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
• 조선 와서 서구 생활 완전 포기, 무명 저고리·고무신 신고, 월급 전부를
• 유품: 동전 2개 + 찢어진 담요 반쪽. 장례식엔 천대받던 사람들이 통곡.
• →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문구처럼, 부와 명예 포기하고 무상·고뇌 속 헌신한 삶.
셰핑은 간호사로서 유대인 요양소,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간호전문학교 졸업후 미국 브루클린주 이시병원에서 근무했다. 1904년 뉴욕 성서교사훈련학교의 여행자를 돕는 선교회(Traveler's Aid Missionary)에서 1년 동안 봉사하였다.
간호사로서 셰핑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하려는 선교사로서 간호, 신학, 교육에 대한 지식을 결합했다. 신학교에 다니던 중, 그녀는 한국 병원에 간호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결국 그녀가 32세 때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회에 합류하여 조선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2년 전인 1910년에 일본 제국이 한국을 점령했기 때문에 불안정했다. 정부와 대부분의 사회는 약자들을 더욱 방치했다. 그 결과, 구걸하는 사람, 한센병 환자, 병든 환자의 수가 증가하여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셰핑은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1911년에 지원했고, 1912년 2월 20일 32세에 선교 여행을 떠나 여생을 그곳에서 봉사하는 데 바쳤다.
간호
1912년부터 1934년까지 셰핑은 광주, 군산, 부산, 서울 등 한국의 여러 지방에서 일했다. 특히 셰핑은 "여성, 과부, 고아, 한센병 환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셰핑은 간호 활동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그녀는 광주제중원, 구암 예수 병원, 세브란스병원, 그리고 한국의 다른 병원들에서 일했다. 간호사로서 그녀는 간호사들을 훈련하고 감독하는 책임도 맡았다. 셰핑은 한국에서 건강과 교육을 증진하기 위해 많은 간호 교과서를 출판하고 번역했다. 그녀가 저술한 간호 교과서 중 일부는 간호 교과서, 실습 간호 연구, 간호 지침서, 단순 위생법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녀는 1923년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0년간 회장으로 재직, 대한간호협회의 국제간호협의회 가입에 성공했다.
교육
간호 외에도 셰핑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한국에 학교를 설립했다. 예를 들어, 셰핑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성경학교인 '닐'성경학교를 설립했는데, 한때 매년 3~4만 명의 여성을 교육했다. 이 학교는 나중에 한일장신대학교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설립부터 그녀의 사망까지, 셰핑은 이 학교에서 5~6과목을 직접 가르쳤다. 그녀가 다룬 주제 중 일부는 읽기, 쓰기, 찬송가, 성경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질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학과 간호도 포함되었다. 교육을 장려하는 동안, 셰핑의 주요 헌신은 여성들을 기독교로 교육하여 효과적인 성경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셰핑은 '이일'이라는 여성 학교를 설립하여 여성들이 스스로를 부양하고 생계를 꾸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셰핑은 누에를 키우고 여성들에게 바느질 방법을 교육하여 학교가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낮에는 교사였지만 밤에는 전도 행사를 열고 여성들을 전도사로 훈련시켰다. 이를 통해 여성들은 기독교인으로서 더 강한 정체성을 확립, 성경을 전파하는 데 힘을 얻었다.
한국 문화에 동화하기를 힘써
유산
셰핑은 미국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위대한 선교사 7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광주에서 흡연, 음주, 매춘에 대한 금지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셰핑은 닐 성경학교(앞서 언급)와 같이 그녀가 설립한 학교에 다니는 여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은 문맹이었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여성 교육은 제한적이었고, 셰핑은 한국 여성들에게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고자 했다. 닐 성경학교는 그 지역의 여성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을 졸업한 많은 여성들은 계몽 운동과 신여성 운동의 선구자였다. 셰핑은 여성 교육과 문해력을 증진함으로써 여성 계몽의 사심 없는 선구자로 여겨졌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모임은 셰핑을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사랑의 제자인 나이팅게일의 진정한 후예"라고 평가했다. 2017년에는 그녀의 봉사하는 삶을 다룬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가 개봉되었다.
(이상 전문, "서서평" 관련 인터넷에서 옮겨 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