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2일 목요일

만인간 중에서 가장 사랑스러우시고 아름다우신 단 한 분

성경에 "아가(雅歌)서/Song of Songs"가 있는데 남녀 사랑의 연가에 속하나 "마지막 아담"과 그 교회를 상징함입니다. 유대인의 구약성경인데 무슨 그런 의미이냐 하겠지만, 신구약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하나님의 영으로 감리 감독된 내용이므로 장차 오실 메시야(사람)와 교회 즉 "신랑과 신부"(계 18.23/21.2 9)로서의 관계를 상징함이라는 당연 결론입니다.

사람이심을 강조한다고 그것을 굳이 인간의 남녀 관련이라 오해하는 것 역시 금물입니다.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눅 20.35) 하신 대로 신령한 몸은 성별도 물론 없으니까. 모두가 여성미와 남성미를 두루 갖춘 호화 찬란한 신령한 모습이며 초능력으로 얼마든 서로를 식별하는 것입니다. 아담 범죄로 신령한 몸을 상실하기 전에는 자식 샹산도 초능력으로 진행되는 것이었으나 범죄 후 동물성 육체로 전락하면서 짐승의 암수 교합과 똑같은 양상이 되어버린 것.

따라서 아담 후대들은 남녀 성별도 없었고 아담 부부만 그런 유사한 모양새였을 뿐으로 오늘날과 같은 동물적 육체 속성은 아니었다는 것이, "내가 네게 잉태하는 고통을 크게 더할 것이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창 3.16)이라 하신 말씀에서 확인됩니다. 현재의 인간의 식욕, 성욕, 수면욕 등 단순 욕구는 동물성 육체가 되면서 생긴 것으로 신령한 몸일 때의 무궁무진한 다양성의 쾌락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너무나 단조한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니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한다"(고후 5.16)고 했습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육체"는 그 의미가 성별 관련일 수밖에 없습니다. "죄의 몸"(롬 6.6)됨도 가리킴이라 혹자 말할 수 있겠으나 주님도 "육체대로 알았다"는 대목이 있으므로 주님은 우리와 달리 성령이셨기에(인간의 영이 아닌) 우리의 죄 짓는 육체와는 처음부터 구별되십니다. 죄를 짓지 않으셨다고 또한 선언하셨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우리가 이제 "다시 새로 창조되어" 있음에 바울 사도가 역점을 두고 있음에서도 그러합니다. <아담이 애초 창조되었을 때 신령한 몸이었기> 때문입니다. 바율 사도의 이같은 관점을 따를 때 댜대적 인식 변화가 불가피해집니다. 즉 아직도 우리는 낮은 몸, 육의 몸에 속해 있어 영광의 몸, 신령한 몸이 아니지만, 나와 남을 막론하고 인식만큼은 후자 쪽으로만 고정시키자는 것입니다. 물론 여기에 논리적으로 하자는 없습니다.

메사야 예수 우리 주님께 대한 인식도 더 이상 복음서 기록에서 연상되는 육체대로의 그런 자연계 물질적 형상의 모습이 아니신, 바울(당시는 사울)이 직접 뵈웠던 "정오의 태양보다 더 강도 높은" 찬란한 광채의 "영광의 몸"으로서의 모습이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의 상상력에도 지금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인식의 변화만은 그다지 어려운 일은 어닙니다. 특별히 우리 믿음의 식구들 상호간 인식에서 그러하다고 봅니다.

신령한 몸에는 현란한 광채뿐만 아니라 늙음이 없어 모두가 새파란 이팔청춘들뿐입니다. 늙음은 한낱 죽음의 전조/前兆에 불과합니다. 성부 하나님의 모습을 호호백발 노인으로 표현해 놓는 것은 성경적 무지의 극치라 핳 수 있습니다. 종전의 인식을 모두 바꾸어야 합니다. 사실대로 인삭하는 것은 훌륭한 작업입니다. 타당성이 충분합니다. 우리의 새 창조에 대한 이러한 정당한 인식은 실로 획기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실생활에서도 감지될 수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비극적이고 비정상인 현재의 우리의 현실에 대한 과감한 치료책의 역할일 수도 있습니다.

더욱 핵심적인 것이 주님과 나와의 실질적 관계입니다. 다른 어느 누구와도 아닌 꼭 나와만 관계하시어 함께 계셔 주시는 그런 똑같은 의미로 모든 사람에게 그러하심이 성령으로 계시고 역사하심의 의미인 것입니다("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保惠師/Comforter)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낼 것이니"ㅡ요 16.7). 위의 설명과 같은 성령으로 한 날 한 시 세계 방방곡곡 각 사람과 함께 계시는(왜냐면 만유 안에, 만유를 관통해, 만유 위에 계시는 만유 충만의 하나님이시므로) <사람>이신 메시야 예수("구원자"라는 의미) 내 주님이신 것입니다. 남녀 성별에는 전혀 해당하시지 않지만(지금까지의 설명대로) 오히려 더욱 더 하신 사랑의 상대/대상이시요 주인공이신 것입니다. 지구상 어느 누구보다 내게 가까우신 존재가 주님이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모짜르트와 베토벤의 사랑의 연가를 올리니 주님(사람 창조 이후 가장 사랑스러우시고 가장 아름다우신 오직 한 분 그리고 사람이신 이 성자 하나님께서는 바로 성부 하나님의 모습ㅡ"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ㅡ요 14.9)께 불러 드리는("너희의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ㅡ엡 5. .19) 노래로 각자 그 가사에다 우리말을 지어내어 붙여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일반 찬송가와는 또다른 정서에서ㅡ).



프리츠 분들리히
모짜르트의 요술피리에서
https://youtu.be/uVb12RXmM0M?si=wJwqAxdSbdOqLA0y

베토벤의 사랑의 노래, Ich liebe dich,
Tenor - Peter Schreier
Piano - Norman Shetler
https://youtu.be/YXtbCEnIF-0?si=HGKb7h2jkHDQ9cX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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