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1월 2일 월요일
2026년 11월 1일 일요일
만인 상대의 성경은 추상적이고 애매모호한 내용 없어
"주님, 구원 얻는 자가 적습니까?"ㅡ"<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3 ,24).
앞서 올린 글을 다음과 같이 고칩니다.여기서 질문자가 알고자 한 것은 구원되는 자가 결과론적으로 "많으냐, 적으냐"입니다. 구원되기가 "어려우냐, 쉬우냐"가 아닙니다. 그리고 주님의 대답은 "좁은 문"이셨고 "힘쓰라"이셨습니다. 또 그런 문이기에 그리로 "들어가려 해도 못하는 자가 많다"이셨습니다. 그 이유로는, 문이 좁은데도 "들어가려는 <힘씀이 없다>"이셨던 것입니다. 여기서 핵심은, 성경 전체를 통해 주님의 모든 말씀은 막연하고 추상적인 내용이 아니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말씀이셨습니다. 이 대목 역시 그러하신 것은 "많은 사람이 넓은 길, 큰 문"을 선호하여 그리로 통행한다고 전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좁은 문, 좁은 길" 경계 말씀은 <세상>과 관련된 것이니 곧 "세상 사랑"(딤후 4.10/요일 2.15), 세상에서의 삶에 대한 미련, 집착인 것입니다.
고친, 앞서 올린 글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많은 사람이 영생하려 하나 결국 영생하지 못하는데, 이유는 <좁은 문>이라 들어가기가 워낙 수월치 않고 만만치 않아 인기가 없는데다(고로 "찾는 이가 적어"(마 7. 14) 죽자사자 힘써야 하는지라 그런 힘씀에 엄두를 내지 못하기 때문이며 엄두를 낸다 하더라도 중도에 포기하는 수가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주님의 말씀은 이상과 같이 풀이된다 해도 누가 무슨 말을 할까요? 절대로 지나친 말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ㅡ주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신 이상에는. 분명한 것은 구원 받았다는 단순한 사실 하나만으로는 우리 영생길이 자동적으로 단단히 다져져 있다는 믿음은 금물이요 하나님 세계에서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힘써야" 하고 힘쓰지 않으면 낙오됨을 이같이 명시하셨으니까!
2026년 10월 27일 화요일
2026년 10월 26일 월요일
2026년 10월 25일 일요일
2026년 10월 23일 금요일
이 세상은 아담 범죄로 즉 사고로 생긴 비정상적인 것이라 곧 없어지게 마련이니 연연하지 말아야
그림에서 보듯이 "마지막 때"인 이 21세기를 정확히 겨냥한 것이 "한 때, 두 때, 반 때"인데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한 때(1), 두 때(1×2), 반 때(1÷2)"로서의 "한 때(상보/相補), 두 때(상반/相反a), 반 때(상반/相反b)"임이 드러나 세잎클로버 형태의 도식/圖式을 분명히 형성한다고 하겠다. 이 도식이야말로 삼위일체, 상보성원리, 3운법칙에 모두 적용되는 것이라 할 것이다. 3운법칙이 특별히 그러하니 왜냐면 이 법칙의 짜임새(형태, 구조) 자체가 이를 빼닮아 있기 때문이다(그림). 신기하기 짝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일부러 이같이 짜맞추어 놓으셨다 해도 누가 무엇이라 하겠는가. 하나님의 손길이실진대는 분명 뜻이 있으시기 때문이니 다름아니라 이 3운법칙을 "21세기 하나님 증명/증거" 다시 말해 명실상부한 "21세기 표적과 기사"로 삼으심이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특별한 방법으로 나타내신다는 것은 오늘날 모든 사람이 현재 실상을 똑바로 깨달아 멸망치 않고 다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심이다(벧후 3.9). "바벨론"(계 18.4)으로부터 벗어나 "천사의 복음"(14.6)을 듣는 것이 오늘날 화급한 당면 과제이기 때 문이다. 하나님의 뜻 가운데에서 성경을 제대로 인식하여 현재의 진상을 똑바로 알고 진리를 깨달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사탄의 농락질에 얽매여 현금의 절박한 사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함은, "믿는다"고 하는 자들이나 그렇지 못한 자나 매일반이니, 이를 다른 말로 요약하건대 오늘날 왜 인간이 구원 받아야 하는지 그 까닭을 모르고 있다는 것. 단지 "멸망하지 않고 영생하겠다"는 막연한 본능적 욕구뿐이다. "멸망 않고 영생하겠다"ㅡ과연 그런가? 아니다. 그것은 정답이 아니다. 정답은, "아담 범죄로 모두 <죽은 자>가 되었은즉 <산 자>가 되고자 함"ㅡ 이것이다. 오늘까지 원수 사탄이 지어낸 맹랑한 거짓말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이 소위 "영적 죽음"이라는 해괴하기 짝이 없는 소위 "기독교 신학"의 조어/造語다. 성경 어디를 보아도 찾아볼 수 없는 전적으로 이질적 개념이다. 죽음이면 죽음 단 하나의 의미뿐이지 "영적"이란 수식어가 도대체 어디서부터 나온단 말인가! 아담의 죽음을 기독교 신학에서 영적 죽음이라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기독교 신학자들은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단순히 생물학적 생명의 마감을 넘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담의 죽음이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선악과를 먹으면 "반드시 죽으리라" 경고하셨으나, 아담이 육체적으로 즉시 죽지 않고 930세까지 살았기 때문미다. 이 간극을 그들은 '영적 죽음'으로 설명하고 있다. 그 "구체적이고 신학적인 이유"로그들은 다음 세 가지를 말한다.
● 1. 하나님과의 관계적 분리(생명의 근원으로부터의 단절)이니, 즉 기독교에서 영적 생명의 본질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에 있기 때문이라는 것. 죄를 지은 순간 아담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숨었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났다는 것. 그 즉각적인 결과로서의 육체적 죽음은 시간이 흘러 찾아왔지만, 하나님과의 영적 연결이 끊어지는 죽음은 죄를 지은 그 순간 즉시 일어났다는 것.
● 2. 죄의 보편성과 인류의 타락(원죄)이니 영적 상태의 유전이다. 즉 대표성의 원리에 따라 아담 한 사람의 영적 죽음은 그의 모든 후손(인류)에게 영향을 미쳤다. 즉 전적 타락인데 그 후손들은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과 단절된 영태, 즉 '영적으로 죽은 상태'로 태어나 스스로는 하나님을 찾거나 구원할 수 없는 영적 무능력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는 것.
● 3. 따라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필연성이 강조됨인데 재창조의 필요성이라는 것. 문제가 단순히 육체의 질병이나 수명의 한계가 아니라 '영적 죽음'이기 때문에, 구원 역시 단순한 육체적 치유를 넘어 영혼의 거듭남(새로운 피조물)이어야 한다는 것. 즉 그리스도의 대속으로서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단절되었던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영적으로 죽었던 인간을 다시 살리는(영생) 유일한 방법임을 역설하기 위해 아담의 영적 죽음을 강조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한 마디로, 위의 세 가지는 교묘한 "말씀 혼잡"(고후 2.17/4.2)이다. "영적 죽음"이라는 말로써 아담의 죽음(의 의미) 자체를 부정해버리는 사탄적 꼼수를 부림일 뿐이다. 다시 말해 처음부터 인간을 하나님이 죽는 존재로 만드셨다는 사탄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인 것이다. "처음부터"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이 능력 없으셔도 아니고 심술궂은 분이시라 그러하실 턱도 없다. 원래부터 거짓말은 이치에 맞는 말일 수가 없다. 사탄이 에덴에서 아담과 하와를 꾈 때, "인간이 혹 하나님처럼 될까 걱정이 되시어 되지 못하도록 하나님이 인간에게 거짓말을 하신 것"이라고 온통 되지도 않는 말을 나불거렸던 것과 같다. 이런 자가 인간 위에 올라 지금 인간을 주물럭거리고 있는 것은, 아담 스스로 하나님 말씀보다 사탄의 말을 더 믿고 그리하여 사탄을 추종한 결과로 빚어진 결과일 따름이다. 즉 아담의 죄의 결과라 그 형벌 차원에서 하나님도 이러한 결말을 유지하심이다. 고로 정상적인 새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성경에서 밝히는 대로 따라야. 즉 "영적 죽음"이 아니니 아담 범죄로 비로소 죽음이 온 것으로(롬 5.12) 범죄 전에는 죽는 몸이 아니었음을 알아야. 즉 죽지 않는 "신령한 몸"이었던 것이다. 바로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사탄은 이 핵심을 뭉개버렸다. 따라서 문제만 무성하게 남발되고 답은 원천 봉쇄된 것이다. 초점이 없다. 허공에 매양 떠다니는 구름 뭉치와 같았던 컷이다.
주님 말씀하시기를 "천국은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하는 것이 아니고 너희 안에 있다"(눅 17.21) 하신 그대로, 신령한 몸이 곧 천국이고(마 16.28/막 9.1) 그렇게 되는 방법은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내 안에 모심에 있다. 그래서 "천국은...너희 안에 있다" 하신 것. 다시 말해 지금은 정상의 몸이 아니니 아담 범죄로 "산 자"가 아닌 "죽은 자"가 돼 있기 때문이다. 산 자부터 되는 것이 급하고 유일한 관심사가 되어야 마땅하다. 이를 두고 주님께서 경고하시기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마 7.13 ,14) 하셨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눅 13.24)이라 하신 것이다. 즉 여기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씀"은 동믈적 육체의 이 세상 삶을 의식적으로 멀리함이다. 그러니 세상에서는 고달플 수밖에. 따라서 사람들은 이를 외면한다. 그러나 결말은 멸망이다. (고달파도 이 세상 잠시 한 때뿐인 것을!)
2026년 10월 21일 수요일
2026년 10월 20일 화요일
2026년 10월 19일 월요일
2026년 10월 18일 일요일
2026년 10월 16일 금요일
2026년 10월 14일 수요일
3운법칙은 계시로 말미암은 것
신은 존재하는가"
일부 과학자들은 전혀 다른 질문을 한다
"왜 우주에는 법칙이 존재하는가"
이건 굉장히 중요한 차이다
무질서하지 않다는 것이니
생명이 존재할 수 있는 방향으로
모두가 맞춰져 있다는 것이다
인류사상 최대 최고 무비/無比의
법칙이 발견됐으니 곧 3운법칙이다
신은 존재하는가 하고 따지는
인간을 철통같이 관리하는 법칙이니까
살아 있는 인간을 얽어매는 법칙이니까
이보다 더 정교한 법칙이 있을 수 없다
인간이 실험해서 발견해낸 법칙이 아니다
이 법칙은 고로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다
계시는 전적으로 "계시해주시니까" 되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증명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이 증명은 하나님 실존 증명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렇게 계시 받은 자의 모든 성경 풀이가
다 진실로서 하나님께로부터 났음을
보증하여 확고한 권위를 세워주는 것이다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못할 것이다"(요 4.48) 하셨듯이ㅡ
바벨론 신학의 치명적 함정ㅡ로마서 7장 (중복 게재)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할 것이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다"(요 14.12). 주님께서 죽은 사람 살리셨듯이 베드로나 바울 역시 죽은 자를 살렸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큰 것도 한다" 하셨는데 그것이 무엇인지 지금까지 교회사에 드러나진 바가 없습니다. 이제 주님 오실 때가 되었지만 "이보다 큰 것"이 아직 알려진 것이 없으니 대관절 무엇일까. 영영 나타나지 않을 것을 그렇게 말씀하실 리 없는데 그게 무엇일까?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세상에 알려 하나님 살아계심을 확실히 드러내는 일일 것임은 분명합니다. 그러한 목적이 이루어지는 것이 그 첫째이고, 그 둘째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고 그렇게 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음을 밝히심이니 다시 말하면 "내가 모든 믿는 자에게 성령으로 임하게 될 것인즉 이보다 큰 일이라 하는 것도 내가 직접 관여함이기에 가능하다"는 뜻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러면 주님 친히 나타내시는 것으로서 "이보다 큰 것"이 무엇이냐 할 때 오늘날 "21세기 표적과 기사"라고 할 3운법칙과 이에 수반되는 "3위1합(종전의 '3위1체')"이라 단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천재 중의 천재라도 이런 일련의 것을 스스로 생각해낼 인간은 있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친히 관여하시지 않는 한에는.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 한 세례요한의 대답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죽는 때를 정하신 하나님, 그리고 그 이유, 그리고 그렇게 정하신 때까지 이 모두가 밝혀지기로는 인류사상 전무후무의 일로서 그야말로 기적 중의 기적이라 하켔습니다. 이보다 하나님의 존재를 더 잘 드러낼 수 없습니다. 아주 정통으로 쐐기를 박아 증명하듯 드러내신 것입니다. 인간의 생애를 그 명암/明暗 따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마름질해 가시는 하나님의 손길을 이제 모든 인간은 그림을 들여다보듯 구경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나님께서 모세를 보내실 때 그 보내신 증거가 필요했듯 오늘날 온 세상이 마귀의 바벨론 신학에 들떠 있어 빈사지경에 있는데 유일하게 경고를 울릴 목소리에 하나님의 인장/印章은 필요불가결한 것입니다. 이 3운법칙의 성격을 규정하는 것이 오늘날 21세기를 겨냥한 2,500년 전 예언으로서의 다니엘서 7.25/12.7, "한 때, 두 때, 반 때"입니다. 이는 정확히 "3위1합"의 도식/圖式으로서 3운법칙의 모양새 그 자체입니다. 21세기에 와서야 정확히 나타날 2천5백년간 묵혀 온 수수께끼였으나, 이제 천사의 복음시대에 드러나진 것입니다.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 명심합시다. 우리 구원은 <죽음에서의 구원>이 아닙니다. 동물성 육체에서 신령한 몸 되는 게 구원이 아닙니다. "죄에서의 구원"입니다. 이를 백 번 강조해도 좋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죽음이 왔으며 썩는 육체가 된 것입니다(롬 5.12). 범죄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는 천사와 같은 신령한 몸이었던 것입니다. 아담으로 인해 죄가 왔고 죄의 결과가 썩음입니다. "영적 죽음"이란 말은 사탄 신학의 대표적 신학용어이니 입 밖에도 내지 맙시다. 그리고 그 대표적 교회 농간이 어거스틴, 루터, 깔벵 등 그리고 지금까지의 모든 개신교 교리의 바탕에 깔려 있는 바 곧 "롬 7:24가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적 평생 갈등"이라는 <지옥불에서 나오는> 사악한 주장 즉 "바벨론 신학"입니다. 이와 같이 사탄의 신학이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번창하여 어거스틴, 루터, 깔벵처럼 "교회"를 장악할 것을 아시고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는 엄중 경고를 내리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가 엄마의 사랑을 이해하는 본성 그대로의 하나님 사랑이면 충분합니다. 거기에 어떤 "신학"도 갖다붙이지 않으면 됩니다.
"죄에서의" 해방"이 우리 구원이니까 "구원 받았다"면서도 사탄처럼 자아중심이 되어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되지요? 당연히 멸망입니다. 원천무효이니까! 그래서 바울 사도는 "항상 복종함으로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의 구원을 이루라"(빌 2.12) 한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새로이 다시 창조된 것이니까 새로 다시 출발함으로써 아담이나 기타 악령들처럼 죄짓지 않고 거룩한 천사들처럼 의와 성결을 지켜 나간다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다시 십자가에 못박는 망동 밖에 없으니까! "항상 복종하라"는 것은 교회의 각종 요구에 순응하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새 계명",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요 13.34/14.23)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마 7.21) 하심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 하신 것을 아니하면 되는 것이고 하라고 하신 대로 하면 됩니다. 아담은 하지 말라 하셨음에도 했기 때문입니다.
2026년 10월 13일 화요일
육하원칙(5Ws1H)에 의한 역사적 진실로서의 3운법칙
2026년 10월 12일 월요일
2026년 10월 11일 일요일
2026년 10월 10일 토요일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음은 주님을 사랑함이 없다는 증거요 이는 구원 받지 않았다는 증거
영혼이 있는 인간은 빛으로 옷 입은 죽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역시 죽지 않는 신령한 휘황찬란한 식물들이 반겨주는 가운데 신령한 동물(현재 우리가 "천사"로 인식하는)들과 즐거이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재의 삶이란 것은 따라서 사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죽어 있는 모양새입니다. 성경은 이런 우리를 "죽은 자"라 하지 살았다고 하지 않습니다(골 3.3). 구원 받은 자는 장차 당당한 산 자로 살게 되리라는 약속만을 받고 있다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이 생명의 약속은, 주님이 "내 피로 세운 새 언약"(고전 11.25)이라 하셨듯이 이미 누차 설명한 대로 "언약과 계명"에 엄정히 매여 있습니다. "새 언약" 도 마찬가지로서 이 "약속과 계명" 아래 내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독생자 하나님) 친히 성부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요 15.10) 아래 계심과 똑같은 것입니다.다시 말해 나도 나의 구원 받은 증거(열매, 결과물)로서 주님의 "계명을 지키지"(14.15,21) 않으면 안되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15).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21).
제니 린드(Jenny Lind)의 3운법칙 생애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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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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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