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를 부탁 드리는 의미에서
이 글을 올리는 것입니다.
일의 성취 여부는 하나님께 있고
하나님의 움직이심 여부는 오로지
여러 성도의 합심 기도로 좌우됨이
우리가 아는 대로의 우주 철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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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이 자기를 부인하라 하신 것은 "교차 소유에 의한 삶"을 말씀하심입니다. 미국 MRA(도덕재무장) 같은 데서 "철저한 자기 부인"을 표방하며 한 때 '자기 말살'과 같은 것처럼 이해했으나 그렇지 않습니다. 나를 위하지 않고 오직 내 상대만을 위하니 자기 부인이지만 그대신 남이 나를 위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니("서로 사랑하니") 내가 더욱 더 위해지는 것입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더 풍성한 생명"(요 10.10)이 이런 것이 아닌가 여겨집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에서(앞선 글) 설명한 대로 "너를 위하는 것은 나이니 너는 나만 위하라" 분부하심과 같습니다. 이것이 '교차 소유'의 '교차 삶'의 근원 그리고 기본입니다. "3위1합"에서의 "하나"(:30)됨이니 육체의 "한 몸"(마 19.5)에서는 아내의 몸이 남편 소유가 되고 남편의 몸이 아내의 것이 되는 것이며(고전 7.4), 주님과의 "한 영"(고전 6.17)에서는 삶 자체가 그러하여 주님은 나의 삶을 사시고(나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이 그 중거) 나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가 됩니다. 각 사람의 상대는 같은 사람으로서의 자기 이웃이 아니라 첫째가 그러므로 하나님이시고, 그 다음이 하나님 친히 사랑하시는 같은 사람으로서의 내 이웃으로서의 순서가 됩니다. 고로 우리가 구원 받기 전 "회개해야" 하는 것이 이렇게 하나님 위하지 않고 이웃 위함 없이 나 자신만 위했다는 데에 있습니다. 즉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니 사망인 것입니다"(약 1.15). 언제 어디서나 가장 이상향적으로 사람 사는 방법은 이러한 교차 삶에 있음을 우리 모두 마땅히 마음에 새겨야.
EVERYBODY IN PROMISE(EIP/아이피) move-ment 곧 "너,우리,나"(또는 "너우나" 또는 "너우리나") 운동을 그러한 교차 삶의 맛보기로서의 범세계 사회운동으로 세계 전도 차원에서 보급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그 슬로건(영문)은 "FIRST for you, for ALL, ABUNDANCE for me."입니다. 즉 "너 먼저, 우리 모두, 나 풍요 번영"입니다. 영문에서 밝혔듯이 사람마다 자기가 대하는 상대를 먼저 생각해주고(당장 내 눈 앞에 니타나 직접 보여져 인식하게 되는 대상이기에) 이렇게 자의식보다 타인 의식이 먼저라 제1차 관심 대상으로 모두가 약속이나 하듯 마음이 일치하게 되면(그렇게 하기로 각자 마음에 품어ㅡ가벼운 약속처럼 이 운동을 확산/확대시켜 나가면) 결국 내게도 그 감화력이 영향을 끼쳐 그런 <사회 분위기>를 체감하게 되니 종국적으로는 나도 그 훌륭한 수혜자가 된다는 논리로 안착하게 됩니다. 거대한 약속으로서의 어떤 부담감을 안겨주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 속의 <동감> <의식> 정도로 자진자발적으로 확장해 가는 데에 이 운동의 생명 또는 강점이 있다 하겠습니다. 이런 기초 작업이 세계적으로 보편화되면 "세계 평화"라는 거창한 목표도 그리 어려운 과제로 느껴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무엇보다 이 세상을 만드시고 통할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일에 그 첫걸음이라는 데에서 의미를 둘 수 있습니다. 오늘날 나만 구원 받으면 그만이라는 팽배한 자기 중심적 비뚤어짐에서 자기 교화/敎化의 기대 효과도 어느 정도 무시하지 못할 것입니다. 만유가 3위1합의 원리로 돌아가고 있고 1합이 그 핵심으로서 교차 소유가 그 생명일진대 자아중심은 우리 뇌리에서 아주 도태시켜야 마땅합니다. 위의 슬로건에서 상대 곧 <너>를 가장 앞세우고 <나>를 맨나중에 위치시킴에서도 이는 강조됩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불신자 상대의 사회운동 및 전도운동(복음 활동) 차원일 뿐이지 구원 받은 사람들의 "계명 지키는"(요 15.10) 것과는 전적으로 별개입니다. 구원된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야 하는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 구원을 자기 스스로 자기 손으로 없애 치우는 망동이 되니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자신의 구원(your own salvation,KJV)을 이루어"(빌 2.12) 갈 일입니다. 하나님 아들들로서의 마땅한 순종을 바울 사도는 "자기 구원을 이루는 것"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순종은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지 남이 대신해주는 것이 아니니까.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외에 달리 다른 것이 달려 있을 까닭이 없습니다. 열매와는 아랑곳없이 잎만 무성한 나무만 끼고 앉아 있도록 속인 것이 바벨론 신학입니다.
자기 중심은 온갖 죄악의 뿌리일 뿐만 아니라 사물을 제대로 보지도 이해하지도 못하게 하는 원흉이기도 합니다. 교만해져 타인을 멸시하게 되니까 그 타인이 비록 진리를 말한들 귀기울여 들을 마음이 없는 것이 자기 중심입니다. 그래서도 자멸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롬 12.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