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1일 금요일

21세기 "마지막 때" 만인을 위한 "三生萬物/삼생만물"의 과학

"바벨론 탈출"(18.4)의 엄중하신 분부가 내려져 있는 21 세기 "천사의 복음"(14.6) 시대로서의 이 비상한 때, "삼위일체"(3위1합)가 소상히 밝혀지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새롭게 듣고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시는"(눅 1.4)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런 중요성에 비추어 비록 이전에 언급했던 되풀이지만 도덕경 42장 첫머리 25어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관련 요점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문구가 "三生萬物"입니다. 다름아니라 "만유의 기본 법칙이 바로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3위1합"이라는 의미인데 오늘날 상보성원리, 양자역학으로 명백히 투영되어 있기에 이 사실을 우리가 "마지막 때" 복음 전파 차원에서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또한 미리 정하시므로 이 노자 도덕경도 예외일 수 없어 그 일환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된 것이며 특정 지식인 상대가 아니고 만인 상대밈을 감안할 때 이 25언은 소중한 것입니다. 중에서도 요긴한 대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 많은 학자(연구가)들이 이 "道生一"에서의 ""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달리고 있지만 그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도덕경과 노자의 성격을 180도 돌려 결정 짓는 일대 전환점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숨겨져" 있다가 드디어 나타나기에 이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때가 와야 비로소 그 비밀이 풀려지는 "봉함"(단 12.4)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성경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노자 자체가 그 출생, 사망년도가 감춰진 '신비'이며 이상 25언의 핵심이 三生萬物에 있고, 뿐아니라 지금까지의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삼위일체"(3위1합)가 만물을 어찌한다는 소리를 내어본 역사가 전무하기에, 성경은 아니나 성경에 준하는 <무엇>이 필시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어 그렇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야 비로소 이 25언은 청산유수로 풀어지게 됩니다. 즉 道生一은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셨다", 一生二는 "자기 형상으로서의 독생자 하나님을 먼저 낳으셨다"(창조의 시발점/始發點으로서 그래서 독생자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시게 되지만), 二生三"부자지간 짝으로서의 두 분이시나 최초의 '언약과 계명'으로써 '삼위일체(3위1합)'를 이루셨다", 三生萬物은 이 "3위1합"을 만유 창조 및 운용의 기본 원리로 정하셨다",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는 모두가 아는 대로의 음양론인 것이니 다시 말해 이 노자 도덕경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도 가장 짧고 간결한 음양론 정의/定義라 할 것인데, 이 정도이면 이상 모든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래서 노자를 멜기세덱의 변신이라는 결론에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 주님 다시 오시는 때 거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을진대 멜기세덱을 믿지 않을 수 없는 바, 정황상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고전 15. 20), 그 '<둘째 열매>'가 곧 그 전신/前身이 아담이었던 멜기세덱으로 귀결되는 것니다. 성경상으로 아담은 죽었은즉 더 이상 "아담"이 아니나 아담이 부활한 그 후신/後身으로서의 이름이 멜기세덱인 바, 엄연한 현존 인물 중 하나로 노자로서 변신해 있었다 해서 사리에 어긋난다 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악령 사탄처럼 고의적인 것이 아니고 "여자"(딤전 2.14)로 인한 운명적인 것이기에(:14) 그러합니다. 고로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는 천사가 아니고는(천사가 이런 일에 개입될 리 만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따라서 인간일진대는 멜기세덱 외에는 달리 없다는 결론입니다. 바꾸어 말해 어떻게 얘기가 엮어지든 "三生萬物"이란 사자/四字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이 명백해진다는 점에서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해 온 "3위1합" 관련 해설과 완전 일치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도덕경의 노자로 변신한 멜기세덱이니 그리스도 우리 주님 다음으로 부활한 유일한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마지막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지마는 여기서 유일하게 독보적인 존재가 멜기세덱인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는테 먼저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리고 연이어진 것이 그 둘째 열매로서의 멜기세덱(아담의 후신), 그 "다음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고전 15.22)의 순서이기에 그러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현재 신령한 몸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이 그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누리게 되어 있는 삶처럼 <전폭적>이지는 않고 아직은 <제한적>이라 단지 그 무대가 하늘이 아닌 땅 위로만 국한되어 있는 양상만 다르다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노자 역할>도 할 수 있는 것. 


시 말해 멜기세덱의 부활은 자기 전신이 왕년의 아담이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오직 "마지막 아담"의 죽으심과 그 부활하심에 근거를 둔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멜기세덱 자신도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하는 피조물 중 하나이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사실상 "마지막 마담"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첫 사람 아담의 육체를 입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아담"의 영(성령)을 내 안에 영원 불가분으로 모시고 있음이니 나는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됨이 우리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심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때문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 (마 25.45)이라 하셨으니, 그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모습이 "3위1합" 원리의 "1합"에 따라 동시에 주님 자신이신 까닭입니다. 모두가 예외없이 주 예수님을 모시고(소유하고) 있으니 이것이 완벽한 만인 평등인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기를 주님 대하듯 하니까 온 누리에 화평과 기쁨, 희락뿐입니다. 이것이 이상향적 삶인 것입니다. 오직 홀로 머리되시는 주님 한 분만이 계시고(그 위로는 아버지 하나님) 그 외엔 모두가 다 <한 몸>의 지체들이기에 그러합니다. 세상 그 어느 종교도 이 완벽한 삶의 구도를 모방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모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종교가 많은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악령.사탄이 인생들을 속여 멸망길에 들어서도록 일부러 지어낸 속임수 짓거리일 뿐이니까. 


"3위1합"의 "1합" 핵심이 "교차 소유"에 있음을 명심합시다. 갑은 을의 소유, 을은 갑의 소유인 것입니다. 주님과 나의 이 교차 소유에서 주님은 나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 바치신 것입니다. 나 위해 죽으신 뒤 스스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먄일 그러하셨다면 그 죽음은 거짓이게 마련이니까. 자기가 자기를 위함이 되는 자기 중심이니까. 아버지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와(나와) "1합"이 되시기 위해 죽으셨지만 이미 아버지와 "1합"이 되어 계시는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 태초 "1합"은 "언약"과 "계명"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는 빈 틈 없이 짜여져 있습니다. 이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악이요 불법, 불의, 범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죽은 자"(마 8.22)로서 새로 창조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이니 따라서 "죄에서의 구원"(1.21)이라 구원된 자는 다시는 "죄 짓지 못함"(요일 3.9/롬 8.1,2)이 핵심입니다. 죄를 짓는다면 아직도 구원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입니다. 로마서 7장24절을 그리스도인의 직접 체험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마땅히 각성해야 합니다! 바벨론 사탄에 매여 있다는 증거이니까! 어거스틴, 루터, 깔벵 그 이상의 이상이라도 그들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에 불과하니까! 바로 그런 것이 "탈출해야 할 바벨론"(계 18.4)입니다. 그 근거는 명백하고도 남습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받아모신 이마다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된 것이므로 이 3위1합에서는 "교차 소유" 즉 "교차 삶"이 핵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죄를 잉태하는 것은 욕심"(약 1.15) 즉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모든 욕구인데 자기를 위하지 않는 삶에 무슨 그런 악한 "욕심"이 생기나요? 주님과 합해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라 내가 죽었는데 무슨 내가 또 있어 시퍼렇게 살아 그 욕심을 부린답니까? 말로만 믿는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의 믿음을 정직하게 점검하시기를! 성령 받아 주님과 "합해 한 영"이 되면 반드시 "교차 소유"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게 마련이고 결과가 없으면 원인도 없다는 증거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안 중의 교차 삶, 가장 이상향적 삶인 것입니다.




2026년 8월 9일 일요일

하나님의 극진하신 은혜에 대한 우리의 불변의 화답송




 
어느날 꿈결에서 이 곡조가 흘러나왔다. 
너무나 듣기에 아름다웠다. 나이 지긋한 연배로서
모든 찬송가를 이 곡에 맞추어 부르면 좀 좋으랴
싶은 생각에 한동안 사로잡혀 있었다. 몇 장인지 몰라
헤매다가 오늘 마침내 찾아 올리고나니 흐뭇하다.
틈나는 대로 여러 찬송가를 이 곡에 맞춰 개작한 후
게시해보는 보람도 남다를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개작이라기보다 찬송시를 지어 올리는 것이 나을 듯.
많은 찬송시 작가가 한국교회에 배출되어 나오시기를!









2026년 8월 6일 목요일

하나님 증거ㅡ인간 양심

 


"대신 죽으심"과 "함께 죽으심"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

로마서의 바울 사도 복음 강해 요점은 "죄의 몸"(6.6)척결에 있습니다. 7장에서의 통절한 탄식은(24절) 이 죄의 몸에서 오는 것이며, 반면 이 "죄의 몸" 처치하는 것 또한 너무 간단합니다. 바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하는 것온,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이 멸하였다>" 했듯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대신 죽으심"으로 알려진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함께 죽으심"인 것입니다. 그 햭심은 <성령을 바로 이해함>에 있습니다. 즉 성령이 누구이신가? 바르, "성령으로 계시는" 예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원래부터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요 10. 30)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되시기 위해 친히 여자(마리아)의 태에 들어가시던 순간부터 30세쯤 세례 받으신 그 시각까지만 제외하고는. 독생자 하나님의 영으로 마리아 잉태 당시 움직이셨으니까 멱시 "성령"이셨습니다. "성령"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말 그대로 "거룩하신 영" 즉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임하신 성령께서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셨던 것밉니다.  즉 그 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다시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 시각까지는 약 30년간 단 한 번 따로 떨어져 계셨던 셈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한도 내에서의 "하나"되심으로 판단하면 그렇다는 뜻이고 그 이상은 우리가 모릅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물론 "하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영" (요 4.24)이시니 인간으로서의 육체 안에만 계심이 아니라 광대무변의 우주에 꽉 차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따라서 왜 <대신 죽으심>이 아니고 "함께 죽으심"인지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주님은 내 안에 성령으로 친히 <육체로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 없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문자 그대로 "한 영으로 합해"(고전 6.17) 현재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나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신 후 바르 그대로 내 안에 오시어 나와 "한 영"으로 "합하셨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멊지요. 그러니까 본디로 돌아가, 죄의 몸(이 "죄의 몸"은 아담 범죄로 모든 인간이 빛과 영광의 신령한 몸을 잃고 동물성 육체가 되자 자동적으로 자기 중심의 동물적 본능이 발동되는 당연한 순서 따라 나타나는 생래적인 것)으로 인한 영적 갈등(롬 7.24,25)이 로마서 7장의 현장인데 이러한 동물성 육체는 죽음 하나로써 당장 끝나는 아주 간단한 것이 그 처치법입니다. 

썩는 물질의 육체는 죽음나로 순식간에 종료됩니다. 피조물 인간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으로 그에 수반되는 무한한 죽음의 고통을 견뎌 이겨내신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가닥은 너무나 쉽게 아니, 너무 싱겁게 끝나지 않았나요! 죽음으로 한 순간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나 위하신 은혜와 사랑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오늘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로! 7장 끝절까지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8장에 와 그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이 까닭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제는 사탄의 헛된 장단에 놀아나지 마세요. 시간이 아깝습니다. 결론은 14장으로 정확히 그리고 말끔하게 맺어집니다.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  다시 말해 우리 구원의 결과물, 목적, 의미, 모든 것입니다. 롬 7.24 관련해 "전통적 신자 갈등설(루터·칼빈 입장), 운운" 따위는 아주 입 싹 닫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적해 온 바벨론(신학)이 일부 교파나 교단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개신교) 자체가 완전히 여기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방금도 지적했지만 어떤 것이 그리스도인인지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뿐입니다. 바벨론 신학을 믿는 것입니다. 때문에 로마서 7장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오늘날까지 논쟁이랍시고 판을 벌이고 있는 한심한 실정입니다. 각자 성경을 부지런히 보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사모하라고 강력 권고하는 이유입니다. 설교자든 신학자든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안됩니다. 왜 안되느냐, 가장 가까우시고 가장 권위가 있으신 분이 오늘날 그 누구에게든 그 어디에든 언제 어느 때든 바로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계시는 것을 "너희에게 유익"(요 16.7)이라 하신 까닭입니다. 오늘날 지혜 있는 자에게 "숨기시는" (마 11.25) 것은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신 그대로 하시는 것뿐입니다.




2026년 8월 2일 일요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갈 1장 6~12절)

 

"성경의 핵심 가르침"이라 하여 "구원은 믿음으로"의 주장은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바을 사도의 구원론에서 "참고 선을 행함"을 "영생"(롬 2.7)과 직결시켜 놓고 또 그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6)고 명시했기 때문. 더욱이 13절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하나님 계명"으로 우리가 알반적으로 이해하는 대로)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못박았기 때문. 사실상 로마서 2장 전체가 이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3장에 와서는(20절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하였다.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대로를 밝힘이다. 즉 하나님이 만인간을(사람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인 모든 영물들도 포함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어 오직 율법(하나님 계명)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그렇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는ㅡ사탄과 아담이 그 예가 되는) 것이 영원불변의 원리원칙이나, 그래서 인간도 아담 범죄 전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었으나 아담 자신부터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통에 현시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3.23)이 되어버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어 하나도 없으니"(3.12) 어이하랴. 

바로 그래서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본디 원칙은 일단 유보되고 당장 급한 것이 이 "죄 아래 있어"(:9)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므로"(:20) 이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닌 "죄를 깨닫게"(:20) 하는 역할로 변한 것이다. 아담 범죄로 하나님 앞에 죄인됨을 알아야 죄인으로서의 "옛 사람"(롬 6.6)을 벗어나 새로 창조된 "새 사람"(엡 2.15/4.24)으로서의 행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새 창조>는 즉 새 피조물됨은 필연적으로 <의인됨>이니 하나님이 죄인을 창조하시는 법이 없으심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하나님의 계명에 복종)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3. 20)는 결론이 우선 내려지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행위의 법"으로써가 아닌 오직 "믿음의 법"으로(:27)써다. "고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28)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진 것. 단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이것이 이 글의 요점) 다름아니라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31) 것이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이 사탄의 바벨론 신학의 거짓에 넘어가 하나님의 계명 지킴(순종) 즉 <행함> 자체를 아예 폐기해버리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도리어 율법(하나님의 계명)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추상 같은 경고를 어찌하여 외면하고 감히 무시하려드는가! 멸망을 자초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그래서 <잠정적 결론>이라 한 것이니 왜냐면 이제 하나님 은혜로 의인들로서 새로 창조됨으로써 정상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죄인되어 있던 비정상 상태를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의 의인
곧 정상으로 완전히 새로 창조되었음이다. 몸만 아직 동물성 육체라 신령한 몸이 아직 아니라는 것뿐이다. 이는 나름대로 다 뜻이 있으니 믿는 자마다 순식간에 다 영광의 몸, 신령한 몸이 된다면 누가 안믿겠는가! 그러면 구원이 강제가 되어버린다. 믿자마자 금방 부자가 됨과 같은 간섭/강제인 것이다.

"잠정 결론"이라 한 것은 이와 같이 명료하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하나님 구원>을 설명한 바울 사도이건마는 "헛되이 믿는" 것을 지적하여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고전 15.2)이라 했기 때문. 또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적나라한 예가 바울 사도의 다음 경고다. 항상 우리가 성령의 가르치심을 사모하며 성경을 가까이하라는 경고가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 다른 복음은 없으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이다.형제들아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갈 1장 6~12절). 

이 말을 하는 것은(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루터, 깔벵 등 그리고 오늘날 모든 개신교 교단의 교파가 바울의 로마서 7장 24절 관련 대목을 믿은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 즉 죽을 때까지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질적 고뇌/고민이라는 망상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니 분명히 단언하거니와 누구든지 이렇게 "믿는" 이마다 "헛되이" 믿는 것이니(구원이 없으니) 이 바벨론(계 18.4)에서 탈출할 일이다. 




21세기 "마지막 때" 만인을 위한 "三生萬物/삼생만물"의 과학

"바벨론 탈출"( 18.4)의 엄중하신 분부가 내려져 있는 21 세기 "천사의 복음"( 계 14.6) 시대로서의 이 비상한 때, "삼위일체"(3위1합)가 소상히 밝혀지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