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7월 9일 목요일

21세기 세기적 선언





3운법칙은 인간 생애를 철통 같이 관장 주관하는 원리다. 그 위에 또 더 있다. 인간 생애가 이같이 통제되는 것이 무엇 또는 누구 때문인지를 완연히 드러내는 그 증거까지 구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제 그것이 정해졌고 또 왜 정해졌는지 그 '때'와 '이유' 등을 정확히 알리고 있음이다. 누가,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왜의 육하원칙에서 벗어남이 없이. 여기서 '누가', '어디서'가 아주 중요한데 다름아닌 바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주인공이시기에 그렇다. 다시 말해 '과학적 사실'로서의 "하나님"이 만천하에 이로써 증명되셨다는 사실이다. "과학적"이라고 특별히 강조하는 까닭은 이 시대에 돌연히 혜성처럼 나타난 양자역학에 기초함이다. 오늘날 물리학에서 두각을 드러낸 미시세계에서의 현상을 말함인데 이 똑같은 원리의 거시세계 현상이 바로 3운법칙이기 때문이다. 

성경에 기록된 대로 아담 이래 노아까지의 2천년간, 사람 수명이 예외 없이 천년에 가까웠던 당시 세상에  처음으로 2건의 살인 사건이 일어나자 아예 인간의 죽는 때를 정해버리시는 계기가 되었고 이로써 3운법칙이 작동되기 시작한 것이니까. "창조주 하나님이 증명되신 21세기"라고 칭해도 무방하다.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적그리스도 출현이 임박했다는 시대적 징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가 나와서 세상을 요동시킬 때 휩쓸리지 말고 지금 이 때 하나님의 구원의 일에 일향 매진할 일이다. 일할 수 없는 밤이 올 것이니 때 늦기 전 총력을 기울여 주님의 일에 참여 합류하고 3운법칙을 널리 세상에 선전함으로써 사람들에게 하나님 구원의 은혜를 알려야. 복음 전도 사업이 과학적으로 강력히 뒷받침되기는 유사이래 최초다. 만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신지라 필연적이라 할 것이나 그러나 3운법칙만 아니다. 3운법칙의 절대적 기반이 되어 있는 3위1합(삼위일체) 또한 드러났으니, 이 또한 하나님 계시는 <모습>이시기에 의미는 엄청나다. 다름아닌 "성부, 성자, 성령"이시라는 수수께끼가 드디어 풀려진 것이다. 

뿐 아니라 이렇게 계시는 모습의 원리를 만유 창조와 운영의 기본 법칙으로 정하셨다는 놀라운 진실도 입증되었으니 그 대표적 예가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이요 거시세계에서는 3운법칙이다. 다시 말해 '3위1합'이 무엇이냐 하면 닐스 보어가 상보성 원리에서 확언한 바 "상반은 상보"인 것이니 '상반'은 짝을 이룸(성부 하나님과 독생자 하나님)이고 '상보'는 그 짝을 이룬 둘이 둘로서가 아닌 "하나"("나와 아버지는 하나다"ㅡ요 10.30)로 반드시 "합하고"("합하여 한 영"ㅡ고전 6.17; "합하여 한 몸"ㅡ마 19.5) 있음을 가리키기에 "3위1체"가 아닌 "3위1합"이라 함이 마땅한 것이다. 이 "3위1합"은 오늘날 이미 이 21세기를 지목해 예언한되었던 다니엘서 7.25/12.7에서 "한 때 두 때 반 때"라는 문구(역시 21세기를 예고한 계시록에서도 이를 인용함ㅡ계 12.14)로써 "3위1합" 도식/圖式(아래 그림에서 세잎클로바 형태)을 통해 또한 예고하고 있음이라 더욱 놀라움을 자아내는 것. 

"도식"이라 단언하는 이유는 3운법칙의 구도/얼개(structure)가 바로 이 도식을 빼닮아 있기 때문이다. 이 일련의 사실들 자체가 "표적과 기사" 되기에 충분하니 "객관적 실험" 따위를 들먹일 필요도 없이 뮤례 없는 규모의 자체 증명의 파노라마의 장관을 이루기에 그러하다. 실로 경탄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러므로 구원되었다고 믿어 하나님 은혜를 찬미하는 전세계 그리스도인들은 모름지기 하나 같이 이 실상을 온세계에 알림으로써 이 세상 마지막 때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할 일이다. 다만 유의할 것은 "바벨론"(계 18.4) 신학이 아닌 "천사의 복음"(14.6 ) 전파이어야 한다는 것. 

우리의 이 전도 활동에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이 거대한 독수리 날개를 달아주심이라 이 하나님의 실존 증명의 막강함은 어디에도 비할 바 없다는 차원에서의 그야말로 독야청청이니 우리는  이로써 5대양 6대주를 휩쓸어야! 가나안 복지 정복의 요단강 도하처럼(여호수아 3장) 발만 내디디면 물은 갈라지게 마련이다. 머뭇거리다보면 평생 가야 물은 갈라지지 않는다. "하나님 실존 증명"이라는 '3운법칙'과 그 바탕인 '3위1합'의 양발을 내어딛고 보무당당 앞으로 전진이다. 하나님의 손길이심이 분명한 '3운법칙'과 '3위1합'이라는 21세기 "표적과 기사"(이 모두 인위적으로는 세상에 나타나짐이 불가능할진대 분명코 하나님의 역사이니)의 좌우 포진이 철옹성 같은 위력을 발휘하고 밌으니까! 옛시대 모세의 기적과 같은 천지를 진동시키는 것이 아니라 "세미한 소리"(왕상 19.12)로서의 "하나님 나타나심"이니 이로써 천사의 복음을 전하라 하시는 21세기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시랴! 

3운법칙은 초등생 정도의 셈법만 알면 누구나 검증 가능하여 만인에게 공개 개방되어 있다. 누구든 그 누구의 생애든 분석해보고 예외임이 입증되면 그래서 세상에 알리면 일은 간단히 끝난다. 3운법칙은 그 시로부터 영구히 매장/폐기되어버린다. 법칙으로서의 존립 자체가 와해되는 것. 따라서 '3운법칙'과 '3위1합' 관련해 부인도 시인도 않는 어정쩡한 태도야말로 비겁하다는 소리 외 더 들을 것이 없다. 하나님의 일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든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 팔아 수작을 부리는 확신이 들 경우 사이비 이단 척결 차원에서 즉각 대응하든가 둘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런데 오늘부로 필자는 세계를 상대로 중요 발표를 하려고 하는 바 그것은 다름아니라 세상에 상보성 원리란 것은 존재하지 않고 오직 3위1합의 원리라는 만유의 기본 대법칙만이 운용된다는 사실을 최종 공표함이다. 닐스 보어는 "삼위일체"란 말을 평생에 들어보았는지 모르나(기독교인이 아니기에 듣지 못했을 수도) 이것이 바로 '상보성원리'의 정체인 것이다. 오늘날 '3위1합'이 완연히 세상에 그 존재를 드러냄에 즈음하여 혹시 사람들이 불필요한 혼돈을 느끼면 안되겠기에 미리 선언해 두는 바이다. 그 확실한 중거가 보어의 가문 휘장에 그려 넣은 태극 도안과 "상반은 상보"란 뜻의 라틴어 문구 "CONTRARIA SUNT COMPLEMENTA"이다. 이 모두 '3위1합'을 말하는 것이다. 

고로 "상반은 상보" 대신 "상반은 상합/相合"이라 하고 라틴어 문구도 "contraria sunt coincidentia"(콘트라리아 순트 코인키덴티아)로 바꿀 일이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대립되는 둘을 ‘합쳐 하나로서의 새로운 합(合)’을 만드는 정반합(正反合)적 합일이라는 뜻을 나타냄이 아니라, 서로 보완적이면서 배타적 상태로 공존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짝을 이룬 둘이 하나로 합해지는”(coincidentia oppositorum) '3위1합'(종전의 "삼위일체")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실상을 말하면 contrariacomplementa(상반이 상보)가 아닌 "상반은 상합"(coincidentia oppositorum)인 것이다. 상보성 원리 자체도 “짝이 하나로 합해지는” 관점에서는 '3위1합'과 유사한 구조(대립이 보완적이며 궁극적으로 하나)이기는 하나 직설적 표현으로서 일치· 합일(coincidentia)한다"는 말을 두고 빙 둘러서 말할 필요는 없는 것. 


그러므로 이제는 더 이상 망설이지 말고 고삐를 늦추지 말고 채찍질하여 말 달려 나아가 하나님의 말씀, "천사의 복음"(계 14.6)으로써 사탄의 모든 거짓과 속임수의 "바벨론"(18.4)을 궤멸시킬 일이다. 현대물리학의 총아로 여겨져 왔던 상보성 원리 즉 영자역학의 모태(母胎, birthplace, cradle)인 상보성원리를 제대로 다잡아주는 성경이니 모든 과학적 진실의 "모태" 역시 "하나님 말씀인 성경"이라 해도 이제는 누구도 입을 가볍게 놀릴 자가 멊을 것이다. 만유 창조자는 과학적 법칙의 창조자이시니까! 다시 강조하거니와 '3위1합'은 하나님 계시는 모습 그 대표적 표현인 것이다.



2026년 7월 6일 월요일

세상에서 가장 미련함의 극치는 성경 대신 신학서적을 뒤적이는 것

다시 강조하거니와

세상에서 가장 미련함의 극치는 

성경 대신 신학서적을 뒤적이는 것




우리 하나님 창조의 삶의 본질을 그대 이해하는가?




 

우리 구원은 범죄 후 아담 상태에서 범죄 전 아담 상태로의 회귀일 뿐이니 다시 또 아담처럼 되면 일사부재리/구제불능

"아담 이후 오늘날 인간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 즉 '죽은 자'('산 자'가 아닌)임을 깨달아("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죽은 자"ㅡ골 3.3) '영생(아담의 범죄 전 상태)'에 들어가는 날만 학수고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마 7.21) 하루 24시간이 되도록 주님의 경고 말씀대로 "힘써야" 하는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하셨기 때문이다. 당장 여러분은 반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 받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고. 답은 아주 간단하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은 세상 불신자 상대가 아니라 교회 상대다. 우리의 '구원 받음'은 그러한 '교회'의 일원/一員 즉 "하나님 백성"(계 18.4)이 되고자 함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어 그 "몸"된 교회의 구성원 개개인은 지금 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세상 사람들처럼 멸망의 대상이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요 5.24) 때문이다. 단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말씀을 소개한 요한 사도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요일 3.14)고 명백히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머물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5)고도 잘라 말한 것이다. "형제"라 했으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다시 말해 성령 받은 자이나 그 자유의지를 따라 순종하지 않는 위치에 있어 회개 않는 한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는 삼엄하기 짝이 없는 경고의 대상이다. 이와 같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이지 단순한 가상 이론이 아닌 것이다. 사탄의 속임수 바벨론 신학은 우리의 "구원 받음"을 마치 무슨 <회수/말소 불능의 천국 입국사증(비자)>인 양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새 창조다. 무릇 창조는 모름지기 "언약"과 "계명"이다.

아담은 이 "언약을 어겼으니"(호세아 6.7) 용을 비롯한 영물들도 동일하게 어김으로써 악령들로 풀린 것이다. 언약(약속)을 어김은 필연적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음 즉 자기 증심으로 끝나고 이것이 범죄 행각인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눅 22.20)이라 하셨고 또한 "새 계명을 준다"(요 13.34)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15.10) 것이라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도 부자/父子지간으로서 동일한 언약과 계명이시니 "독생자"(1.14/3.16,18/요일 4.9) 예수님이시기 때문.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분명히 하셨으므로(14.28) 파생자(낳으신 분)와 피파생자(낳아지신 분)로서 그리고 "크심"과 "작으심", "아버지" 와 "아들"로서의 "짝"(이사야 34.16)이신 것이다. 

21세기 세기적 선언

3운법칙은 인간 생애를 철통 같이 관장 주관하는 원리다. 그 위에 또 더 있다. 인간 생애가 이같이 통제되는 것이 무엇 또는 누구 때문 인지를 완연히 드러내는 그 증거까지 구비하고 있다. 다시 말해 언제 그것이 정해졌고 또 왜 정해졌는지 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