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과연 새 창조를 받았는지, 믿음에 있는지 즉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다시 말해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스스로 알아 자가진단, 나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고후 13.5)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이미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및 "계명" 따라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양심껏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대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라 판단되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버리운 자"(:15)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우주의 "짝의 법칙"에서 그 중간은 없습니다. 둘 중 반드시 어느 하나입니다. 이것 아니면 기필코 저것입니다. 구원은 성령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한 영"(고전 6.17)이 되는 것이기 때운이며 이와 같이 짝을 이루어 "하나"(3위1합, 종전의 '3위1체')가 됨에는 <교차> 소유가 필수 필연임을 알면 됩니다. 즉 둘이 하나를 이루면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이 불변의 특징인 것이니 각기 자기 상대를 위함입니다. '둘'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타자 중심적인 관점>을 잃고 '나'라는 좁은 자아에 갇힐 때 집착, 두려움, 그리고 이기심이 비롯되며 이것이 곧 삶의 고통을 낳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ㅡ이는 삶의 깊은 진리를 찌릅니다. <이타적 시선>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사유와, 삶의 고통과 비극을 좀 더 초월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혜로 이끕니다. 이 <타자를 향한 굿굿한 태도>를 통해 죽음과 극한의 고통이라는 필연적 비극 앞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 실존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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