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9일 토요일

하나님 정하신 인간 <운명>의 법칙

3운법칙. "운명"의 법칙이란 뜻인데 이 세상에서의 인간 생애를 관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신 것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른바 "산다"는 것이 운명적이다 즉 이미 짜여진 각본 따라 기계적으로 진행되는 것뿐이니까 저 짐승들과 무슨 차이가 있는가. 나의 의지대로가 아니다. 운명적으로 정해져 모든 것이 진행되고 있다는 그 증거물이 3운법칙이다.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 자체가 일절 무의미, 무가치하다는 뜻이다. 이런 비정상적 철저한 무의미는 우리가 구원 받아 그리스도와 "하나"가 됨으로써 다시 정상이 된다. 다시 말해 외형적으로는 무의미 그대로이나(현재의 동물적 육체로 인하여ㅡ그래서 골로새 3장3절에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한 것) 내면적으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갱생하여 영생에 들어가리라는 굳건한 약속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로 창조주께서 3운법칙을 통해 인간을 강제하실진대 곡절이 있으시게 마련이다. 창조주께서 사람과 관계하실 때 그 뜻을 인생들에게 알리시는 방법의 하나가 성경이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이유다. 이 성경에 3운법칙이 처음 정해진 내력이 나온다. 창세기에 모든 동식물이 창조되고 마지막에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 인간을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대리자로 세워 "6일" 창조의 모든 생물을 관리하게 하시는데, 그 전에 이미 하나님은 다른 창조물들을 만드신 다음이었고 이를 운영하시던 중 그 피조물 중 하나가 교만해져 소동을 일으키자 이를 처벌하시고 2차로 창조하신 것이 현재의 세상이며 인간은 2차에 속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자연 물질계>와 <초자연 영계/靈界>의 짝으로서의 양면 대칭으로 만드셨으니, "상반/相反은 상보/補"라는 3위1합(종전의 '3위1체')의 원리로써의 만유 창조이신 것이다. 2차 창조에 임하셨지만 1차 창조의 영계는 영원성을 띄므로 "에덴"이라는 이름으로 존속해 있었던 것이고 자연계물로써 파멸에 이른 것이다. 2차 창조 역시 종국에는 파멸을 맞는데 그 때는 '물'이 아닌 '불'이다(벧후 3.6,7). 이렇게 대칭성(짝)으로 물과 불로 망하는 두 시대가 끝난 다음에, 다시는 파멸이 없는 생명 세계로 영원히 정착하는 것이다.

1차 창조에서 만드신 영계의 피조물이 스랍과 그룹. 당시의 자연계 동식물은 오늘날 화석으로 그 흔적을 볼 수 있고 석탄/석유로 남아 있다. 2차 창조에서 역시 세상은 영계와 자연계로 나뉘는 바, 영계는 에덴으로 존속되어 오는 그대로이고 자연계 생물만 창조됨이었으며 그 중 최고 절정을 이루는 것이 인간 창조. 단 동물과는 달리 암수컷으로 처음부터 만드시지 않음에 유의해야. 그 이유인즉 동물적 육체의 인간을 영계인 에덴에 거처하게 하심으로써 영적 존재로 명실상부한 하나님의 대리자로 삼으실 의향이셨으니까. 영계에 두셨다는 것은 아담의 몸이 그 즉시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었음을 의미하는 것. 다시 말해 죽지 않는 영생하는 자가 된 것이었다. 아담의 신령한 몸으로서의 자식 생산은 동물적 육체와는 방법이 전연 달랐기에 인간을 성별로 창조하시지 않은 것.

자연계 몸이었다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된 이러한 아담만이 갖춘 특성을 상징하는 것으로서, 먹으면 "영생하는 나무"와, 먹으면 "좋고(선) 나쁨(악)을 알게 하는" 과일 나무를 에덴 안 동쪽의 "동산"(아담을 위해 특별히 조성해 주신) 중앙에 두 그루 세워 놓으신 후 아담에게 선악과 나무 열매를 먹지 말도록 엄중한 주의를 주셨건만, 아담을 시기해 몰락시키려 했던 뱀의 거짓말 계략에 어리석게 넘어가 선악과를 먹은 결과 경고하신 대로 그 즉시 신령한 몸의 초자연성은 사라지고 이전의 동물성 육체의 자연계 특성으로 환원되어버린 현재의 비극이 시작된 것이다. 에덴에 들어감으로써 영생하는 자가 되어 있었기에, "먹으면 반드시 <죽는다>"고 경고하신 것이다. 

오늘날도 사탄은 그 당시와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똑같은 거짓말로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하건마는 우둔한 민생들은 말로는 하나님 믿는다면서 이 사악한 사탄에게 맞장구치고 장단 맞춰 주고 있다. 동물성 육체를 "선악(좋고 나쁨)을 아는 것"으로 표현하는 이유는, 동식물의 삶은 기계적인 것이라 하나님의 지혜/지식이 고스란히 그대로 발현되어 작동되는 구조이기 때문. 그와 동일한 작용인 인체의 구조와 작동을 보아도 충분히 알 만한 것이다. 따라서 이런 기계적, 본능적 생명력은 자기 중심 일색이어야 함은 당연하니 자기 종/種을 보전해야 하기에 스스로 즉 기계적/자동적으로 작동되어야 하는 까닭이다. 반면에 인간은 영적 존재라 자유 의지를 구사하므로 그런 것과는 전연 별개다. 그러나 아담 범죄로 동물적 육체로 전락해버리자 기계적인 자기 중심으로 급락/급변한 것이다. 이것이 "죄의 몸"(롬 6.6). 우리 "구원"은 이 짐승의 몸이 죽어 파괴되고 동시에 그리스도와 "한 영"(고전 6.17)을 이루어 창조 당시의 원형 그대로의 '교차 소유/교차 삶'으로 회귀/복귀함이다. 

영원 생명은 이 상호 교차 교류의 "하나"(요 10.30)됨에 있는 것이다. "한 몸"됨에서는 아내 몸이 남편 소유가 되고 남편 몸이 아내의 소유가 됨이고(고전 7.4), "한 영"(고전 6.17)에서는 나와 주님 사이에서 주님은 나의 삶을 사시고(나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으로 이미 확증하심), 나는 "우리 중에 누구든 자기 위해 사는 자가 없고 자기 위해 죽는 자도 없다. 살아도 주님 위해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해 죽음이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것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14.7~9) 한 대로 주님의 소유로서 주님만 위함인 것이다.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는 성경적 의미다. 그러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이 고귀한 의미대로 따르는 자 과연 몇일런가! 교차 소유이니까 당연히 교차 소유주. 나는 주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나의 삶의 소유주. 주님은 그래서 나를 위해 사시고 나는 당연히 주님을 위해서만 살고.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다"(눅 22.27) 하심이 그 뜻이다. 만유에 충만하신 주님이시니까 믿는 각 사람과 365일 24시간 1대1로 넉넉히 상대하시기 때문이다.

애초 이와 같이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어 있던 인간(아담)이 졸지에 동물성 육체로 전락하여 짐승처럼 되어 동물의 자기 중심 그대로를 물려받으니 어찌 되겠는가. 겉모양은 인간이나 속인즉 말 그대로의 짐승이다. 그 실제 상황이 가인의 아벨 살해에서 당장 드러났다. 아담 범죄 전의 영생하던 인간이 별안간 동물의 육체가 되었지만 그 초자연적 기운이 남아 서서히 사그러짐에 따라 한동안은 즉 노아 당시까지 1천5백년간은 인간이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다. 이런 장수 시대에 살인 사건이 일어났으니 살인자는 가인 그리고 라멕(셋이 아닌 가인 계통)이다. "이러다가는 인종 자체가 끊어지겠구나" 심려하신 하나님이 취하신 응급 조처가 3운법칙인 것이다. 즉 죽는 때가 아니면 인간이 함부로 죽어나가지 않도록 정하신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이 강제력 발동이 3운법칙인 것이다. 이래서 운명의 법칙이라 하는 것. 세 가지 유형으로만 나타나는 것은 만물을 하나님이 3위1합의 원리로 창조하셨다는 증거다. 이 '3위1합'은 바로 하나님이 계시는 모습이신 것이다. 노자/老子의 "三生萬物/삼생만물"(도덕경 42장 첫 25언) 그대로다. 멜기세덱이 성경이 밝히는 현존 인물일진대 노자로도 얼마든 변신할 수 있다는 것이 필자의 소신이다. 즉 노자는 이 대목만 세상에 발표할 수는 없기에 "도덕경"이라는 옷을 입혀 주었다는 변함 없는 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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