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생각의 바탕)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다"(잠 4.23). "생명의 근원"이 마음의 생각이니 우리는 이 문구를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속에 아로새겨야 합니다. 여러 번 설명했지만 우리 자신을 철저히 이로써 세뇌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마음의 생각>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매일 매사 인도해 주시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제사장 기도로), 항상 기뻐하고(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나는 영원히 혼자가 아니기에 너무나 행복감에 겨워)" 이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 및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 8.29/20.21) 하신 말씀으로 충분히 설명됩니다.
"모든 일에(궂으나 좋으나 간에 일체 불문하고), 하나님께 감사함(덮어놓고 감사함이 아니라 365일 24시간 매순간 나를 사랑하시어 눈동자처럼 살피시며 위하시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 실상이니까)으로써(살전 5.16-18) 우리는 각자 우리 "마음을 지키는"(잠 4.23) 것입니다.
마음을 지킴이 이렇듯이 중요하여 "생명의 근원"이 되므로 원수 사탄의 공격 목표이기도 함은 당연 사실. 고로 이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에서도 확인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절제 있는)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라. 주님께서 가까우시다(오실 때가 가깝다ㅡ이는 <예언>이 아닌 <부단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자주 쓰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이제까지 응답해 주셨으니 계속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기에)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울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빌 4.6).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종말로(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고후 10.5).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주님께 여쭙고 의논하고(에덴에서 여자가 자기 연장자인 아담과 먼저 상의 않고 독단으로 행하여 엄청난 파멸을 자초함과 같이 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하는 지혜스러움입니다. 시험과 유혹과 악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성경 시편 영역(Ps. 119.113)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I hate vain(원문엔 없다는 표시로 이탈릭체 표기) thoughts: but thy law do I love(KJV). 우리말은,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로 되어 있고 일부 영문 번역도 그러하나, 위 설명에서도 보듯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미워한다ㅡto hate thoughts"입니다.
"사람이 생각 자체를 아니한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해서 그렇게 "두 마음, 운운"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본 뜻은 명확합니다. 왜냐년 그 대칭구가 분명히 "<하나님의 법>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생각> 대비/對比 <주님의 말씀>인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뜻이 명명백백히 드러납니다.
즉 스스로 생각해서 또는 생각나는 대로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자세를 버리고 무조건 주님께 여쭈어 묻고(사람과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귀찮게 여겨 "네가 알아서 해라"로 일관하나, 우리 주님은 반대로 오히려 기뻐하시므로)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기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점 우리가 마땅히 머음에 새길 일입니다.
하나님을 과거 믿지 않을 때처럼 그저 막연하게 의식해서는 안됩니다. 똑부러지게 즉 사람되셨으므로 사람 대하듯 얼마든지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할 때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느라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보다 크시어 도무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일부러 사람이 되어 주시어, 우리 각자와 가까이 하시게 되었으니 곧 예수님이시라고 설명하면 그가 믿든지 안믿든지 설명은 끝난 것입니다.
3위1체 법칙에서 짝을 이루는 것은 반드시 "하나"(요 10.30) 즉 제3위/位가 되어 있는 까닭에 사람되신 성자 하나님의 모습은 바로 성부 하나님의 모습이 되어 계심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또 보이라고 하는 것이냐"(요 14.9).
성자께서 육체(사람)가 되셨으나 그 영만큼은 사람 속성이 아니시고 창세 당시부터서의 성령이시므로("하나님은 영이시니ㅡ요 4.24) 여전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사람, 사람-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진실과 진리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은혜 안에서 한없는 느긋함, 든든함, 넉넉함, 그득함, 여유 만만의 기쁨, 평안을 누리고 전파하는 우리가 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