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9일 수요일

"구원"의 3단계







구원을 "이루었다", "이루고 있다", "이룰 것이다"
(구원에 이르렀다-과거, 이르고 있다-현재, 이를 것이다-미래)
이상 세 가지로 성경은 표현하는데
(헬라어 동사가 그렇게 되어 있기는 하나 굳이 원어를 보지 않아도 
'과거', '현재', '미래' 는 모든 번역본에서 충분히 나타내지고 있어)
이상의 <시작>, <진행>, <종결>을 말합니다. 
헷갈릴 이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성경적 표현으로는 대개 '종결'을 제외한 '시작', '진행'에서는
'산 자'가 아닌 '죽은 자'(골 3:3)로서 표현하는 바
이는 아직 초자연계 몸(아담의 범죄 전 몸)으로 
부활, 변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종결' 때까지는 "산다", "잘 산다" 등의 말이 불가능합니다.
이유는,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기"(골 1:24) 때문.
사형수로서 매일 사형수 형구를 지고 가는데 
그것을 "사는 것"이라고 할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종결에서는 첫째 부활과 마지막 부활로
나누어지는데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이들은
"복이 있다"(계 20:6)고 했습니다. 
복이 있는 첫째 부활에 참여하려면 복음 전하는 일에
(적그리스도 출현 이후 그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무조건 죽임을 당하니 자동적으로 "복 있는 자"가 되나
그 때가 박두하기는 했지만 언제일지는 모르니까)
목숨을 걸면 되니 말 그대로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4).
이슬람 판도인 중동 등지로 나아가면 개연성이 높습니다.
선교지를 택해도 소위 "위험한" 데를 기피하는데
이와 같은 "위험"에는 "천년간 다스림"의 보답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방해하는 지역이므로 그 어디보다도
복음 전파가 필요한 곳이라는 뜻도 되기에 그렇습니다.
북한도 있지만 북한은 전면적인 자유 해방을 위한 기도로써
대대적 세계 선교 보루로서의 한반도 교회 주축으로
세울 목적으로 임해야 더 타당성이 있습니다. 


당연하고도 당연한 일









그러므로 나의 것은 조금도 없고
오직 주님의 것으로서 
주님의 뜻대로 모든 것을 행한다는
우리의 사랑에 박차를 가할 필요가 있습니다


2020년 1월 28일 화요일

주기도문





구원받은 자의 육체와 영혼 일체가 더 다시는 자기 것이 아닌 주님의 것







질서는 아름다운 것이다
법질서대로 사는 것이 
가장 안전한 것이니
여기는 사는 데가 아니므로 
살려고 몸부림칠 필요가 없고
오직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 따라 
적극 자발적으로 움직여
찬란한 미래를 기약함이 사람답고 
창조주의 피조물다운 것
현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이뿐이다



2020년 1월 27일 월요일

동물보다 더 퇴화/退化가 아닌 진화해 인간은 얼어 죽는가



   
수정해서 다시 올렸습니다







용의 NASA 원본 사진



위 그림은 NASA 촬영(2001년)의 용의 원본 사진
<이미지 다른 이름 저장>(마우스 오른쪽 눌러)한 후
편집(그림판)으로 옮긴 다음 4~5 차례 확대하면
구불텅거리는 뱀의 형상이 노출됨
돋보기로 700% 확대해도
사진의 정중앙에서 1/2 아래 못미친 약간 오른쪽에 나타남.









2020년 1월 26일 일요일

"통합 나(자아)ㅡ대아"와 "개체 나(자아)"ㅡ소아









그러므로 이 "통합된 나"의 말씀이시면
죽으라면 죽는 시늉을 해야 하고 절대 복종인 것이다.
"개체 나"인 호, 불호를 가려서는 파멸, 자살행위이다.
생명의 법칙을 다른 조명으로 탐색해본 것이다. 
진화론 따위에 휘둘리지 말고 이런 측면으로 격파해 나갈 일이다.
통합 자아.
개체 자아.
누구든지 통합 자아 안에 오면 "나" 자신이 온전히 보장돼 있음을 보니까
너나없이 이 통합 자아를 위함으로써 
나 자신을 100프로 위할 수 있음이다.
고로 통합 자아를 위함에서 모두가 하나되고 조화되어 평화가 온다.
모두가 평등하게 100% 행복을 향유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불문곡직 성경 말씀만을 따르라.
그러면 찬연한 미래는 기필코 따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