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이 모든 것은 쓰는 대로 부패에 돌아감)"(골 2.22). 부패로 결국 돌아가는 것은 무조건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는 것. 즉 동물성 육체와 관련되는 일체의 것 그리고 사탄의 지배권 아래 예속된 이 세상 자체.
영원한 영혼답게 육체도 영원한 것이어야 제격인 것이 인간 속성인데도, 영혼은 영원하고, 그 영혼을 담고 있는 그릇으로서의 육체는 부패하여 사라져버리는 것이고ㅡ"이건 무슨 코미디(단지 <웃길> 목적으로 <유머>에 중점을 두는 일체의 것)도 아니고 장난도 아니고, 이거 대체 뭐야?", 사람마다 이렇게 말하도록 만든다면 하아ㅡ이런 신성모독도 없다.
창조주를 아주 우습게 보는 결과를 낳기에 따라서 무신론, 진화론 등 어처구니없는 궤변들을 뱉아놓기에 딱인 바탕인지라 사탄이 낄낄대며 "영적 죽음"이란 말을 일부러 만들어 낸 줄은 모르고, 어리석디어리석은 인생들은 이 불경스러운 언사들을 무작정 따라 하기에만 바빴던, <맹랑하고, 이치에도 맞지 않고, 깜찍하고 당돌하고, 허망한> 바벨론 신학의 그동안의 행패였었다.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에 눈 뜬 이라면 모름지기 각성하여 사탄의 이 패악질에 한 순간이라도 가담치 말고 오직 하나님의 진실된 말씀만을 전달해야. 인간을 영생하는 자로 만드시어 신령한 몸으로 공중이든 해중/海中이든 자유자재로 번개처럼 내왕할 수 있게 하셨으나, 첫 사람 아담이 수하/手下 영물의 거짓말에 휘말려 그 엉큼한 계략에 넘어가 본디의 위계 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사탄의 발 아래 기어 들어간 오늘날 만고에 없는 수치스러운 망동이 연출된 것이다.
내 영혼아, 진실을 전하라! 원수의 일방적 행패질에 아랑곳 말고 진리만을 외쳐라. 그러다가 죽으면 죽는 것이다. "죽는 것도 유익*(빌 1.21)이 여기 해당한다. 죽음의 각오 없이 전사/戰士되는 법이 없다. "사즉생 생즉사/死則生 生則死(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바울을 위시해 초대교회 사도들은 죽기를 한하고 복음 전파자의 사명울 다한 본보기다. 우리의 사령관("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a Leader and Commander, KJV]를 삼았으니"ㅡ이사야 55.4)이신 주님의 독전/督戰 호령도 똑같다. "형제들아, 우리가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치 아니하니 힘에 지나도록 심한 고생을 받아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고후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잃어버릴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하도록 보존하리라>"(요 12.24,25).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그(사탄)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다"(계 12.24,25).
영적 전쟁은 혈과 육으로써의 전쟁처럼 일진일퇴의 양상으로 전개되지 않는 것이 특색이다. '초반전'과 '후반전' 두 갈래로써만 나누어진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seed, 씨)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할 것이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창 3.15)이라 하심 그대로다.
즉 "발꿈치를 상하게" 하는 것이 먼저이고 "머리를 상하게 함"이 나중인데 이 <나중>이야말로 종결인 것이다. 다시 말해 뱀에게 발꿈치가 물리는 고통이 온 다음에 그 머리를 으깨어버리는 순서다. 따라서 이 전쟁에서 필히 요구되는 것이 오래 참음, 견딤, 인내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을 것이다"(눅 21.19) 하셨으니 즉 인내가 없이는 구원이 성사되지 못함을 단언하심이다.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안일한 생각만 주입시켜 온 것이 바벨론 신학의 허망함인 것이다. 성령께서는 오늘날 환난 중의 북한교회를 통하여 이상 말씀을 확증하시고 있는 것이니 우리가 마음에 깊이 아로새겨야.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켜 <인내로써 결실하는> 자이다"(눅 8.15).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다"(롬 15.4).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競走를 경주하며"(히 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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