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오날드 다빈치는
'수학과 결부시켜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했다.
철학자 칸트도
"모든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그것이 수학에 의해 증명될 때 한해서만
실제 학문으로 통할 수 있다"고 했다.
'수학과 결부시켜 입증할 수 있는 것만이 확실한 것'이라고 했다.
철학자 칸트도
"모든 자연법칙이라는 것은 그것이 수학에 의해 증명될 때 한해서만
실제 학문으로 통할 수 있다"고 했다.
2,600년 전 고대 그리스 수학자 피타고라스는
"만유는 수/數(All is number.)"라고 단언했다.
아이작 뉴턴은 무릇 자연현상은 모름지기 수학적으로 표현되는 것임과따라서 만물을 규명함에 수학적 모델링이 필수임을 확인했고
이것은 그의 역작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에서 잘 드러난다.
짝의 법칙이 "마지막 때" 즉 20세기 이후에 알려질 것을
미리 알리며 성경이 "한 때, 두 때, 반 때"라 표현한 것은 너무 당연하니
이는 바로 '하나(1), 둘(1×2), 반(1÷2)'을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
만인간이 다 수학자가 아닌 다음에야
수학적 용어나 표현, 공식으로 나타낼 일은 없는 것이고
수학의 형식을 취하면서도 모두가 다 100% 이해 가능한
1, 1×2, 1÷2로 나타내는 도식/圖式 이상 가는 방법(수학적 표현)은 없는 것.
고로 짝의 법칙이 명실상부한 만유의 법칙임을 드러내는데
전혀 손색이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이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너무나 특이한 포현이
마지막 때 나타날 짝의 법칙을 가리켰음이 확실하다는 결론에 하자가 없다.
따라서 이러한 경이/驚異로써 뒷받침되는 3운법칙(짝의 법칙)
그리고 이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3운법칙(인간의 생애를 주관하는)인즉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라는
잣대(척도)에 맞추어 볼 때 이 두 법칙의 확실성/진실성은 확고부동이다.
아담의 범죄로 "죽은 자"로 전락해 당장 재출생, 신창조가 화급한 인생에게
과학적 최신 발견, 첨단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 두 법칙을 매개로 하여 나타난 <올바른 성경 이해>만이 정작 핵심이다.
고로 이 두 법칙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이와 함께 계시되어 알게 되는 바
구원이 무엇이고 믿음이 무엇이며 은혜와 율법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핵심이니
에덴과 아담의 초자연계적(범죄 전 육체의) 속성이
이 모든 것의 가장 기본이 되는 요체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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