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2월 17일 화요일

3운법칙과 NASA 촬영물과의 상호 관계

퉁구스카 및 NASA 위성 촬영물 관련 링크 게시물에서도 지적한 바⁷ 있지만 오늘날까지의 세계 기독교계는 사탄을 창세기의 "옛 뱀"(계 12.9/20)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가 그 계시록에서 일부러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적했건마는. 오만해서가 아니라 사탄의 거짓말이 먹혀 들어가 사람들이 몰라서입니다. 사탄이 <뱀으로 변신하여> 하와(여자)에게 나타났다는 말까지 예사로 합니다. 진정 그들은 그렇게 밖에는 배우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는 그룹(cherub)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세뇌시킨 까닭입니다.


세계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게 무지 가운데 있어 NASA 사진을 접해도 아무 느낌이 없는 것은 실로 큰 손실입니다. 얼마나 사탄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지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물며 다른 일에서리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절대 다수가 언제나 진리일 수는 없습니다. 이 실상을  거울로 삼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사탄 자신이 처음부터 거짓말장이이니까. 바벨론 신학이 판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 스스로가 깔아 놓은 것이니까.

아담 자신이 그 범죄로써 사탄을 이런 탄탄한 자리에까지 올려 놓아 준 것입니다. 아담의 고유한 통치권 행사 차원에서의 거짓말이기에 천사들이라도 쉽사리 이에 개입하지 못하는 실태요 상황입니다. 아담 스스로가 "넘겨 주었던"(눅 4.6) 것이기에. 복음 전하듯 이것도 그 실상을 알리는 것이 우리의 몫입니다. 천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악마의 거짓말대로 사탄이 그 타락한 그룹이 아닙니다. 그 범죄한 그룹은 지금 무저갱의 간수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야기에는 귀신이나 네피림이 들어가는 유치장 격으로 주님의 천년 왕국 초에 사탄도 들어갔다가 맨말기에 나와 반역질을 하게 된다고 성경에 밝혔습니다.

창세기에 기록된 대로 그리고 계시록에 요한 사도가 명시한 대로 "뱀"이요 "용"이 바로 사탄, 마귀임을 밝힌 것이 "천사의 복음"을 말하고 전파하자는 자의 주장인즉 이 주장이 과연 진실인지 입증할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이 3운법칙과 3위1체 등입니다. 이 3운법칙과 같은 것은 절대로 인간이 생각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인간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능력과 모든 잠재력을 완전히 넘어선, 초월한 것입니다. 계시가 아니고는 인간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특별히 3운법칙을 하나님이 최초로 정하신 "때"와 "이유"가 밝혀진 점에서 명백히 그러합니다.

더불어 입증된 것이 있으니 당시 인류가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다는 사실인데 이것이 확인된 것입니다. 따라서 함께 또한 입증된 것이 있으니 다름아닌 지금은 채 백년도 장수하기 어려운 인간 체질에 난데없이 그런 천년 기력이 아담 이후 북바치게 된 그 이유입니다. 이는 아담 범죄로써 인간에게 비로소 죽음이 왔다는 성경 기록을 훌륭히 뒷받침하는 것이 됩니다. 다시 말해 아담 범죄 전에는 사람은 죽지 않는 영생불로의 존재였다는 것이 되고, 이런 자연계 물질로 된 몸으로는 생로병사 자연 질서를 어길 도리가 없기에 필시 이는 신령한 영적 초능력의 몸이었을 수밖에 없음을 3운법칙이 증명함인 것입니다.

가인이 시기심에서 아벨을 죽일 때 아벨의 나이 한창 젊음이었음이 명백하고, 더욱이 이를 뒷받침하는 것이 라멕의 인류 최초 두 번째 살인 사건인데 여기서 라멕은 "소년"(창 4.23)이라 명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후 천 몇백년 세월이 흘러간 후인 노아까지도 950년을 살았음이 3운법칙으로 증명되었으니, 이 이유는 아담의 영생 체질 즉 신령한 몸의 기력이 아직 잔존하여 강력하게 작용했기 때문이며, 달리 다른 요인이 있을 수 없다는 증거가 되고도 남습니다. 다시 말해 그런 당시 환경에 맞추어지게 하나님께서 당시대 인간들의 수명에 적합하도록 3운법칙을 시대에 따라 조절·조정하셨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노아의 생애 3운법칙 도표가 이를 명시합니다. 무턱대고 3운법칙을 기계적으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중간중간에 손길을 더하시면서 3운법칙이 정해졌음이 완벽히 입증되고 있으니 이를 무엇이라 할까, 하나님의 동선, 동기에 덧붙여 제2차 동선, 동기라 하면 적합할지.

이런 놀라운 의미를 함축하고 있는 3운법칙이 인위적인 것일 리가 없습니다. 이를 알게 해 주셨기 때문에 오늘날 비로소 알게 된 것입니다. 왜 이런 것를 계시해 주셨을까 할 때, 오늘날의 "천사가 가진 복음" 전파를 위함이라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는 결론입니다. 따라서 이 3운법칙 등을 "21세기 표적과 기사"라 할진대 이 표적과 기사와 연관되어 밝혀지는 모든 것이 하나님 앞에서 진실·진리일 수밖에 없다고 확정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NASA 촬영물 관련해서도 만일 그것이 무의미하고 무가치한 거짓된 것이면 결코 긍정적 신호를 보내 주시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과 확신 아래 이 촬영물을 하나님 앞에서 적극 추천하는 것입니다.


2026년 2월 16일 월요일

진실을 말하라고 하나님은 명령하신다

퉁구스카 및 NASA 위성 촬영물 관련 링크 게시물에서도 지적한 바가 있지만 오늘날까지의 세계 기독교계는 사탄을 창세기의 "옛 뱀"(계 12.9/20)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가 그 계시록에서 일부러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적했건마는. 오만해서가 아니라 사탄의 거짓말이 먹혀 들어가 사람들이 몰라서입니다. 사탄이 뱀으로 변신하여 여자에게 나타났다는 말까지 예사로 합니다. 진정 그들은 그렇게 밖에는 배우지 못한 것입니다. 심지어는 그룹(cherub) 중 하나라고 알고 있습니다. 사탄이 그렇게 세뇌시킨 까닭입니다.


세계 모든 기독교인이 그렇게 무지 가운데 있어 NASA 사진을 접해도 아무 느낌이 없습니다. 얼마나 사탄이 세상을 장악하고 있는지 그 명백한 증거입니다. 하물며 다른 일에서리요! 사탄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절대 다수가 언제나 진리는 아닙니다. 이 실상을 언제나 거울로 삼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사탄 자신이 처음부터 거짓말장이이니까. 바벨론 신학이 판치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사탄 스스로가 깔아 놓은 것이니까. 아담 자신이 그 범죄로써 사탄을 이런 탄탄한 자리에까지 올려 놓은 것입니다. 아담의 고유한 통치권 행사 차원에서의 거짓말이기 때문에 천사들이라도 쉽사리 이에 개입하지 못하는 실태요 상황입니다. 아담 스스로가 "넘겨 주었던"(눅 4.6) 것이기에. 복음 전하듯 이것도 그 실상을 알리는 것이 우리 몫입니다. 천사가 하는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마땅히 할 일인데도 천사가 대신해 주는 그런 법은 없습니다. 우리가 하지 않으면 영구히 못하는 것이요 하나님 앞에서 그 책임은 우리가 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는 아담의 "영적 죽음"의 악마성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리신 바된 자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 바 되었으니"(벧전 1.20). 이 대목에서 주님께서 세상에 오신 때 즉 2천년 전 시점을 "말세"라 했기 때문에 헷갈린다고 여길 독자가 있겠기에 한 마디 하면 시대를 구분하여 그 시대의 마지막 때라는 의미. 6천년의 2/3인 '사탄의 전횡 시대'(4천년)와 나머지 1/3(2천년 전의 주님 탄생시부터 지금까지)의 '"마지막 아담"과 사탄의 전쟁(창 3.15) 시대'로 분류되는 것. 따라서 이 구절은 2/3 시대의 "말세", 지금 21세기는 1/3시대의 "마지막 때"(다니엘의 예언이 지칭하고 있는)인 것입니다.

또, 주님이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실진대 첫 사람 아담의 후대들이 우리 모든 인간이라면 우리도 예수님의 아들들이지 왜 성부 하나님의 아들들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은, 우리가 "성령으로 거듭 나는" 것은 맞고 이 성령의 의미가 "성령으로 내 안에 임하시는 사람이신 주 예수님"이신 것을 가리킴도 맞으나,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심을 의미하는 고로 아버지의 아들됨이 맞지 아들의 아들됨이 맞을 리 없는 것. 그래서 주님은 "많은 아들"(히 2.10) 중 즉 "많은 형제 중 맏아들"(롬 8.29)이 되심인 것.

성자 하나님도 창조주이시니 성부 하나님의 "형상"으로 낳으심을 입으셨기에 피조물은 본디 하나님의 형상 역할이므로 "하나님의 형상"이신 성자께서 만물을 창조하신 것은 당연하시다 하겠습니다. 성자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이사야 9.6) 성경에 지칭함과 같습니다. 성부께서는 고로 "성자로 말미암아 만유를 창조하셨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됨이니> 그러므로 저들이 핑계치 못한다"(롬 1.20) 했듯이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하나님을 보여달라" 식으로 나오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해도 너무 억지스러운 비이성적인 것. 곧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니시는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가시적 특징"이 만물이라 확정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인식시켜야 마땅합니다.

이 자리를 통해 재차 강조하는 것은 "죄의 몸"(롬 6.6)으로 살도록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실 리 없다는 확정적 단언입니다. 더군다나 사랑의 어버이 하나님께서 그런 짓궂으신 일을 하실 리 만무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의 이름을 감히 욕되게 하지 말기를. 이 동물적 육체는 짐승의 속성이므로 짐승은 인간과 달라 기계적으로 움직이는 삶인지라 자아중심일 수밖에 없으나,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이기에 '자유 의지'로 움직이는데 그리고 또한 영원성의 영혼을 주시어 영적 존재가 되어 있는 터에, 한시적 육체를 주셨다는 발상은 마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니고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것임을 모든 사람은 명심할 일입니다.

그런 동물성 육체에다 인간을 결부/결합시키실 리 만무한 것이니 처음부터 영생하도록 "영광의 몸", "신령한 몸"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죽음" 따위의 얼토당토않은 마귀의 거짓말을 더 이상 입에 달고 다니지 말아야 합니다.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사탄의 "바벨론 신학"입니다. 성경을 학문시하는 것 자체가 애초 사탄적인 것입니다. 거듭 역설하지만 "성령의 계시"로써 모든 성경은 알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눅 10.22) 하신 그대로의 진실은 불변입니다.

신학교는 성경 자체를 연수/연마하는 데가 아니고 전도, 목회 등의 일을 어떻게 해야 더욱 효율성 있게 진행시킬 수 있는지 현장에서 뛰어보고 느낀 여러 가지를 여럿이 모여 공유/공론화하여 토론해서 얻은 결과를 습득하는 것으로 그쳐야 하고 역점을 두어야 하고 또 그럴 수밖에 없는 <단기간의 교육>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하시는 일을 사람이 가르친다는 것은 외람된 일입니다. 현세상이 아담이 통치하는 정상적인 세계가 아니고 아담 범죄가 자초한 <사탄의 지배하>인 만큼 제도화하는 것을 능사로 삼을 일이 아닙니다. 사탄이 충분히 역이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의 집필자 저술가들의 견해를 종합 평가하는 정도와 수준에서 대개 끝나는 것이 신학입니다.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격일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성경에서는 엄청난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되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눅 10.21) 하셨으니, 일부러 숨기시는 마당에 무슨 학문이 의의가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성경 관련해서만은 그런 것입니다. 

다시 강조합니다. 사람은 영생하는 그래서 만물을 통어하는 역할로 하나님의 정하심을 받고 세상에 나온 자로서 천사들도 이러한 아담을 보좌하기 위해 창조된 영물인 것입니다. 에덴(에덴이 자연계의 한 동산에 불과하다는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에 더 속지 말아야)에서 창조된 것으로 되어 있는 "각종 들짐승"(창 2.19)은 하나님의 "6일" 창조 제6일째 벽두에 만드신 "땅의 짐승"(1.25) 등과는 완전 별개임을 알아야. 바로 이들이 지금 "천사"라 하는 존재들인 것입니다. 창조의 때에 하나님이 연거푸 같은 짐승들을 만드실 리 없으니까. 

아담이 신령한 몸이니까 그 보좌역들도 영적 존재였던 것. 범죄로 즉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는 하나님의 경고 말씀은 무시하고 피조물인 "뱀(용)"의 거짓말을 더 믿고 따른 탓에 그 순간부터 아담 이하 모든 인생들은 사탄 수하에 들어간 것입니다. 오늘날의 사탄을 말하자면 아담 스스로가 만들어 준 해괴한 사건이 실제로 벌어진 것입니다. 


2026년 2월 15일 일요일

3위1체의 핵심은 상대방중심으로 "하나"됨의 약속(언약)




3위1체에서의 상대방중심은 성경에 가장 정확히 설명되어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주님 친히 세상에 "마지막 아담"으로 오시어 명확히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를 위시해서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이온데 제가 저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습니다"(요 17.10) 하심이 그것입니다. 앞선 설명에서의 교차(맞바꿈) 소유입니다. 갑은 을의 소유, 을은 갑의 소유로서 이는 갑을 위하는 것은 갑 자신이 아니요 그 상대방인 을이 갑을 위하는 것이요 따라서 을 또한 갑이 위해 줌이지 을 자신이 아니 것입니다. 이래서 상대방중심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우주 천하에 자아중심은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동물(짐승)만이 자아중심인 것은 기계적으로 작동하는지라 스스로 알아서 작동해야 하고 또한 적정선에 이르면 작용을 끝내고 완벽하게 자동으로 멈추어버리기 때문.


오직 다만 <죄 짓는 자>만이 자아중심이니 이는 정상 궤도 이탈을 하여 그 미래 운명이 확정됨으로써 이미 죽음의 멸망이 예정되어 있는 자에 한합니다. 그 대표적 예가 "용" 곧 "사탄", "마귀"(계 12.9/20.2). 이 자를 "옛 뱀"이라고도 하는 것은 "창세기에 나오는 바로 그 뱀"이란 뜻으로, 왜 창세기에 "뱀"으로 나오느냐. 이미 아담은 범죄로 이전의 신령한 몸이 아닌 자연계 물질의 육체로 전락해 있으므로 이 아담을 기준하여 "용"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 용은 자연계 동물인 뱀과 짝(대칭)을 이룬 영계의 존재인 것입니다. 용은 비록 영계의 존재로 남아 있으나 단지 유일하게 현재 인간의 눈에 띌 수 있는 가시적인 영물이 되어 있는 바 이유는 아담 부부를 거짓말로 속여 자연계 물질의 육체로 전락시킨 살인자로서 그 보응으로 하나님이 그렇게 저주하신 때문.

"흙을 먹는다", "배로 기어 다닌다"(창 3.14) 하심이 그것. 따라서 이 저주를 받기 전에는 직립 보행이었음이 드러나는 바 영계의 영물이었으므로 이는 당연 사실이었던 것인데, 저주 받은 결과 마치 자연계 짐승(뱀)처럼 된 것. 천사들 모두가 자연계 동물들과 대칭되는 초자연계 존재를 말합니다. 천사장 미가엘은 사자에 해당된다고 보면 정확합니다. 가브리엘은 또 무엇에 해당되는지 모르겠지만.

지금까지 하나님 증명이라 하여 3운법칙 등을 설명했지만 실물 증거로는 이 용만큼 확실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피조물로서의 영물 중 하나인 용이 우리 시야에 그대로 잡혔으니까 이 바로 <그 (용의) 창조주이신 하나님 증명>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용이 인간의 시야에 실체 모습 그대로 들어 온 것은 그 전에 또 하나가 더 있는데 바로 1908년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충돌 사건. 영문을 모르는(100년을 훌쩍 넘긴 오늘에 와서도 마찬가지ㅡ이들 세상 사람은 성경을 믿지 않으니까, 이런 엄청난 실물 증거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대폭발"이라 잘못 표현하지만. 단지 이 사례만큼은 우리가 직접 영상물로는 확인 못하고 당시 사람들의 목격담에 의존한다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아래 링크된 내용으로 들어가면 지구상의 하늘에 용이 실물 그대로 나타난 그 엄숙한 순간의 광경을 다시 음미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록물은 21세기 전도 활동에서 가장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아주 소중한 자료들입니다.

https://t.co/TiHORn9GRT
시베리아 퉁구스카 사건(1908년)

https://trinia5.blogspot.com/2025/07/blog-post.html
우주선 카메라에 찍힌 용의 실물(2001년)







구원된 자가 죄 지을 수 없는 이유(요일 3.9)

성경의 3위1체는, "무릇 존재하는 것은 짝을 이루어 있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실체(실질)와 형체("형상"ㅡ고후 4.4)로서의 성부와 성자 하나님으로 계심에서 연유된 것이고 모름지기 짝은 '하나'(요 10.30)로서만 그 의미가 있다"란 말로써 정확히 정의됩니다. "하나"됨은 또 그 유일무이의 존재 방식이 "상대방중심"에 있는지라 "자아중심"은 <어떤 경우에도 용납되지가 않는다>로 귀착됩니다.


우리는 나 위해 사람되시어 죽음을 맛 보시고 부활하신 예수 우리 주님과 제각기 "하나" 곧 "한 영"이 됨으로써(성령으로 내 영혼처럼 내 안에 강림하시어 영원히 나와 함께 계심을 인하여) 다시(거듭) 나 새 창조를 받음으로 구원된 것이니 무릇 구원 받았다는 이라면 이제부터는 절대로 자아중심이어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즉각 돌이켜 회개해야 하고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이 하나님 중심의 상태를 바울 사도는 다음과 같이 잘 표현했습니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는 것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소유주)가 되려 하심"(롬 14.7-9)이라 한 것입니다. 자아중심은 "나는 나 자신의 것"이고 내가 주인이라는 의식에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신 것은 나를 구원하시기 위함"이라는 말일 줄 당연히 예상했는데 의외로 "나를 소유하시기 위함 즉 나란 존재의 소유주가 되시기 위함"이셨다 하니 처음 듣는 말이라 하여 놀랄 사람도 있겠으나 성경은 정확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구원은 주님과 "하나" 곧 "한 영"됨이요 이 "한 영"은 "한 몸"됨과 이치가 똑같아서(고전 7.4) 교차(맞바꿈) 소유가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이것이 짝으로서의 하나됨의 철칙입니다. 이렇게 되지 않으면 절대 "하나"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이 "하나"됨에서 비로소 성립이 되어 그제서야 가능해졌던 것입니다.

교차 소유이니까 일방적이 아니고 쌍방 교류의 소유이니까 갑은 을의 것, 을은 갑의 소유가 되니 주님께서 나를 소유하심으로써 주님의 전부가 동시에 또한 나의 소유가 됨이라 그 죽으심이 곧 내 죽음 그 부활이 내 부활이 되어 나의 개인적 구원이 이루어진 것이고 뿐만 아니라 주님의 영광과 함께 고난도 나의 몫이 되어 새상에서 핍박과 환란의 대상이 되는 이유입니다. 무턱대고 "대신 죽음"이라고 "무조건 구원"이 아니니 맹목적인 바벨론 신학의 미신에서 벗어나야 하는 때입니다. 


2026년 2월 14일 토요일

구원 받음의 증거

사람의 아름다움도 단 한 꺼풀의 피부 차이. 그 한 꺼풀만 벗기면 금방이라도 썩을 수 있다고 위협하며 번들거리는 수분 그 아래에는 백골이 있어 살덩어리를 떠받쳐 주는 역할이라기보다 "허연 뼉다귀 봤지? 너도 시간 지나면 그 꼴이 된다, 알간?" 하며 사뭇 눈을 부라리는 조(쪼)이니 어시호, 슬프다! 썩음과 죽음은 자연계 생물에 국한되니 그것이 그들의 생명 자체이기 때문이다마는 그런데 영혼이 있는 인간이 이런 모양새라니! 모양만 아니라 이 물렁물컹한 육체가 온갖 인간고의 온상이 되어 있으니, 기가 차고 메가 찰 일이 아닌가.


영혼을 불어 넣으신 하나님이 이런 인간의 몸을 "삶을 즐기며 누리라"고 만들어 주실 턱이 없다. 성경대로, 아담 범죄로써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동물적 육체로 전락할 뿐만 아니라 아담을 이같은 몰골이 되게 거짓말로 속여 막되게 군 악령 사탄의 조종 아래 장단 맞추는 비굴한 꼭두각시가 되었으니 이 무슨 변괴냐말이다. 아담 자신이 그 죄로 이렇게 되도록 인간을 말짱 망쳐 놓은 것이다. "아담, 아담" 아담만 들추지만 실상은 아담의 <범죄>가 그 장본이니 "죄"란 마물/魔物 곧 자아중심이 이렇게 재앙을 자초하게 충동질을 했는데 그럼에도 여전히 자아중심을 부둥켜 안고 도는 "미친 마음"(전도서 9.3)으로 상대방중심의 <낙원/樂園의 삶의 자세>를 매몰차게 멸시할 것인가!

자아중심 때문에 인간이 산 자로서의 신령한 몸을 잃고 이런 죽음과 썩음의 육신을 끌고 다니는 주제에 구원 받았다면서 여전히 자아중심의 행세인가! 구원 받음의 명확한 증거를 성경은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소유물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소유주·임자·주인)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로 확실하게 정리하고 있다. 이것이 하나님중심, 상대방중심이다. 자아중심의 유일무이의 치유책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부터 자아중심인 사람은 절대로 "구원 받았다"느니 "영생한다"느니 말은 입 밖에도 꺼내지 말 것이다. 가장 불행하고 불쌍하고 무서운 것은 자기 기만이다. 바벨론 신학이 바로 이런 자기 기만 즉 사탄의 멸망의 거짓말을 믿는 것이다. 여기 속아 넘어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의 암적 존재다. 성경대로 믿어야지 "신학(성경 이해는 학문으로써가 아니요 성령의 "계시"로 말미암음이다ㅡ마 11.27/요 14.26) 운운" 하는 자들의 말만 따르니 오늘날 "바벨론 신학"이 양산되고 판을 치고 온통 교회를 쑥대밭이 되게 한 것이다. 

이 "마지막 때" 세계여, 주목하라!

내가 선 하나님 앞 영적 위치를 졍확히 파악해야. 원수 마귀는 호시탐탐 우리를 파멸시키기 위한 일념으로만 덤비는 자. 우리로 하여금 조금도 방심 못하게 만들어. 전쟁 와중에서의 방심은 결정적 패배를 뜻함.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ㅡ"내 어린 양을 먹이라". 또 두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ㅡ"내 양을 치라". 세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시니 베드로가 근심하여 "주님, 모든 것을 아시니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 "내 양을 먹이라".

우리의 현 위치는 아담이 대형 사고를 낸 현장 바로 그것. 생명으로부터 죽음으로 직통으로 바로 뗠어진 비극의 현장. "죽은 자"(마 8.22). 고로 산 자부터 되고보는 것이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 끄기. 성령으로 거듭(다시) 남, 새로 창조됨. 내가 그렇게 구원되었으면, 구원되었다고 삶을 향유하는 것이 아님. 산 자로서의 마땅히 할 일은 다른 사람들 역시 당연히 나처럼 살아나도록 하는 것. 이것이 나를 살려 주신 하나님의 일, 그 뜻! 지금 내가 살아 있는 자로서의 살았다는 증거!

삶의 향락이라는 것은 다 함께 동시에 "한 몸"이 되어 누리는 법이니("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스러워지면 모든 지체도 함께 영광스러워짐"ㅡ고전 12.26)한 쪽 팔은 신이 나 있고 다른 팔은 당장 죽을 듯 끙끙 앓는 그런 것이 없어. 또 신이 나 있는 쪽을 따라감이 아니라 앓는 쪽과 동화되어 고통을 함께 나누게 마련.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은 다 한 가지로 죽음의 고통을 함께 하는 <때>와 <장소>임을 명심하고 일절 다른 생각 말아야. 바로 이 까닭에 현재의 부자들에게 "너희는 이미 위로를 다 받아버렸으니(눅 6.24/16.25) 앞으로 남은 것은 고통 고민뿐"이라는 저주의 말씀을 하신 것, 정신 차려야.

하나님과 우리 각 사람과의 관계에서 혼자로서의 삶이 있을 수 없고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또 여러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공동체로 엮여 있는지라 위에서 말한 "한 몸" 체제/구조로 모든 삶이 영위됨은 너무나 당연. 때문에 우리 모든 피조물의 머리가 되시는 하나님이시기에, 그 몸된 우리가 아담 범죄로 죽음에 이르자 우리의 죄인으로서의 죽음(동물성 육체)의 고통에 친히 동참하시어 죄인처럼 사형수로 십자가 처형의 죽음을 당하신 것. 

이 특별한 의미의 죽음의 고통을 그래서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골 1.24)이라 하는 것이며 우리 모두 이러하신 "머리"로서의 주님을 성령으로 우리 안에 모심으로써 구원되었고 또 주님과 "한 영"(고전 6.17)인지라 그 고통을 "우리 몸에 채우게"(골 1.24) 되어 있음은 지당한 일이요 불변의 가치로서의 이치. 이를 "주님의 남은 고난"이라 함은 구원 받을 사람이 아직 남아 있어(잠재적 교회 구성원) 이 "고난"이 사람 살리는(생명을 끼치는) 고난, 우리 구원을 위한 십자가 죽으심의 연장선으로서의 "주님의 남은 고난"이기에. 이 고난이 얼마나 소중하고 값 비싼 것인지 이로써 짐작할 수 있어.

고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이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롬 8.17). 따라서 100년에 걸쳐 핍박 받는 북한 땅은 장차 도래할 영광의 천년 제국을 주님과 더불어 주름잡을 현란한 왕후장상들이 배출되는 자리.

덧붙여 이 자리에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성경에 주님의 다시 오심에 대한 이유/설명을 전혀 않고 있다는 점. 주님의 재림만 아니라 다른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부분도 일절 일부러 설명을 한 듯한 흔적을 찾을 수 없고 오늘날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의 시대에 이르러서야 봇물 터지듯 각종 설명이 마치 기다렸다는 듯 터져 나오는 판이니 이야말로 성경이 진실의 기록 곧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고는 있을 수 없는 일. 그 확고부동의 증거. 

또한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이시라는 사실이 성경의 핵심 부분임이 이제 비로소 판명 났건만 이제까지 바울만이 그것도 단 한 번 지적하여 밝혔을 뿐. 성경은 주님께서 아담으로서 오신 사실을 일부러로는 설명 않을 만큼 너무나 정직한 서술이었던 것이니 여기 한 점의 인위적 거짓이 있을 수 없어. 과연 이로써도 "천사의 복음"은 유감 없이 그 진실성과 확실성을 드러내고 있는 것. 세계여! 그러므로 이 "천사가 가진 복음"에 주목하라! 마땅히 유의할 것이니 다시 말하니, 주목하라!


3운법칙과 NASA 촬영물과의 상호 관계

퉁구스카 및 NASA 위성 촬영물 관련 링크 게시물에서도 지적한 바⁷ 있지만 오늘날까지의 세계 기독교계는 사탄을 창세기의 "옛 뱀"(계 12.9/20)으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한 사도가 그 계시록에서 일부러 두 번이나 반복해서 지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