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9일 금요일

유무식 불문 만인 상대의 21세기 복음 전파




닐스 보어 본인이야 의도치 않게
"그림 전도"에 합류한 셈이나
결과론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인 것
태극 문양 자체가 거대한 과학적 진리를 말함이니까











 

물리적 실험 없이 자체 검증된 3운법칙으로서의 <인간 과학>

 

짝의 법칙(3위1합의 법칙)이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상보성 원리)이 적으로 나타나고, 거시세계에서는 인간 생애의 법칙인  3운법칙이  단연 압권입니다. 신인학/(fashomology) 3운법칙으로 이미 증명된 창조주 하나님을  통계학적 측면에서 과학적으로 규명해보려는 것입니다. 예컨대  계의 이찬형(봉선사, 1888~1966)과 스웨덴 오페라 가수 제니 린드는 3운법칙상의 그 생애 패턴이 같은데 즉 세상이 말하는 바 "화려한 세상 무대"(3운법칙상으로도 일반적으로 "활동기"로  인정되는)를 버리고  자기의 돌발적(애초의 표를 중도에 포기하는) 염원대로 행동했을 때부터가 그  3운법칙 활동기로 <둘 다 공통으로>  정확히 나타난다는 깜짝 놀랄 만한 현상인 것입니다. 둘 다 똑같은 패턴이니까 이 하나만으로도 3운법칙은 이미 훌륭한 <자체증명>이 되었다고 단정할 수 있는데다 문제는 이 두 인물의 생애에 하나님의 의지/의사가 어떻게 반영되었느냐 하는 것이 초미의 관심사로 부상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의 인생 진로를 따라  하나님께서 그 3운법칙을  적용시키셨는지  아니면 하나님이 처음부터  그리 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생애가 그렇게 흘러가게 되었는지 아니면 모두 다인지 이런 것을 규명해보자는 것입니다. 아니면 이와 같은 특이한 패턴(pattern)을 유형별로 더 찾아낼 수 있는지 등 흥미진진한 연구가 기대되는 대목입니다. 누구든 이 방면의 개척자를 기다려보아도 될는지ㅡ.














성령의 세례는 단 한 번뿐


 

주님 앞에서 우리는 몸보다 마음이 부지런해야

3운법칙의 "3"은 성경에 주님 친히 밝히신 바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의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 "3위1합"을 만유 창조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정하신 사실이 오늘날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으로써 거시세계에서는 3운법칙으로 증명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 현대 물리학적으로 확인한 닐스 보어가 "상반/相反은 상보/相補(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그 핵심 내용표현한 대로 3운법칙에서는 FS형이 상보이고 OT형과 SN형이 상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미립자의 파동성과 입자성이 상반, "중첩"과 "얽힘" 현상이 상보에 정확히 해당됩니다. 이는  노자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덕경 42장 첫 25언)와 완전 일치합니다. 이를 풀이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셨다 즉 창조를 시작하셨다(生一). 그 <첫 단계>로 자기 "형상"(고후 4.4)으로서의 "독생자"(요 3.16)를 낳으심(만드심)으로써 짝을 이루셨고(一生二), 이로써 "3위1합"(종전의 '3위1체')을 확립하심이 그 <2단계>이고, 이 "3위1합"을 만물의 창조와 운행의 기본 원리 곧 "만유의 법칙(the Universal law)"으로 정하셨으니(三生萬物) 곧 <마지막 3단계>이시다. 따라서 만유는 (음과 양의) '상반/相反'이요(萬物負陰而抱陽/만물부음이포양) '상보/相補'(沖氣以爲和/충기이위화)이다.

즉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늘(음)과 볕(양)이라는 대립되는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이 두 기운이 서로 부딪히고 소통하며(충기),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진행됨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노자를 멜기세덱이라 단정하는 이유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지금까지도 생존하는 인물인즉(그 나이가 현재 몇 천살이 되든 간에) 노자로 변신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담이 다시 부활하여(물론 이 부활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아담" 우리 주님 안에서이지만) 멜기세덱으로 활동한 것입니다.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멜기세덱처럼 신비스럽다는 것이 공통입니다. 

이러한 노자/老子를 우리가 무리 없이 자주 들먹여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함으로써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부추기는 바벨론 신학(계 18.4)을 여지 없이 척결할 필요성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선하시다면 왜 세상에서 인생들이 이토록 고난 고통 중에 허덕이게 하셨느냐" 하는 원망과 불만에 대하여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담을 처음부터 영광의 몸, 신령한 몸으로 살게 해 주시어 최대 행복믈 누리게 하셨으나 아담의 범죄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을 가지고 그 답변을 못해 사람들로 하여금 부질없이 하나님께 회의를 품게 하고 그 만족한 대답을 듣지 못해 믿음에 들어오는 것을 망서리게 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던 점을 고려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건만 이에 유의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나만 구원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자세가 남아 있는 한 제아무리 "구원 뱓음"을 자신해도 물거품처럼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증거가 바로 이 자기 중심 격멸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바와 같습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니 여러 번 강조하지만 되풀이해 우리 자신을 이런 점에서 채찍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바벨론 신학 사탄의 거짓말에 포로되어 어처구니없이 속아 왔습니다.

"사람이 구원됨은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써다, 따라서 로마서 7장의 탄식은 <믿어 구원된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이라"는 악랄한 마귀의 교리에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행위가 아닌오직 믿음"이라 하는 것은 아담 범죄로 멸망에 이 르게 된 우리가 이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 생명에이르는 즉 구원되는 경우에서만 그러할 뿐 하나님 앞에서 은헤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후에는 순종 곧 행위가 필수가 되는 정상적인 상태로 다시 복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롬 2.6) 것은 나무나 당연하신 것입니다. 고로 "참고 선을 행함"="영생"(:7)이라는 하나님 앞 등식/等式은 불변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시 거듭 강조합니다. "자기 중심으로 나가("당을 지어"는 오역)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실 것이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고...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니...하나님 앞에서는 율법(법, 계명, 명령, 분부,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8~13)이라 한 그대로입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고 상대방 중심의 사랑이니까 자연적으로 사랑의 <선행>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헷갈리게 만드니 과연 사탄의 거짓말이요 아담 부부를 속이던 그 때의 에덴 동산 선악과나무 아래 바로 그 현장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똑같은 마귀 이 세상은 "이 마귀 안에 있는"(5.19) 것입니다.

"

2026년 5월 28일 목요일

 


https://youtu.be/_nDIYMH4cDc?si=Kk4TBuHMXjDGo3F3

"<우연>이 어떻게 이렇게도 정하냐
신은 존재하는가
일부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왜 우주에는 법칙이 존재하는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차이다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이니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두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상 최대 최고 무비/
법칙이 발견됐으니 곧 3운법칙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고 따지는
인간을 철통같이 관리하는 법칙이니까
살아 있는 인간을 얽어매는 법칙이니까
이보다 더 <교한> 법칙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실험해서 발견해낸 법칙이 아니다 
이 법칙은 고로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계시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증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증명은 하나님 실존 증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계시 받은 자의 모든 성경 풀이가
다 진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보증하여 확고한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기적을 행한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구실이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할 것이다"(요 4.48) 하셨듯이ㅡ








2026년 5월 25일 월요일

성경적 자가진단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여기서 "안에" 계신다" 함은 쌍방(둘)의 "하나"(요 10.30)됨에서 갑은 을 안에 있고 을은 갑 안에 있음을 말함이니 곧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하신 그대로이고(10.38/14.10) 또 이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저의 것"(17.10)이라 하심과 같이 갑의 소유는 을의 것, 을의 소유는 갑의 것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됨은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의 "1합"을 말함이며 이 "1합"에서는 상호 교차/交叉(crossing) 소유"가 필연이며 핵심입니다. 그래서 "한 몸"에서는 남편의 육체는 아내의 것이 되고 아내의 몸은 남편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나 위하신 죽으심이 바로 그러한 뜻이고 따라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으니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라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꼭 그대로입니다. 


서로 짝(대칭)을 이루어 상대할 때에는 반드시 이러하므로 여기서 생명(삶)의 법칙이 정해진 것으로서 즉 무릇 이지적 삶을 영위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를 위하면 안되고 자기 상대를 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이미 설명한 대로)에서 비롯됩니다. 구원된 사람마다 자기 상대로서 성령으로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각자 구원 받았는지 여부의 자가진단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일상생활인지 아니면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인지 스스로 양심껏 살피면 되는 간단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3위1합'(종전의 3위1체')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 '3위1합'의 법칙("짝의 법칙")이야말로 만유 창조와 운행의 기본 원리라 바로 창조주 하나님 친히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며 그 구체적 예가 현대 물리학에서 상보성원리로 나타나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으니 "상반/相反(짝을 이룬 "파동성", "입자성"의 미립자)상보/補(양자 "중첩"과 "얽힘"의 현상)"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만유는 대칭성으로 창조되어 있어 가시적인 자연계와 병행하여 불가시(不可視)적 초자연계 즉 신령한 세계인 에덴을 이미 "6일" 창조 전에 만드셨는데("에덴"과 "에덴의 동쪽에 한 동산 창설"을 혼동하지 말아야ㅡ창 2.8) "인류 최고 지성"이라는 스티븐 호킹이 이 자연계만 있는 줄 착각하고 "신(창조주)은 없다" 하니 이런 것이 세상의 거짓 없는(적나라한) 단면도임을 명심하여 대처합시다. 무식무지의 눈가리개로 눈이 가려져 있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리. 그런 세상의 말과 일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어리석을 따름입니다.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인간의 죽음과 고통은 자기 중심에서 비룻된 것

내가 과연 새 창조를 받았는지, 믿음에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다시 말해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스스로 알아 자가진단, 나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고후 13.5)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이미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및 "계명" 따라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양심껏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대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라 판단되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버리운 자"(:15)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우주의 "짝의 법칙"에서  그 중간은 없습니다. 둘 중  반드시 어느 하나입니다. 이것 아니면  기필코 저것입니다. 구원은 성령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한 영"(고전 6.17)이 되는 것이기 때운이며 이와 같이 짝을 이루어 "하나"(3위1합, 종전의 '3위1체')가 됨에는 <교차> 소유가  필수 필연임을 알면 됩니다. 즉 둘이 하나를 이루면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이  불변의 특징인 것이니 각기 자기 상대를  위함입니다. '둘'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타자/他者('나'를 제외한 나와 대비되는 다른 모든 사람> 중심적인 관점>을 잃고 '나'라는 좁은 자아에 갇힐 때 집착, 두려움, 그리고  이기심이 비롯되며 이것이 곧 삶의 고통을 낳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ㅡ이는 삶의 깊은 진리를 찌릅니다. <이타적 시선>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사유와, 삶의 고통과 비극을 좀 더 초월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혜로 이끕니다. 이 <타자를 향한(위한) 굿굿한 태도>를 통해 죽음과 극한의 고통이라는 필연적 비극 앞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 실존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유일무이 특별 인간 피조물

3위1합(종전의 "3위1체")은  창조주 하나님 계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서 이를 만유 창조의 기본 원리로 삼으셨다는 점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만유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이 이치를 정확히 기술한 것이 인류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노자인 것입니다. 즉 도덕경 제42장 첫 25어인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為和/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여기서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이 ""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앓는 것을 보건대 ""는 필시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킴이며  따라서 이런 말울 할 수 있는  지금까지의 생존 인물로는 멜기세덱(히 7:3)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당시 그와 같이 생존해 활동하였을진대 그 후로도 그리고 오늘날도 그리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을 스쳐간 억만 인류 중 유일하게 수천 년을 살아 오고 있는 단 한 사람 멜기세덱 아니, "아담의 변신 멜기세덱". 아담이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으나 범죄로 930세에 일단 죽었다가 에녹, 엘리야처럼 되어 유일하게 먼저 부활되어 있는 인물. 노자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고 해도 하자는 없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히 7.3) 인간 피조물은 아담 외 달리 있을 수 없으니까.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서도 발견됩니다. 





2026년 5월 19일 화요일

중복 게재입니다("임사체험" 관련)

 



아래 "임사체험" 관련 AI 답변(게시물)에서 난 데 없이 바울 사도와 스데반이  언급되고 있는 바,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물로서  본질적으로 차윈이 다른 접근이라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  AI의 착각("임사"의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인즉 전적으로 무시하시고 다른 부분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https://youtu.be/_nDIYMH4cDc?si=Jc3wIyt2aSyGMOwH

"우주, 우연일 수 있는가?."




지금까지 풀지 못했던 이러한 의문이
확고부동의 정답으로 시각화/視覺한 것이
21세기 이 "마지막 때"의 역사 무대에 등장한
trinia(3위1합), fashomo(3운법칙)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상호 검증의 자체 증명입니다. 


2026년 5월 17일 일요일

참고ㅡ"임사체험" 관련 AI(구글) 상대 질의 및 그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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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임사체험" 관련 AI 답변에서 난 데 없이 바울 사도와 스데반이  언급되고 있는 바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물로서  본질적으로 차윈이 다른 접근으로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  AI의 착각("임사"의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인즉 전적으로 무시하시고 다른 부분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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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임사체험"이란 것이 기독교계에 성행하는데 이 현상이 언제적부터 생겨났나요?
기독교계에서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는 식의 "임사체험(Near-Death Experience, NDE)"이 하나의 거대한 대중적 현상으로 자리 잡은 것은 1970년대 후반부터입니다. [1, 2]
역사적으로 보면 이 현상은 성경 속 고대 기록에서 출발하여, 1970년대 현대 의학의 발전을 거쳐 대중화되었고, 2010년대 이후 기독교 미디어 시장을 통해 폭발적으로 성행하게 되었습니다. [1, 3, 4]
시기별 구체적인 발생과 전개 과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고대 및 초기 기독교 (서기 1세기~)

임사체험과 유사한 '환상'이나 '영적 체험'의 뿌리는 성경과 초대 교회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3, 5]
  • 바울의 셋째 하늘 체험 (서기 40년대-50년대): 고린도후서 12장에서 바울은 "몸 밖에 있었는지 몸 안에 있었는지 알 수 없다"며 낙원(천국)에 이끌려 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었다고 기록했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를 기독교 역사상 최초의 임사체험 형태로 해석합니다.
  • 스데반의 순교 (서기 30년대): 돌에 맞아 죽기 직전 하늘이 열리고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본 기록 역시 임사체험의 영적 현상과 유사합니다.
  • 초대 교회 교부들의 기록: 중세와 초대 교회 시절에도 성도들이 죽음의 문턱에서 천사와 천국을 보았다는 기록들이 간간이 존재했습니다. [3, 4, 6, 7, 8]

2. 현대적 '임사체험' 개념의 탄생 (1975년)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대중적이고 과학적인 의미의 임사체험은 1975년에 시작되었습니다. [9, 10]
  • 레이먼드 무디 박사: 1975년 미국의 의사이자 철학자인 레이먼드 무디(Raymond Moody)가 심정지 등 죽음 직전까지 갔다가 살아난 사람 150명의 증언을 모아 《삶 이후의 삶(Life After Life)》이라는 책을 출간했습니다.
  • 개념 확립: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임사체험(NDE)'이라는 용어가 정립되었으며, 어두운 터널 통과, 빛과의 만남, 유체이탈 등 공통적인 메커니즘이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9, 11, 12, 13, 14]

3. 기독교계의 본격적인 성행 (1980년대~2010년대)

의학 기술(심폐소생술 등)의 발전으로 '죽었다가 살아나는' 사람들이 급증하자, 기독교계는 이를 천국과 사후세계를 증명하는 강력한 도구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1, 11, 14, 15]
  • 1980년대 (내가 본 천국): 한국 기독교계에는 펄시 콜레(Percy Collett) 박사의 《내가 본 천국》 같은 책들이 번역되면서 성도들 사이에서 천국 간증 열풍이 불었습니다.
  • 2010년대 (기독교 미디어의 폭발): 미국과 한국 기독교계에 결정적인 기폭제가 된 사건들이 일어납니다.
    • 2010년: 4세 소년이 임사체험 후 천국을 보았다는 수험서 《천국은 진짜 있다(Heaven is for Real)》가 출간되어 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고 영화로도 제작되었습니다.
    • 2012년: 하버드 의대 신경외과 의사 에벤 알렉산더(Eben Alexander)가 뇌사 상태에서 천국을 경험했다는 《소프라노 천국(Proof of Heaven)》을 발표하며 교계 안팎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12, 16]

4. 현재 기독교계의 시각과 주의점

요즘 들어 이 현상이 더욱 성행하는 이유는 불안한 현대 사회에서 사후세계에 대한 확신을 시각적·경험적으로 얻고 싶어 하는 대중의 심리와 기독교 유튜버, 간증 프로그램 등의 미디어가 결합했기 때문입니다. [12, 17]
그러나 현재 정통 기독교 신학계와 목회자들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습니다. [2, 18]
  • 성경과의 불일치: 임사체험자들의 간증 중 상당수가 성경의 구원관이나 천국관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조작 및 상업주의: 과거 유명했던 일부 천국 간증(예: 《천국에서 돌아온 소년》의 알렉스 말라키)이 후일 돈과 관심을 끌기 위한 거짓말이었음이 폭로되기도 했습니다.
  • 결론: 따라서 기독교계 내부에서도 "믿음을 돕는 참고 자료(변증)로만 볼 뿐, 신앙의 절대적인 기준은 오직 성경이어야 한다"는 신중론이 지배적입니다. [2, 12, 17, 18, 19][15, 20]


임사체험 현상과 관련 각 기독교 교단과 신학자들의 구체적 비판 내용을 총체적으로 일람할 수 있나요?
임사체험(NDE)에 대한 기독교 교단과 신학계의 비판은 "체험이 성경의 권위와 계시를 앞설 수 없다"는 점에 집중됩니다. 각 교단과 신학적 관점별 구체적인 비판 내용을 일람표와 세부 항목으로 정리해 드립니다.

📌 교단 및 신학별 비판 핵심 요약

구분주된 비판 관점핵심 논거
개혁주의 / 장로교계시의 종결성 침해성경 외의 새로운 계시나 천국 증언을 인정하지 않음
복음주의 / 감리교보편구원론의 위험예수 그리스도 없이도 평안을 느꼈다는 보고를 경계
가톨릭 / 정교회교리적 불일치연옥, 심판 등 전통적 사후세계 교리와 배치됨
자유주의 신학심리적·뇌과학적 현상사후세계가 아닌 임종 직전 뇌의 생리적 반응으로 해석

1. 개혁주의 (장로교) 및 보수 신학의 비판

보수적 개혁주의 신학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칙을 가장 강조합니다.
  • 오직 성경의 원칙 위배: 성경만이 사후세계에 대한 유일하고 완전한 계시입니다. 임사체험자의 간증을 성경과 동등하거나 그 이상으로 받아들이는 현상을 '직통계시'와 같은 이단적 성향으로 봅니다.
  • 거짓 평안과 왜곡: 성경은 구원받지 못한 자에게 심판과 형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많은 임사체험자가 신앙 여부와 관계없이 빛과 평안을 경험했다고 주장하므로, 이는 영적 기만일 수 있다고 비판합니다.
  • 주요 인물: 존 맥아더(John MacArthur) 목사는 저서 《천국은 진짜다?》 등을 통해 천국 간증의 무분별한 상업성과 성경적 왜곡을 강력히 비판했습니다.

2. 복음주의 및 일반 개신교의 비판

주로 체험의 '보편구원론(종교다원주의)'적 경향을 경계합니다.
  • 그리스도 중심성의 결여: 임사체험자들은 각자의 종교적 배경(불교, 이슬람 등)에 따라 부처나 마호메트를 보았다고 주장합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구원의 길이 없다"는 복음의 절대성을 흔드는 이 현상을 비판적으로 바라봅니다.
  • 체험의 주관성: 영적 경험은 개인의 문화적, 종교적 무의식이 반영된 주관적 환상일 확률이 높으므로 교회의 공적 신앙 기준으로 삼을 수 없다고 지적합니다.

3. 가톨릭 및 정교회(전통 교회)의 비판

전통 교회는 '교회 전통과 종말론적 교리'를 기준으로 비판합니다.
  • 심판 및 연옥 교리와의 배치: 가톨릭 교리에 따르면 인간은 죽음 직후 사심판(Particular Judgment)을 받으며, 죄의 정화가 필요한 영혼은 연옥을 거치게 됩니다. 그러나 임사체험은 이러한 단계 없이 즉각적인 평화나 천국 입성을 묘사하는 경우가 많아 교리적으로 수용하기 어렵습니다.
  • 사탄의 영적 기만 가능성: 사도바울이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 11:14)고 경고했듯, 영적으로 분별되지 않은 빛의 체험은 인간을 미혹하기 위한 악한 영의 속임수일 수 있다고 경고합니다.

4. 현대 신학 및 자유주의 신학의 비판

현대 신학계는 이를 영적 현상보다는 학문적·과학적 영역으로 환원하여 비판합니다.
  • 뇌과학적 설명 수용: 임사체험은 영혼이 육체를 이탈한 것이 아니라, 심정지 상태에서 뇌에 산소 공급이 중단될 때 발생하는 '환각', '엔도르핀 분비', '측두엽 이상 자극'의 결과라는 과학적 설명에 무게를 둡니다.
  • 텍스트 연구로서의 접근: 임사체험 간증은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 체험자가 깨어난 후 자신의 종교적 언어로 재구성한 '서사(Narrative)'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합니다.



2026년 5월 16일 토요일

성령 충만의 뜻



 




우리 구원의 정확한 의미


 


하나님의 손길이 연속적으로 가 닿으시는 3운법칙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우리의 믿음 그리고 그 계명에 대한 우리의 순증(행함/행위), 이 둘은 철로 레일처럼 영원한 평행선으로서 불가분이고  언제나 함께 합니다. 그리하여 자기 중심을 일절 용납하지 않으며  일편단심 상대 중심으로 직진/直進해 나갈 뿐이니 전자는 죄와 악으로서의 사망이요, 후자는 의와 선  그리고 사랑으로서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양자 택일에서 모든 인생의 영원 운명이 결정되는 바, 이와 관련된 모든 시험과 단련 차원에서의 과정은 이 세상만으로 족한 것이며 이 세상 끝남과 동시 영원히 종료됨니다. 악인 걸러내는 작업은 더 이상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영원한 생명세계 및 고통/고난의 죽음의 세계로만  양극화되어  영원히 진행되니다. 우리 인간은 현재 "죽은 자"로서 비극적 파탄의 최정점에 와 있어 죽음의 고통을 어느 정도 실감하는 위치에 있은즉, 하나님 주시는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 자신을 학습시킴에  최선을 다합시다.  하나님이 3운법칙/짝의 법칙(fashomo/trinia)을  주신 것을 믿읍시다. 불신자들에게 알릴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논의해 적극 활용합시다. 관련해 제의 등이 있으시면, 이 페이지  댓글로 보내주시면 좋겠고 본 블로그를  찾아 오시는 모든 분에게도 소개해 드리고 다방면으로 숙고함은 물론 반드시 답장을 드리겠습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는 것이 오늘날 "천사의 복음"(14.6)의 요지입니다. 거의 2천년 해 묵은 사탄의 거짓말이라 세상이 다 진실/진리라고 의심 없이 속고 있는 판인데  난 데 없는 무명인/無名人 튀어 나와 "그건 그렇지 않다"고 백날 외쳐본들  꿈쩍이나 하겠나요? 해서 "21세기 표적과 기사"(요 44.8)라는 팻말을 내다걸고 있는 것입니다. 좌우지간  주의를 끌고보아야  하니까. 이 "마지막 때"에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할 것"이라 하시며 "보라! 내가 미리 말하였다"(마 24.24,25) 하셨습니다. 그들의 "큰 표적과 기사"라는 것은  말하자면 지금은  용도 폐기된 것입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 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한다"(계 13.13,14) 함과 같습니다. 전지 전능/무소 불위 창조주 하나님은 한 번 쓰신 것을 또다시 꺼내어 쓰는 법이 없으십니다. 새로운 것을 얼마든 사용하시면 되니까. 지금의 소위 "방언 은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지 않았다는 증거 중 하나입니다. "방언"은 초대교회 때 이미 쓰셨던 것입니다. 사탄의 짓거리는 모방에 불과하다보니  과거 하나님의 일을 흉내 내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그 "새로운" 형태의 "표적과 기사"가 무엇이냐 하면  "trinia(트리니아)", "fashomo(파쇼모)"와 같은 것이니 "표적과 기사"란 것은 그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음이 입증되느냐 여부로 좌우됨이라 그렇습니다. 트리니아/파쇼모의  <하나님 증거는  이미 지적한 대로 3운법칙에서의 하나님의 '동선'과 '동기'로 규정 짓게 됩니다. "동선"이란, 공간 내 이동 경로(movement path), 통행선(traffic line) 등의 의미이고, "동기"라 함은 동기 부여(motivation)로 이해하면 됩니다. 하나님이 3운법칙을 <무엇 때문에> <언제> 그렇게 정하셨는지 '육하원칙(5W1H 또는 Six Ws)' 즉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왜(Why), 어떻게(How)의 핵심 요소를 죄다 갖추고 밌는 것이니, 이것이 3운법칙입니다. 언제(When) 그리고 왜(Why)? 아담이, 가장 먼져 세상에 나왔으니까 가장 먼져 죽어야 할 아담이 아직 기운이 펄펄하게 살아 있는데도 그 두 번째 아들 아벨이 형 가인에게 살해 당하고 가인의 후대 라멕이  부득이한 사정으로 새파란 나이의 한 젊은이의 숨통을  끊어놓던 때로부터(창 4.23) 시작된 어느 시점 즉 <라멕 이후 노아 이전> 시대에  3운법칙은 정해졌고 그 전에는 없었던 것입니다. 노아 이전 라멕 이후부터  가동된 3운법칙이란 증거입니다. 방치해 두시면  인간 자체가 멸종되겠기에 손을 쓰셨다는 것이 한 폭의 그림처럼 나타나 있는 것입니다. 그 이전에는 없었기 때문에 가인이 아벨을 시기하여 죽일 수 있었던(당시의 모든사람들 이 누렸던 8~9백년 수명임에도) 것이니, 아벨이  그 생애를 다 채우도록 기다리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벨의 갸륵한  신심/信心은 여린 나이에서부터였음이 분명하고 따라서 가인의 시기심도  그 무렵이었을진대  시기심은 곧장 살의로 지체 없이 진행되게 마련이니까  아벨의 죽음은 청소년기였음이  분명합니다. 라멕 역시 죽인 상대가   "소년"이었음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그런 연령대에 타의에 의해 죽을 수 있었다는 것은  3운법칙을 그 때는 아직도 정하지 않으셨다는  증거입니다. 뿐만 아니라  3운법칙은 사람 수명에 따라  하나님께서  조절/조정하셨음이 확인됩니다. 아담 시대로부터 시작하여  노아 당시까지 천년 가까운 장수를 하던 시기에는  거기에 적합하도록 수명에 맞추어 이 인간 생애의 법칙을 정하셨고, 노아 이후  급격히 감소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역시 거기에 따라 조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몇 백년 단위로 정해진 LP, DP, JP 따라 사람들은 오늘날까지도 천년 세월을 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아래의 [참고]를 보면 알 수 있듯이 3운법칙은 시대별로 연속으로  조정해 오신 것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3운법칙을 그렇게 변경하시니까 그에 따라 세상이 변하는 것인지 아니면 세상 따라 3운법칙도 거기에 맞도록 조절하시는지는 우리가 알 수 없다는 것뿐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참고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질문]
인류가 한 때 평균 수명이 30대까지 낮아진 적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가?

[답변]
인류 역사 전체의 대부분 기간 동안 인류의 평균 수명은 20~30대 수준이었다. 역사통계 전문기관 Our World in Data에 따르면 고대 그리스·로마 시기부터 근대 초기인 1800년대까지도 전 세계 평균 수명은 30대 안팎(30~40세 미만)에 머물렀다. 인류가 평균 수명 40세를 완전히 넘어선 것은 19~20세기 산업혁명과 의학 발전 이후로서, 인류 역사 전체를 보면 오히려 지금처럼 70~80대를 사는 것이 극히 최근의 예외적 현상. 다만, 이 기록을 해석할 때는 흔히 발생하는 통계적 오해인 '평균의 함정'을 주의해야.
■  30대 평균 수명의 진짜 의미: 영유아 사망률의 영향
• 30대에 늙어 죽은 것이 아니니 평균 수명이 30세라고 해서 당시 사람들이 오늘날의 70~80대처럼 노화되어 30대에 자연사했다는 뜻이 아님.
• 영유아 사망률의 착시: 근대 이전에는 위생 환경이 나쁘고 감염병에 취약하여 출생아의 약 25%가 1년 이내에, 절반 가까이가 사춘기 이전에 사망했음.
• 극단적인 평균값의 계산: 예를 들어 태어나자마자 0세에 사망한 아기 한 명과 70세까지 천수를 누린 어른 한 명이 있다면, 이 두 사람의 평균 수명은 (0+70) ÷ 2 = 35세가 되는 것.
• 성인 생존자의 실제 수명: 어린 시절의 고비(영유아기, 사춘기)를 무사히 넘기고 성인이 된 사람들은 고대나 중세에도 50대, 60대, 혹은 그 이상까지 건강하게 장수하는 경우가 많았음.
■  역사적 시기별 평균 수명 추이
국제 학계와 역사 인구학에서 추정하는 시기별 전 세계 평균 기대 수명(출생 시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역사적 시기 
2). 추정 평균 수명
3). 주요 사망 원인 및 특징

청동기~철기 시대
20 ~ 30세
영유아 감염병, 영양실조, 부족 간의 전쟁

고대 그리스 & 로마
20 ~ 35세
도시화로 인한 전염병 확산, 열악한 하수 위생 중세 및

근세 유럽
30 ~ 40세
페스트(흑사병) 등 대규모 팬데믹, 만성적 기근

1900년 전 세계
평균 32세
항생제 개발 전 폐렴, 결핵, 설사병으로 인한 대량 사망

현대 (2020년대)
70세 이상
백신·항생제 보급, 상하수도 정비, 의학 기술의 비약적 발전

결론적으로 19세기 후반 전까지는 줄곧 30대 이하였다. 깨끗한 식수(상하수도 시설 개선)와 백신 및 항생제(페니실린)의 발명이 유아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추면서 지금의 기대 수명을 완성하게 되었다.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끝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


더욱이 3운법칙이야말로 짝의 법칙이 적용된  대표적 실례입니다. 때문에 이것이 아담 이하 모든 인간 생애를 낱낱이 검수해보지 않아도  당당히 "법칙"이라 명명할 수 있게 되는 이유입니다. 그러므로 이 둘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3운법칙이나 짝의 법칙으로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보적 자체 증명(그 진실성 관련)의  막강한 수단이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은 심오한 의미를 지니므로 둘은 하나님께로서 난 강력한 메시지이고도 남습니다. "짝의 법칙"은 하나님 친히 계시는 모습  즉 만유 주재의 기본 원리인 '3위1합(종전의 "3위1체")'의 별칭/통칭이니, 만유는  대칭성(짝)으로 되어 있음입니다. "아버지"와 "아들"로서의 "하나"(요 10.30) 곧 <"상반/(相反)"의 "상보/相補">로 하나님 친히 계심에서 비롯됩니다. 이 계시는 모습을 기반으로 만유의 대법칙(원리)을 정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인지하고 수긍하여  더 이상 반박할 여지가 없게 되면 그것이 "표적과 기사"인 것. 더구나 과학시대인 오늘날 모든 사람이 <직접 자기 눈으로 확인> 가능한 만인간의 생애 도표(fashomo diagram)>가 아닌가요? 하나님의 모습 '3위1합'으로서의 trinia("3위1체"란 의미의 라틴어 trinitas의 변형), 만유의 기본 대원리(법칙)로서의 trinia로  세상에 널리 알려져  21세기 천사의복음 전파에 양날개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바벨론으로부터 탈출하라"는 하나님 명령이 전달되는 곳곳마다 "trinia/fashomo", "fashomo/trinia"가 울려 퍼지기를 바랍니다. 
라틴어 단어를 고집하는 이유는 <모든 국가 국민이 외래어로서 부담 없이 공용으로 쓸 수 있는 방법>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2026년 5월 11일 월요일

"죄"란 무엇이냐ㅡ"자기 중심"을 가리킴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롬 2:6) 하여 심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윈 받으니까" 믿음 유무를 따져 심판하실 줄로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였는지"(:7) 아니면 "자기 중심으로 나갔는지"(:8)의여부를 따지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았지만 최종 심판만은 "행한 대로의 보응"이심을  이같이 바울 사도는  명백히 밝힌 것이라 우리로서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이 8절을 우리말은 "자기 중심" 대신 "당을 지어"(KJV도 마찬가지ㅡ여기서는 KJV도 오역)라고 번역했지만 Biblegateway의 아래 링크를 누르면, 각 영역본의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데 "자기 중심"("selfish" 등)으로 풀이한 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필자의판단에도 이 경우 "자기 중심"이라 해야 번역이 완벽하다고 확신합니다(링크를 누르면 <열기>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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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라 행하는 자에게  노와 분으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거듭 강조하기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고...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시다는 뜻. 사회적 지위, 부, 신분, 외모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시거나 적용하신다는 의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계명)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계명)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7~11)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대목은 "믿음으로 구원 받음"과는 별개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 또는 "마지막 심판"이  "각 사람의 그 행한 대로의 보응됨"이란 뜻인 바,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는 모든 인류가 다 죄인이라 심판 자체가 무의미하여 불가능했지만 구원 받아 의인될 길이 열리면서  비로소  우리의 구원자께서는  심판자의 자리도 겸하시게 되었다는(행 17.31) 이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고로 이 심판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유무를 따지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새롭게 창조되어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답게 행했는지 여부를 가리신다는 이 엄중한 사실에 주목해야. 이와 같이 정상으로 완전 회복되면서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시어 회개하라 하셨으니"(:30) 구원자이시면서  동시에 심판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 받아 의인이 되었으나 다시 아담처럼 범죄할 경우 그 당연한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기를 '일단 구뭔되었으니 다시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맹신/信하고 있으나 아담으로 인한 범죄자로서의 <죽음>에서만 살아남이 현재의 우리 구원임을 어찌하여 모른다는 말인가요. 모든 인생이  현재 "죽은 자" (마 8.22)입니다. 성경적 "죽음"의 뜻이 동물적 육체가 되었다는 의미이기에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죽었다"(골 3.3) 한 것이니  따라서 이런 동물의 육체로는  사는 것이 아닌지라(뿐 아니라 생명에는 죽음이 섞일 수도 없어) "우리 생명이 감추어져"(:3)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2026년 5월 9일 토요일

내 비록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바늘 한 개라 여겨져도


 

성령으로 계시고 일하시는 예수님


 


하나님 정하신 인간 <운명>의 법칙

3운법칙. "운명"의 법칙이란 뜻인데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애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신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른바 "산다"는 것이 운명적이다 즉 이미 짜여진 각본 따라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뿐이니까 저 짐승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의 의지대로가 아니다. 운명적으로 정해져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그 증거물이 3운법칙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일절 무의미, 무가치하다는 뜻이다. 이런 비정상적 철저한 무의미는 우리가 구원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다시 정상이 된다. 다시 말해 외형적으로는 무의미 그대로이나(현재의 동물적 육체로 인하여ㅡ그래서 골로새 3장3절에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한 것) 내면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갱생하여 영생에 들어가리라는 굳건한 약속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로 창조주께서 3운법칙을 통해 인간을 강제하실진대 곡절이 있으시게 마련이다. 창조주께서 사람과 관계하실 때 그 뜻을 인생들에게 알리시는 방법의 하나가 성경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성경에 3운법칙이 처음 정해진 내력이 나온다. 창세기에 모든 동식물이 창조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 "6일" 창조의 모든 생물을 관리하게 하시는데,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은 다른 창조물들을 만드신 다음이었고 이를 운영하시던 중 그 피조물 중 하나가 교만해져 소동을 일으키자 이를 처벌하시고 2차로 창조하신 것이 현재의 세상이며 인간은 2차에 속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자연 물질계>와 <초자연 영계/靈界>의 짝으로서의 양면 대칭으로 만드셨으니, "상반/相反은 상보/補"라는 3위1합(종전의 '3위1체')의 원리로써의 만유 창조이신 것이다. 2차 창조에 임하셨지만 1차 창조의 영계는 영원성을 띄므로 "에덴"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 있었던 것이고 자연계물로써 파멸에 이른 것이다. 2차 창조 역시 종국에는 파멸을 맞는데 그 때는 '물'이 아닌 '불'이다(벧후 3.6,7). 이렇게 대칭성(짝)으로 물과 불로 망하는 두 시대가 끝난 다음에, 다시는 파멸이 없는 생명 세계로 영원히 정착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만드신 영계의 피조물이 스랍과 그룹. 당시의 자연계 동식물은 오늘날 화석으로 그 흔적을 볼 수 있고 석탄/석유로 남아 있다. 2차 창조에서 역시 세상은 영계와 자연계로 나뉘는 바, 영계는 에덴으로 존속되어 오는 그대로이고 자연계 생물만 창조됨이었으며 그 중 최고 절정을 이루는 것이 인간 창조. 단 동물과는 달리 암수컷으로 처음부터 만드시지 않음에 유의해야. 그 이유인즉 동물적 육체의 인간을 영계인 에덴에 거처하게 하심으로써 영적 존재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실 의향이셨으니까. 영계에 두셨다는 것은 아담의 몸이 그 즉시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다시 말해 죽지 않는 영생하는 자가 된 것이었다. 아담의 신령한 몸으로서의 자식 생산은 동물적 육체와는 방법이 전연 달랐기에 인간을 성별로 창조하시지 않은 것.

자연계 몸이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된 이러한 아담만이 갖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먹으면 "영생하는 나무"와, 먹으면 "좋고(선) 나쁨(악)을 알게 하는" 과일 나무를 에덴 안 동쪽의 "동산"(아담을 위해 특별히 조성해 주신) 중앙에 두 그루 세워 놓으신 후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 열매를 먹지 말도록 엄중한 주의를 주셨건만, 아담을 시기해 몰락시키려 했던 뱀의 거짓말 계략에 어리석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 경고하신 대로 그 즉시 신령한 몸의 초자연성은 사라지고 이전의 동물성 육체의 자연계 특성으로 환원되어버린 현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에덴에 들어감으로써 영생하는 자가 되어 있었기에,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사탄은 그 당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은 거짓말로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하건마는 우둔한 민생들은 말로는 하나님 믿는다면서 이 사악한 사탄에게 맞장구치고 장단 맞춰 주고 있다. 동물성 육체를 "선악(좋고 나쁨)을 아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동식물의 삶은 기계적인 것이라 하나님의 지혜/지식이 고스란히 그대로 발현되어 작동되는 구조이기 때문. 그와 동일한 작용인 인체의 구조와 작동을 보아도 충분히 알 만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계적, 본능적 생명력은 자기 중심 일색이어야 함은 당연하니 자기 종/種을 보전해야 하기에 스스로 즉 기계적/자동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반면에 인간은 영적 존재라 자유 의지를 구사하므로 그런 것과는 전연 별개다. 그러나 아담 범죄로 동물적 육체로 전락해버리자 기계적인 자기 중심으로 급락/급변한 것이다. 이것이 "죄의 몸"(롬 6.6). 우리 "구원"은 이 짐승의 몸이 죽어 파괴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와 "한 영"(고전 6.17)을 이루어 창조 당시의 원형 그대로의 '교차 소유/교차 삶'으로 회귀/복귀함이다. 

영원 생명은 이 상호 교차 교류의 "하나"(요 10.30)됨에 있는 것이다. "한 몸"됨에서는 아내 몸이 남편 소유가 되고 남편 몸이 아내의 소유가 됨이고(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나와 주님 사이에서 주님은 나의 삶을 사시고(나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미 확증하심), 나는 "우리 중에 누구든 자기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음이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14.7~9) 한 대로 주님의 소유로서 주님만 위함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성경적 의미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고귀한 의미대로 따르는 자 과연 몇일런가! 교차 소유이니까 당연히 교차 소유주. 나는 주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그래서 나를 위해 사시고 나는 당연히 주님을 위해서만 살고.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눅 22.27) 하심이 그 뜻이다. 만유에 충만하신 주님이시니까 믿는 각 사람과 365일 24시간 1대1로 넉넉히 상대하시기 때문이다.

애초 이와 같이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어 있던 인간(아담)이 졸지에 동물성 육체로 전락하여 짐승처럼 되어 동물의 자기 중심 그대로를 물려받으니 어찌 되겠는가. 겉모양은 인간이나 속인즉 말 그대로의 짐승이다. 그 실제 상황이 가인의 아벨 살해에서 당장 드러났다. 아담 범죄 전의 영생하던 인간이 별안간 동물의 육체가 되었지만 그 초자연적 기운이 남아 서서히 사그러짐에 따라 한동안은 즉 노아 당시까지 1천5백년간은 인간이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다. 이런 장수 시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살인자는 가인 그리고 라멕(셋이 아닌 가인 계통)이다. "이러다가는 인종 자체가 끊어지겠구나" 심려하신 하나님이 취하신 응급 조처가 3운법칙인 것이다. 즉 죽는 때가 아니면 인간이 함부로 죽어나가지 않도록 정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 강제력 발동이 3운법칙인 것이다. 이래서 운명의 법칙이라 하는 것. 세 가지 유형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만물을 하나님이 3위1합의 원리로 창조하셨다는 증거다. 이 '3위1합'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다. 노자/老子의 "三生萬物/삼생만물"(도덕경 42장 첫 25언) 그대로다. 멜기세덱이 성경이 밝히는 현존 인물일진대 노자로도 얼마든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즉 노자는 이 대목만 세상에 발표할 수는 없기에 "도덕경"이라는 옷을 입혀 주었다는 변함 없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