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4월 20일 수요일

세상에서 성공하기 위해 사람들이 쉴 것 안쉬고 먹을 것 안먹고 애쓰고 힘써 노력하는 것같이 하라고 바울 사도는 엄중 경고



구원 받았다고 마냥 태평스럽게 지내는 이들이 거의 전부인데
감사, 기쁨, 평안, 넘치는 기대감 속에 마땅히 지녀야 하는 긴장이라 할까. 
이에 반해 사탄의 거짓인 바벨론 신학은 얼마나 이질, 이단적인가!
까닭은 분명하니, 내가 몸 담고 있는 세상을 사탄이 장악해 있으니까(요일 5:19).
고로 사자처럼 날뛰니 "근신하고 깨어" 있어야 하니까(벧전 5:8).
인하여 우리도 얼마든 아담처럼 넘어지고 말
 수밖에 없으니까((고전 9:27)!
<상대성의 동시성>에서 내가 움직이지 않는데 하나님 일방적으로 움직여
나를 지켜주시는 일은 결단코 없으니까.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는 내가 죽어 있을 때 나타나신 것이고,
이제 은혜로 산 자가 되어 범죄 전 아담의 위치로 회복되어 있은즉
아담 스스로 생명의 법칙대로 움직여야 했듯이
나도 스스로 움직이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담을 강제하실 수 없었듯이
나를 억지로 순종하도록 강제할 수는 없으시니까.



 

 





불멸의 이순신 정신

















2022년 4월 19일 화요일

심장이 뛰어야 살아 있는 증거가 되는 것처럼 주님 의식으로 움직여야 영적 심장의 고동/鼓動

 






"우리에게 유익하다" 하심은
이제 고난 받으심을 통해 "마지막 아담"이 되시면
그를 믿는 우리도 그와 똑같은 "영광의 몸"을 입어 영생하고
또 우리가 그같이 변화를 받지 않는 이 세상에서도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성령으로 우리 각자에게 오시므로
시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는 하나님으로 오시는 까닭에
이전처럼 사람으로 함께 하시나 시공간의 제약 없이 함께 계시게 되는 까닭.
 
"성령"으로 우리 각자 안에 내 영혼처럼 계시기 때문.
그래서 "성령이 함께 하신다" 하심과 동시에
주님 친히 우리와 함께 세상 끝까지 계신다 하신 것임.
이와 같이 주님 친히 당시 육체로 제자들과 함께 하신 것처럼
오늘날 나와 함께 계셔 나를 365일 24시간 대면해 계시는뎨
내가 어찌 주님 의식하지 않으리요. 매일 매시 주님을 
뵙는데. 
또 이같이 내 영혼이 주님을 뵙는데 주님 의식하지 않으리요.
이것이 새 창조를 받은 새 생명의 새 사람의 특징이요
그렇지 못하고 옛 사람으로 남아 있는 이들과의 본질적 차이.
놀라워라, 이 망극하신 은혜! 감사와 찬송, 영광을 올립니다. 
그러나 이러한 지극하신 은혜의 관계는
기계적, 자동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생명의 법칙 아래 '상대성의 동시성'에 의하여 작동되므로
내가 주님을 가까이하지 않으면 주님도 나를 가까이하시지 못햐니(약 4:8) 이를 필히 명심해야.








2022년 4월 13일 수요일

악령들과의 대대적인 전쟁은 시작되었다

 








이 "새 하늘과 새 땅"의 창조는
첫 사람 아담이 창조될 때 먼저 
자연계 속성의 육체로 하나님이 만드신 후
(이는 자연계 생물 창조 완료를 의미하는 것)
그 후에 
영혼을 조성하신 다음(이지적, 영적 피조물 창조의 시작)
이미 존재해 온 에덴의 동쪽에 아담 위해 "동산"을 창설하신 것과 맞물림이니,
우리의 새 창조도 먼저 ①이 자연계 몸(아담의 범죄로 인한 현재의 육체) 다음에 
②성령으로 다시 나니 성령께서 내 영혼처럼 되시어 내게 임하시는 바로서,
내가 "성령의 선물"(행 2:38)을 받음으로써 
①, ②가 한꺼번에 이루어지는 것.
그냥 아담처럼 에덴동산으로 들어가도 되지만
당시 아담 창조의 재판
再版으로서의 격식을 갖추게 되느라
기존 에덴과는 별도로 "새 하늘과 새 땅"인데
 에덴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은 
물론이다
(아담 창조 당시에도 "애덴 동쪽"이었으니까).
 









다니엘의 "마지막 때" 예언은 천사가 나타나는 이상을 본 뒤
천사가 전해주는 것으로 되어 있다.
"한 때, 두 때, 반 때"란 표현도 여기서 나온다.
이 내용을 받아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표현을 쓰며
"마지막 때" 예언을 하는 요한 계시록에서도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이라 했다.
이미 미가엘과 그 휘하 천사들은 악령들과 접전하여 이긴 연후다(12:9). 
그러면 전쟁 이전과는 다른 양상의 승자들로서의 실권 행사라 할까. 
다니엘서는 바로 그것을 예언했던 것일까. 
이와 관련하여 노자 도덕경을 다시 
연관 지음에 특별히 하자가 있을까. 
"봉함"된 21세기를 위한 예언서로서ㅡ. 



2022년 4월 6일 수요일

복음 전파의 서진/西進(유럽→북미→한반도→아시아, 아프리카→전세계)

 








바울 사도의 전도단이 아시아로 향하고자(동진/東進) 하나
성령께서 이를 허락하시지 않은(행 16:6,7) 것은 
장차 한반도 교회를 제2 예루살렘 교회고 세우고자 하심이었고
이 정하심을 따라 복음 전파가 지금까지 진행되어 온 것.









2022년 4월 2일 토요일

실상을 알고 나면 너무나 간단한 것을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마다 그 정수리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덮씌워진 채 나온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가(요 3:36)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마다 그 정수리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덮씌워진 채 나온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마다 그 정수리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덮씌워진 채 나온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가.
사람으로 태어나는 자마다
그 정수리에는 하나님의 진노가 덮씌워진 채 나온다는 사실을
왜 망각하고 있는가
(요 3:36).


 

사정이 여의치 읺습니다.

 방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몇 자 적을 수는 있습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