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5일 월요일

성경적 자가진단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여기서 "안에" 계신다" 함은 쌍방(둘)의 "하나"(요 10.30)됨에서 갑은 을 안에 있고 을은 갑 안에 있음을 말함이니 곧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하신 그대로이고(10.38/14.10) 또 이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저의 것"(17.10)이라 하심과 같이 갑의 소유는 을의 것, 을의 소유는 갑의 것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됨은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의 "1합"을 말함이며 이 "1합"에서는 상호 교차/交叉(crossing) 소유"가 필연이며 핵심입니다. 그래서 "한 몸"에서는 남편의 육체는 아내의 것이 되고 아내의 몸은 남편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나 위하신 죽으심이 바로 그러한 뜻이고 따라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으니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라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꼭 그대로입니다. 


서로 짝(대칭)을 이루어 상대할 때에는 반드시 이러하므로 여기서 생명(삶)의 법칙이 정해진 것으로서 즉 무릇 이지적 삶을 영위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를 위하면 안되고 자기 상대를 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이미 설명한 대로)에서 비롯됩니다. 구원된 사람마다 자기 상대로서 성령으로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각자 구원 받았는지 여부의 자가진단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일상생활인지 아니면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인지 스스로 양심껏 살피면 되는 간단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3위1합'(종전의 3위1체')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 '3위1합'의 법칙("짝의 법칙")이야말로 만유 창조와 운행의 기본 원리라 바로 창조주 하나님 친히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며 그 구체적 예가 현대 물리학에서 상보성원리로 나타나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으니 "상반/相反(짝을 이룬 "파동성", "입자성"의 미립자)상보/補(양자 "중첩"과 "얽힘"의 현상)"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만유는 대칭성으로 창조되어 있어 가시적인 자연계와 병행하여 불가시(不可視)적 초자연계 즉 신령한 세계인 에덴을 이미 "6일" 창조 전에 만드셨는데("에덴"과 "에덴의 동쪽에 한 동산 창설"을 혼동하지 말아야ㅡ창 2.8) "인류 최고 지성"이라는 스티븐 호킹이 이 자연계만 있는 줄 착각하고 "신(창조주)은 없다" 하니 이런 것이 세상의 거짓 없는(적나라한) 단면도임을 명심하여 대처합시다. 무식무지의 눈가리개로 눈이 가려져 있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리. 그런 세상의 말과 일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어리석을 따름입니다.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인간의 죽음과 고통은 자기 중심에서 비룻된 것

내가 과연 새 창조를 받았는지, 믿음에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다시 말해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스스로 알아 자가진단, 나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고후 13.5)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이미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및 "계명" 따라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양심껏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대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라 판단되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버리운 자"(:15)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우주의 "짝의 법칙"에서  그 중간은 없습니다. 둘 중  반드시 어느 하나입니다. 이것 아니면  기필코 저것입니다. 구원은 성령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한 영"(고전 6.17)이 되는 것이기 때운이며 이와 같이 짝을 이루어 "하나"(3위1합, 종전의 '3위1체')가 됨에는 <교차> 소유가  필수 필연임을 알면 됩니다. 즉 둘이 하나를 이루면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이  불변의 특징인 것이니 각기 자기 상대를  위함입니다. '둘'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타자/他者('나'를 제외한 나와 대비되는 다른 모든 사람> 중심적인 관점>을 잃고 '나'라는 좁은 자아에 갇힐 때 집착, 두려움, 그리고  이기심이 비롯되며 이것이 곧 삶의 고통을 낳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ㅡ이는 삶의 깊은 진리를 찌릅니다. <이타적 시선>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사유와, 삶의 고통과 비극을 좀 더 초월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혜로 이끕니다. 이 <타자를 향한(위한) 굿굿한 태도>를 통해 죽음과 극한의 고통이라는 필연적 비극 앞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 실존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2026년 5월 20일 수요일

유일무이 특별 인간 피조물

3위1합(종전의 "3위1체")은  창조주 하나님 계시는 모습을 표현한 것으로서 이를 만유 창조의 기본 원리로 삼으셨다는 점에 대단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만유가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증거이기도 한 때문입니다. 이 이치를 정확히 기술한 것이 인류역사상 성경 다음으로 노자인 것입니다. 즉 도덕경 제42장 첫 25어인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為和/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여기서  지금까지도 많은 학자들이 ""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지 못해 앓는 것을 보건대 ""는 필시 창조주 하나님을 가리킴이며  따라서 이런 말울 할 수 있는  지금까지의 생존 인물로는 멜기세덱(히 7:3)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당시 그와 같이 생존해 활동하였을진대 그 후로도 그리고 오늘날도 그리해서는 안된다는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을 스쳐간 억만 인류 중 유일하게 수천 년을 살아 오고 있는 단 한 사람 멜기세덱 아니, "아담의 변신 멜기세덱". 아담이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으나 범죄로 930세에 일단 죽었다가 에녹, 엘리야처럼 되어 유일하게 먼저 부활되어 있는 인물. 노자로도 변신할 수 있었다고 해도 하자는 없습니다. "아비도 없고 어미도 없고 족보도 없고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어 하나님 아들과 방불하여 항상 제사장으로 있는"(히 7.3) 인간 피조물은 아담 외 달리 있을 수 없으니까.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해서는 안되는 이유가 여기서도 발견됩니다. 





2026년 5월 19일 화요일

중복 게재입니다("임사체험" 관련)

 



아래 "임사체험" 관련 AI 답변(게시물)에서 난 데 없이 바울 사도와 스데반이  언급되고 있는 바, 이는 성경에 대한 무지의 결과물로서  본질적으로 차윈이 다른 접근이라 전혀 해당되지도 않는  AI의 착각("임사"의 개념  자체를 제대로 인식 못하는)인즉 전적으로 무시하시고 다른 부분만 참고하시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