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창피스럽기 그지없는 동물성 육체가 되어버린 비극의 주인공 인생들을 장악하여 멸망 길로 끌어들이기에 광분하는 사탄 왕국(악령들의 징글징글한 씨앗들인 "네피림"이라는 별개 인종들이 설쳐대는)인 <백해무익>의 현세상임을 우리 마음에 아로새기어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씨름을 하십시다. 메시야 예수 우리 주님(아담 즉 "마지막 아담") 재림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살 만한 인간 세상, 세상다운 세상으로 회복됩니다. 하나님 은혜로 새로 지으심 받아 다시 나서 새 피조물된 우리는 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 항상 의식하는 중에서야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세뇌되어 왔으나 천만의 말씀! 신령한 몸의 초자연계적 작동(삶)에 비하면 아이들 소꿉 놀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림없는 <눈 속임>에 불과합니다. 실상대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악한 자" 적그리스도 출현을 위한(손쉬운 적그리스도 세계 통합을 꾀하는) 악령들의 짓거리의 일단일 뿐입니다.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런 비극적 동물성 육체는 여전히 그대로인데에 이보다 더한 "진보 발전"이 있은들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애초 창조의 초자연계적 "영광의 몸"(고전 15.44/빌 3.21)에 비하면 전적으로 무의미, 무가치 그 자체입니다. 초자연계 속성의 모든 아름다움과 그 경탄스러움은 아담 부부만이 체험한 것이라 우리야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니까 상상조차 못합니다. 이런 비참한 실태를 우리는 마음에 깊이 아로새김으로써 <천국에서의 탈락>을 한사코 면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하셨으니까. 세상에 연연하여 미련을 접지 못하는 사람마다 "어린 아이 같은 받듦"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으니까!
어린 아이는 다소곳이 그 원하는 하나에만 골똘히 집중하는 순수한 특성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생도 원하고, 세상에서 밑지지 않게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것도 원하는 <양다리 결치기>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천국"입니다.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마음이 갈라져 요동치는 것)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33-35).
이렇게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얍복강 가에서의 야곱의 "기도 씨름"이 불가능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말하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말하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습니다...그 사람이 망하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다...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창 32.24-30)는 뜻이었습니다.
기도는 "씨름"이요 따라서 "이기는 자"가 축복을 받아 기도 응답이 되는 것이니 실로 "결심하고 기도에 임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천사의 복음" 전파에서 이를 위하여 기도로써 씨름하시는 기도의 동역자 여러분이야말로, 이 <21세기 하나님 역사>에서의 주역들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이 세상은 나부터 화급히 구원 받았으면 다른 많은 이들도 화급히 구원 받아야 마땅하니까 달리 딴 것에 마음 둘 틈이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눅 9.62) 하심은 그런 자세의 사람들은 자아중심이므로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전제 조건은 "회개"("<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ㅡ막 1.15,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ㅡ행 3.19,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ㅡ행 26.20)이기에 자아중심을 버리는 것이니 그러한 회개의 결단은 주님과 하나됨으로써 자아중심의 "죄의 몸"(롬 6.6)이 "멸해지는"(:6) 것이 현실화함인데도 여전히 이전처럼 자아중심이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질 때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할 것이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림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들에게 나음은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응하였다"(벧후 2.20-22)가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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