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마지막 때 "내 백성아, 거기서(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 하시는 하나님 경고를 듣고 탈출하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슬픈 사실은, 혹자가 구원 얻는 자가 적는지 여쭈었을 때 대답하신 경계의 말씀 즉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려고 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3,24)에서 충분히 확인됩니다. "<들어가기 원해도 못하는> 판이니 가히 알 만합니다.
또 하나, "힘쓰라"고 하신 대목에 유의해야 합니다. 얼핏 알기로 우리 구원은 새 창조요 다시 남("거듭 남")이므로 우리 피조물로서는 그저 수동적으로 받기만 하면 되는(영생하는) 것으로 인식하기 쉬우나 역사적 실례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이 왜 범죄하여 이토록 엄청난 비극을 인류에게 끼쳤나요? 하나님 창조에는 없었던 죽음인데 아담이야말로 죽음을(자기 범죄로써) 불러들인 원흉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름다우신 창조를 헛되이 돌리는 엄청난 짓을 저지른 것입니다.
왜 또 용(사탄)은 범죄로 전인류에게 해악만을 끼치는 악마가 되었나요? 왜 인류에게 원수가 되었던가요?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다"(요일 3.8)고 할 정도이니 그는 "처음부터 범죄함"(:8)한 자라 그렇습니다. 때문에 모든 범죄자에게 "아비(father)"(요 8.44ㅡ"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따라] 행한다")가 되는 것입니다. 그 원조/元祖(조상)가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든 처음 저지르니 범죄(죄)의 아비, "거짓의 아비"(:8)가 되기도 합니다. 비단 이들뿐 아니라 누구나 그와 같이 악과 죄의 본보기가 되어 악한 영향을 끼치는 당사자가 될 수 있능 것입니다. 반면 선(goodness)과 의(righteousness)를 힘쓰는 자도 있게 마련이니 주님께서 "힘쓰라" 하심이 바로 이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심을 일단 받아 피조물이 되었으니 그 다음부터는 피조물 자신에게 모든 것이 달린 것이라 그 자신이 좌우하게 되어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기계적인 자연계 생물과는 반대로 인간, 영물과 같은 영적 존재는 자기 운명의 자기 결정자입니다.
단 이 "운명"이란 것은 <영원한 생사>에 관한 것이고 그렇지 않은 그 외의 것은 자기 결정권이 없으며 창조주 소속이니 이는 '창조 질서' 차원이기에 그러합니다. 3운법칙(fashomo: FAS, divine law; HOMO, Homo sapiens)과 같은 것이 그 예. 그러나 영원 운명으로서의 삶과 죽음 문제는 전적으로 당사자(피조물) 책임이니, 단지 창조주 하나님으로서는 이를 미리 아신다(보신다) 그리고 이에 따른 적절한 조처(예를 들어 미리 정하심, 택하심 등) 정도를 취하시는 것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그러니 더 긴 설명 필요 없이 사람되어 오신 성자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 가까이 오시어 "성을 보시고 <우시며> "너도 오늘날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면 좋을 뻔하였거니와...날이 이르면 네 원수들이...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할 것이니...이는 권고 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라"(눅 19.41-44) 하신 것을 보면 충분히 이해되는 일입니다. <이 경우 하나님도 속수무책이시라 "우셨던"> 것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도 두 손 놓으실 수밖에 없으시다니!
고로 주님 친히 말씀하신 대로 각자 스스로 "힘쓰는" 것 외 달리 무엇을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빌 2.12) 것 외에는 없습니다. 항상 이런 절박한 상황인지라 성령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친히 간구하심"(8.26-28)이라 했습니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라"(:27).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28).
주안점은 "하나님 사랑함"에 있습니다. 제발 "<힘씁시다>", "하나님을 사랑합시다", "하나님 사랑하기를 힘씁시다". "사랑에 무슨 '힘씀'이 있느냐, 마음에 우러나는 대로 하는 자연스러운 감정인데" 하겠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그 사람의 마음을 사려 하면 공을 들여야 하고 때로는 무진 공을 들여야 할 경우도 있습니다. 사랑이 이루어져 부부가 되었어도 노력 없이 되는 일이 거의 없습니다. 작은 노력이라도 그것을 게을리 할 때 큰 화를 불러 올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답답한 시기는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기도해야,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는 때입니다. 주님처럼 "말할 수 없는 탄식(신음)으로 간구해야" 합니다.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에 의한 분탕질로 사탄은 이 "힘쓰는" 것을 거의 모든 교회에서 제거해버린 꼴이 되었습니다. 주님 말씀대로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는 것입니다. 악한 사탄 일당들이 천하를 주름잡고 있어 방해와 장애, 위협이 등등한 판에 생명의 영생문이 누구나 들어가지개 넓을 리가 만무합니다. 그럼에도, 들어가야 한다는 의지력도 없어요. 그저 "믿기만 하면 다 되는 영생/구원"이라는 사탄의 거짓말에 세뇌되어 태평 일색입니다. 그런 것이 "믿음"일 리 없건만 이를 모르고, 믿음에는 반드시 순종이 따라야 하는데 그것이 믿음의 증거인데도 상식인데도 이를 무시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라 하나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요일 3.8). "마귀 일"은 죄 짓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 함"이라 하지 않았으니 "구원 받음"과 "죄 짓지 않는 눙력 받음"을 동일시하기 때문입니다. 여전히 "죄 지음"은 여전히 "구원되지 않음"의 확실한 증거입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성령 모심을 가리킴>이요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기 때문이다"(:9).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남이니 무릇 의(사악함, 부정, 불법, 불의가 아닌 올바름, 정의)를 행치 않는 자나 그 형제를 사랑치 않는(사랑이 없음은 상대방중심이 아닌 자아중심임을 뜻하니까)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않다"(:10).
이로써 구원되었는지 여부의 자가 진단법이 확실히 밝혀진 것입니다. 성경 곧 하나님 말씀을 스스로 가까이하여 성령의 계시로써 배우려 하지 않고 무조건 "교회", "목사 설교", 전통적인 "신학" 일변도로 나가는 사람마다 오늘날까지 "바벨론"의 좋은 먹잇감만 되어 준 것뿐입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 사도가 복음을 처음 세상에 전파할 때부터도 "말씀 혼잡"(고후 2.17/4.2)은 이미 교회 내에서 득세했습니다. 사탄 일당들의 이 세상 지배에 대한 거의 가시적/可視的인 증거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이상히 여긴다"(갈 1.6)고 바울 사도 자신도 놀라마지 않았던 것이니 하물며 오늘날이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