유청소년 기간)는 Joseph's Pattern(요셉의 패턴 즉 요셉의 생애가 나타낸 독특한 양식 다시 말해 출생 후 17년간은 아버지 품에서 금동이 은동이로 키워져 호강하다가 나머지 13년간은 고생길에 접어들어 나이 30에까지 이르는)의 약자이다. 활동기를 전성기라고도 하고 비활동기를 침체기라고도 한다. 길흉화복의 의미에서라기보다 해당 인생의 그 진가/眞價를 드러내는 기간이 LP이고 그 반대 성질의 것이 DP인 것이다. 반드시 LP가 DP보다 약간 길다. 3운법칙의 세 가지 유형을 나타내는 OT, SN, FS는 각 유형 생애의 활동기를 대표적으로 나타낸 것인데 OT는 One Third(1/3)의 약자이고, SN은 Seven Nineteenths(19분의 7)의 약자, FS는 Four Sevenths의 약자이다. OT는 모세의 생애가 대표적이라 모세형이라고도 하고, SN은 950년을 살았던 노아가 대표적이라 노아형이라 하고, FS는 아브라함의 생애가 대표적이므로 아브라함형이라고도 하나, LP 기간 계산에 도움을 주기 위해 기억하기 쉽도록 OT, SN, FS로서 고착시킨 것이다.    (





21세기 전도(복음 운동)의 "표적과 기사"로서의 3운법칙

바로 이것이 21세기형 "표적(이적)과 기사/寄事"(기적)이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할 것"(요 4:48)이라 하셨고 그리고 "주님께서 저들의 손으로 표적과 기사를 행하게 하여 주시어 자기 은혜의 말씀을 증언하게 하신"(행 14:3) 것처럼 과거에는 그렇게 하셨으나, 지금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마 24:24)이라 하신 대로, 지금은 적그리스도의 때인즉 사탄의 능력과 천사의 능력이 함께 뒤섞일 수 없고 겹쳐질 수도 없고 서로 경쟁하듯이 할 리도 없다(개인적 기도의 응답 차원에서의 기적은 별개). 고로 지금은 악령들이 득세하는 때임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따라서 오늘날 이 21세기에 하나님의 능력의 복음 전파 수단은 짝의 법칙과 이와 상호 검증이 되는 3운법칙으로 집되는 것이다.                                                                    
복음 전파에서 "하나님의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히 2:4)은 그 여러 "기적"들이 하나님의 손길임을 인지하고 확인하는데 있는 것이다. "과연 하나님이 계시는구나" 하게 되면 그 다음에는 "그러면 그 말씀이 무엇인가?"로 직결되게 마련. 이런 관점에서 짝의 법칙과 3운법칙은 어디 하나 부족한 데가 없다. 위에서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역사/役事하심을 거울을 들여다보듯이 보고 있지 않는가. 우리가 지금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3운법칙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우리는 실로 희한한 광경을 목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이라고까지 표현했다. 중심이 되는 내용은 짝의  법칙이지만 이 짝의 법칙을 검증(상호 검증)해 주는 것이 3운법칙인 것이다. 만물 만상이 다 짝의 법칙대로 짜여져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없지만 이 3운법칙은 그 가장 대표적이라 하는 것이니 짝의 법칙 도식(圖式)을 마치 그림 그리듯이 꼭 그대로 묘사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놀랍다고 못하면 무엇을 놀랍다고 할 것인가. 그래서 "기적"이라 하는 것이다. 일부러 이렇게 나타나지도록 즉 만인 상대의 메시지로 처음부터 작정해 두셨다고 해야 맞는 말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전도 수단으로 주신 것으로 확신하기에, 충분히 음미해보시기 바라는 것이다. 이 신기한 클로버 도식이 다니엘 예언서에 이미 미리 고지/告知된 것이었을진대 할 말이 무엇이랴. 

이 3운법칙은 모든 인간에게 다 있는 것은 아니니, 태아로 죽어 나오는 인생에게는 없다. 순국 유관순 열사에게는 없다. 19세 잔다아크(프랑스)에게는 있었다. 메시야 예수님께는 없다. "아담"이시기에, 아담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여 죽지 않았다면 영원한 존재로 "신령한 몸"으로 지금까지 건재했을 것이라는 증명이다. 아담이 영원하니 모든 인간이 다 "영광의 몸"으로 창조되는 것임이 여기서도 입증되는 것이다. 영원하신 아담(최초 아담을 대신하셨지만)이시기 때문에 죽으셔도 부활하신 것이다. 성부 하나님과 하나되시는 성자이시기도 하나, 어디까지나 아담으로서의 사람이 되신 관계로 아담이 처음부터 죽는 존재로 창조되었다면 결단코 살아나실 수 없다. 아니, 처음부터 사람되심을 포기하셨을 것이다.    (끝)                   

   

사정이 여의치 읺습니다.

 방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몇 자 적을 수는 있습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