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구원 받음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합니다. "한 영" 곧 "하나"(요 10.30)가 되는 것은 부자지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이심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성부의 것은 성자의 것이요 성자의 것은 성부의 것이 되십니다(17.10). 그리고 이것은 성부 안에 성자, 성자 안에 성부께서 계심으로도(10.38) 표현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3위1체에서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되는 특징은 이같이 같은 이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죽움과 부뢀이 됨으로써 내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대로, 그런 의미로 "간주/看做"해서가 아닙니다. 실제 그와 같이 나 위하여 내 이름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써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 6.17) 한 그대로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 신학"에만 사로잡혀 성령과 3위1체에 대해 전혀 무지무식한 탓에 "대신 죽으심"이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만 만들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입니다.

무릇 범죄한 자는 모름지기 당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지 <대신> 무엇이 누구가 처벌 받는다는 것입니까. 이런 천하에 둘도 없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을 지어내게 만든 마귀의 맹랑한 장난질에 놀아나 장단만 맞추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진리 말씀을 가로막고 한낱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든 거의 2천년간이나 쌓아 온 허물을 다 어찌 할꼬!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오직 "계시"(눅 10.22) 밖에 없다 하신 말씀을 비웃고 죽자사자 학문시/學問하더니 거두어들인 결과가 그뿐이던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21). 하나님께서 일부러 숨기시는데 이런 기막힐 저주 가운데서 헤어날 수 있나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말씀을 제대로 전달 않는 장소에야 백날 가도 소용 없으니 이 점을 가려 읽어야)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으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야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4-31).

우리가 저질러 놓은 죄이니까 마땅히 우리 각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公義이십니다. 그러나 한 번 죽으면 그만이고 속절없이 끝나버리는 인생. 때문에 나를 살리시려고 나와 <함께> 죽으시는 방법을 택하신 것이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입니다. 함께 "하나"(요 10.30)가 되어주시어 함께 부활하심이 됨으로써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가 됨 즉 "한 영"이 됨에서는 "한 몸"(고전 7.4)이 됨과 마찬가지로 이 글의 모두에서 미리 밝힌 것처럼 "교차/交叉 소유"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3위1체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제3위로서의 특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하나"됨에서 마치 둘을 잡아 묶는 끈과 같은 것입니다. 즉 갑은 을의 것이 되고 을은 갑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에서는 각자의 삶 자체가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 됨으로써 구원 받음이 된 이상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 은혜이시니, 나의 이후 삶은 애오라지 주님을 위한 일편단심에서만 영위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항상 가슴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를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영생 구원에서 가차없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바벨론신학의 거짓됨에 속아 이 심각한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서성거리다가 자기도 의식 못한 사이 멸망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성경 애독하기를 게을리한 결과라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몹시 뜨거운 것에 피부를 노출시켜 놓고도 데인 것을 후회해보아야 소용 없습니다. 때는 늦은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죽어버렸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소유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이 교차/交叉 삶이 바로 다름아닌 영생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중심의 삶이니 이 상대 중심에서는 죄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하리라"(히 12.14).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성령으로 난다”(요 3:6) 하신 말씀의 의미를 질의하니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직접 주도하시는 영적 탄생(거듭남, 중생)'을 의미한닥. 쉽게 말해,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영(靈)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인 것.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여러 표현으로 설명하셨다. 즉
• 3절 → 거듭난다(위로부터 난다, ἀνωθεν)
• 5절 → 물과 성령으로 난다
• 6절 → 성령으로 난다(영으로 난다)
• 7절 → 다시 거듭나야 하겠다
위의 네 표현은 모두 같은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킴이니, 육체적 출생(엄마 뱃속에서 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출생이라는 것.

“성령으로 남”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주체가 성령이시다.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창조적 사역이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심).
• 결과가 ‘영’이다.
• 육으로 난 것 → 육(肉) → 여전히 죄성, 세상적 본성을 가진 존재
• 성령으로 난 것 → 영(靈) →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새로운 본성을 가진 존재 즉, 본질이 바뀐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영적인 정체성 자체가 새로워지는 일이다.

•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성경 전체를 종합하면, 성령으로 나는 것은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 죄 사함 + 새 생명 + 하나님의 자녀 됨을 주시는 과정
그래서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결국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요약하면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영을 새롭게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이니,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요 3:5).

3위1체와 성령 관련해 아는 것이 없으니 
동문서답식 답변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분명히 나누어 말씀하심은 주님이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육으로써" 사람이 나는 방법과 "하나님의 성령으로써" 나는 방법이니 명백히 대칭(짝)을 이룸입니다. 다시 말해 첫 사람 아담이 직접 움직여 사람이 났으니 "마지막 아담"께서도 <친히> 움직이셔서 새 사람이 생겨나야 "대칭(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친히 어떻게 움직이셨는가ㅡ말 그대로 "성령으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범죄로 죽어버린 아담을 대신해 아담이 되시려고 그 대칭(짝)으로서의 "마지막 아담"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하나"되시려고 아담의 죽음 그대로를 이어 받으시어 죄인 사형수처럼 십자가형을 당하신 다음 성부 하나님의 다시 살리심울 입어 부활하신 그대로 하늘로 오르시니 원래부터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신지라 (육체로 현재 "영광의 몸"이심과 동시에) 성령으로 또한 계시어 세상에 임하시어(요 14.23)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성령으로 지금 일하시는 예수 우리 주님께서 믿는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이 우리의 "성령의 선물 받음"이요 "성령 세례"입니다. 물론 이 경우 성령으로 존재하심은 항상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되어 계심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각자에게 예수님 친히 성령으로 임하시어 말하자면 "새 사람" 다시 말해 2중/二重사람, 복/사람(주 예수님과 나)처럼 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남"입니다. 육신으로 난 우리의 육체가 아담의 육체인 것과 같이 이제 성령으로 난 나는 내 안에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의 영으로서의 성령을 모시고 있으니 명실공히 다시 남, 성령으로 남, "마지막 아담"으로 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원리원칙을 따라 빈 틈이 없고 허술한 데가 없으십니다. 만유의 대법칙을 따라 철두철미 진행되는 모습이십니다. "마지막 아담"께서 이와 같이 성령으로 친히 움직이시어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영광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남"의 의미

 

요 3: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 관련 여러 해석이 있어 죄의 씻음·정화·중생의 씻음으로 받아들여져
• “물” = 죄로부터의 정결·씻음을 상징. 구약에서 물은 자주 하나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상징으로 쓰임 (에스겔 36:25 “내가 정한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깨끗하게 하리니”, 시편 51:2,7 등)
• 성령 → 새 생명 창조·새롭게 함
죄 씻음과 동시에 새 생명을 받는 거듭남 전체를 의미함이라 해석하나, 성령과 물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어찌 함께 논한단 말인가! 아무리 성경에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여기서 말씀하신 "물"은 "불"과의 대칭성적 의미로 전자는 아담의 씨 즉 자연계 물질로 된 육체, 후자는 네피림 곧 처음부터 영물로서 인간이 된 자들인 바, 워낙 엄청나게 네피림이 세상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구분하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불꽃 중에 임하신다"(살후 1.7)는 등의 표현이 바로 이를 가리킴이다.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영계)의 차이를 "물"과 "불"로 나타내심이다. 아담 범죄로 동물성 육체로 전락해버려 그렇지 원래 아담은 초자연계 존재였고 천사(영물)들이 이 아담을 위해 아담을 기준하여 창조되었던 것이며, 아담의 씨로서의 모든 인류도 이같은 영적 존재로 "불"로서의 속성임을 알아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2)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 되심은 창세 전 성부께서 독생자를 낳으신 때부터 즉 성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입니다. 성자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시므로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자께서 우리 구원 위해 우리를 위하여 사람 되시는 때만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줄곧 "하나"로서 계시니 십자가 고난 당하실 때도 물론 하나로 계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에 충만하시고 또 만유이시고 이는 성자 하나님께서도 똑같으시나 단지 성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는 말도 하게 되는 그 차이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께서도 성자께서 십자가상에서 당하시는 모든 고초를 다 함께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독생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때부터 두 분께서는 분리되셨으니, 성자께서 사람되심을 성경이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내어주셨다(to deliver) 함이 그 뜻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구원자"라는 의미의 히브리 말)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시려고 친히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임하여 오신 성령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그 때부터 다시 성부와 성자께서 이전처럼 "하나"가 되신 것.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각자에게 임하심은 성부 하나님께서 또한 똑같이 임하여 오심이기에, 첫사람 아담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을 생산했음에 반하여 "마지막 아담"께서는 아담으로서의 똑같은 일이시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으심인즉 성부 친히 함께 "하나"로서 임하심으로써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탄생함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단 우리는 "양자"들이고 주님은 친아드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 중 하나이고 주님은 그 "맏아들"이 되십니다.

사람이라고 다 구원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아니니 아담 범죄가 사탄의 말을 따름으로써 된 것이라 이는 곧 하나님보다 마귀에게 더 순종한 의미가 되어 아담이 마귀 앞에 무릎 꿇은 꼴이므로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사탄에게 고스란히 넘겨진 것입니다(눅 4.6). 해서 사탄이 이 세상 통치 차원에서 악령들의 씨를 마구잡이로 세상에 퍼뜨려 세상이 모두 "네피림"(창 6.4) 천하처럼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네피림을 분간하게 되어 있지 않으므로 마치 네피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리고 하나님의 미리 택하심이 없는 듯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범죄)이 얼마나 악을 일파만파로 확산시켰는지를 신물나게 체험 중이니 죄 짓지 않기로, 각자 순종의 삶이 되도록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대로 "힘쓰는"("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ㅡ눅 13.24) 것 밖에 없습니다. 바벨론 신학에서 얼마나 사탄의 거짓말로 세뇌되었으면 오늘날 소위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힘쓴다"는 식의 말을 기피하고 있는데 이상 주님의 말씀대로 단언하거니와 그런 이들은 "헛되이 믿음'(고전 15.2)이요 멸망 길로 직진하고 있음울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구원된 자들에게 <미리 주시는 경고>이심을 왜 인식 못한단 말인가요. 도대체 성경울 어떻게 읽는 겁니까. 우리 위해 죽어주신 메시야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 안에 성령으로 오심으로써 비로소 그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되어 구체화, 현실화하는 것인 바 이는 순수히 "다시(거듭) 남" 즉 "성령으로 남"이기에 순전한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여 여기에만큼은 우리의 그 어떠한 "힘씀"도, 순종의 그 어떠한 "선을 향함"(롬 2.7)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은 초등생도 능히 이해하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 얻지 못한다" 함이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창조된("구원된") 이후가 아닌가요! 그런데도 왜 이런 것 하나 구별 못한다는 것인가요. 무엇을 착각해도 꽉 막히게 꼼짝도 못하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구원 관련 너무나 엄청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죽은 자가 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 범죄 전 상태로 되돌려 놓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사탄이 많이도 퍼뜨려 놓은 "네피림"(창 6.4)은 여기서 제외됩니다. 네피림은 시초에는 초대형 거인이었으니 이는 영생하던 아담이 동물성 육체로 도로 돌아가버렸어도 천년 가까이 살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영물들의 씨(후대)는 장수하기보다 신체 골격이 초대형으로 장대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대신 수명은 "120년"(:3)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인족은 모세 당시까지도 간혹 남아 있어(민 13.33) 이스라엘 백성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네피림족은 그 망령은 얼마든 인간의 태에 들어가 소위 "환생"을 할 수 있어 지금은 보통 인간의 체격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전생, 윤희" 따위가 이래서 발생하는 것인데 악령들의 씨(후대)에만 해당되니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범죄로써 죽음이 왔고 이제 영생의 길로 접어들려는 것이므로 반드시 모든 죄의 "회개"(행 2.38)가 필수입니다. 회개는 과거 지은 죄를 뉘우침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즉 하나님의 모든 뜻(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굳건한 결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례 백 번을 받은들 무의미뿐입니다. 로마서 7장을 바울의 믿은 후 체험이라고 믿는 자에게서 세례 받음도 같은 결과일 뿐이니 그런 경우 회개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정 회개하는 자세인 경우 하나님께서 이를 몰라보실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회개의 세례가 아닌 때에는 죄 용서가 되지 않으므로(:38) 성령께서 임하실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이라 하여 세례를 아예 생략, 폐지하는 집단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공연히 드러내는 마귀 짓입니다.

미국내 개신교 종파가 많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의 믿은 후 개인 체험이라고 믿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미국이 그러하니 다른 나라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구원이 필요하게 된 마당에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온다"(롬 7.23)니 웬 말인가요!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마 1.21)입니다. 영생 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되니까 그 <결과>가 자연적으로 '영생/구원'인 것입니다. 범죄로 영생을 잃었는데 여전히 죄 가운데 매여 있다니요! 사탄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믿어도 "헛되이 믿는"(고전 15.2) 것이 됩니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필자의 자기 소개(프로필) 최초 공개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음악가는 리듬으로 말한다.

Kwon Tayseek이란 인생은
3위1체·3운법칙으로 말한다.
그 외로는 일절 말할 것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 한 이름으로만
영문 알파벹으로 알려지길 바람이니
온세계에 복음이 알려져야겠기에!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을 말한다.
21세기는 "천사의 복음"의 시대다.

"마지막 때" 기도와 말씀 전파에 의한
21세기 범세계 복음 운동이다.
3운법칙은 이 천사의 복음을 보증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을 것ㅡ요 4.48).
3위1체는 오늘날 "천사의 복음"의 대명사요
3위1체는 곧 만유의 기본 대원리인 것이다.
'만유의 법칙'이 뒤늦게나마 알려진 것이다.
이 21세기 "마지막 때"에 마침내.

우리의 구원도 이 원리로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그러하시어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사 34.16) 하셨다.
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신 결과가 곧
만유에 3위1체의 원리가 스며든 이유다.
속속들이 깃들여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를
관장하여 그 죽음의 때를 지정한 3운법칙으로,
미시세계에서는 상보성 원리와 양자역학으로
"대서특필"되듯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천사들이 마침내 나섬으로써다.
그리하여 장쾌하게 사탄의 세력으로
무릎 꿇게 만들어(계 12:7-9) 획득한 총결산이다.
천사의 복음의 특징은 2천년 전통의 바벨론 신학
그 사악한 사탄의 거짓말들을 궤멸시킴에 있다.
사탄은 복음 전파의 벽두부터 즉 초대교회가
시작되자마자 곧장 방해공작에 들어가(갈 1.6)
바벨론 신학의 철옹성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아담 범죄가 사탄에게 무릎 꿇은 결과라
아담의 세게 통치권이 송두리째 넘어간(눅 4.6)
탓으로 세상 통치 차원에서 저지르는 행위이기에
손을 대지 못했었던 것이나 천사들이 해낸 것.
그간 한동안은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는"(마 18:3) 한 구원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진리를 알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요 8.32)
하신 대로 온전한 진리로서의 복음 전파 시대다.

3운법칙과 3위1체가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두 법칙의 넉넉한 자체 증명이라,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만천하에 공표함이 되고
우리 구원의 원리 또한 그같이 훌륭히 입증되어
그 찬연한 진리로서의 광영을 드러냄에서다.
"만유는 수(All is number.)"라 한 피타고라스.
이제는 "만유는 3(All is three.)"이라 할 시대.
노자의 "萬物/삼생만물" 바로 그대로다.
3위1체 과학시대인 오늘날 혁명적 삶도 가능하니
애초부터 이런 삶을 하나님은 요구하신 것이다.
3위1체는 그 요지가 "교차/交叉 소유"에 있어,
하나님의 3위1체적 특성을 가리켜 주님 친히
"아버지의 것은 제것, 제것은 아버지 것"(17.10),
"아버지는 제 안에, 저는 아버지 안에"(10.38)
라 말씀하심으로써 이를 명백히 하신 것이다.
이같은 서로의 '교차'는 교차적 삶으로 직결되어
갑은 을의 삶을 살고 을은 갑의 삶을 살게 되니
상대방 중심의 삶이요 자기 중심의 삶이 불가능.
이것이 삶의 기본 원리임에도 이룰 어긴 인생들.
이 비극적 불행은 아담의 불순종에서 비롯된 것.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세아 6.7). 

아담 등 모든 이성적 존재의 생명(삶)은
'언약'과 '계명'으로 시작되었으니 즉 하나님께서
"내가 전적으로 너를 위하겠다. 약속한다. 그런즉
너도 전적으로 나를 위하고 네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계명)을
주셨음이다. 독생자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요 15.10)이라 하신 것.
그러나 아담은 이 '약속'과 '계명'을 어긴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똑같은 '약속'과 '계명'을
구원 받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임을 오늘
이 시간 깨닫고 마음에 깊이 깊이 아로새겨야!
이것이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의 골자이다.

오늘날 이 "천사의 복음"은 이 일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유일한 대들보가 되어 있다.
(대들보는, 한옥에서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수평 구조재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여 기둥으로 분산시키는
핵심 역할을 함으로써
조직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인재들을 뜻한다.)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1)

 

계시록에 예언된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은 21세기 오늘날 이제 실존합니다. 그게 실제 무엇이냐 할 것인데, 지금까지 교회를 좀먹어 온 바벨론 신학과 직결시키면 됩니다. 그 반대 개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벨론 신학의 폐단을 일곱 가지로 대별하면 1). 아담의 죽음이 "영적 죽음"이는 것. 2). 우리 위하신 주님의 죽으심을 "대신 죽음"이라 하는 것. 3). 로마서 7장(24절)을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거짓말. 4).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 붋변으로 결코 구원이 무효가 될 수 없다는 거짓말. 5). "참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에 이른다"(롬 2.7)는 성경적 강조/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위험천만의 악독한 "말씀 혼잡"(고후 4.2)인 것입니다. 그리고 6). 예수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음에도 이에 전혀 유의치 않아 주님께서 왜 다시 오셔야만 하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고 7), 3위1체 관련해서도 그러하여 이 두 가지 무식·무지까지 포함됩니다.

참으로 주님 친히 경고하신 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18.3)이라 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보잘것없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아담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되시고 나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신 사랑에 감복/감동하여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만 늘 생각하고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 가짐만이 대수인 것입니다. 그 이상 하나님께서도 무엇울 바러지 어니하심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눅 3.16)이라 한 대로 우리 주님은 '구원자'이시니까 또한 '심판주'이신 것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아레오바고 전도 때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시어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행 17.30) 함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모두가 죄인이요 따라서 멸망뿐이기에 심판 자체가 무의미했으나 이제는 누구에게나 영생 구원의 길이 예수 우리 주님의 은혜 공로로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기에 비로소 심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주님 친히 <회개하여 주님의 구원을 믿어 세례 받은>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이 때 비로소 나의 구원이 구체화/현실화하는 것)이고, "불의 세례"는 죄인들을 멸망의 불 못에 들어가는 것으로 종결시키는 사형 언도를 내리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첫사람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바로 그가 할 일이지만 범죄로 죽었으므로 최초 아담이 폐기된 그 빈 자리를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께서 채우시고 심판자의 역할을 그같이 수행하심입니다. "불"은 심판을 의미함이지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울 말함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철저히 없이하산다" 따위 미신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죄 용서는 나 위하여 훌리신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보혈로만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오늘날 주님의 다시 오심도 바로 (죽은) 아담이 할 일로서의 인간 세상 통치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죽지 않았다면 그렇게 천년만 인간 세계를 통치하면서 의인과 악인이 나누어지는 것이 판별됨에 따라 그 천년 후에(악인과 의인을 구별해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천년이면 충분한 기간) 재판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인데 바로 그 양식 그대로를 주님께서 따르심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어 실시될 "천년 왕국"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년 왕국 이후에는 기한도 없고 다함이 없는 영원한 화려 찬란한 태평 세월이 시작되는 것.

이와 같은 "마지막 아담"의 역할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또 있으니 그것은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는 "육으로 남"(요 3.6ㅡ"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과 대칭(짝) 관계에 있는 "성령으로 남"의 주체가 되심입니다. 즉 첫사람 아담이 낳고 낳음으로써 각자 인간이 생겨남과 같이 우리 "마지막 아담"께서는 믿는(회개한)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으로써 말하자면새로운 인류가 생겨나는 샘입니다. 물론 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신 것은 아니고 아담 범죄로 유발된 것이지만 어쨌든 철두철미 하나님의 대칭성(짝) 원리를 따라 진행시키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단 한 번만의 구원의 기회이고 그 후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단 성령으로 오심이니까 성부와 하나되심 그대로 각 자 안에 임하십니다. 



2026년 3월 19일 목요일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 의식하고 또 의식하고 있어야 할 일이 있으니

항상 우리가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 즉 "신령한 몸", "영광의 몸"이 아니고 "육의 몸", "낮은 몸"(고전 15.44/빌 3.21) 즉 짐승의 육체라는 사실입니다. 짐승이 아닌데도 짐승의 탈을 썼으니! 탈 정도가 아니라 육체로는 완전히 "짐승"을 뒤집어쓴 것입니다. 짐승은 하나님이 장치해주신 대로 먹고 마시는 것 빼고는 종족을 퍼뜨림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육체도 관련 기능도 철저히 이에 따르도록 설계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를 인간이 뒤집어쓴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은 있어 영적, 정신적인 면에서는 사람인데 육체로는 완전히 "개망나니" 짓. 자고 먹고 나면 관심이 성적인 것에 거의 매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이란 원래가 이런 것이라는 아주 위험한 망념에서 탈출하시기를!


동식물이야 그 종을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런 욕구를 장치해 두실 필요성은 당연합니다. 우리도 아담 범죄로 현재 짐승의 육체가 되어 있는지라 성적 낙이 없으면 삶이 무의미해지리라 느껴지는 것은 지금 현재 상황일 뿐, 정상 상태의 신령한 몸으로 복귀되면 비교도 못할 영적 차원의 삶의 당연한 낙이 무궁무진할 터인즉 인식을 지금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의 생활 자체가 비정상이고 비극적인 것이니(나약한 육체로 인한 인간고, 죄의 몸인데다 사탄의 지배 아래 있게 된 이 모두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물) 세상에 대한 일체의 미련을 끊고, 세상 구원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북한교회를 <위하여> 또 그들 성도들과 <함께 하는> 기도로서) 그리고 끊임 없는 말씀 전파와 "참고 선을 행함(기도와 전도도 다 포함되지만)"(롬 2.7)으로 분주한 나날을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1) 자로서
영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 세상 다스리심은, 미시세계에서는 하나님의 3위1체의 원리가 그냥 그대로 투영/반영된 양자역학의 최근 등장으로, 그리고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모든 인간 생애를 철두철미 관장하는 3운법칙(fashomo) 역시 3위1체 체계를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확증되었으니 21세기 오늘날 마지막 때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 전파에 명실상부한 선구자 역할을 다할 일입니다.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구원 받음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합니다. "한 영" 곧 "하나"(요 10.30)가 되는 것은 부자지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이심과 똑같은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