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 25일 토요일

과학자들이 아인슈타인보다 높이 평가하는(2005년 조사) 아이작 뉴턴(1642-1727)의 작용-부작용 법칙(뉴턴 제3법칙) 역시 짝의 법칙의 "양면성의 동시성" 즉 "본질은 같되 성질은 정반대"가 그 기반임을 아시는가



이는 너무 당연하니 짝의 법칙은 만유의 법칙으로서 모든 법칙의 모법/母法이기 때문
자연계와 초자연계를 막론 모든 법칙이 짝의 법칙을 반영하지 않고 존재하는 게 없어
그렇게 짝의 법칙의 일관된 지배 아래 있는 것 중 대표적 최고 걸작품이 바로 3운법칙
★ 2005년 조사는 영국 왕립학회 회원들을 대상으로 한 것



위대한 업적을 남긴 과학자들이 신을 믿은 이유는





뉴턴과 아인슈타인 둘 중 누가 더 나은가 
즉 인류에 더 많이 기여했는가에 대한 
일반 설문 조사에서는 뉴턴이 아인슈타인을 
51.1 대 49.9의 근소한 차이로 따돌렸으나 
과학자들을 상대로 해서는 60.9 대 39.1의 큰 격차였다.


뉴턴이 남긴 유명한 금언/金言 둘
What famous quote is Newton known for?
"모름지기 모든 작용은 크기는 같고 방향은 정반대인 반작용을 수반한다"(뉴턴의 제3법칙)
①"To any action there is always an opposite and equal reaction; 
in other words, the actions of two bodies upon each other are always equal and always opposite in direction." 
(마치 21세기 오늘날 만인이 이해할 수 있는 만유의 법칙[대칭성 원리]과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3운법칙의 등장을 예고라도 하는 듯이)
"진리는 평범(단순)한데 있는 것이지 복잡하고 혼잡스러운데 있지 않다."
②"Truth is ever to be found in simplicity, and not in the multiplicity and confusion of things."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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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인슈타인은 창조주 입증에서 과학의 한계를 절감했다.
이것은 다시 말해 자연과학의 한계를 실토한 것이다.
초자연계 역시 우리의 한계 밖에 있음은 마찬가지이다.
고로 해답은 (자연)과학 외적/外的인 것으로부터 온다.
뉴턴의 지적처럼 만유의 과학자이신 창조주로부터 오는,
과학이면서도 과학의 힘을 빌리지 않는 독보적인 것을
이 시대가 요구하는 바 여기 부응하여 나타난 것이다.
  
즉 창조신의 존재는 
"하나, 둘, 반"의 법칙(짝의 법칙)과
(단 12:7/7:25/계 12:14)
3운법칙을 처음부터 밝혀 온
성경에 의하여
그리고 이 두 법칙의 상호검증으로써
오늘날 21세기에 증명되었다. 
근대 과학의 대문을 처음으로 활짝 열어젖혀 준
아이작 뉴턴이 만물의 운동 법칙을 밝히면서
만유의 법칙(대칭성 원리)을 암시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닌 것이다.  

창조주께서 존재하시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니 
처음부터 속이고 거짓말하는 마귀는 "창조주"를
여러 가지 별의별 것으로 만들어 놓았기 때문.
회교, 힌두교의 창조주, 천주교의 창조주 등등.
요즈음은 "까불면 나한테 죽어"의 대상인 "하나님"까지. 
하나님 너 까불면 나한테 죽어ㅡ로써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방언" 수시로 하고 소위 "성령 받았다"는 자의 소리다.
이른바 "오순절운동"의 한 단면도라 해도 좋을 것. 
살아 계시는 창조주가 아니라 인간이 만든 "창조주"다.
창조주라고 다 똑같은 창조주로서 착각하는 이가 너무 많다.
이 세상 신이요 지배자인 마귀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뉴턴 자신도 딴에는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는 "신학자"급이었으나
삼위일체와 예수님의 신성을 부정하는 등 나을 것이 없었다.

제멋대로 상상하여 만든 하나님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하나님.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성자/聖子 하나님께서 그 형상이신 하나님.
고로 아담의 대칭/對稱이시니까 본질은 같고 성질만 다르신 아담.
따라서 육체가 아닌 성령으로 계시다뿐이지,
내가 현재 아담의 육체를 입은 것처럼 성령 관련해서도 그러한,
다시 말해 365일 24시간 내 육체(아담의 것)를 의식하는 삶이듯이
나와 함께 하시는 "마지막 아담"(성령으로 계시는) 의식으로써
창조주를 믿음의 눈으로 뵙지 않는 한 모두가 도로무공이다.
이 주님 의식은 "내게는 산다는 것 자체가 주 예수님"(빌 1:21).
주님의 소유로서(고전 6:19,20)의 나 자신을 인식함으로써
다시는 나 위해서 살지 않으니까 그러하다
(고후 5:15/롬 14;7-9/고전 3:23/7:23/계 5:9).

고로 구원 받은 증거는 주님께서 내 안에 계시는지 여부를
시험하고 확증하라(고후 13:5) 한 대로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주님 위해서만 살고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는다는 방향 지표指標만 확실하면
모든 것은 이를 기준하여 처리되고 이행되므로 자연스럽게 의가 행해지고 
"참고 선을 행함"(롬 2:7)으로 이어질 수밖에.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구원해낼까 하는 일념에서 기도와 말씀 전파
그리고 구령/救靈 차원에서의 기타 선행(행 9:36)으로 나타남은 순리. 

성경을 무시하기 때문에 구원의 의미를 제대로 파악 못한다.
"성경"의 "경/經"이란 말이 종교적 냄새 즉 "경전"을 의미한다 하여
굳이 "성서"라고 부르면서도 생활은 "구원" 아닌 "종교"다.
고전 7장은 구원 받은 자의 모습(나타난 증거)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 "구원"이 종교 교리가 아닌 삶 자체의 근본 혁신임을 말한다.
"아내(남편) 있는 자는 없는 것 같이", "매입해도 소유 않는 것 같이",
"세상 물건 다 쓰지 않는 것 같이" 등등 표현에서 역력히 드러난다.
"세상의 형적은 지나간다" 즉 "잠시 스쳐가는 세상"이다.
범죄 전 아담의 "영광의 몸" 대신 죽음의 "낮은 몸"(빌 3:21)이 이유다.
찬란한 복장 대신 걸친 거지 옷(걸레 옷)에 연연할 자 아무도 없다.
아담의 범죄로 영생을 잃고 죽음의 자연계 몸이 돼 있음을 아는 자로서
이 세상 삶에 연연할 자 아무도 없음은 말하나마나다.

때문에 남녀가 손 맞잡아 즐겨 사는 것도 성경은 개/皆 무시한다.
주님께서 "천국 위해 고자됨"을 받을 만한 자는 받으라 하셨다(마 19:12).
아내/남편 생각하는 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에 장애라 했다(고전 7:33).
마귀는 180도 거꾸로 구원(영생)의 복음을 거짓으로 가르친 것이니 
구원이란 이제 비로소 <시작>인데도 마치 <목적 달성>인 양 속인 것이다.
산 자로서의 시작이라 함은 지금까지 "죽은 자"(마 8:22)였기 때문.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 속임으로써 이와 같은 수작을 부린 것이다.

장차 영원한 멸망의 불 못 속으로 처넣어질
죽음과 음부陰府(계 20:14), 그 사망의 권세를(히 2:14)
악마 마귀가 쥐고 있다는 현실은 아담의 범죄로 초래되었다.
다시 강조하지만 인간은 영생하는 완벽한 자로 창조됐다.

악마가 이 세상을 지배하고 죽음의 권세를 장악한 것
이 단 한 가지 사실로도 인간의 죽음이 아담의 범죄
즉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거기 무릎 꿇은 탓임을
대낮같이 밝혀주고 있건만 이제껏 속아 왔다.
이 세상이 이와 같이 마귀 일당과 그 종자種子 네피림으로
완전 장악되어 있는 그들의 나라, 세상임을 의심할 여지 없이
입증해주는 것이 바로 DPA(SBP) pix다. 
이런 위험천만한 세상을 사랑하고 연연해 함으로써
스스로를 영원 고통에 빠뜨리려는가, 어리석기 한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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