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9일 목요일

신학자들이 성경 전체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렵다고 꼽는 대표적인 난해 구절들과 책들은 다음과 같으니 즉

1. 신약성경의 난해 구절
■  베드로전서 3.18~20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 신학자들이 신약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로 꼽는다는데, 예수님이 죽으신 후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말씀을 전하셨다"는 내용으로, 이 '영들'이 누구인지(타락한 천사인지, 노아 시대의 사람들인지)와 '옥'의 의미를 두고 견해가 갈린다고 하나, 천사는 해당되지 않는 것이 천사는 초자연계 존재로서 지식이 월등하므로 그들의 범죄는 고범죄에 해당되어 용서 자체가 불가능입니다. "옥"이라 함은 일정한 한 곳에 집결되어 있다는 정도로 알면 되고, 일단 이렇게 복음이 전해졌으니까 일찍이 복음을 듣지 못한 예컨대 고대인들이 여기서 그 장래가 결정된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세상에서 믿지 않아도 제2차 기회가 있다는 것은 절대 아니니 주의를 요합니다.
■  베드로후서: 이 책은 정경(Canon)으로 인정받은 서신서 중 가장 난해한 책으로 여겨진다고 하고는 하나, 복잡한 신학적 이슈들이 얽혀 있다뿐이지 우리의 구원 문제와 직결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냥 넘어가도 상관 없습니다.
■  마태복음 7.21~23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고 귀신을 쫓아낸 이들에게 예수님이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장면입니다. 구원과 행함의 관계, 그리고 '믿음'의 본질에 대해 깊은 신학적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하나, 지난 때에는 제아무리 능력을 행했다 해도 그 능력 자체가 우리 구원을 담보하는 것은 아니기에 이 말씀은 상식 수준에서 얼마든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  고린도전서 15.29 (죽은 자들을 위한 세례):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죽은 사람을 대신해 세례를 받았다는 암시가 있어, 이 관습의 실체와 바울의 의도에 대해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하다고 하나 물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중환자가 회개했을 경우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2. 구약성경의 난해 부분
■  창세기 6:1-4 (네피림과 하나님의 아들들):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과 결혼하여 '네피림'을 낳았다는 기록은 그 정체에 대해 고대부터 현대까지 끊임없는 논쟁의 대상이라고 하나 여기서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함은 하나님 친히 만드신(낳고 낳음으로써 생긴 것이 아닌) 신령한 생물을 가리킵니다. 즉 악령들이 그 초능력으로 인간 남자로 변신해서 생산해낸 인간 종자인 것. 사탄 패거리 악령들이 인간 세상 통치 차원에서 그런 짓거리를 했던 것이나 불법이므로 해당 악령들은 심판 때까지 유폐형을 당했으나(유다서 1.6) 사탄만은 그가 세상을 현재 지배하고 있는지라 그 소생 네피림이 대신 들어가고 적그리스도로서 오늘날 곧 풀려날 예정입니다.
■  다니엘 9.24-27 (칠십 이레): 이 예언적 구절은 역사적 성취 시점과 상징적 의미를 두고 해석이 매우 복잡하여 신학적 논란이 많다고 합니다.
■  에스겔 40장 이후 (새 성전 환상): 에스겔이 본 거대한 성전 환상은 그 물리적 실체나 미래적 의미를 주석하기가 대단히 까다로운 부분으로 알려져 있다고 함.
■  신명기 28:53-57 (자녀의 살을 먹는 재앙): 전쟁과 포위 속에서 극심한 굶주림으로 부모가 자녀를 먹게 된다는 비극적인 묘사는 신학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직면하기 가장 힘든 구절 중 하나로 꼽힌다고 하나 아담 범죄로 동물적 육체가 된 이상 성경 기록이라 해서 예외일 수는 없는 것. 
3. 난해한 책 (전체)
■  히브리서: 구약의 제사 제도와 신약의 복음을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하므로, 저자가 누구인지부터 시작해 구약 인용 방식까지 학문적 난도가 매우 높은 책으로 알려져 있다고 합니다.
■  요한계시록: 상징과 환상이 가득하여 세대주의적 해석부터 역사주의적 해석까지 수많은 학설이 존재하며, 성경 전체에서 가장 오해와 논란이 많은 책으로 지목된다고 합니다. 
4. 그 밖에 "난해하다"고 하는 부분
■  빌립보서 2:5-11(비움의 기독론)과 로마서 7장을 들고 있는데 "자기를 비우셨다"는 대목이 어렵다니 참으로 어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로마서 7장에서 말하는 "나"의 정체를 두고  "그 신학적 깊이 때문에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토론되는 부분들"
이라는데, 사실상 우리 구원과 유일하게 직결된 것이 이 로마서 7장인 것입니다. 사실을 말하면, "난해한 것"이 아니라 사탄이 교회를 일대 참사의 함정으로 몰아 넣기 위해 계획적으로 파 놓은 죽음의 구덩이인 것입니다. 바벨론 신학의 유일한 정체라 해도 좋습니다. 

 

다시 정리하면 (1)

하나님께서는 그 스스로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trinia(트리니아) 즉 3위1합(3위합1 또는 3위1체)을 기반으로 정하시어 이를 만유의 기본 대원리(대법칙)으로 삼아 만유를 창조하셨음이 이 21세기에 밝히신 것이다. 이 확실한 증거로서 미시세계는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양자역학)로, 거시세계는 3운법칙(fashomo, 파쇼모)이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를 주관하는 사실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왜 하필 이 때냐 하면 지금은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 전파의 "마지막 때"(단 12.4)이기에. "천사의 복음" 등장 그 필연성은, "바벨론"(계 18.2,4) 곧 "바벨론 신학" 즉 그간 사탄이 끔찍하게 쌓아 왔던 온갖 거짓말(주로 심각히 왜곡된 성경 해석)을 깨끗이 불식시켜버림에 있다. 예를 들어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등의 횡당한 것들.


주님 다시 오심에 즈음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이에 대비케 하심이다. 다시 말해 사탄의 거짓말이 온 천하를 뒤덮고 있었기 때문에 이 거짓된 성경 해석을 수용함으로써 다시 오시는 주님을 영접할 만한 "거룩한 자"가 씨가 마르다시피 되어버렸기에 그러하다. 주님 처음 오실 적 당시 세상에는 의인의 존재가 그러하여 모조리 멸망하는 판이라 심판주가 필요 없었던 상황이었음과 같이 지금도 거의 똑같은 양상인 것이다. 소위 "믿어 구원되었다"는 이들 중에 죄 짓지 않는 자가 거의 형적을 찾아 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로 되어버린 것이다. 천년간 세상을 다스리셔야 하는데 다 죄인이라 멸망해버리면 사람이 남아 있지 않은데 무엇을 어떻게 하신단 말인가.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하셨다 함이 그 뜻이다. 주님과 함께 고난에 동참한 자들은 주님 다시 오시는 순간의 휴거 때 하늘로 올리워져 주님과 함께 다스리는 자로서의 영광을 받게 되지만 그렇지 못한 자(그런 휴거되는 계층에는 들지 못하나 죄는 짓지 않은)들은 지상에 살아 남아 다시 오시는 주님의 천년 왕국 구성원이 된다.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세 못되어 죽는 자는 저주 받은 것이리라....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사 65.20, 25) 하신 대목이 바로 이 천년 왕국을 지칭함이다.

이 천년 왕국 설정은, 아담이 범죄하지 않고 신령한 몸 그대로이고 그 후대들도 다 그러한 영광의 광채의 옷을 입은(그렇게 초자연적 방법으로 아담이 낳았으니까) 죽지 않는 몸이지만, 개중에는 사탄 등 악령들과 같은 불순종자가 있게 마련이라 악령들에게 선동되어 기회를 엿보다가 일시에 단합하여 선악과를 따서 입에 넣는 그런 상황이 필연적일 것임을 전제함에서 나오는 것. 그러면 오늘날 우리와 같은 동물성 육체를 지닌 인종과 신령한 몸의 존재들 두 형태로 분류되는 사태가 벌어지고 그런 동물적 육체 중에는 회개하는 자도 있어 그런 자는 생명과를 먹게 하심으로써 다시 신령한 몸으르 회복되는 것이었다. 그 기간이 바로 천년. 그런데 아담 자신부터 그런 범죄를 저지르는 통에 현재의 이 사태가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런 점을 보아서도 성경은 절대로 사람이 지어낸 일종의 설화가 아님이 넉넉히 입증되고도 남는다. 왜냐면 이러한 자세한 것을 성경이 밝힌 적이 단 한 번도 없으니까! 그리하여 아담이 죽지 않았다면 했어야 할 일을 성자 하나님 친히 사람되시어 "마지막 아담" 자격으로 시행하심이 "천년 왕국"인 것이다. 이 사실을 이전에는 누구도 말하지 못했던 것이니 왜냐면 모든 것은 계시로 알아지는데 이를 이와 같이 언급한 데가 성경 그 어디에도 없으니까!

2026년 4월 8일 수요일

"두려움과 떪"이 없는 오늘날의 설교자

 



  





로마서 7장 관련 몇몇 인물의 견해

참고로, 로마서 7장의 '곤고한 사람'을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아닌, 율법 아래 있는 미자립적 상태(거듭나지 못한 상태)로 보는 관점은 신학적으로 '비실재적 해석(Non-Realist View)'이라 불립니다.

찰스 피니처럼 이 해석을 강력하게 지지하며 전통적인 개혁주의적 해석(거듭난 자의 내적 갈등)을 비판한 인물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Jacobus Arminius)
피니와 신학적 궤를 같이하는 아르미니우스주의의 시조입니다. 그는 로마서 7장이 거듭난 성도의 모습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 안에서의 자유'와 모순된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이 본문이 성령의 은혜를 경험하기 전, 율법을 통해 자신의 죄성을 깨닫는 단계에 머문 사람의 고백이라고 주장했습니다.
2. 존 웨슬리 (John Wesley)
감리교의 창시자인 웨슬리 역시 로마서 7장을 거듭난 자의 표준적 상태로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를 '율법 아래 있는 자(Under the Law)'의 상태로 규정하며, 로마서 8장의 '성령을 따르는 삶'으로 넘어가기 전의 과도기적 단계로 해석했습니다. 성도가 계속 7장의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은 진정한 구원의 확신과 거룩함이 결여된 상태라고 보았습니다.
3. 더글라스 무 (Douglas Moo)
현대 신약학자 중 이 분야의 권위자입니다. 그는 주석을 통해 로마서 7장의 '나'를 그리스도 이전(BC) 시대의 유대인 혹은 율법 아래 있는 인류를 대표하는 수사학적 표현으로 봅니다. 바울 개인의 현재적 갈등이 아니라, 율법이 죄를 이기게 하는 데 얼마나 무력한지를 보여주는 논증이라는 입장입니다.
4. 기타 경건주의 및 성결운동가들
많은 성결론자들은 로마서 7장을 '패배한 그리스도인'의 상태로 봅니다. 이들은 7장에서 8장으로의 '전환'을 강조하며, 성령 충만을 통해 7장의 탄식에서 벗어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요약하자면, 이들은 공통적으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는 탄식이 그리스도 안에서 새 피조물이 된 자의 '정상적인 상태'가 될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필자의 소견은, 이 로마서 그 어디에도 바울이 자기 신상 발언을 했다는 흔적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 아래에 놓인 전체 인생의 고뇌를 언급하여 설명한 것뿐입니다. 극적인 표현으로 1인칭 간투사 하나 집어 넣은 것 가지고 바울 자신의 체험이니어쩌니...부끄럽지도 않나요?



2026년 4월 7일 화요일

바벨론 신학의 최대 함정





 










자기 중심 즉 죄를 회개 않는 한 영생은 없어

교단이나 개교회 또는 개인의 영적 진단을 가장 간편하게 가장 보편적으로 또한 정확하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다름아닌 로마서 7장 관련해서 알아보거나 물어보는 것입니다. 즉 "오호라" 하는 탄식이 믿은 후의 바울 자신의 체험을 피력한 것이냐 질의하여 그 답변 여하로써 모든 것은 좌우되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란 대답이 나오면 전후 좌우 고려할 것 없이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않다는 100% 증거입니다. 그 대상이야 소위 "교부 어거스틴"이든 누구든. 루터든 깔벵이든. 교단이 그러하다면 개인 즉 그 구성원은 혹 그렇지 않을(비록 극소수나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단위 교회가 그러할 경우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이미 각성되어 있는 개인마다 그런 교회를 빠져 나와버린 다음일 테니까.


겉으로 무신론자로 표방하는 자보다 이런 자들(성경 특별히 이 로마서 7장을 애매모호하게 이해하는 )이 더 위험하고 교회내 암적 존재임을 명심해야. 사탄은 이를 너무나 잘 알기에 그런 가라지를 교회 내에 많이 심어 두는 것입니다. 때문에 마귀는 기독교의 한 종파를 만들기까지도 합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 나무는 제아무리 무성해도 정작 사탄 자기에게는 아무 위협이 되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아니까. 무릇 설교자라면 모름지기 먼저 이 주제로 명확한 설명을 마쳐 놓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대부분은 마귀의 전술전략에 대해 너무 무지합니다. 기독교인을 자처한다고 다 구원되는 것은 아니니까.

아직도 자기 의식 속에 나는 부득불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고 여기는 이가 있다면 자기의 영적 상태를 심각히 고민해보아야 합니다. 천하보다 귀한 것이 자기 생명(영생)이니까! 그리고 기회는 이 한 번뿐이니까. 죄는 무슨 불가항력의 것이 아닙니다. 잘못 교육받은 탓이요 잘못된 인식 때문에 그런 선입견이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이 날 때부터 "죄의 몸"(롬 6.6)인 것은 맞습니다. 아담 범죄 탓입니다. 그러나 믿든 안믿든 평생 그런 것은 아니니 "성령으로 남"으로써 그 몸이 "멸해진"(:6) 것입니다. 성령으로서 내 안에 와 계신 주님의 죽으심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고로 내가 아담이나 사탄처럼 고의로 불복종하지 않는 한 죄 짓지 않습니다. 고의가 아닌 부지부식간에 짓는 예컨대 믿는 "형제간의 사랑 없는"(요한일서에서 지적하는) 것 등은 회개하면 용서가 됩니다. 다시 말해 죄를 짓지 않음은 다시는 내 일상이 자기 중심이 아니고 주님 중심(나의 상대 증심)으로 180도 전향되었으므로.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으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내가 나를 위해 살아야 욕심이 생겨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데"(약 1.15) 주님과 함께 죽어 자기를 의식 않아 욕심이 없는데("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이다"ㅡ갈 5.24) 무슨 죄를 짓는가요. 2천년 해묵은 바벨론에서 벗어나야(계 18.4) 할 때입니다. 21세기는 "천사가 가진 복음"(14.6)의 시기입니다. 과거와는 양상이 사뭇 다릅니다. trinia(트리니아, 3위1합, 3위합1, 3위1체), fashomo(파쇼모, 3운법칙)를 하나님이 괜히 주신 것이 아닙니다("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는 것"ㅡ요 3.27). 이상 두 가지에 수반되어 나타나는 <21세기 성경 풀이>가 전적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친히 보증하시기 위함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처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아신다"(딤후 2.19)고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는 한 즉 "거룩함"(히 12.14)이 없으면 주님 앞에 절대 설 수 없음을 우리 모두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2026년 4월 6일 월요일

너무나 당연한 찰즈 피니의 로마서 7장24절 해석


찰즈 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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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왈드 스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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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자들이 성경 전체에서 해석하기 가장 어렵다고 꼽는 대표적인 난해 구절들과 책들은 다음과 같으니 즉 1. 신약성경의 난해 구절 ■  베드로전서 3.18~20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 : 신학자들이  신약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