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3일 토요일

"나를 따르라"(요 12.26)ㅡ필승 강군의 특징은 지휘관의 진두 지휘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감)"(골 2.22). 부패로 결국 돌아가는 것은 무조건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것. 즉 동물성 육체와 관련되는 일체의 것 그리고 사탄의 지배권 아래 예속된 이 세상 자체.

영원한 영혼답게 육체도 영원한 것이어야 제격인 것이 인간 속성인데도, 영혼은 영원하고, 그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육체는 부패하여 사라져버리는 것이고ㅡ"이건 무슨 코미디(단지 <웃길> 목적으로 <유머>에 중점을 두는 일체의 것)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고, 이거 대체 뭐야?", 사람마다 이렇게 말하도록 만든다면 하아ㅡ이런 신성모독도 없다.

창조주를 아주 우습게 보는 결과를 낳기에 따라서 무신론, 진화론 등 어처구니없는 궤변들을 뱉아놓기에 딱인 바탕인지라 사탄이 낄낄대며 "영적 죽음"이란 말을 일부러 만들어 낸 줄은 모르고, 어리석디어리석은 인생들은 이 불경스러운 언사들을 무작정 따라 하기에만 바빴던, <맹랑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고, 깜찍하고 당돌하고, 허망한> 바벨론 신학의 그동안의 행패였었다.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에 눈 뜬 이라면 모름지기 각성하여 사탄의 이 패악질에 한 순간이라도 가담치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만을 전달해야. 인간을 영생하는 자로 만드시어 신령한 몸으로 공중이든 해중/海中이든 자유자재로 번개처럼 내왕할 수 있게 하셨으나, 첫 사람 아담이 수하/手下 영물의 거짓말에 휘말려 그 엉큼한 계략에 넘어가 본디의 위계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사탄의 발 아래 기어 들어간 오늘날 만고에 없는 수치스러운 망동이 연출된 것이다.

내 영혼아, 진실을 전하라! 원수의 일방적 행패질에 아랑곳 말고 진리만을 외쳐라. 그러다가 죽으면 죽는 것이다. "죽는 것도 유익*(빌 1.21)이 여기 해당한다. 죽음의 각오 없이 전사/戰士되는 법이 없다.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바울을 위시해 초대교회 사도들은 죽기를 한하고 복음 전파자의 사명울 다한 본보기다. 우리의 사령관("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a Leader and Commander, KJV]를 삼았으니"ㅡ이사야 55.4)이신 주님의 독전/督戰 호령도 똑같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고후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4,25).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그(사탄)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계 12.24,25).

영적 전쟁은 혈과 육으로써의 전쟁처럼 일진일퇴의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초반전'과 '후반전' 두 갈래로써만 나누어진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seed, 씨)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창 3.15)이라 하심 그대로다.

즉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이 먼저이고 "머리를 상하게 함"이 나중인데 이 <나중>이야말로 종결인 것이다. 다시 말해 뱀에게 발꿈치가 물리는 고통이 온 다음에 그 머리를 으깨어버리는 순서다. 따라서 이 전쟁에서 필히 요구되는 것이 오래 참음, 견딤, 인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눅 21.19) 하셨으니 즉 인내가 없이는 구원이 성사되지 못함을 단언하심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주입시켜 온 것이 바벨론 신학의 허망함인 것이다. 성령께서는 오늘날 환난 중의 북한교회를 통하여 이상 말씀을 확증하시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써 결실하는> 자이다"(눅 8.1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다"(롬 15.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競走를 경주하며"(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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