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31일 토요일

2022년 12월 30일 금요일

하나님의 일하시는 방법 중 하나

 










"나 다니엘이 서책으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고하신 그 연수를 깨달았으니 곧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70년만에 마칠 것이라 하신 것이라" 했으므로 다니엘은 하나님께 감사 찬송하면서 그냥 그 때만 기다리고 있었던가 하면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다음 구절이 있습니다. 즉 "내가 금식하여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했다"(단 9:3) 한 것입니다.




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짝의 법칙 도식/圖式을 3운법칙으로써 그리신 하나님의 그림

 






물론 천사가 작업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므로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이든 일이든 하는(골 3:17) 것이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 즉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서 새로 창조됨으로써 다시 출생했다는 증거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 6:29)이라 대답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요 구원받음은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자아중심이 되어 죄에 팔려 영원한 멸망만 기다리는 우리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창조를 다시 시작하시는 중의 오늘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일합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메시야 주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1) 것입니다.  

천사는 다니엘을 통하여 짝의 법칙 도식/圖式을 설명하기를 "한 때, 두 때, 반 때"라 했고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를 인용했던 그 "마지막 때"가 눈 앞에 다가 와 있습니다. 이것은 말(구변)로써 짝의 법칙 도식을 표현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3운법칙은 그 법칙의 내용을 담은 구조로써 아주 섬세하게 나타내신 바가 된 것입니다. 19라는 돌발적인 수치로써 그리고 FS형의 닮은꼴이 되어 있는 JP로써 회화/繪畫적으로 표현한 것이니 진실로 말 그대로의 하나의 "작품"을 대하고 있는 것이니, 아주 쉽게 어린 초등생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만인을 위한 과학"입니다. 과학자들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글자와 숫자만 익힌 이라면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말 그대로 "만인 상대"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직접 스스로 살펴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 성경 곧 그 말씀을 따르라는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지극하신 은혜이십니다. "천사가...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6).  



21세기 우리 믿음의 위치는 말 그대로 확고 부동이요 만고 불변

 









성경의 허구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피라미드, 나이테 등 7가지라 하는데, 우리는 당장 이에 대한 답변을 못합니다. 우리 자신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니까 그렇고 아니면 "6일" 창조의 "6일"을 우리가 아는 날로서 오해했듯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둔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와 같이 성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편에서 잘못된 지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기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그런 것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도 하나님 실존에 대한 그리고 그 말씀인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신뢰는 확고 부동입니다. 왜냐 하면 3운법칙과 짝의 법칙의 상호 검증입니다. DPA pix도 곁들여. "사람은 거짓되되(고의적이든 무지해서든)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명령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명령은 의당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할 것을 즉 우리가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 하고 있어야 할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억지로 없는 것을 있게 하라든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든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기쁘지 않는데 어떻게 기쁨이 나오나요 하고 되묻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믿음 탓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좋은 것이 아니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다"(눅 6:22,23) 하심과 같이 우리가 그 말씀대로 "기뻐하고 뛰놀" 수 없을 때 그것은 우리 믿음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탓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 믿음 가꾸기에 마땅히 힘쓸 일입니다. 그 "가꾸는" 일이란 제상장적인(나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남을 위해서 하는) 기도에 힘쓰고 말씀 가까이하고 모든 명령에 순종, 순응하는 것 외 특별한 무엇이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구하면"

어떤 이는 성경에 "회개하라" 한다 해서 "내가 모르는(잊어버린) 과거의 잘못도 일깨워 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는데 "회개"는 자아중심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리라는 의지 여부에 달렸으므로 당장 자신이 알고 있는 "악함을 버리는"(행 3:26)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부터는 일절 그런 악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기억하여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 순종하는 가운데 어느 때든 기억나게 하시든가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고로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로 씨름하여 귀한 주님의 시간(주님께 바친)을 허비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구하면 얻게 되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열리게 된다"(마 7:7)고 약속하셨으니까, 그리고 약속대로 기필코 되고 말 터이니까,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오직 불굴의 집요함만이 요망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


어디에 보니 "사람이 천국"이라고 하는데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우리 모두는 힘써 성경의 표현대로 하고 말의 기교를 부리거나 하여 튀는 설교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서 가르칠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떤다"고 했습니다(고전 2:3,4). 이것이 정상적인 바른 자세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모습을 좀체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말씀 혼잡"으로 유도됩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천국이라 한 예가 없습니다. "천국은 씨 뿌리는 자와 같다" 하셨으니, "사람이다"와 "그런 사람과 같다"는 것은 의미상의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자주 하셨으니 이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천국이라면 사람이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가 되니 이런 식의 표현은 삼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하셨으니 사람이 사람 안에 있다는 의미가 되므로 무의미한 것입니다. 튀는 언변과 표현은 말씀 전파에서 불필요한 때로는 심각한 암적 요소가 됩니다. 


복음 진리는 심오한 것도 아니고 난해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몇 가지 사실만 제대로 적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지어내어 퍼뜨렸기 때문에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거짓말을 벗겨내어 성경의 진실, 진리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때입니다. 아담의 죽음이 영적이었다는 거짓말, 대신 죽음이라는 거짓말, 에덴이 자연계 동산이라는 거짓말 등 몇 가지만 바로잡아 주는 것으로 그쳐야지 그 이상으로 나가면 도리어 화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소위 "진화론"의 허구성은 짝의 법칙으로도 여지없이 폭로되는 것



한 마디로, 육체에서 영혼이 진화될 수 있는가. 영혼이 육체의 진화로써 생성될 수 있는가. 영혼과 육체는 짝으로서 성질이 정반대인데. "하나"로서 존재하고 운동할 수는 있으나 파생될 수는 없다. 그러면 짝의 법칙은 더 이상 성립이 안된다. 육체는 영원히 육체이고 영혼은 영원히 영혼으로서 평행선으로 나간다. 짝을 이룬 둘 모두 제각기 이 자주 독립성이 없으면 애당초 하나로서의 양립 자체가 불가능이다. 

자연계가 있음으로써 영계(초자연계)가 있게 되었다는 그런 상호 연관성은 성립될 수 있어도 자연계가 영계가 되었다든가 영계가 자연계가 되었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영과 육(또는 물질)의 대칭성은 태초에 영이신 하나님께서 창조를 시작하심으로써 물질을 만드심 즉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짝을 이룸 그 단 한 번뿐이고 거기서 여타 모든 것이 파생되어 나오는 것이다. 자연계 생물이 있음으로써 그 대칭인 초자연계 생물인 에덴의 식물(선악과, 생명과 나무 등)과 동물(영물 즉 천사) 있게 되고 그 앞서 자연계가 있음으로써 에덴 동산이라는 영계(초자연계)가 있음이다. 그러나 이 에덴은 자연계와 전연 별도로 기존의 에덴의 "동쪽"(창 2:8)에다 창설하신 동산이다. 에덴이라는 초자연계가 이미 존재하고 있음이 확인되는 대목이니 이 원초적 에덴은 "6일" 창조 이전 '그룹'과 '스랍' 창조 당시 이미 창조되었던 것이다.

고로 인과 관계는 불변이니 자연계가 있음으로써 에덴 동산이 창설되고 사람도 자연계 물질 속성의 육체가 있음으로써 영혼이 조성되었으며 영혼이 있음으로써 그 "낮은 몸"(빌 3:21)인 물질 육체가 "영광의 몸" 곧 반물질 육체로 변환될 수 있었던 것이나, 영혼은 육체에서 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난 "하나님의 생기"(창 2:7) 즉 하나님 내쉬신 숨(호기/呼氣)이었던 것이다. 때문에 아담 범죄로 죽은 자가 된 우리가 산 자로 새로이 창조됨을(아담의 코에 하나님이 숨을 내쉬신 것처럼) 제자들에게 나타내실 때 제자들을 향하여 숨을 내쉬시면서 "성령을 받으라"(요 20:22) 하신 것. 이는 친히 성령으로 제자들에게 다시 오심을 예시하심이다. 그러니 엄연한 사실, 실제적 존재를 억지로 무리하게 부정하는 것이 무슨 "과학"인가. 인간 망상일 뿐이지. 

그리고 인간에게 영혼이 엄존함을 실물 증거로 보이는 것이 DPA(SBP) pix다. 인간이 영(혼)과 육체의 이중 구조가 아니라면 악령이 네피림을 생산할 수가 없음을 알아야. 네피림의 영은 악령의 분신으로서 아담의 자식 생산처럼 되는 형식이고 단지 여자의 몸에 태어났다는 것은 여자는 육체를 제공하고 남자는 영혼이 그 영역이기 때문에 사람으로서의 자식들을 (불법)생산해낸 것이다. 불법이기는 하나 악령 사탄의 인간세상 통치 차원이므로 이를 묵과하신 셈이나 그렇지만 그 당사자 악령들은 무저갱 연금에 처해진 것이다(유 1:6).사탄도 해당되나 인간 세상 관할자(아담 스스로 넘겨 준 지배권 행사)이므로 그 대신으로 그 자식(네피림 속성)이 들어가 있었는데 이번에 비로소 적그리스도로서 다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계 17:8). 

이러한 네피림(복수를 뜻함: "엘로힘"처럼)이 인간으로서 일정 기간 지내다가(살다가) 죽어 그 육체는 썩어 없어지나 영혼은 있어 아담 후손들이 가는 곳으로는 가지 못하고(그 예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에서의 부자의 위치-눅 16:24) 지상에서 유리 방황하는 것(눅 11:24)을 실제로 목격하는 것이 귀신의 실체 즉 NSO. 구원의 대상인 아담의 씨들은 여기에 해당되지 않아 귀신이 될 수 없다. 그렇게 위장하고 나올 수는 있어도 실제가 아닌 가장(假裝)인 것. 사무엘의 망령이라고 꾸민 연극처럼(삼상 28:15). 이 때 접신 여자는 분명히 "신들(gods, 엘로힘)" (:13)이라 말하고 있다. 사무엘의 영이라면 신이 하나라야지 왜 복수인가. 귀신들이 합동해서 사무엘로 꾸민 것이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이렇듯이 사실(엘로힘)대로 적시하였으므로 귀신 또는 여자가 말하는 대로 그냥 그대로 "사무엘"이라 표기한 것.

고로 진화론자들은 이 DPA pix를 통해 NSO를 보고 이제부터는 아주 입을 다무는 것이 그 자신에게도 이롭다는 것(실상을 깨닫고 자기 구원 문제를 고민할 수 있어 하나님을 찾을 수 있으니까)을 충고하는 것이다.   

 









2022년 10월 11일 화요일

2022 노벨 생리의학상 스반테 파보 창조론과 진화론─이제 그 승자는 명약관화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올해 2022년 생리의학상 수상자로 스웨덴 출신 진화생물학자 스반테 파보 교수(독일 막스 플랑크 진화인류학 연구소)를 선정하면서, 진화론자들이 주장하는 소위 "호미닌(인간의 조상 종족)과 인간 진화에 대한 비밀을 지닌 게놈(유전체) 관련 중요 발견을 한 공로"라 했는데, "불가능해 보이던 네안데르탈인의 게놈 염기 서열을 분석하는 선구적 연구 업적을 남겼고 또 이전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호미닌인 데니소바인을 발견했다"고 했고 "현 인류인 호모 사피엔스가 그 발생지 아프리카를 떠나 세계 곳곳으로 이주하며 당시 각 지역에 살던 호미닌과 만나고 이들 사이에 유전자 교환이 있었다는 사실을 발견한 중요 성과"라 했다. "네안데르탈인 유전자 해독이 그의 대표적 연구로 손 꼽히고", 네안데르탈인 게놈 지도 가운데 일부 해독 성공이란 2006년 과학 저널 '네이처' 발표를 계기로 2007년 타임지의 '세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중 하나로 선발되기도 했다(KBS 보도).


폐일언하고, 창조를 신화라 하여 평생을 "진화론"에 빠져 있는 파보(이 이름도 자기 가문 고유의 부친 성이 아닌 아닌 모친의 성일 정도로 행사가 안하무인 격) 교수는 자기를 이미 정해진 LP, DP 그리고 사망 일시로써 꼼짝달싹 못하게 옥죄고 그 이상으로는 한 발짝도 내디딜 수 없게 하고 있는 이 철통 같은 인간 우리(cage)를 누가 만들어 정해 놓았는지 그것부터 평생을 걸 각오를 하고 알아보려 했어야 할 일이다. 어린 학생이라도 직접 검증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이 3운법칙인데 이를 모른다면, 이를 아는 아이들의 손가락질까지 받게 될 날이 이를 것이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라도 감탄할 만하게 그리고 이해할 만하게 오밀조밀하게 꾸미고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고안"이라 하고 "설계"라 한다. 

아인슈타인 버금 가는 물리학자라고 평하는 이들이 있을 정도의 리차드 파인만은, 양자역학을 컴퓨터로 구현할 수 있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1983) 사람이지만, "양자역학을 이해했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라 했다 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의 입에 회자되고 있어, 짝의 법칙을 이해하고 나면 별 것 아닌 것임을 금방 이해하게 될 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 짝의 법칙과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것이 3운법칙으로서 그 얼개(짜임새, structure)가 짝의 법칙 도식/圖式 꼭 그대로의 흉내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넉넉히 소우주/小宇宙가 되고도 남을 인간 개개인의 생애를 이같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도록 고안하고 설계한 주인공을 우리가 창조자라 한다면 이 실존/實存 못지 않게 확실하고 중요한 것이 그 대인류/對人類 메시지인 것이다. 그러한 이 경우 그 내용에 거짓이 있을까? 인위적인 것이 감히 스며들 수 있게 허용될까?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내용과 상치되는 것이 제아무리 "과학적"인 것이더라도 만일에 있다고 가정한다면 어느 쪽이 진실일까. 창조주는 우주에 꽉 차게 충만하시어 지금 이 자리에도 계시어 그 불꽃 같은 눈초리로 살피신다고 했는데─. 

이세상 신/神인 사탄은 온갖 거짓말로써 인생을 속이는 자로서 더군다나 초능력자인 관계로 인간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그 지력이 월등하다. 거짓된 것을 주입시킬 수도 있거니와 생각을 엉뚱한 방향으로 틀어 놓고 엉뚱한 결론을 내리도록 조종할 수 있는 자이다. 그러한 자가 이세상을 지배하는 실력자로 군림해 주야로 광분하고 있다. 따라서 그가 유도하는 방향으로 끌려다니다보면 시간만 낭비하고 힘만 지치게 되고 자칫 잘못하면 예기치 않게 그 유인하는 곳으로 내리박히는 위험성마저 있다. 고로 그 보조(pace)에 말려들지 않도록 극력 유의하는 것도 절반은 그를 이기는 지름길일 수 있다. 

그런데 말이 났으니 말이지, 다시 강조하지만 창세기의 "6일"은 우리가 아는 "날"과는 사뭇 개념이 다르다는 것을 성경은 이미 선언해 두고 있다. 즉 우리의 연월일 계산의 기반이 되는 "주야(밤과 낮)의 관할"이 제4일째에서야 이루어진다. 그러면 그동안까지의 "아침"과 "저녁" 그리고 "날"은 우리가 아는 개념과는 전연 별개의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6일"이 우리 인식으로는 어느 정도인지 현재로서는 알 수가 없다. 또 알려고 할 필요도 없으니 현재의 우리 처지(다시 출생해야 하고 새로 창조됨이 시급한)로서는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창조주의 전지전능이시라 해서 순식간에 말씀 한 마디로 모든 것이 별안간 나타난다고 생각해도 좋다. 안해도 좋다. 그 역시 일리는 있다. 자연계라는 속성 자체가 그 성립에 장구한 세월(그것이 어느 정도의 기간인지 역시 알 수도 없거니와 알 필요도 의미도 없다)을 요한다는 결론을 내려도 하자는 없다. 그리고 원숭이 다음에 유인원/類人猿 그 다음에 인간(아담) 순으로 하나님이 상당한 시간에 걸쳐 관찰, 검증해 나가셨다고 해도 하자는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인 하나님의 대리자로서 모든 창조(자연계)의 최고 정점/頂點을 이루는데 그 결정적 단계로 영혼을 주입하신 것이며 이 단계를 두고 성경에서는 사람 창조라 설명하고 있는 것이다. 어느 경우에서든, "하나님의 사람 창조"임에는 불변의 진실인 것이다. 

마지막 단계가 사람이니까 첫 단계, 다음 단계 등과 이 '마지막 단계'가 무관할 수는 없다.  이런 관련성을 "진화"로 연결 짓고 있으면 이세상 신의 사주에 의한 것이다.  사탄이 이 진화론을 이렇듯이 애용하는 듯한데 어디에 쓰자는 목적일까.  외계인이 진화의 한 단계라고 속일 작정일까. 아무 것도 모르는 인생들이 소위 "진화론"으로써 많이들 그 믿음이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목도했는데 이것 말고도 적그리스도 나타날 때 진화와 연결 짓자는 것일까. 아무튼 진화는 성경의 인간 창조와는 대척 관계이니 사탄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3운법칙(짝의 법칙 과 더불어)으로 사람들에게 접근해야만 승산이 있는 것이다. 

고로 창조자를 알고 새 생명으로 전환된 다음에 "네안데르탈 유전자 해독"이든 "게놈 지도"이든 찾을 일이다. 모든 일에는 선후가 있고 순서가 있다. 필요하고 시급하다 해서 한꺼번에 해치울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제 21세기가 되어 모든 인생의 발 등에 떨어진 불이 이 3운법칙이다. 이에 대한 가부/可不부터 정하라. 이것이 최우선 순위다. 진실이냐, 거짓이냐, 망상이냐 아니면 확실한 증거냐, 반드시 택일할 것을 강요한다. 영원한 생명의 희락이냐, 아니면 영원한 고통의 이 갊과 비애의 눈물이냐 양자 택일이 바로 여기서 결정 지어지는 것이다. 이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다"(마 22:13/24:51/25:30)는 말씀이 마태복음서에 세 번이나 나오는 것을 보아도 주님이 이를 누차 강조하신 것임이 확인된다. 





2022년 10월 7일 금요일

"무위자연"은 있는 그대로 그냥 두고 "작위"(손대는 것)하지 말라는 엄중 경고










 

양의 특징은 안음이요 음의 특징은 업음이다.
만물은 그 특징대로 양을 안고 음을 업은 표현인 것이다. 
단 차서次序를 따른 질서가 엄연하다. 
쌍둥이도 먼저 나온 것이 있고 나중 나오는 것이 있듯이─.







양의 특징은

2022년 10월 5일 수요일

아는 대로 말하고 본 대로 증언하나 이 증언을 받지 않는다










정확히 쪼개어 낸 바위처럼 
수직 경사진 것일 수는 없고
약간 비스듬하게 놓인 바위 표면 위로
눈이 쌓여 있었기에
그 위로 지나간 발자국들이
선명히 남아 있었다는 뜻

지나가는 발에 덤불이 짓밟히지 않았다는 것은
엉성한 덤불 아래에(위에서 훤히 들여다 뵈는)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는 것을 말함이며
당시 약하게 흰 눈이 덮여 있었을 때였음






 
 

"오늘 밤"(눅 12:20)─이것이 <인간의> 자연계 육체의 본질




로마 제국 폼페이시 베수비우스 화산 폭발 

"오늘 밤"(눅 12:20)─이것이 <인간의> 자연계 육체의 본질

여기서부터 하루 아니면 한 달 아니면 1년
아니면 10년 정도 겨우 연장되어 가는 것일 뿐




 

방황하는 그대에게 안기는 안식처 (5)

 









사정이 여의치 읺습니다.

 방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몇 자 적을 수는 있습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