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5일 일요일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KJV)

지금까지 사탄은 두 가지 거짓말로 세상을 지배해 왔으니 무신론이요 그리고 반성경적 "바벨론 신학". "쳔사가 가진 복음"(계 14.6)이 오늘날 이 둘을 명확히 상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지으신 만물을 뻔히 보면서도 하나님 없다는 선동에 넘어가는 "미친 마음"(전도서 9.3)들은 악령들의 부추김이 없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 하나님 창조의 순수성 즉 인간이 신령한 몸 그대로였다면 이런 사단/事端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 아담 범죄로 인류가 갑자기 동물적 육체가 되면서 일어나는 불상사. 이런 것이 소위 말하는 "세상 지배"입니다. 온통 악령들의 난장판. 사탄의 오늘날 득세는 아담이 (그 범죄로) 사탄의 거짓말을 하나님 말씀보다 더 따른 결과이기(눅 4.6) 때문입니다.


이를 깨뜨리기 위한 천사들의 주전략 중 하나가 "3위1체". 즉 만유의 기본 대법칙(만유의 창조와 운영의 대원리)을 이 마지막 때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일은 하나님 친히 무엇을 하심이 아니라 하나님 뜻을 따라 그 피조물들이 하나님 이름으로 하는 모든 것을 말함인 것). 하나님의 계시는 모습 즉 성부와 성자께서 짝(낳으신 이 곧 파생/派生하신 이와 낳아지신/낳음을 입으신 곧 파생되신 이로서의 상반/相反성)을 이루심으로 "하나"(요 10.30)가 되어 계심 그대로를 기반으로 하여 하나 밖에 없는 <만유의 법칙>으로 정하신 것입니다.

"3위1체 하나님"이시라 함도 이 때문. 따라서 사탄이 이 중요 사실을 지금까지 막아 온 것도 당연합니다. 때문에 이 3위1체를 정확히 아는 자가 없었던 것도 어찌 보면 무리가 아닙니다. 사탄이 한사코 막아 왔으니까. 신학적 용어로서의 3위1체"는 알려진 지 오래이나("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ㅡ마 28.19), 정작 어떻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신지 설명할 재주가 없었던 것. 사탄이 철통 같이 막고 있었으니까. 3위1체야말로 하나님의 실존은 물론 모든 성경 이해의 기본 틀이 되니까.

하늘의 전쟁에서(계 11.19) 천사의 군세/軍勢가 사탄 일당을 제압함으로써 "천사의 복음"(24 6)이 등장하여 숨통이 트이기 시작하자 이제 겨우 3위1체가 알려지기 시작하는 오늘의 시점입니다. 이와 더불어 세상에 그 빛(가치)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 있는데 다름아닌 노자요 그 도덕경입니다. 노자와 도덕경은 실제 성경과는 아무 상관도 없고 성경 어디에도 일언반구의 힌트도 없습니다. 그런데 3위1체를 설명하다니! 성경이야 3위1체와 관련된 숱한 암시를 주고 있는 유일한 기록물임은 누구나 아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니까!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새삼스레 오늘날 노자의 도덕경이 3위1체와 관련해 갑자기 조명/각광을 받는 것은 3위1체와 관련된 가장 과학적 서술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일은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이 아니면서도 성경적인 심오한 풀이를 내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멜기세덱과 관련지어 노자를(여러 정황을 참작해) 제사장 멜기세덱의 <한 때 변신>이라 보는 것입니다. 멜기세덱은 이미 해설한 바 있지만 부활한 아담의 변신 곧 아담 본인인 것입니다(히 7.3). 그러나 더 이상 "아담"으로 호칭되지 않는 것은 역사상 "아담"은 죽어 사라졌고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그를 대신하여 이제는 "머지막 아담"께서 엄존해 계심입니다. 이와 비슷하게 신령한 몸으로 살아생전에 변환한 예로는 에녹과 엘리야가 있고 모세도 여기 포함된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입니다. 주님께서 신령한 몸으로 변형되실 때 엘리야와 함께 나타났으니까(마 17.4).

그런데 성경을 감리/감독하시는 성령께서 에녹과 엘리야의 극적 사실은 알리시면서도 모세 관련해서는 일절 언급이 없으신 것은, 에녹과 엘리야는 그 신령한 몸으로서의 변환에 중대한 함의가 있기 때문임을 전에도 설명한 바 있습니다. 다시 말해 애초 하나님께서 인간(아담)을 신령한 몸으로 즉 영생하는 존재로 창조하셨다는 사실에 있고 이를 모든 인생들에게 상기시킴이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이 930세에(이 아담의 나이는 아담이 신령한 몸을 박탈 당한 후 지상으로 영구 추방된 순간부터 세어진 햇수이고 그 이전 에덴에 있던 당시의 기간은 합산되지 않은 것) 죽은 지 얼마 안되어 <인류사상 두 번째로> 세상을 하직한 인물이 됨으로써 둘의 직전 비교(대조/對照)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즉 에녹이 신령한 몸으로 변환된 것은 <아담의 죽음>이 비정상임을 알리심 다시 말해 애초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음을 하나님이 온 세상에 강조하심이었고, 엘리야의 경우 역시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의 탄생>과의 관련이니, 단지 에녹과의 차이는 예수님 탄생 직전의 세례 요한의 등장을 엘리야(이미 세상에 나와 역사 속 인물로 사라진)의 대리/代理 출현으로 정하셨다는 것.

그 의미는 무엇이냐. 예수님은 비록 죽으시나 곧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심에 초점이 맞추어져 이해되도록 하심이었던 것. 다시 말해 "첫 사람 아담"과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명백한 대칭성에서 전자는 정상에서 비정상으로의 전락이나 후자는 반대로 비정상에서 정상에로의 복귀인 까닭. 따라서 여기서의 주안점은 전자의 동물적 육체가 아담 본인의 범죄로 인한 결말임을 강력히 적시함에 있는 것입니다.

노자를 멜기세덱의 "일시 변신"이라 함은 그 도덕경의 놀라운 내용 즉 "3위1체"의 의미를 완전히 꿰뚫는 그 초강력 설파/說破에 이유가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역사/役事>가 아니고는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노자 도덕경이 그런가 하면 동양 철학의 진수라고 할 노자 도덕경 그 중에서도 핵심부라 할 42장 25어/"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가 그러한 것입니다. 이미 여러 번 언급했지만, 그 후반부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를 지금까지 사람들은 "만물은 음을 등에 업고 양을 가슴에 안아, 그 빈 기운(충기)으로써 조화를 이룬다"로 풀이했지만, 이렇게 되면 음과 양의 상반성/相反性을 나타내려고 한 노자의 의도와는 전연 상관 없는 의미가 되어버립니다. "만물이란 것은, 음은(음이) 업은 것이고 양은(양이) 안은 것(모습/구조)"이라고 고쳐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또 이러한 상반된 둘의 성격을 상보성/相補性으로 설명하면, "음으로 보면 양을 업고 있으며 양으로 보면 음을 안고 있어 혼연 일체다"가 됩니다. 음으로 보든 양으로 보든 둘 중 하나로만 말할 수 있지 전혀 별다른 둘의 상황을 동시에 말하지 못하는 법이기에, 이는 미시세계 실험에서(입자성과 파동성의 2중성) 반드시 어느 하나로만 관찰되는 것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이 모두 성경에서 밝히고 있는 "3위1체"를 웅변하는 것입니다. 노자가 말한 대로의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을 그대로 설명함입니다.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을 다시 해설하면 이렇습니다. 왜 이 대목을 <3위1체를 가장 반듯하게 밝히는 것>으로 보는가 하는 바로 그 이유입니다. 서두에서 지적했듯이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과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하는 획기적인 것으로 "3위1체'를 지목하는 까닭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앞의 道生一, 뒤의 三生萬物을 주목하시기를. 道生一에서 괄목할 만한 사실은 지금까지 하고많은 사람들의 눈길이 스쳐갔지만 그 한결같은 소리가 "여기서의 道의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 道가 무엇이냐?", " 道가 무엇을 나타내느냐?".

道가 난해한 것으로 보이는 것은 이 대목을 읽을 줄을 모른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즉 一, 二, 三 연속으로 나가는 숫자 1, 2, 3은 창조의 단계 혹은 변천해 가는 과정을 상징함인데 이를 간과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三"으로서(써) 뚝 그쳐버립니다. "生/생"은 "생성시키다", "낳다", "~가 되다"의 뜻입니다. 그렇다면 창조가 道에서 시작되었다는 말이니 道는 창조의 주체 즉 창조주 하나님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 말해 창조 전의 하나님, 피조물 없이 홀로 계시던 때의 "하나님이라는 실존"의 뜻이 됩니다. 하나님을 "창조 이전의 하나님"과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성격이 전혀 다른 개념으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 실로 참신한 발상입니다.

바꾸어 말해, 노자가 하나님의 존재를 확신하지 않는다면 이런 표현이 과연 가능할까요? 그냥 막연하게 추상적으로만 인지하는 정도라면 그 누구도 이런 식으로 말할 사람이 천하에 아무도 없습니다. 그냥 막연하게 알고 있으니 막연한 말로써만 그쳤을 것입니다. 따라서, 노자는 자기의 확고한 신념으로 하나님의 실재/實在를 단 세 마디 道生一로써 설파한 것입니다. 이것,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이렇게 싑게 표현하지 못합니다. 특별히 확신할 확고부동의 근거 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1만 마디의 유신론을 단 3 마디로 처리할 능력도 엄두도 확고한 근거 없이는 나지 않는 법입니다.

고로 이런 사람의 나머지 말은 신뢰할 수밖에 없 다는 결론으로 기울여지게 마련입니다. 태산과 같은 그 위압감에서 도무지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연이어 나오는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도 마찬가지.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셋이 되고, 이 셋으로써 만유가 존재하고 움직인다"이니, 마치 성경이 주장하는 바 그대로를 아니, 성경 자체를("3위1체"에 관한 한) 옮겨 놓은 듯합니다. 즉 창조를 시작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창조의 시발점/始發點으로 "독생자를 낳으셨다"입니다. 그리하여, "둘로서의 짝을 이루셨다"까지로 진전합니다. 왜냐면 곧이어 나오는 것이 "二生三"이기 때문입니다.

"二生三"은 무엇이냐. "짝을 이룬 <둘('갑'과 '을'의 상반/相反성)>은 반드시 <하나(이 둘이 연합하여 '병'으로서의 상보/相補성>로서 존재하고 움직인다" 즉 단도직입으로 "3위1체"라는 결론에 당도해버린 것입니다. "이 '3위1체'야말로 만유를 유지시키고 동력화/動力化하는 근본 원리이다"가 "三生萬物"입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이 성자 하나님을 낳으심으로 짝을 이루시어 둘이 아닌 하나(요 10.30)로 계시니 "3위1체"를 구성하심이고, 바로 이 "3위1체"로써 만유의 기본 대원리로 정하셨다는 <성경적 선언> 그대로를 노자의 도덕경이 아주 유효적절하게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이 "3위1체"가 "천사의 복음" 전파의 강력한 배경("천사가 가진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입증해 주는 그리고 그 근거가 되는)으로 작용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의 하나입니다. 그 중 하나가 이 노자 도덕경임이 이제 드러난 것입니다. 처음부터 이런 사실을 성경이 직접 전하는 것이었다면 "21세기 표적과 기사"에 포함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빙 둘러 우회적으로 미리 준비해 두심으로써 <하나님의 실존>과 <성경의 진실성>을 극대화시키신 것입니다.

노자 도덕경의 이 42장 25언이 3운법칙과 3위1체 법칙의 상호 검증이 알려지는 이 시점에 세상에 소개됨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것입니다. 양자역학/상보성 원리의 등장과도 시의적으로 아주 적절히 맞물리고, 성경의 20세기 이후 예언인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신속히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이다"(단 12.4) 및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7/계 12.14)와도 정확히 겹쳐집니다.

"간수하고 봉함한다"는 것은 예언이 성취되는 바로 그 시점에 이르러서야 그 예언의 의미를 완전히 음미한다는 뜻이니 이상 다니엘의 예언이 그러합니다. 더군다나 다니엘의 예언에는 특이하게 구체적으로 천사의 등장을 적시합니다. 천사가 미래사를 알려 준 것으로 명시했습니다. 이는 이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과 여축없이 맞아떨어집니다. 이제 우리 모두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알 것은 다 알게 되었습니다. 믿을 것은 다 믿을 수 있도록 충분한 근거를 확보하게 해 주셨습니다.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기도와 말씀 봉사에 총력을 집중하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이를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알게 합시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다"(KJV)

지금까지 사탄은 두 가지 거짓말로 세상을 지배해 왔으니 무신론이요 그리고 반성경적 "바벨론 신학". "쳔사가 가진 복음"(계 14.6)이 오늘날 이 둘을 명확히 상대하고 있습 니다. 하나님 지으신 만물을 뻔히 보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