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을 듣고 연단을 받으며 정결케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이 다 어디로 갔느냐 하면 스데반과 같은 순교자의 길을 걷게 되므로 살아 남은 자가 극소수일 뿐이라는 뜻입니다.
바울 사도가 "우리 살아 남은 자가 공중에서 주님읊 영접할 것이라"(살전 4.17) 했으니, 적그리스도로 인한 세계적 대박해 중에도 생존자가 있을 것은 명백하나 극소수일 것입니다. 이 주님 재림 때, 죽은 자들(핍박 받은 결과로써)이 먼저 부활하면서 동시에 땅 위의 그 소수가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가는데 이것이 "휴거"입니다.
소위 "환란(적그리스도로 인한) 전에 휴거된다"는 사치스러운 생각(성경에 전혀 그런 언급이 없고 바벨론 신학의 조작일 뿐ㅡ살전 4.17은 그런 의미와는 전적으로 무관)은, 바벨론 신학에 물든 오늘날 자아중심의 절대 다수에게만 통하는 미신이요 자기 기만입니다. 지금은 순교의 일사/一死 각오로 주님의 일에 충성해야 하는 때입니다.
계시록에 나오는 "14만4천"(계 14.1)이 "천사의 복음" 기간에 연단된 이들입니다. 이 기간이 끝나면 적그리스도의 등장과 함께 대대적인 박해가 일어남과 동시, 바벨론 심판의 각종 "재앙"들로 연이어지고 드디어 주님의 재림입니다. 바벨론 신학자들은 이제는 복음이 다 전파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으나 실상은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천사의 복음"(계 14.6)이 전파되는 시기인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서 "교회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우리 육체에 채우지"(골1.24) 않는 한, 우리는 하나님중심(상대방중심)이 아니라 자아중심일 따름입니다.
우리가 세상의 "죽은 자들"에게 생명의 복음은 전파한다지만(눅 9.60), "손에 쟁기를 잡고도 여전히 뒤를 돌아본다면"(눅 9.62) "아버지의 뜻을 행치 않은"(마 7.21) 까닭에 천국 차단이 될 것입니다("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갈 것>이다" ㅡ마 7.21).
우리가 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된다는 것은 주님과 "하나"(요 10.30) 즉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함인데 이 하나됨은 한 몸됨에서 "남자의 몸은 여자의 것, 여자의 몸은 남자의 것이 됨"(7.4)과 똑같은 이치로 상대방중심으로써 전적으로 하나님을 위하는 삶/생명이기에 그러합니다. 주님의 삶/생명은 오직 나를 위하심으로서 '서로 맞바꿈'이고, 이는 그 십자가 죽으심의 사랑으로 확증되신 바로서 모든 일의 기준이 되십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