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성의 영혼이 있는 사람(창 2.7)인지라 그 육체는 반드시 영원성의 신령한 몸이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죽음일 수밖에 없는 필연성을 지니는 특징의 우리 인간임을 자나깨나 명심하여 염두에 두는 나날이 되어야 함을 다시 강조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죽음과 썩음의 동물적 육체로 인간이 살도록 만드시지 않았고 현재의 인간 육신(동물적 자연계 속성의 육체)에 의한 일체가 다 순수히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것이라 "산 자"가 아닌 "죽은 자"(골 3.3)임을 항상 의식하는 365일 24시간이 되어야 정상 궤도를 달리는 것임을 부디 명심합시다. 고로 이 지구상에서의 이런 비정상 상태에서는 일체의 "삶"이라는 것이 용납되지 않으니 이 실상을 마음 깊이 아로새깁시다.
그리스도인의 전도 활동은 모름지기 이 엄중한 사실(동물적 육체의 죽은 자로서의 인간이라는)로부터 시작되어야 마땅하고 그래서 이를 세상에 알리는 것이 우리 본무/本務임을 다시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럭저럭 "살다가"(죽은 자가 어찌 "산다"는 망상/망념을 한 순간인들 품을 수 있나요ㅡ절대 불가임) "영생"/"구원"에 들어가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방금 설명한 이 죽음의 실상을 외면하고서는 "영생"이니 "구원"이니 하는 것 자체가 전적으로 무의미한 것이니 감히입에 올릴 수 없음을 명심합시다. "죽은 자"이지 "산 자"가 아닌데 왜 "산다"는 헛된 생각에 사로잡히나요? "이 세상의 신"(고후 4.4) 사탄에게 맥 없이 꺼둘리고 휘둘리는 약해빠진 꼴사나움 밖에는 더 연출하는 것이 없어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에나 일에나 행해야 하고" (골 3.17)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고전 10.31) 자로서 썩 바람직하지 못한 언동이 됩니다. 당장 멈추세요! 다시는 그런 꼴을 보이지 마세요! 하나님 앞에서 진실되고 정직해야 합니다. "죽은 자"로서 "산 자"인 척하는 것은 거짓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무릇 "산다"고 착각하는 자로서 형통할 수 없습니다. 형통한 듯 보여도 그것은 멸망을 재촉하는 지름길입니다. 한 순간도 "산다"는 의식이어서는 안됩니다. 죽음임에도 "삶, 운운" 하는 것은 이 세상 지배자 사탄 앞에서 꼭두각시 종노릇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 외에는 일절 의미가 없음을 명심합시다.
아담 아래에 있어 아담을 섬기던 원수 사탄이 이렇듯 인간 세상을 다스리며 권세를 피우며 온갖 거짓말로 인간들을 속이며 압제하게 된 것은 아담 자신의 범죄로 저질러진 자업자득입니다.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경고 말씀 순종하기보다 "먹어도 된다"는 사탄의 거짓말을 더 믿고 따른 결과로서의 범죄이기 때문에 아담의 인간 세상 통치권이 고스란히 사탄에게 "넘겨진"(눅 4.6) 까닭입니다. 이렇게 범죄로 즉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경고하신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불순종하여 선악과를 먹어 "죽은 자"가 된 다시 말해 애초의 신령한 몸을 빼앗기고 짐승과 같은 물질적 자연계 육체로 되돌아 온 만인간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 친히 인간이 되시어 세상에 오셨으니 이는 죽어 없어진 아담 대신 새 아담이 되시고자 함입니다. 새 아담이 되셔야만 인간 구원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3위1체의 법칙 즉 대칭 원리로써만 이 구원이 이루어질 수 있으니 세상 만사 이 짝의 법칙에서 벗어남이 없는 까닭입니다. 따라서 생명이 아닌 죽음에 이른 이상 죽음 일색이지 여기에 '생명' 또는 '삶'이 섞일 수 없음을 제대로 철저히 인식하는 것만이 구원 받음의 필수 불가결의 일단계 과제라고 이해하면 됩니다. 물론 주님의 말씀처럼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된"(마 18.3) 이들이야 이미 그런 단계에 이르렀다고 할 수 있지만.
세상 만사 때를 따라 움직입니다(전도서 3.1~8). 지금은 "죽음의 때", 이것이 오늘날 인간으로서 지닐 '최대의 중요 지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자이신 하나님의 <인도해주심>을 따라 어찌하든지 생명의 "때"에 들어가도록만을 위해 우리 모두가 최선을 다하고 전심전력을 다해야 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의 우리 현주소입니다. 오직 이 하나의 목표, 하나의 지향점만이 유효할 따름입니다. 달리로는 일절 의미를 두지 않는 것이 우리의 유일의 지혜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곧 생명이십니다. 친히 나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께서 내 생명의 화신/化身이시니, 고로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고 정확히 지적한 것입니다. 죽음의 현실적 감각은 우리의 이 동물성 육체인 것이니 항상 이 진실에 두 눈을 부릅뜨고 사물을 직시함으로써 우리 자신을 추스르고 다독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연계에 속하는 동물성 육체가 죽음의 본질이라 자연계 자체가 인간에게는 죽음이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이것이 세상에 대한 일체의 집착으로부터서의 완전 해방입니다. 모로 보나 바로 보나 죽음이라는 점에서 영원 불변이요 그것이 달리 다른 모습으로 변환될 수는 없기에. 영원성의 영혼을 지니고 있는 인간에게는 영원성을 지니지 않은 것은 그 무엇이든 죽음으로 통하므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현재, 현실에 이루어지는 모든 것에 대하여 초탈, 초월해지지 않을 수 없으니 왜냐하면 그 일체가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가치로 따지면 한 줌 먼지만도 못한 것에다 관심을 가질 자는 아무도 없으니까! 죽음에 흥미를 느끼고 구미가 당겨질 사람은 없으니까! 오로지 심혈을 기울여 세상 사람들에게 이 죽음의 실상을 알림으로써 생명에 속하는 신령하고 영원한 것에다 마음을 쏟고 관심을 두도록 자극을 주는 일에만 매달릴 것뿐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이 자연계와 관련된 물질적인 것은 인간에게는 무조건 죽음의 일시적 현상임을 우리 각자 마음 속 깊이 아로새길 일입니다. 인간이 속한 영역은 이 자연계가 아닌 영원성의 초자연계입니다. 백 번 강조해도 좋습니다. 사탄만이, 그리고 원수 사탄에게 속한 세상만이 그 반대로 말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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