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7일 금요일

반드시 상대 중심의 삶이어야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강제ㆍ강압하시지 않습니다. 그대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아담의 삶은 약속(언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약속하시고 다음에 명령하셨습니다. 즉 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약속은 다름아니라 "내가 너를 전적으로 위해주겠다. 그러므로 너는 네 자신을 위할 필요가 없다. 너는 전적으로 나만 위하여라. 네가 나를 위한다는 것은 내가 하는 말을 잘 듣고 순종하여 따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다름아닌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심입니다. 고로 우리 각자는 <나>를 위함이 아니라 <너>를 위함이 하나님의 명백하신 뜻입니다. '나'를 위함은 자기 중심이요 '너'를 위함은 상대 중심입니다. 모든 죄와 악은 자기 중심에서 옵니다. 상대방 중심에서는 죄와 악이 생겨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아담의 범죄를 가리켜(호세아 6.7) "언약을 어겼다" 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구원 받았다는 절대 다수의 사람들이 이와 같이 아담처럼 하고 있습니다. 즉 자아중심 일변도입니다. 이것은 구원된 것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하는 것이 됩니다. 구원된다는 것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됨"(고전 6.17)이기에 단정코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짝을 이룬 둘은 절대로 둘로서 있지 않고 반드시 하나로서 존재하고 기능합니다. 이것을 3위1합/合(삼위일체)이라 합니다. "체" 대신 "합"이라 함은 "합"이 보다 성경적인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이왕 "삼위일체"로 알려져 왔으니 3위1체라 해도 무방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3위1합"이라 하겠습니다. 또한 국제적으로 용어 선정에 혼란이 없도록 세계적 공통어로 trinia를 제안합니다. 라틴어 trinitas(영어 trinity가 여기서 유래됨)의 변형입니다. 3위1합(삼위일체)과 성령의 의미가 오늘날에야 정확히 밝혀졌으니까. trinia라는 만유의 대법칙임이 또한 드러났으니까. trinia는 3운법칙(fashomo, 라틴어 합성)과 상호 검증 관계이므로 trinia(트리니아) fashomo(파쇼모) 이 둘은 항상 쌍둥이처럼 붙어 다녀 제 역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둘 다 21세기에 등장한 <하나님 증명>으로서는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fashomo는 더군다나 인간 생애를 관장ㆍ관리한다는 점에서 일찍이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입니다. 이 파쇼모 (fashomo)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요사스러운 점복/占卜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간 생애 관리ㆍ관장이심은, 스웨덴 오페라 여가수 제니 린드와 불교계 거두 이효봉 선사의 그 유사성에서의 쌍둥이와 같은 경탄할 만한 예시/例示에서 100% 확증되고 있습니다.

'3위1합'이 오늘날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서두에서 밝힌 우리 하나님의 언약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사람 사는 법을 교시/敎示함입니다. 즉 짝을 이룬 둘은 둘이 아닌 하나로서 "교차/交叉(맞물림,맞바꿈) 소유"라는 것이 그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갑과 을일 때 갑의 것은 을의 것, 을의 것은 갑의 소유가 되는 것입니다. 아내의 몸이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이는 "한 몸"에서 그렇고 "한 영"에서는 삶 자체가 그렇 되니 위에서 설명한 하나님의 언약이 바로 이 원칙대로 말씀하심인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主(주인,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 여기서 "소유한다"는 것은 "교차 소유"입니다. 이 뜻이 아니라면 여기서 이런 표현이 나올 수가 없습니다. "교차 소유"는 "한 영"임을 말하고 "한 영"됨이 바로 우리의 구원이기에 그러합니다. 남자의 몸이 여자의 소유가 되고 여자의 몸이 남자의 것이 됨은 둘이 "한 몸"임을 말해주듯이.

그런즉 다시 엄중하게 강조하지만 바울 사도가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이다"(고후 13.5) 할 때, "스스로 안다"는 것은 자기 입으로 자기 믿음을 고백함을 물론 말함이 아니고 엄중히 성경적 의미로 알고 있느냐는 것이니 주님 친히 "제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요 17.10)이라 하신 대로 "교차/交叉 소유", "교차 삶"이 되어 있는지를 살펴 항상 자기 점검을 게을리하지 말고 자문자답하라는 뜻임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교차 삶"이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그대로입니다. 즉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한 그대로입니다. 상대 중심이라는 차원에서 의미를 새로 음미하는 것뿐입니다. 영원무궁 좋은 날만 무궁무진 앞두고 있는 우리이니 넘치는 기쁨으로 하나님을 찬미 찬양합시다. 


2026년 3월 26일 목요일

적의 위치를 알아야 적을 깨뜨릴 수 있어

현재의 인간이 비정상이라 원래는 천사처럼 신령한 몸이나(천사들이 신령한 몸이 된 것도 신령한 몸인 아담을 기준하여 만드시어 아담을 보좌하도록 하심이었던 것) 아담 범죄로 이런 동물성 육체로 다시 환원되어버린(아담이 애초에는 모든 동물 창조의 그 최종 피날레로 창조되었기에 동물성 육체였지만 아담 안에 영혼을 조성해 넣으시면서 영계인 에덴으로 데려 가 신령한 몸으로 재조정하신 것) 비극적 결말 탓에 모든 인간고의 원인인 현재와 같은 동물성 "육의 몸"(고전 15.44)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아담 범죄가 사탄(원래 아담의 수하로 있던 자였으나 아담을 시기하여 하극상의 패역질을 저질러 아담을 시역/弑逆한 것)의 거짓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따른 결과라 그 순간부터 위계질서가 거꾸로 뒤집혀져 아담이 도리어 사탄의 수하가 되어버려 이것이 오늘날까지의 참담한 상황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함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요 8.44) 하신 그대로입니다. 거짓말쟁이가 세상을 지배하고 있으니 당연히 어찌 되겠나요. 보나마나 말하나마나입니다. 진리에 관한 한 온통 거짓말뿐입니다. 멀쩡하게 계시는 하나님도 "없다", 성경 관련해서도 거짓말을 멋대로 지어놓고 "이것이 진짜 하나님 말씀이다" 하고 속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또 거기 속아 넘어갑니다. 이 비참한 현실을 모든 사람은 정확히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서도 순간적으로 깜빡하여 낭패 보는 수가 허다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만 귀에 들리는 대로만 판단하는 습성이 너무 강하다는 비극적 단점을 누구나 지니고 있습니다. 항상 이를 의식하여 경계해야 합니다. 사탄 편이 되어 도리어 원수 사탄의 장단에 맞추는 자도 절대적 다수를 차지하는 말 그대로의 악령들의 천하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만이 난장판이 말끔히 수습됩니다. 실로 험한 세상입니다. 악령들이 있어서 낭패가 아니라 우리 자신 이를 의식 못해서 낭패인 것입니다. 이를 부디 명심합시다. 마음에 반드시 아로새깁시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리"(롬 2.6)


 

초대교회는 하나님의 영광 드러내려고 선행에 힘썼는데 오늘날 교회는 도도 개도 아니니 어찌 할꼬?

 


사탄의 활동기간이 단축되었던 그만큼 다시 메꾸어 주시는 하나님ㅡ성경이 지어낸 것이 아니란 증거

사탄의 활동기간이 단축되었던 그만큼 다시 메꾸어 주시는 하나님

성경이 지어낸 것이 아니란 증거






2026년 3월 25일 수요일

죄로 죽음이 왔기에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



"천사가 전하는 복음"과 바벨론 신학의 근본적 차이

1). 아담의 죽음이 <영적 죽음>이라고 주장하는 자마다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왔음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복음의 기본 사실을 왜곡시키는 자로서 그에 상당한 처벌을 면치 못할 것이다. 하나님 편에 서 있지 않고 사탄 쪽에 붙었으니까.

2). <대신 죽음>이라 주장하는 자마다 주님께서 성령으로 각자 안에 임하심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진리에 있지 않는 자임을 자인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오심이니까 성부 하나님도 임하심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들이 됨이다.
3). <로마서 7장>을 믿은 후의 바울의 개인 체험이라 주장하는 자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몸이 멸해졌다"(롬 6.6)는 성경적 사실을 부인하는 자이므로 처음부터 사탄에 얽매인 것임을 자인함이다.
4). "참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롬 2.7)에 이른다고 바울 사도가 명시한 것은 구원 받은 후의 마땅히 보이게 되어 있는 열매를 가리킴인데도 이를 부인하면 '구원 받음'이라는 '나무' 자체가 없다는 소리인 줄조차 모름이 되니 어찌 구원인들 알겠는가!
5). 구원됨은 죄를 회개하고 세례받음으로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심으로써 이루어진 것인데 범죄하면 그 회개한 것을 스스로 뒤집어 엎는 행위이거늘 어찌 무사하기를 바라랴. 아무리 구원되었음을 백날 외쳐도 <죄 짓는 자> 회개 않으면 필멸이다.
6). 우리 주님은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신 것이다. 이 사실을 모르고는 왜 다시 세상에 오시는지 그리고 "성령으로 남"(요 3.5)의 이유를 모르게 된다.
7). 3위1합(고전 6.17, 3위1체)으로써 "교차 소유", "교차 삶"이 되어 <상대 중심>인데 이는 "한 몸"(창 2.24)됨과 동일한 이치이다(고전 7.4). 고로 자기 중심을 회개하지 않는 한 필멸이다. 이상이 오늘날 "천사가 전하는 복음"과 바벨론 신학의 근본적 차이다. 간단하지만 사실은 엄청난 차이이니 생명과 죽음의 명확한 대칭이다.


반드시 상대 중심의 삶이어야

사랑의 하나님이시기에 강제ㆍ강압하시지 않습니다. 그대신 약속하십니다. 따라서 아담의 삶은 약속(언약)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먼저 약속하시고 다음에 명령하셨습니다. 즉 계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약속은 다름아니라 "내가 너를 전적으로 위해주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