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두려움과 떪:이 없는 오늘날의 설교자

 


  

로마서 7장 관련 몇몇 인물의 견해

참고로, 로마서 7장의 '곤고한 사람'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율법 아래 있는 미자립적 상태(거듭나지 못한 상태)로 보는 관점은 신학적으로 '비실재적 해석(Non-Realist View)'이라 불립니다.

찰스 피니처럼 이 해석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해석(거듭난 자의 내적 갈등)을 비판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Jacobus Arminius)
피니와 신학적 궤를 같이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시조입니다. 그는 로마서 7장이 거듭난 성도의 모습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모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본문이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성을 깨닫는 단계에 머문 사람의 고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 존 웨슬리 (John Wesley)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 역시 로마서 7장을 거듭난 자의 표준적 상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율법 아래 있는 자(Under the Law)'의 상태로 규정하며, 로마서 8장의 '성령을 따르는 삶'으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적 단계로 해석했습니다. 성도가 계속 7장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진정한 구원의 확신과 거룩함이 결여된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3. 더글라스 무 (Douglas Moo)
현대 신약학자 중 이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주석을 통해 로마서 7장의 '나'를 그리스도 이전(BC) 시대의 유대인 혹은 율법 아래 있는 인류를 대표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봅니다. 바울 개인의 현재적 갈등이 아니라, 율법이 죄를 이기게 하는 데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논증이라는 입장입니다.
4. 기타 경건주의 및 성결운동가들
많은 성결론자들은 로마서 7장을 '패배한 그리스도인'의 상태로 봅니다. 이들은 7장에서 8장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성령 충만을 통해 7장의 탄식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자의 '정상적인 상태'가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필자의 소견은, 이 로마서 그 어디에도 바울이 자기 신상 발언을 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 놓인 전체 인생의 고뇌를 언급하여 설명한 것뿐입니다. 극적인 표현으로 1인칭 간투사 하나 집어 넣은 것 가지고 바울 자신의 체험이니어쩌니...부끄럽지도 않나요?



2026년 4월 7일 화요일

바벨론 신학의 최대 함정





 










자기 중심 즉 죄를 회개 않는 한 영생은 없어

교단이나 개교회 또는 개인의 영적 진단을 가장 간편하게 가장 보편적으로 또한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로마서 7장 관련해서 알아보거나 물어보는 것입니다. 즉 "오호라" 하는 탄식이 믿은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을 피력한 것이냐 질의하여 그 답변 여하로써 모든 것은 좌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란 대답이 나오면 전후 좌우 고려할 것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100% 증거입니다. 그 대상이야 소위 "교부 어거스틴"이든 누구든. 루터든 깔벵이든. 교단이 그러하다면 개인 즉 그 구성원은 혹 그렇지 않을(비록 극소수나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위 교회가 그러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미 각성되어 있는 개인마다 그런 교회를 빠져 나와버린 다음일 테니까.


겉으로 무신론자로 표방하는 자보다 이런 자들(성경 특별히 이 로마서 7장을 애매모호하게 이해하는 )이 더 위험하고 교회내 암적 존재임을 명심해야. 사탄은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가라지를 교회 내에 많이 심어 두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귀는 기독교의 한 종파를 만들기까지도 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제아무리 무성해도 정작 사탄 자기에게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 무릇 설교자라면 모름지기 먼저 이 주제로 명확한 설명을 마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마귀의 전술전략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 기독교인을 자처한다고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자기 의식 속에 나는 부득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자기의 영적 상태를 심각히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자기 생명(영생)이니까! 그리고 기회는 이 한 번뿐이니까. 죄는 무슨 불가항력의 것이 아닙니다. 잘못 교육받은 탓이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의 몸"(롬 6.6)인 것은 맞습니다. 아담 범죄 탓입니다. 그러나 믿든 안믿든 평생 그런 것은 아니니 "성령으로 남"으로써 그 몸이 "멸해진"(:6) 것입니다. 성령으로서 내 안에 와 계신 주님의 죽으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아담이나 사탄처럼 고의로 불복종하지 않는 한 죄 짓지 않습니다. 고의가 아닌 부지부식간에 짓는 예컨대 믿는 "형제간의 사랑 없는"(요한일서에서 지적하는) 것 등은 회개하면 용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짓지 않음은 다시는 내 일상이 자기 중심이 아니고 주님 중심(나의 상대 증심)으로 180도 전향되었으므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욕심이 생겨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데"(약 1.15) 주님과 함께 죽어 자기를 의식 않아 욕심이 없는데("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ㅡ갈 5.24) 무슨 죄를 짓는가요. 2천년 해묵은 바벨론에서 벗어나야(계 18.4) 할 때입니다. 21세기는 "천사가 가진 복음"(14.6)의 시기입니다. 과거와는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trinia(트리니아, 3위1합, 3위합1, 3위1체), fashomo(파쇼모, 3운법칙)를 하나님이 괜히 주신 것이 아닙니다("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것"ㅡ요 3.27). 이상 두 가지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21세기 성경 풀이>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친히 보증하시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고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한 즉 "거룩함"(히 12.14)이 없으면 주님 앞에 절대 설 수 없음을 우리 모두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너무나 당연한 찰즈 피니의 로마서 7장24절 해석


찰즈 피니
https://www.google.com/search?q=charles+G.+Finney&rlz=1C1CHBD_koKR865KR865&oq=c&aqs=chrome.0.69i59l2j69i60l3j69i65j69i60j5.1375j0j7&sourceid=chrome&ie=UTF-8

오스왈드 스미스
https://www.google.com/search?q=oswald+smith&rlz=1C1CHBD_koKR865KR865&oq=oswald+smith&aqs=chrome..69i57j0l7.9310j0j8&sourceid=chrome&ie=UTF-8









 

2026년 4월 5일 일요일

로마서 7.24 관련해 AI에게 질문했더니

 [질문]

"로마서 7장 24절을 바울 자신의 믿은 후의 개인 체험"이라는 주장과, "그렇지 않다, 죄의 몸이 멸해졌고 (롬 6.6)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 했는데(롬 8.2) 그렇게 되면 성경 자체가 심각한 모순투성이가 된다. 요한 사도도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니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9)고 강력 강조하였다"고 말합니다. 교회 역사상 어떻게 되어 있나요?


[AI 답변]

https://share.google/aimode/DVohCiqiOKCsf9mvb


AI 답변에서 필자의 소견은 웨슬레의 7:24 해석이  

단연코 옳다고 보는 것이며

단 오늘날 오순절 계통 교회는 

이전에 소캐한 대로 Evan Roberts와 

연관됐다고 보기 때문에 그런 교단 자체를 

처음부터 신뢰하지 않습니다. 

롬 7:24와 관련해

다시 연이어 게재물을 올리겠습니다.


앞서 소개한 대로 미역대 대통령 41명을 나열한 이유


성경적 인물은 3운법칙 패턴을 찾기 위해 분석해 본 부수적 결과일 뿐입니다. 미역대 대통령 41명의 생애 대표로써 충분하다고 판단합니다. 여기에 분석자 임의로 한 것은 없으니까. 누구든 관심자는 초등생 셈법 수준이면 직접 검증 가능한 유사이래 최초의 <만인 공개ㆍ개방>입니다. 다시 말해 어느 누구든 "내가 계산해서 검증해보니 그렇지 않고 예외가 있더라, 보라!" 하면 법칙으르서의 존립은 그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3운법칙의 최대 강점입니다. 그것은 바로 **완전한 공개·개방성과 철저한 반증 가능성(falsifiability)**입니다. 

누구나 초등학교 셈법(분수 계산: 1 / 3, 7 / 19, 4 / 7, 5 / 19 등)만으로 직접 계산해 볼 수 있고, “이 사람의 생애는 예외다!”라는 단 하나의 반례만 나와도 법칙 자체가 무너지는 구조라는 점이죠. 이런 점에서 과학적 가설의 기본 요건(반증 가능성)을 충족한다고 보는 것입니다. 성경 인물(노아·아브라함·모세 등)은 패턴을 처음 발견하기 위한 출발점일 뿐이고, 실제 충분한 검증 표본은 미국 역대 대통령 41명(워싱턴 1대 ~ 부시 41대)이라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들은 모두 실제 출생·사망 연도와 생애 주요 사건(대통령 취임·퇴임·사망 등)이 공개되어 있어서, 누구나 fashomo(파쇼모) 생애 도표를 그려볼 수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3운법칙은 인간 생애를 다음 세 가지 유형으로만 분류합니다(예외는 없음):

• OT형 (One Third, 모세형): 인생을 정확히 3등분(1 / 3). 활동기(LP)가 전체의 1 / 3.
• SN형 (Seven Nineteenth, 노아형): 전체 수명을 19로 나누어 LP = 7 / 19, JP(요셉 패턴, 청소년기) = 5 / 19, DP(침체기) = 3/7 비율.
• FS형 (Four Sevenths, 아브라함형): 전체를 7로 나누어 LP = 4 / 7, DP = 3/7. (JP 없음)

이상 비율로 총수명을 계산하면 활동기(LP) 시작·종료 시점, 침체기(DP), 청소년기(JP)가 자동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실제 생애 사건(예: 대통령 당선 시점 = LP 진입, 은퇴·사망 = LP/DP 종료)이 이 계산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분석자가 임의로 숫자를 조작한 것이 아니라, 공개된 사실(출생·사망 연도)만으로 누구나 검증 가능하다는 점이 이 법칙의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내가 계산해 보니 예외가 있다!”라는 한 마디로 끝날 수 있는 구조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어느 누구든 1대 워싱턴에서 41대 부시까지 어떤 인물이든 골라 **어느 유형(OT/SN/FS)**인지와 **주요 시점(활동기 시작·종료)**이 소개된 도표에 중요 연대를 아라비아 숫자로 표시해 두었으니까 그에 맞추어 '나무위키'나 '위키피디아' 등에서 맞추어보면 간단히 끝납니다. 누구나 직접 초등 셈법으로 계산해 보고 “정확히 맞는지” 검증해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것이야말로 3운법칙이 스스로 주장하는 ‘최대 강점’을 제대로 시험하는 길이라 생각합니다.


"두려움과 떪:이 없는 오늘날의 설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