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9일 금요일

주님 앞에서 우리는 몸보다 마음이 부지런해야

3운법칙의 "3"은 성경에 주님 친히 밝히신 바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의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 "3위1합"을 만유 창조와 운영의 기본 원리로 정하신 사실이 오늘날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으로써 거시세계에서는 3운법칙으로 증명되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이를 현대 물리학적으로 확인한 닐스 보어가 "상반/相反은 상보/相補(contraria sunt complementa)라는 그 핵심 내용표현한 대로 3운법칙에서는 FS형이 상보이고 OT형과 SN형이 상반을 이루고 있습니다. 양자역학에서는 미립자의 파동성과 입자성이 상반, "중첩"과 "얽힘" 현상이 상보에 정확히 해당됩니다. 이는  노자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도덕경 42장 첫 25언)와 완전 일치합니다. 이를 풀이하면 아래와 같이 됩니다.


하나님()이 창조주()가 되셨다 즉 창조를 시작하셨다(生一). 그 <첫 단계>로 자기 "형상"(고후 4.4)으로서의 "독생자"(요 3.16)를 낳으심(만드심)으로써 짝을 이루셨고(一生二), 이로써 "3위1합"(종전의 '3위1체')을 확립하심이 그 <2단계>이고, 이 "3위1합"을 만물의 창조와 운행의 기본 원리 곧 "만유의 법칙(the Universal law)"으로 정하셨으니(三生萬物) 곧 <마지막 3단계>이시다. 따라서 만유는 (음과 양의) '상반/相反'이요(萬物負陰而抱陽/만물부음이포양) '상보/相補'(沖氣以爲和/충기이위화)이다.

즉 세상의 모든 존재는 그늘(음)과 볕(양)이라는 대립되는 두 성질을 동시에 지니고 이 두 기운이 서로 부딪히고 소통하며(충기), 완벽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 진행됨을 설파했던 것입니다. 노자를 멜기세덱이라 단정하는 이유입니다. 성경대로 하면 지금까지도 생존하는 인물인즉(그 나이가 현재 몇 천살이 되든 간에) 노자로 변신했다 해서 이상할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아담이 다시 부활하여(물론 이 부활은 어디까지나 "마지막 아담" 우리 주님 안에서이지만) 멜기세덱으로 활동한 것입니다. 노자라는 인물 자체가 멜기세덱처럼 신비스럽다는 것이 공통입니다. 

이러한 노자/老子를 우리가 무리 없이 자주 들먹여야 하는 이유는,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함으로써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부추기는 바벨론 신학(계 18.4)을 여지 없이 척결할 필요성에서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고 선하시다면 왜 세상에서 인생들이 이토록 고난 고통 중에 허덕이게 하셨느냐" 하는 원망과 불만에 대하여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게 만들었는데 이제는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즉 아담을 처음부터 영광의 몸, 신령한 몸으로 살게 해 주시어 최대 행복믈 누리게 하셨으나 아담의 범죄로 이렇게 되었다고 하면 깨끗하게 끝날 일을 가지고 그 답변을 못해 사람들로 하여금 부질없이 하나님께 회의를 품게 하고 그 만족한 대답을 듣지 못해 믿음에 들어오는 것을 망서리게 한 사례가 부지기수였던 점을 고려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건만 이에 유의하는 이가 거의 없었던 것입니다. 나만 구원되면 그만이라는 이기적인 자세가 남아 있는 한 제아무리 "구원 뱓음"을 자신해도 물거품처럼 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 받은 증거가 바로 이 자기 중심 격멸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바와 같습니다.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니 여러 번 강조하지만 되풀이해 우리 자신을 이런 점에서 채찍질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바벨론 신학 사탄의 거짓말에 포로되어 어처구니없이 속아 왔습니다.

"사람이 구원됨은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써다, 따라서 로마서 7장의 탄식은 <믿어 구원된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이라"는 악랄한 마귀의 교리에 빠져들게 했던 것입니다. "행위가 아닌오직 믿음"이라 하는 것은 아담 범죄로 멸망에 이 르게 된 우리가 이 죽음에서 벗어나 다시 생명에이르는 즉 구원되는 경우에서만 그러할 뿐 하나님 앞에서 은헤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이후에는 순종 곧 행위가 필수가 되는 정상적인 상태로 다시 복구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롬 2.6) 것은 나무나 당연하신 것입니다. 고로 "참고 선을 행함"="영생"(:7)이라는 하나님 앞 등식/等式은 불변입니다.

바울 사도는 다시 거듭 강조합니다. "자기 중심으로 나가("당을 지어"는 오역) 진리를 따르지 않고 불의를 따르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실 것이니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고...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을 것이니...하나님 앞에서는 율법(법, 계명, 명령, 분부,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8~13)이라 한 그대로입니다. 자기 중심이 아니고 상대방 중심의 사랑이니까 자연적으로 사랑의 <선행>이 나오게 마련입니다.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복잡한 것도 없습니다. 이런 지극히 상식적인 것도 헷갈리게 만드니 과연 사탄의 거짓말이요 아담 부부를 속이던 그 때의 에덴 동산 선악과나무 아래 바로 그 현장입니다. 역사는 되풀이됩니다. 똑같은 마귀 이 세상은 "이 마귀 안에 있는"(5.19) 것입니다.

"

2026년 5월 28일 목요일

 


https://youtu.be/_nDIYMH4cDc?si=Kk4TBuHMXjDGo3F3

"<우연>이 어떻게 이렇게도 정하냐
신은 존재하는가
일부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왜 우주에는 법칙이 존재하는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차이다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이니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두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상 최대 최고 무비/
법칙이 발견됐으니 곧 3운법칙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고 따지는
인간을 철통같이 관리하는 법칙이니까
살아 있는 인간을 얽어매는 법칙이니까
이보다 더 <교한> 법칙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실험해서 발견해낸 법칙이 아니다 
이 법칙은 고로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계시는 전적으로 하나님으로 말미암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증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증명은 하나님 실존 증명으로만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계시 받은 자의 모든 성경 풀이가
다 진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보증하여 확고한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기적을 행한 모세의 지팡이와 같은 구실이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할 것이다"(요 4.48) 하셨듯이ㅡ







2026년 5월 25일 월요일

성경적 자가진단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여기서 "안에" 계신다" 함은 쌍방(둘)의 "하나"(요 10.30)됨에서 갑은 을 안에 있고 을은 갑 안에 있음을 말함이니 곧 주님께서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하신 그대로이고(10.38/14.10) 또 이는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저의 것"(17.10)이라 하심과 같이 갑의 소유는 을의 것, 을의 소유는 갑의 것이 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가 됨은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의 "1합"을 말함이며 이 "1합"에서는 상호 교차/交叉(crossing) 소유"가 필연이며 핵심입니다. 그래서 "한 몸"에서는 남편의 육체는 아내의 것이 되고 아내의 몸은 남편의 소유가 되는 것이며(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삶 자체가 그렇게 되어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의 나 위하신 죽으심이 바로 그러한 뜻이고 따라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으니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라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 임자)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꼭 그대로입니다. 


서로 짝(대칭)을 이루어 상대할 때에는 반드시 이러하므로 여기서 생명(삶)의 법칙이 정해진 것으로서 즉 무릇 이지적 삶을 영위하는 자는  모름지기 자기를 위하면 안되고 자기 상대를 위하는 삶이어야 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이미 설명한 대로)에서 비롯됩니다. 구원된 사람마다 자기 상대로서 성령으로 계시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님을 모시고 있는 것입니다. 고로 각자 구원 받았는지 여부의 자가진단은 내가 나 자신을 위하는 일상생활인지 아니면 오직 주님만을 위한 삶인지 스스로 양심껏 살피면 되는 간단한 것입니다. 이 대목에서 '3위1합'(종전의 3위1체')이 언급되는 이유는 이 '3위1합'의 법칙("짝의 법칙")이야말로 만유 창조와 운행의 기본 원리라 바로 창조주 하나님 친히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며 그 구체적 예가 현대 물리학에서 상보성원리로 나타나 미시세계에서 양자역학으로 그 실체를 드러냈으니 "상반/相反(짝을 이룬 "파동성", "입자성"의 미립자)상보/補(양자 "중첩"과 "얽힘"의 현상)"라고 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만유는 대칭성으로 창조되어 있어 가시적인 자연계와 병행하여 불가시(不可視)적 초자연계 즉 신령한 세계인 에덴을 이미 "6일" 창조 전에 만드셨는데("에덴"과 "에덴의 동쪽에 한 동산 창설"을 혼동하지 말아야ㅡ창 2.8) "인류 최고 지성"이라는 스티븐 호킹이 이 자연계만 있는 줄 착각하고 "신(창조주)은 없다" 하니 이런 것이 세상의 거짓 없는(적나라한) 단면도임을 명심하여 대처합시다. 무식무지의 눈가리개로 눈이 가려져 있는데 무슨 말인들 못하리. 그런 세상의 말과 일에 일희일비하는 것이 어리석을 따름입니다. 


2026년 5월 23일 토요일

인간의 죽음과 고통은 자기 중심에서 비룻된 것

내가 과연 새 창조를 받았는지, 믿음에 있는지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지, 성령 세례를 받았는지 다시 말해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스스로 알아 자가진단, 나 "자신을 시험하고 확증하는"(고후 13.5) 방법이  있으니. 그것이 다름아닌 (이미 설명한 대로) 하나님의 "언약" 및 "계명" 따라 <자기 중심>의 삶이 아닌 <상대방 중심>으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지  양심껏 판단하는 것입니다. 상대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라 판단되면 그것은  우리가 아직도  "버리운 자"(:15)의 위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증거입니다. 만우주의 "짝의 법칙"에서  그 중간은 없습니다. 둘 중  반드시 어느 하나입니다. 이것 아니면  기필코 저것입니다. 구원은 성령으로 오시는 주 예수님을 내 안에 모셔 "한 영"(고전 6.17)이 되는 것이기 때운이며 이와 같이 짝을 이루어 "하나"(3위1합, 종전의 '3위1체')가 됨에는 <교차> 소유가  필수 필연임을 알면 됩니다. 즉 둘이 하나를 이루면 절대로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는 것이  불변의 특징인 것이니 각기 자기 상대를  위함입니다. '둘'을 '하나'로 묶는 <보이지 않는 끈>이라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타자/他者('나'를 제외한 나와 대비되는 다른 모든 사람> 중심적인 관점>을 잃고 '나'라는 좁은 자아에 갇힐 때 집착, 두려움, 그리고  이기심이 비롯되며 이것이 곧 삶의 고통을 낳는 원인이라고 보는 것ㅡ이는 삶의 깊은 진리를 찌릅니다. <이타적 시선>은 인간의 고통을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지에 대한  더 깊은 사유와, 삶의 고통과 비극을 좀 더 초월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지혜로 이끕니다. 이 <타자를 향한(위한) 굿굿한 태도>를 통해 죽음과 극한의 고통이라는 필연적 비극 앞 그 속에서도 인간은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무너지지 않는 실존적 의미를 엿볼 수 있게 됩니다. 

주님 앞에서 우리는 몸보다 마음이 부지런해야

3운법칙의 "3"은 성경에 주님 친히 밝히신 바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성부, 성자, 성령"(마 28.19)의 "3위1합"(종전의 '3위1체')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바로 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