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13일 금요일

아크바르(최종회)




아크바르 정도만이라도 기독교도가 성경에 관심을 가졌어도
오늘날과 같은 멍청한 기독교 신학, 
바벨론 신학은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기 때문에 아크바르를 자주 언급한 것인데
바로 "주님 다시 오시는" 이유에 관해 알고 싶어 했던 것인 바
이 점에 대해 질문을 하는 이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하기야 3위1체 관련해서도 그간 많은 신학 관계자들이 
노심초사하면서 궁구해보려 했지만 올바른 이해는커녕 
일절 그 근처에도 가지 못한 점을 감안하면
큰 기대는 할 수 없었을 일이기는 하지만. 
분명히 말해, 주님 다시 오심은 
<아담은 영원하다>는 사실을 전제해야
제대로 풀 수 있었던 '수수께끼'였는데도
아크발은 용하게 이를 지적해 냈기 때문입니다.
그의 통찰력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는 얘기입니다.
즉 아담은 죽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창조된 것입니다.
해서 초자연적인 신령한 몸을 입은 것이었고
이제 메시야 주님께서 그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
훌륭히(아담 표상의 제1호인 십자가 죽으심을 성취하심으로)
새 아담으로 등극하신 이상 그 아담으로서의 임무 수행이
"다시 오심"으로 나타나는 것인 바 아담 왕국 통치 차원이니
아담이 죽어버리는 서슬에 그 통치가 무산되어버렸으니
이제 비로소 정상적인 본격적인 "아담" 임무 수행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처음에 오신 것은 "아담"이 되시기 위해서,
두 번째 오심은 "아담"이 되셨으니 그 "아담" 역할을 하시려고
세상에 오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고로 다시 오실 때는 범죄 전 아담의
찬연한 광채의 "영광의 몸"이심은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처음 오신 모습은 범죄한 죽은 자로서의 "아담" 이셨으나.
그래서 죄인 사형수로서의 머리이신 아담의 모습과 함께 한
그 몸된 교회로서의 수난/受難 수행/修行을 마친
다시 말해 주님의 남은 고난 내 몸에 채워 함께 고난 받은
자들만이 다가오는 천년 왕국에서 왕노릇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지라, 자기 부인하라, 나를 따르라" 하심이 그 뜻.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롬 8:17).
사람 살리는, 구원해내는 일에서는
고난 받음이 불가피학고 고난 없이 하나님의 일도 불가능.
주님의 고난 받으심이 우리 구원을 위함이시고
그 남은 고난 역시 우리 교회가 그 소임을 맡았기 때문.

                                               
 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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