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8월 6일 목요일
"대신 죽으심"과 "함께 죽으심"의 차이는 하늘과 땅의 차이
로마서의 바울 사도 복음 강해 요점은 "죄의 몸"(6.6)척결에 있습니다. 7장에서의 통절한 탄식은(24절) 이 죄의 몸에서 오는 것이며, 반면 이 "죄의 몸" 처치하는 것 또한 너무 간단합니다. 바로 6장 6절,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라 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반드시 유의해야 하는 것온, "우리 옛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죄의 몸이 멸하였다>" 했듯이 지금까지 보편적으로 "대신 죽으심"으로 알려진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입니다. "함께 죽으심"인 것입니다. 그 햭심은 <성령을 바로 이해함>에 있습니다. 즉 성령이 누구이신가? 바르, "성령으로 계시는" 예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원래부터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 (요 10. 30)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이 되시기 위해 친히 여자(마리아)의 태에 들어가시던 순간부터 30세쯤 세례 받으신 그 시각까지만 제외하고는. 독생자 하나님의 영으로 마리아 잉태 당시 움직이셨으니까 멱시 "성령"이셨습니다. "성령"은 고유명사가 아니고 말 그대로 "거룩하신 영" 즉 하나님의 영을 의미하는 보통명사입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으실 때 임하신 성령께서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영이셨던 것밉니다. 즉 그 때 하나님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다시 "하나"가 되셨습니다. 그 시각까지는 약 30년간 단 한 번 따로 떨어져 계셨던 셈입니다. 우리가 인식하는 한도 내에서의 "하나"되심으로 판단하면 그렇다는 뜻이고 그 이상은 우리가 모릅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도 물론 "하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영" (요 4.24)이시니 인간으로서의 육체 안에만 계심이 아니라 광대무변의 우주에 꽉 차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도 마찬가지이십니다. 따라서 왜 <대신 죽으심>이 아니고 "함께 죽으심"인지 이제는 확실히 이해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주님은 내 안에 성령으로 친히 <육체로 계실 때와 조금도 다름 없이> 계시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문자 그대로 "한 영으로 합해"(고전 6.17) 현재 존재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이름으로 나 위해 죽으셨고 부활하신 후 바르 그대로 내 안에 오시어 나와 "한 영"으로 "합하셨으니" 이보다 더 확실한 증거가 멊지요. 그러니까 본디로 돌아가, 죄의 몸(이 "죄의 몸"은 아담 범죄로 모든 인간이 빛과 영광의 신령한 몸을 잃고 동물성 육체가 되자 자동적으로 자기 중심의 동물적 본능이 발동되는 당연한 순서 따라 나타나는 생래적인 것)으로 인한 영적 갈등(롬 7.24,25)이 로마서 7장의 현장인데 이러한 동물성 육체는 죽음 하나로써 당장 끝나는 아주 간단한 것이 그 처치법입니다.
썩는 물질의 육체는 죽음 하나로 순식간에 종료됩니다. 피조물 인간에 대한 무한대의 사랑으로 그에 수반되는 무한한 죽음의 고통을 견뎌 이겨내신 것이 우리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문제의 가닥은 너무나 쉽게 아니, 너무 싱겁게 끝나지 않았나요! 죽음으로 한 순간에 종지부를 찍어버린 것입니다. 주님의 나 위하신 은혜와 사랑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오늘날 성령으로 역사하시는 우리 주님의 은혜로! 7장 끝절까지 "성령"에 대한 언급이 없다가 8장에 와 그 정반대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 이 까닭입니다. 그러니 더 이상 이제는 사탄의 헛된 장단에 놀아나지 마세요. 시간이 아깝습니다. 결론은 14장으로 정확히 그리고 말끔하게 맺어집니다. 7절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해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 다시 말해 우리 구원의 결과물, 목적, 의미, 모든 것입니다. 롬 7.24 관련해 "전통적 신자 갈등설(루터·칼빈 입장), 운운" 따위는 아주 입 싹 닫기 바랍니다.
지금까지 지적해 온 바벨론(신학)이 일부 교파나 교단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까지의 기독교(개신교) 자체가 완전히 여기에 함몰되어 있습니다. 방금도 지적했지만 어떤 것이 그리스도인인지 구원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조차도 모릅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라는 종교를 믿는 것뿐입니다. 바벨론 신학을 믿는 것입니다. 때문에 로마서 7장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상태가 될 수 있는지 여부를 놓고 오늘날까지 논쟁이랍시고 판을 벌이고 있는 한심한 실정입니다. 각자 성경을 부지런히 보고 성령의 가르치심을 사모하라고 강력 권고하는 이유입니다. 설교자든 신학자든 사람을 바라보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에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삼상 2.30). 참고 정도는 할 수 있습니다. 그 이상은 안됩니다. 왜 안되느냐, 가장 가까우시고 가장 권위가 있으신 분이 오늘날 그 누구에게든 그 어디에든 언제 어느 때든 바로 옆에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성령으로 계시는 것을 "너희에게 유익"(요 16.7)이라 하신 까닭입니다. 오늘날 지혜 있는 자에게 "숨기시는" (마 11.25) 것은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하신 그대로 하시는 것뿐입니다.2026년 8월 5일 수요일
2026년 8월 4일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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