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6월 30일 화요일

왕성한 체력을 자랑하는 47세 나이에 등산을 즐기다가 순간적으로 숨지는 이런 나약한 자연계 속성의 몸으로 인간을 창조하셨다고 믿는다면 하나님 모독과 같은 것이다



유투브 시청자들을 위해 생방송으로 후지산(3,776m,일본) 등산 중 해발 3천m에서 실족(失足)
아래로 곤두박질쳐 바위에 부딪친 후 
갈기갈기 찢겨진 변사체로 발견된 
(성별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주인공 옆에 남겨진 비디오 영상에는 그 최후의 장면까지 
고스란히 그대로 담겨져 있었다.
2019. 10. 28
오후 2시 30분

이 영상에서 주인공은 앞으로 9분 뒤에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닐 줄은 전연 모르고
천진난만하게 이야기하며 걸어올라가고 있다.


https://www.youtube.com/watch?v=ic1bOkfWc1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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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이 오지 않았다면 30도 경사진 곳이라
조심하면 안전하게 갈 수 있는데 
얼은 눈에 미끄러져 참변을 당한 것.

https://www.youtube.com/watch?v=ZdcO91wYB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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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는 머리에 붙이고
시청자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다가
미끄러져 구르는 중 iPHONE이 떨어져나가고
바위에 부딪치며 촬영은 그 순간 끊겼고 
시청자들의 연락으로 경찰이 출동한 것. 
변호사가 되기 위해 사법시험 공부에
10여년 세월을 보내고 있는 중
기분 전환을 위해 유튜브를 시작
얼마 안되는 시청자들에게 
후지산 설경을 보여주기 위해 등산했다는 것.
간단한 복장으로 등산을 시작한 것이 화를 자초.

https://www.youtube.com/watch?v=Y4zxtNod-7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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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ZaQjwcCLuSs&feature=emb_rel_end

https://www.youtube.com/watch?v=E7iQDI1DVWk&list=TLPQMzAwNjIwMjAeQN3daq2tkQ&index=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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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8일 일요일

가장 고귀한 진리는 가장 평범한데 있다ㅡ왜냐, 만인간이 숙지해야 하므로ㅡ그리고 이웃(몸의 각 지체) 사랑은 머리(하나님) 사랑이 먼저 오는 순서가 마땅한 한 몸 관계라 첫째 하나님 사랑, 둘째 이웃 사랑(마 22:40)









모름지기 모든 아름다움은 대칭/對稱의 조화




3운법칙이라는 철망/鐵網(울타리)이 각인에게 씌어져 있지 않으면
가인/아벨 사건은 처처에서 일어나
악인(악인)은 살인자가 되고 의인(아벨)은 피살자가  되며
악인끼리 또 싸워 역시 목숨이 담보되지 않는다.  
고로 자아중심 속성은 제재 불능이라 인간사회는 곧 붕괴.
그럼에도 이렇게 탄탄히 지탱돼 감은  오로지 3운법칙 때문.
이 불가항력의 자아중심은 아담의 범죄로
본능 위주로 살게 돼 있는 동물의 육체(자연계 몸)가 된 까닭.
아담의 범죄 전에는 초자연계 명광의 몸으로
자기 선택인 자유 의지에 의한 자아중심만이 통했었다.
아담의 범죄도, 악령들의 범죄도 그런 범주에 속한다.

따라서 한 마디로, 이 자아중심으로는 모든 피조물의 파멸뿐.
이런 지식이 있는 자로서 이 세상 살고자 하는 자는
천하없는 바보들이거나 아니면 "미친 마음"(전 9:3)의 소유자. 
고로 자아중심의 이 세상으로는 삷이라는 것은 모래 위의 집,
헛된 망상,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짓, 한바탕 꿈이라고
아주 못을 박아버려야, 쐐기를 박아버려야ㅡ딴 생각 버려야.
<살 수 있다>는 착각은 마귀의 속임수 따라 품었던 허황된 생각.
이제는 3운법칙으로써 실상을 낱낱이 꿰뚫었으니, 그 증명이니,
오직 새 창조되는 일만 시급함을 알았으니, 인생 역전/逆轉하시라.

새 창조는 어떻게 되느냐. 짝의 법칙으로써만 가능하다.
아담이 육체로서 그 육체를 우리에게 물려줌으로써 모두 인간된다.
그 짜임새는 '영혼'과 '육체'의 이중 구조. 물질과 반/反물질의 배합. 
이제 "새 창조"에서는 '육체'와 대칭인 '영'.
고로 "마지막 아담"(사람되신 하나님)의 성령(하나님이시니까)을
우리가 물려받음으로써, 그래서 육으로 나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다시 나는(요 3:8) 것이라고 설명해주신 것이다. 
성령으로 계신다 함은 아버지 하나님 친히 또한 함께 계심이니
성부/聖父께서는 실체, 성자/聖子께서는 그 형체(형상)로 계셔. 
이렇게 창조주 친히 개입하셔야 모든 인간을 총망라해서
아담으로 인한 처음 창조 파멸을 원상태로의 복구 가능인 것이다.
그리고 처음의 이중 구조(영혼과 육체)에 맞추어져야 함이 필수.
그래서 "마지막 아담"께서 성령으로 친히 내게 오시는 것이니
나라는 존재는 <육체>가 되고 성령은 <영혼> 격이 되시어 
애초의 아담으로 인한 육적 출생인 이중 구조 그대로가 되는 것.

그러므로 새로 창조된 자마다 자기 자신을 이중 구조의 존재로,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요 8:29) <함께>의 복수, 쌍/雙의 존재. 
"마지막 아담"을 <머리>로서 모시고 나는 그 <몸>으로서의
불가분의 하나, 한 몸이라는 철두철미한 의식 속에서의 하루하루.
머리는 몸을 위해 있고 몸(의 각 지체)은 머리 위해 있고.
머리 없으면 몸도 없고, 몸이 없으면 머리의 존재 의의가 없고.
이것이 둘의 하나됨이니 이같이 머리 몸 관계를 알면 충분히 이해돼.
이렇게 여럿이 하나됨을 가리켜 사랑이라 하고 
그  구조는 항상 머리와 몸의 양자 관계이니 짝의 원리 그대로다.

한 분 머리를 모시니 그 아래 몸의 모든 지체가 바로 나 자신이다. 
이래서 주님의 계명(명령, 분부, 법칙)이 이 이치 그대로를 나타내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
다름아닌 이 몸과 머리 관계를 말씀하신 것 외에 다른 의미가 없어
"과연 그렇구나!" 하고 우리는 무픞을 칠 수밖에 없는 것. 
그러니까 가장 가까운 관계가 머리와 몸으로서의 주님과 나.
고로 "나보다 보모처/(또는 부/夫)자를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마 10:37) 하셨으니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음은
머리를 먼저 위하고 따라야지 머리 무시하고서 몸의 각 지체끼리
아무리 찌지고 볶고 서로 위해보아야 도로무공이기 때문이다. 
모든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이 첫째 하나님, 둘째 이웃(22:40). 
이와 같이 성경 말씀은 제대로 읽어 이해하기만 하면
세계에서 제일 쉽고 간명하고 백 번 옳고 이치에 맞는 말씀들뿐. 

고로 몸이 머리 의식 않고는(그 지시 전달 없이) 단 1분이라도
존재할 수 없듯이 몸(의 각 지체, 각 부분)된 내가 주님들
단 1분이라도 의식 않고는 존재할 수 없다는 이 사실을 중심으로
매일 매시간을 요리/料理해 나가야 믿음 생활의 정상 모습.
영생만 욕심내어 특정일, 특정 장소에 특정 의식 행하는 것으로
대리 만족하는 것으로는 천국 들어가지 못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머리와 몸은 실체와 형체의 관계이므로
머리 없이 몸 홀로 나다닐 수 없고 이 사정은 머리 역시 마찬가지다.
이것이 둘의 하나됨, 하나로서의 둘의 특징이다. 
형체 없이는 실체가 웃는지 우는지 알 도리가 없다. 
형체라야 웃는 표정, 우는 표정이 가능해. 
또 형체인 몸은 머리로서의 실체 없이는 죽은 것이다. 
바늘에 실 가듯이, 실이면 반드시 바늘 있듯이
머리 없이 몸 홀로 부지 못하고, 몸 없는 머리 없듯이
나와 주님과의 "한 영"(고전 6:17)됨이 그러하다. 
하루 24시간 주님 의식이 바로 이 때문이다. 곧 새 사람, 새 생명.
아담의 범죄로 "죽은 자"(마 8:22 )되어 영원 멸망을 앞두고 있는 
불쌍한 인생들에게 "마지막 아담"이라는 하나님 선물의 희소식을
전달해주겠다는 그리고 이 일을 위해 기도하는 일편으로 나날을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게 보내야 가히 몸과 머리의 하나됨인 것이다. 

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한다"(막 8:38)고 하셨을까.
"부끄러워하는" 자마다 직통으로 멸망인데(:38)ㅡ
그래서 <목숨을 걸고라도> 절대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하는데.
자기를 뽐냄이 없고 자랑하지 않는, 따라서 자랑거리가 없는 
멸시 받는 약자, 천한 자, 없는 자로 여겨지기 때문(고전 1:26,28).
"이생의 자랑"(요일 2:16)이 특징 중 하나인 세상과 어울리지 않아
응달진 곳의 별볼일 없는 하류민/下流民 취급을 받고 있기 때문.
이는 자연스러우니 이들이 절대 댜수이고 상류층은 극소수인 때문,
한 마디로 요약해, 이 세상의 "임금"(요 14:30)이 악한 자 마귀인 때문.

천국이 처음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우리 몸이 자연계 속성이 됨으로써 이런 구별이 생긴 것이다. 
아담의 범죄 전 몸이 초자연계 속성임을 가리켜
그리고 그러한 몸으로 살게 되어 있던 환경을 지칭하여 왈, "천국". 
우리가 아담의 육으로 출생함으로써 '영혼'과 '육체'가 불가분이었고
이제 "마지막 아담"으로 두 번째(다시) 출생함으로 '나'와 '성령'.
즉 사람으로서 성령으로 계시는 주님과 나와의 
몸과 머리로서의 영원한 행복과 사랑의 쌍쌍이 돌아드는 "랑데부". 
"나는 주님 안에, 주님은 내 안에"의 연가(love song)를 
애창함을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한다"(엡 5:19) 하는 것이니
곧 "성령 충만"(:18)의 기반이다. 

이상 설명의 "이중 구조(머리와 몸)"의 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영혼과 육체의 첫 사람의 구조는 주님과 나의 새 사람의 구조.
말로만 사랑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듯이 말로만 주님과 나의 관계로
아무리 나 자신을 세뇌시켜도 허공에 울려나는 메아리로 그쳐.
오로지 행함으로 사랑이 나타나듯이 내 실제 생활에서 
"주님을 어찌해야 기쁘시게 해드릴까"(고전 7:32/고후 5:9) 의식이 
1년 365일 24시간 내 생활을 지배해야 그 하나된 증거이니
꽃이 아름다워 보기에 싫증이 안나듯 사랑하는 관계면
그 결속 자체가 바로 천국 삶인데 어찌하랴.
반면, 사랑하지 않는 관계라면 그런 하루는 바로 지옥 그 자체. 
항상 '대칭'으로만 진행되어 가는 사고방식에 익숙해져야.











2020년 6월 26일 금요일

3운법칙은 누구나 아무나 알 수 있는 것인 데도 다만 때 맞추어 나타내시느라 오늘날 20세기에 나타내신 것을 강조해야







누구에게 알리셨든 그것은 전연 상관이 없는 3운법칙.
이것이 3운법칙의 특징이니 한 개인의 이름이 들먹여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아야. <알린 사람이 있다>는 정도로 그쳐.
알기 쉽도록 되어 있는 3운법칙, 짝의 법칙임을 설명해야 할 필요뿐.
오직 하나님께서 이 20세기 마지막 때에 알리셨다는 것만이 중요.
이것이 이 두 중요 법칙의 <특징>이니 오해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보고 정작 달엔 무관심인 우를 범치 말아야.
"내 영광을...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할 것이다"(사 42:8/48:11).


모세가 죽자 모세의 시체를 감추신 이유가
워낙 생전에 하나님의 능력을 많이 나타내었으므로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많은 능력을 나타내셨기에)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의식하고 달을 의식하지 않는,
심령이 깨어나지 못하고 우둔한 이스라엘 백성이
죽은 모세의 시신을 신격화하여 섬기는 우상숭배를 할까
염려하심이었는데 과연 그래서 모세 무덤이 없는 것이다.

어린 아이라도 검증 가능한 3운법칙이면 이를 통해
하나님 영광이 나타나신 것으로 그대로 인정하면 될 일을
마치 무슨 큰 천재가 비로소 나타나 발견한 양으로
오해하고 그 인물을 대서특필할 것이니 사람 심리는 같다.
현대인이나 당시 이스라엘 사람이나 하나도 차이가 없다.
고로 3운법칙은 <성경에 있고>, <누구나 알아낼 수 있고>,
<때문에 누구나 검증 가능한 것인데> 단지 이 3운법칙이
처음부터 일찍 알려지면 마귀가 온갖 거짓된 술수로써
그 충격과 효과 면에서 딴에는 "만신창이"로 만들어놓아
정작 본래의 의미는 곡해, 희석, 굴절되고 점술처럼 되어버려
(사람이 언제 죽느냐는 등) 마귀의 거짓말까지 보태지면
(마귀는 틀림없이 그렇게 할 것이고 초능력까지 보태어)  
일이 복잡하게 될 수 있고 기타 이유로 다니엘서의 예언대로
"마지막 때"인 이 20세기 끝 즉 적그리스도의 등장을 
"막아오던 것이 제거되는"(살후 2:7) 때에 맞추어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양 날개로 주신 것이다. 

따라서 <누구나 발견할 수 있고 누구나 검증 가능한>
아주 간단 명료한 성경적 사실일 뿐 더도 덜도 아닌 것이니
이대로 우리는 세상에 전파하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짝의 법칙(3윈1체 법칙, 만유 법칙)과 3운법칙의 양 날개를
활짝 펴고 화려하게 비상(飛翔)하는 "영원불변의 복음"이다. 

이 "마지막 때"에 맞추어 성경이 유일하게
구약의 다니엘서 및 신약의 요한계시록에서만
<하나, 둘, 반>의 "한 때, 두 때, 반 때"를 말하고 있고 
이 기묘, 절묘한 표현이 바로 짝의 법칙 도식(圖式)의 뜻일진대
이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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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6월 25일 목요일

인간의 생애를 철저히 관리하고 있는 그 규칙성을 발견한 것 이상으로 큰 발견이 있으랴 성경이 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으니 최대의 경이/驚異가 아닌가









창조의 클라이맥스인 인생을 "그림자"라고 한탄한다면 하나님의 창조를 비아냥대는 신성모독죄, 아니면 아담 범죄로 인생에게 죽음이 왔다는 확고부동의 증거



처음부터 현세와 내세가 구분된 것이 아니다.
아담의 범죄로 처음 창조가 망가지자 그렇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 아담"을 설정하신 것도 아니다. 
아담의 불복종으로 인해 자연계 몸이 되어버림으로써
아담 자신이 죽어 없어진 까닭에 모든 인생이 죽은 자된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하시는 모든 일이 짝의 법칙의 범주 내에서만
진행되고 이루어지는 것이니 이로써도 짝의 원리가
"만유의 법칙"임이 확연하게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닌가. 













2020년 6월 15일 월요일

구원의 ABC도 모른다는 실상을 여지 없이 드러내는 세계 종교 통합에 가담하는 일부 개신교



모든 것은 때가 있습니다(전 3:1).
지금은 시험하는 때로서 악인과 의인이 구별되는 때이며
이 때가 지나면 두 번 다시 시험하는 때가 없습니다.
영원한 고난의 장소(볼 못)와 생명의 세계로 양분되어버림은
이런 시험의 때가 종료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지금은 죄인으로부터 의인(회개하는 자)을 갈라내는 때요
의인(구원받은 자)으로부터 악인(변절자)을 추려내는 때입니다. 
이는 모든 영물들을 거룩하게 지으셨으나
자기 자유 선택에 의해 약령으로 풀리는 자가 걸러짐과 같아
아담의 범죄, 죽음으로 인한 새 창조의 때에
이와 같은 시험의 작업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속했다 하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전 1:12).
나는 루터파, 나는 깔벵파, 나는 장로교, 나는 침례교 등등.
지금까지 내려온 교회사가 그러합니다. 유치원 단계입니다.
교회의 머리되시는 "마지막 아담"께서 (하늘에 육신으로 계시나) 
멀리 계시지 않고 우리 각자와 함께 성령으로 계시는데
인간을 무슨 그 대리자처럼 여겨 따른다는 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성령으로 가르치심을 받아 성경을 깨달았으면
그것으로 수업(修業)은 끝난 것이니(실상 성경 공부는 평생 지속이나) 
주님 친히 나의 사령관(사 55:4)이시요 참모(9:6)이신즉
직접 거병하십시오. 영적 전투에 충분히 나설 수 있습니다. 
독자적인 전략을 주님과 함께 기도로 의논하면서 출병하십시오.
상승군이 될 것입니다. 주님 명령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면.
누구누구에 기대거나 의지할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 외에 그 누구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형제간 협동은 얼마든지 가합니다. 교회로 모이는 뜻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각자가 움직이기를 바라십니다. 
각자 머리되시는 주님을 개별적으로 다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각자가 바울, 게바, 아볼로가 될 수 있습니다.




자연과학의 천문학적 지식이 아무리 발달해도 자연계에서만 맴돌고 초자연계는 유일하게 성경만이 예수님의 부활하신 몸으로 실물 증거로 보여주었음을 명심해야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인간(아담)이 아닌 악령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는 것도 한 지혜다 아담이 살아 있다면 이런 일이 감히 없었을 터








아래 비디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D8DjaeC1vSw



악령들이 의도하는 바는 간단하다. 
방금 설명했듯이 인간은 아담 범죄로 자연계 육체로 전락,
도무지 삶다운 삶을 누릴 여건이 안되는 상태인데도
이를 부정하고 고대에도 오늘날 문명처럼
거뜬하게 문명을 누리고 살았다면서 
아담의 죽음을 희석시키는 것이 목적이지 않은가.
또는 그들이 현재 대대적으로 속이고 있는 대로
외계인들이 와서 그렇게 했다고 선전하여
마치 외계문명이 존재하는 것처럼 기만하는 데에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것이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나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는 한
그들이 모는 대로 끄는 대로 속절없이 움직일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들(아담 범죄 후의 비극적 자연계 육체)이니까. 








21세기 유형 신종 교회핍박을 당해 투옥되는 등 핍박 각오함이 없이 "휴거"라는 안일한 자아중심의 꿈에 젖어 지내는 사람치고 천국 갈 사람은 아무도 없다




이성적으로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하고 조롱하게 하면서 
무슨 전도를 하고 영광을 돌린다, 보내심 받아 구원된 산 자라 하리요.
21세기 믿음의 척도는 온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소위 "차별금지법"으로 처벌 받아 감옥에 들어가느냐 않느냐 여부로 
가름된다 할 것이다. 핍박의 양상이 변모했음에 불과하다. 
마귀는 처음부터 시종일관 핍박의 칼자루를 쥐고 있다.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을 때 내게 손을 대지 않았으나 이제는 너희 때요 어두움의 권세다"(눅 22:53)










민주주의나 공산당 독재나 사탄의 지배하에 있는 체제지만
사탄의 교회 탄압에서 냉탕, 온탕의 차이일 뿐
유화책으로써 세상 사랑하게 만들든(눅 8:14)
핍박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가든(:13)
핍박자요 시험자인 사탄의 전략대로 하는 것뿐. 
소위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해서 복음 전파가 
원활히 되는 것만은 아니니 세상 속에다 교회를 처박는 유인술이기도. 
의회민주주의의 산실이라는 위명을 날리던 영국도
오늘날 차별금지법으로써 악명 높은 마귀의 앞잡이 아닌가.
오직 교회의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대처에 좌우되는 것. 






인간(아담)의 범죄로 "6일" 창조가 폐함으로써 새 창조는 역순으로 맨 나중이 맨처음의 인간 창조(다시 남) 후 맨 나중이 "새 하늘과 새 땅"




망하는 세상과 망하지 않는 세상과의 짝이다.
망하는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망하는 세상과 
불살라짐으로써 망하는 세상으로 대칭이다(벧후 3:6,7)
둘 다 역시 "하나님의 말씀"(:5,7)으로 되는 것이다.
이로써 베드로는 "6일 창조" 이전의 "창조"를 밝혔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모든 창조 과정의 중간에 위치한다.
불로 망할 세상에서 사람 창조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그 마지막에 해당되는 기간 중에 있는 것이다. 
물로써 망하는 세상은 한 "그룹"의 범죄로 그리 되었고
불로 망하는 세상은 아담의 범죄로 그리 된 것이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6일 창조" 이전이 망하는 세계,
그 이후가 망하지 않는 세계로 양분되는 것으로 그쳤을 것.

아담의 범죄 후 죽음이 소위 "영적 죽음"이었다면
이런 큰 변동의 시발점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왜냐면 "영적"이니까 영적으로 해결하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상과 같은 대변동은 영적일 수가 없으니
죽지 않고 영생하고 있어야 할 아담이 죽는 자가 되었기 때문. 
영혼은 남고 육체는 썩어 없어지니 이런 혼돈, 혼란이 또 없다.
그래서 새로 창조를 하시게 된 것이니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





2020년 6월 12일 금요일

맹자, 순자가 성선설, 성악설이라는 각기 상반된 주장을 펴고 끝까지 자기 지론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는 명백하다


맹자나 순자 모두 <성경적 사실>에 기반을 두었기 때문이다.
한반도 교회가 마지막 복음 전파의 선봉/선두에 서려면
거대한 인구의 중국 공략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노자, 맹자, 순자 등을 적극 활용해야.















사정이 여의치 읺습니다.

 방해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현재 몇 자 적을 수는 있습니다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