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3일 월요일
2026년 8월 2일 일요일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을 전하는 자들에게 저주가 있을 것이다"(갈 1장 6~12절)
"성경의 핵심 가르침"이라 하여 "구원은 믿음으로"의 주장은 말 자체에 어폐가 있다. 바을 사도의 구원론에서 "참고 선을 행함"을 "영생"(롬 2.7)과 직결시켜 놓고 또 그 앞에서는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6)고 명시했기 때문. 더욱이 13절에서는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하나님 계명"으로 우리가 알반적으로 이해하는 대로)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고 못박았기 때문. 사실상 로마서 2장 전체가 이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3장에 와서는(20절에)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 하였다. 말을 이랬다저랬다 하는 것이 아니라 실상 그대로를 밝힘이다. 즉 하나님이 만인간을(사람만 아니라 이성적 존재인 모든 영물들도 포함해)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어 오직 율법(하나님 계명)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그렇지 않으면 범죄자가 되는ㅡ사탄과 아담이 그 예가 되는) 것이 영원불변의 원리원칙이나, 그래서 인간도 아담 범죄 전에는 이 원칙이 적용되었으나 아담 자신부터 범죄자가 되어버리는 통에 현시점에서는 "모든 사람이 죄인"(3.23)이 되어버려 "선을 행하는 자가 없어 하나도 없으니"(3.12) 어이하랴.
바로 그래서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는 본디 원칙은 일단 유보되고 당장 급한 것이 이 "죄 아래 있어"(:9) "율법의 행위로는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므로"(:20) 이제 율법으로는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닌 "죄를 깨닫게"(:20) 하는 역할로 변한 것이다. 아담 범죄로 하나님 앞에 죄인됨을 알아야 죄인으로서의 "옛 사람"(롬 6.6)을 벗어나 새로 창조된 "새 사람"(엡 2.15/4.24)으로서의 행보가 될 수 있으니까! 그리고 <새 창조>는 즉 새 피조물됨은 필연적으로 <의인됨>이니 하나님이 죄인을 창조하시는 법이 없으심이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하나님의 계명에 복종)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다"(3. 20)는 결론이 우선 내려지게 마련이었다. 따라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행위의 법"으로써가 아닌 오직 "믿음의 법"으로(:27)써다. "고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것"(:28)이라는 <잠정 결론>이 내려진 것. 단 여기서 반드시 명심해야 하는 것은(이것이 이 글의 요점) 다름아니라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는"(:31) 것이 아니라는 것. 많은 사람이 사탄의 바벨론 신학의 거짓에 넘어가 하나님의 계명 지킴(순종) 즉 <행함> 자체를 아예 폐기해버리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도리어 율법(하나님의 계명)을 굳게 세우는 것이라고 한 바울 사도의 추상 같은 경고를 어찌하여 외면하고 감히 무시하려드는가! 멸망을 자초하는 것임을 왜 모르는가! 그래서 <잠정적 결론>이라 한 것이니 왜냐면 이제 하나님 은혜로 의인들로서 새로 창조됨으로써 정상으로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아담의 범죄로 죄인되어 있던 비정상 상태를 벗어나 하나님 앞에서의 의인
곧 정상으로 완전히 새로 창조되었음이다. 몸만 아직 동물성 육체라 신령한 몸이 아직 아니라는 것뿐이다. 이는 나름대로 다 뜻이 있으니 믿는 자마다 순식간에 다 영광의 몸, 신령한 몸이 된다면 누가 안믿겠는가! 그러면 구원이 강제가 되어버린다. 믿자마자 금방 부자가 됨과 같은 간섭/강제인 것이다.
"잠정 결론"이라 한 것은 이와 같이 명료하게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하나님 구원>을 설명한 바울 사도이건마는 "헛되이 믿는" 것을 지적하여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고전 15.2)이라 했기 때문. 또한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 뿐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했기 때문이다. "믿는다"는 것이 어렵다는 뜻이 아니라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적나라한 예가 바울 사도의 다음 경고다. 항상 우리가 성령의 가르치심을 사모하며 성경을 가까이하라는 경고가 이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 다른 복음은 없으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우리가 전에 말하였거니와 내가 지금 다시 말하니 만일 누구든지 너희의 받은 것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것이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닌 것이다.형제들아 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니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갈 1장 6~12절).
이 말을 하는 것은(이유는) 아우구스티누스(어거스틴), 루터, 깔벵 등 그리고 오늘날 모든 개신교 교단의 교파가 바울의 로마서 7장 24절 관련 대목을 믿은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 즉 죽을 때까지의 모든 그리스도인의 실질적 고뇌/고민이라는 망상 속에 갇혀 있다는 것이니 분명히 단언하거니와 누구든지 이렇게 "믿는" 이마다 "헛되이" 믿는 것이니(구원이 없으니) 이 바벨론(계 18.4)에서 탈출할 일이다.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
"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