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11일 월요일

"죄"란 무엇이냐ㅡ"자기 중심"을 가리킴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행한 대로 보응"(롬 2:6) 하여 심판하십니다. "믿음으로 구윈 받으니까" 믿음 유무를 따져 심판하실 줄로  많은 사람이 오해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참고 선을 행하였는지"(:7) 아니면 "자기 중심으로 나갔는지"(:8)의여부를 따지십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구원은  "믿음으로" 받았지만 최종 심판만은 "행한 대로의 보응"이심을  이같이 바울 사도는  명백히 밝힌 것이라 우리로서는 달리  말할 수 없습니다. 이 8절을 우리말은 "자기 중심" 대신 "당을 지어"(KJV도 마찬가지ㅡ여기서는 KJV도 오역)라고 번역했지만 Biblegateway의 아래 링크를 누르면, 각 영역본의 다양한 내용이 나오는데 "자기 중심"("selfish" 등)으로 풀이한 데가  압도적으로 많으며, 필자의판단에도 이 경우 "자기 중심"이라 해야 번역이 완벽하다고 확신합니다(링크를 누르면 <열기>가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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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라 행하는 자에게  노와 분으로  보응하신다고 했습니다. 다시 거듭 강조하기를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고...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사람을  차별하지 않고, 편애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평등하시다는 뜻. 사회적 지위, 부, 신분, 외모 등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이 대하시거나 적용하신다는 의미)이라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계명)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계명)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7~11)고도 했습니다. 

여기서 혼동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이 대목은 "믿음으로 구원 받음"과는 별개의 의미라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심판 또는 "마지막 심판"이  "각 사람의 그 행한 대로의 보응됨"이란 뜻인 바, 그리스도 오시기 전에는 모든 인류가 다 죄인이라 심판 자체가 무의미하여 불가능했지만 구원 받아 의인될 길이 열리면서  비로소  우리의 구원자께서는  심판자의 자리도 겸하시게 되었다는(행 17.31) 이 의미가  중요한 것입니다. 고로 이 심판은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유무를 따지심이 아니라 믿음으로 새롭게 창조되어 의인이 되었으니 의인답게 행했는지 여부를 가리신다는 이 엄중한 사실에 주목해야. 이와 같이 정상으로 완전 회복되면서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시어 회개하라 하셨으니"(:30) 구원자이시면서  동시에 심판자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구원 받아 의인이 되었으나 다시 아담처럼 범죄할 경우 그 당연한 대가를 치러야 하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한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기를 '일단 구뭔되었으니 다시는 멸망하지 않는다'고 맹신/信하고 있으나 아담으로 인한 범죄자로서의 <죽음>에서만 살아남이 현재의 우리 구원임을 어찌하여 모른다는 말인가요. 모든 인생이  현재 "죽은 자" (마 8.22)입니다. 성경적 "죽음"의 뜻이 동물적 육체가 되었다는 의미이기에 우리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지만  "죽었다"(골 3.3) 한 것이니  따라서 이런 동물의 육체로는  사는 것이 아닌지라(뿐 아니라 생명에는 죽음이 섞일 수도 없어) "우리 생명이 감추어져"(:3) 있다고  한 것입니다. 아무 것도 헷갈릴 일이 없습니다.  



2026년 5월 9일 토요일

내 비록 바다 한복판에 떨어진 바늘 한 개라 여겨져도


 

성령으로 계시고 일하시는 예수님


 


하나님 정하신 인간 <운명>의 법칙

3운법칙. "운명"의 법칙이란 뜻인데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애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신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른바 "산다"는 것이 운명적이다 즉 이미 짜여진 각본 따라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뿐이니까 저 짐승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의 의지대로가 아니다. 운명적으로 정해져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그 증거물이 3운법칙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일절 무의미, 무가치하다는 뜻이다. 이런 비정상적 철저한 무의미는 우리가 구원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다시 정상이 된다. 다시 말해 외형적으로는 무의미 그대로이나(현재의 동물적 육체로 인하여ㅡ그래서 골로새 3장3절에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한 것) 내면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갱생하여 영생에 들어가리라는 굳건한 약속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로 창조주께서 3운법칙을 통해 인간을 강제하실진대 곡절이 있으시게 마련이다. 창조주께서 사람과 관계하실 때 그 뜻을 인생들에게 알리시는 방법의 하나가 성경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성경에 3운법칙이 처음 정해진 내력이 나온다. 창세기에 모든 동식물이 창조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 "6일" 창조의 모든 생물을 관리하게 하시는데,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은 다른 창조물들을 만드신 다음이었고 이를 운영하시던 중 그 피조물 중 하나가 교만해져 소동을 일으키자 이를 처벌하시고 2차로 창조하신 것이 현재의 세상이며 인간은 2차에 속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자연 물질계>와 <초자연 영계/靈界>의 짝으로서의 양면 대칭으로 만드셨으니, "상반/相反은 상보/補"라는 3위1합(종전의 '3위1체')의 원리로써의 만유 창조이신 것이다. 2차 창조에 임하셨지만 1차 창조의 영계는 영원성을 띄므로 "에덴"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 있었던 것이고 자연계물로써 파멸에 이른 것이다. 2차 창조 역시 종국에는 파멸을 맞는데 그 때는 '물'이 아닌 '불'이다(벧후 3.6,7). 이렇게 대칭성(짝)으로 물과 불로 망하는 두 시대가 끝난 다음에, 다시는 파멸이 없는 생명 세계로 영원히 정착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만드신 영계의 피조물이 스랍과 그룹. 당시의 자연계 동식물은 오늘날 화석으로 그 흔적을 볼 수 있고 석탄/석유로 남아 있다. 2차 창조에서 역시 세상은 영계와 자연계로 나뉘는 바, 영계는 에덴으로 존속되어 오는 그대로이고 자연계 생물만 창조됨이었으며 그 중 최고 절정을 이루는 것이 인간 창조. 단 동물과는 달리 암수컷으로 처음부터 만드시지 않음에 유의해야. 그 이유인즉 동물적 육체의 인간을 영계인 에덴에 거처하게 하심으로써 영적 존재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실 의향이셨으니까. 영계에 두셨다는 것은 아담의 몸이 그 즉시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다시 말해 죽지 않는 영생하는 자가 된 것이었다. 아담의 신령한 몸으로서의 자식 생산은 동물적 육체와는 방법이 전연 달랐기에 인간을 성별로 창조하시지 않은 것.

자연계 몸이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된 이러한 아담만이 갖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먹으면 "영생하는 나무"와, 먹으면 "좋고(선) 나쁨(악)을 알게 하는" 과일 나무를 에덴 안 동쪽의 "동산"(아담을 위해 특별히 조성해 주신) 중앙에 두 그루 세워 놓으신 후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 열매를 먹지 말도록 엄중한 주의를 주셨건만, 아담을 시기해 몰락시키려 했던 뱀의 거짓말 계략에 어리석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 경고하신 대로 그 즉시 신령한 몸의 초자연성은 사라지고 이전의 동물성 육체의 자연계 특성으로 환원되어버린 현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에덴에 들어감으로써 영생하는 자가 되어 있었기에,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사탄은 그 당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은 거짓말로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하건마는 우둔한 민생들은 말로는 하나님 믿는다면서 이 사악한 사탄에게 맞장구치고 장단 맞춰 주고 있다. 동물성 육체를 "선악(좋고 나쁨)을 아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동식물의 삶은 기계적인 것이라 하나님의 지혜/지식이 고스란히 그대로 발현되어 작동되는 구조이기 때문. 그와 동일한 작용인 인체의 구조와 작동을 보아도 충분히 알 만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계적, 본능적 생명력은 자기 중심 일색이어야 함은 당연하니 자기 종/種을 보전해야 하기에 스스로 즉 기계적/자동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반면에 인간은 영적 존재라 자유 의지를 구사하므로 그런 것과는 전연 별개다. 그러나 아담 범죄로 동물적 육체로 전락해버리자 기계적인 자기 중심으로 급락/급변한 것이다. 이것이 "죄의 몸"(롬 6.6). 우리 "구원"은 이 짐승의 몸이 죽어 파괴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와 "한 영"(고전 6.17)을 이루어 창조 당시의 원형 그대로의 '교차 소유/교차 삶'으로 회귀/복귀함이다. 

영원 생명은 이 상호 교차 교류의 "하나"(요 10.30)됨에 있는 것이다. "한 몸"됨에서는 아내 몸이 남편 소유가 되고 남편 몸이 아내의 소유가 됨이고(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나와 주님 사이에서 주님은 나의 삶을 사시고(나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미 확증하심), 나는 "우리 중에 누구든 자기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음이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14.7~9) 한 대로 주님의 소유로서 주님만 위함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성경적 의미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고귀한 의미대로 따르는 자 과연 몇일런가! 교차 소유이니까 당연히 교차 소유주. 나는 주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그래서 나를 위해 사시고 나는 당연히 주님을 위해서만 살고.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눅 22.27) 하심이 그 뜻이다. 만유에 충만하신 주님이시니까 믿는 각 사람과 365일 24시간 1대1로 넉넉히 상대하시기 때문이다.

애초 이와 같이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어 있던 인간(아담)이 졸지에 동물성 육체로 전락하여 짐승처럼 되어 동물의 자기 중심 그대로를 물려받으니 어찌 되겠는가. 겉모양은 인간이나 속인즉 말 그대로의 짐승이다. 그 실제 상황이 가인의 아벨 살해에서 당장 드러났다. 아담 범죄 전의 영생하던 인간이 별안간 동물의 육체가 되었지만 그 초자연적 기운이 남아 서서히 사그러짐에 따라 한동안은 즉 노아 당시까지 1천5백년간은 인간이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다. 이런 장수 시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살인자는 가인 그리고 라멕(셋이 아닌 가인 계통)이다. "이러다가는 인종 자체가 끊어지겠구나" 심려하신 하나님이 취하신 응급 조처가 3운법칙인 것이다. 즉 죽는 때가 아니면 인간이 함부로 죽어나가지 않도록 정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 강제력 발동이 3운법칙인 것이다. 이래서 운명의 법칙이라 하는 것. 세 가지 유형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만물을 하나님이 3위1합의 원리로 창조하셨다는 증거다. 이 '3위1합'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다. 노자/老子의 "三生萬物/삼생만물"(도덕경 42장 첫 25언) 그대로다. 멜기세덱이 성경이 밝히는 현존 인물일진대 노자로도 얼마든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즉 노자는 이 대목만 세상에 발표할 수는 없기에 "도덕경"이라는 옷을 입혀 주었다는 변함 없는 주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