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24일 월요일

적그리스도에 대처해야 하는 이 때는 "집교회" 시대

주님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시"(마 11.27)는 <하나님이 알게 해주심으로써 알게 되는 직관/直觀>에 속합니다. 필자가 "상보성원리"나 "양자역학"을 부지런히 강조해 오는 것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에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 .7/계 12.14)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상반/相反이 상보/相補" 또는 "상합/相合"이라는 의미의 도식/圖式도 그 문자화/文字化인 "한 때, 두 때, 반 때"도 그 때문. 이 21세기에 드러나지게 될 상보성원리를 일종의 언어 기교/技巧로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아래 그림), 필자는 이것을 모든 이론에 두루 통하는 도식/圖式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 가장 으뜸가는 예가 3운법칙입니다. 그 얼개(structure, 구조) 자체가 바로 그런 꼴(형태)을 직접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니 고로 "만물(만유)의 구조 도식"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오늘날 "마지막 때" 이 21세기를 겨냥한 것이 다니엘서(7.25/12.7) 및 요한 계시록(12. 14) 예언일진대 이 "한 때, 두 때, 반 때"("a time, times, and an half" KJV)라는 표현이야말로 오늘의 이 현장을 가리킴이라 해서 결코 지나친 말일 수 없습니다. 이 "3위1합의 "1합"에서는 "교차 소유"가 그 생명, 핵심입니다. 이는 인간 삶에서뿐만 아니라 물리법칙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으니 "양자 얽힘"이 바로 그것으로서 "얽힘"이 확정되자말자 곧장 "상반/相反" 현상이 지체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3위1합)를 말하건대 성경은 처음부터 "독생하신 하나님" 관련해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요 1. 14,18/3.16,18/요일 4.9). 따라서 부자지간 두 분 하나님이 분명하신데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 하셨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과 더불어 살피면 윤곽이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석한 적이 없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바로 눈 앞이라 이미 오래 전에 100% 만족할 대답이 나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과연 나타나 있습니다. 다름아닌 '3위1합'의 도식으로서! 미래의 특정한 때를 겨냥하는 예언은 실제로 그 때가 오기 전에는 누구도 그것을 상상조차 못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때가 마침내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한 때, 두 때, 반 때"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3위1합(종전의 '삼위일체')"을 가리킨 것으로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3위1합"을 만유의 기본 대법칙으로 정하셨다는 그 확증(이제까지 필자가 누차 설명해 온 대로)인 것입니다. 비단 물리법칙에서만 아니라 전지구적 우주적으로 그러하다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이 "한 때, 두 때, 반 때"로써 구현된 "3위1합" 도식/圖式은 상보성원리만 아니라 모든 것에도 적용되어 마땅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와 더불어 "3위1체"가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고, "둘(상반/相反)"이시면서 "하나" ("상보/相補" 또는 "상합/相合")이시니까, "둘"에다가 "둘로서의 하나"이시라는 그 색다르신 면모를 보태면 "셋"이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부자지간 아버지와 아들로서 계시는 하나님이 또한 "하나"로 계시니까 정녕 '3위/'이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요 17.10)이라 하셨으니 바로 "교차 소유"입니다. "1합"이 되는 '요건'이요 그 '결과'입니다. 고로 "3위1합('삼위일체')"은 아버지와 아들로 계시는 하나님이 '교차 소유'의 "1합'' 즉 "하나"(10.30)로서 계심을 의미한다는 결론입니다. 


만유가 다 이 법칙으로 작동되므로 따라서 우리 구원도 예외일 수 없어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영"(고전 6.17)됨이 우리 구원인 바 반드시 "교차 소유"로 마무리되게 마련이라 따라서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예컨대 로마서 7.24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결단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 지음"과 연결 지으면 그것은 "바벨론"(계 18.4)입니다. 21세기 "천사의 복음"(14.6)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하나"(요 10.30)되어 계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 죽으심이 자기의 죽음이 되어 있는데 어찌 "죄의 몸"(롬 6.6)이 "멸해지지"(:6) 않고 아직 그대로 있어 죄를 범한답니까! 주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면 "성령으로 다시 난"(요 3.6) "새 창조"(고후 5.17)라 <하나님께서 죄 짓는 인간을 창조>하실 리 만무한 것입니다. 죄로 엎치락 덮치락할 인간이라면 아예 그런 것을 "창조"라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믿읍시다. 바벨론의 함정에서 벗어납시다(계 18.4).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마 1.21), 아담의 죄로부터서의 구원이니 아담을 인해 신령한 몸을 잃어("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ㅡ롬 3.23) 이런 어처구니 없는 동물성 육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구원의 확실성을 삼위일체(3위1합)와 결부시켜 지금까지 상세히 설명했으니 확고한 믿음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찬송하면서 기도와 말씀 전파에 힘쓸 일입니다. 믿는(구원된) 자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니 피차간 대하기를 주님 대하듯 하여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섬기는"("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ㅡ눅 22.27) 자세, 목회자는 그 본보기(벧전 5.3)가 되는 자세로 일관할 일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 하시는 이 "천사의 복음"(14. 6) 시대의 비상 국면에서는 북한교회를 본받아 교회당, 성직자(목사) 등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나안" 신자로 남아 있지 말고 가정에서 모이는 "집교회"(골 4.15/빌레몬 1.2/고전 16.19)를 <반드시> 운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자살 행위가 됩니다. 북한교회처럼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이 적그리스도에 대처하는 때는 여러 가지 정황상 집교회 시대이어야 합니다. 교회당 건물을 구비해 있어도 집교회 형태로 변형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명 의식이 있으면 누구나 목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 바울 사도의 교회 운영 지침 따라 여성은 제외되니 순종해야 합니다(고전 14.34).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서 남자인 아담이 먼저였고(11. 3) 범죄 행위에서는 여자가 먼저였던 것입니다(딤전 2. 11-14). 그러나 이 구별은 동물성 육체의 때에만 그러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정상 상태에서는 성별 자체가 멊어집니다.


아담 범죄로 세상이 "죽은 자"가 됨의 의미는 이런 동물적 육체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양상마저 바꿔 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악령 사탄이 이 세상을 압제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고스란히 사탄에게 넘겨진 까닭입니다(눅 4.6). 그는 인간의 "원수"(창 3.15)라 해악만을 일삼기에 인생들에게 복음(복된 희소식) 심지어 우리 주님까지도 "부끄러워하도록"(막 8.38) 만들고, 핍박 받게 하고, 세상에서 행세하지 못하게 꼼짝없이 만든 것입니다. 이는 주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이기에 그 반대급부로 받는 크나큰 영광이 따르게 마련이라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룸이니"(고후 4.17).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자녀이면...후사(상속자)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롬 8.17).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나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다"(마 10.39).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21세기 "마지막 때" 만인을 위한 "三生萬物/삼생만물"의 과학

"바벨론 탈출"(18.4)의 엄중하신 분부가 내려져 있는 21 세기 "천사의 복음"(14.6) 시대로서의 이 비상한 때, "삼위일체"(3위1합)가 소상히 밝혀지고 있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새롭게 듣고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시는"(눅 1.4) 하나님 은혜입니다. 이런 중요성에 비추어 비록 이전에 언급했던 되풀이지만 도덕경 42장 첫머리 25어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관련 요점을 우리는 항상 마음에 새겨 둘 필요가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 문구가 "三生萬物"입니다. 다름아니라 "만유의 기본 법칙이 바로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3위1합"이라는 의미인데 오늘날 상보성원리, 양자역학으로 명백히 투영되어 있기에 이 사실을 우리가 "마지막 때" 복음 전파 차원에서 널리 알릴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미리 아시는 하나님이시기에 또한 미리 정하시므로 이 노자 도덕경도 예외일 수 없어 그 일환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된 것이며 특정 지식인 상대가 아니고 만인 상대밈을 감안할 때 이 25언은 소중한 것입니다. 중에서도 요긴한 대목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그 많은 학자(연구가)들이 이 "道生一"에서의 ""가 도대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매달리고 있지만 그 확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에 있습니다. 바로 이 점이 도덕경과 노자의 성격을 180도 돌려 결정 짓는 일대 전환점을 이룬다 하겠습니다. 성경적으로 말하면 "숨겨져" 있다가 드디어 나타나기에 이른 것입니다. 다시 말해 때가 와야 비로소 그 비밀이 풀려지는 "봉함"(단 12.4)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성경도 아니고 예언서도 아닌데 그게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노자 자체가 그 출생, 사망년도가 감춰진 '신비'이며 이상 25언의 핵심이 三生萬物에 있고, 뿐아니라 지금까지의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삼위일체"(3위1합)가 만물을 어찌한다는 소리를 내어본 역사가 전무하기에, 성경은 아니나 성경에 준하는 <무엇>이 필시 "있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어 그렇습니다. 바로 이 점에서야 비로소 이 25언은 청산유수로 풀어지게 됩니다. 즉 道生一은 "하나님이 창조를 시작하셨다", 一生二는 "자기 형상으로서의 독생자 하나님을 먼저 낳으셨다"(창조의 시발점/始發點으로서 그래서 독생자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시게 되지만), 二生三"부자지간 짝으로서의 두 분이시나 최초의 '언약과 계명'으로써 '삼위일체(3위1합)'를 이루셨다", 三生萬物은 이 "3위1합"을 만유 창조 및 운용의 기본 원리로 정하셨다",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는 모두가 아는 대로의 음양론인 것이니 다시 말해 이 노자 도덕경이야말로 가장 완벽하고도 가장 짧고 간결한 음양론 정의/定義라 할 것인데, 이 정도이면 이상 모든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단정 짓지 않을 수 없다는 여기에 초점이 맞춰지게 됩니다. 그래서 노자를 멜기세덱의 변신이라는 결론에 주저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 주님 다시 오시는 때 거의 모든 비밀이 밝혀지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새로운 사실 중 하나라 하겠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믿을진대 멜기세덱을 믿지 않을 수 없는 바, 정황상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으니"(고전 15. 20), 그 '<둘째 열매>'가 곧 그 전신/前身이 아담이었던 멜기세덱으로 귀결되는 것니다. 성경상으로 아담은 죽었은즉 더 이상 "아담"이 아니나 아담이 부활한 그 후신/後身으로서의 이름이 멜기세덱인 바, 엄연한 현존 인물 중 하나로 노자로서 변신해 있었다 해서 사리에 어긋난다 할 수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는 악령 사탄처럼 고의적인 것이 아니고 "여자"(딤전 2.14)로 인한 운명적인 것이기에(:14) 그러합니다. 고로 "道生一,一生二,二生三,三生萬物. 萬物負陰而抱陽,沖氣以為和."는 천사가 아니고는(천사가 이런 일에 개입될 리 만무하고) 인간이 할 수 있는 말이 아니며 따라서 인간일진대는 멜기세덱 외에는 달리 없다는 결론입니다. 바꾸어 말해 어떻게 얘기가 엮어지든 "三生萬物"이란 사자/四字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이 명백해진다는 점에서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설명해 온 "3위1합" 관련 해설과 완전 일치하는 내용인 것입니다. 도덕경의 노자로 변신한 멜기세덱이니 그리스도 우리 주님 다음으로 부활한 유일한 인물이라 하겠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마지막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지마는 여기서 유일하게 독보적인 존재가 멜기세덱인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는테 먼저는 첫 열매이신 그리스도요" 그리고 연이어진 것이 그 둘째 열매로서의 멜기세덱(아담의 후신), 그 "다음이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고전 15.22)의 순서이기에 그러합니다. 이 멜기세덱은 현재 신령한 몸이기는 하지만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은 자"들이 그 부활의 신령한 몸으로 누리게 되어 있는 삶처럼 <전폭적>이지는 않고 아직은 <제한적>이라 단지 그 무대가 하늘이 아닌 땅 위로만 국한되어 있는 양상만 다르다 하겠습니다. 그렇기에 <노자 역할>도 할 수 있는 것. 


시 말해 멜기세덱의 부활은 자기 전신이 왕년의 아담이었다는 사실에 있지 않고 오직 "마지막 아담"의 죽으심과 그 부활하심에 근거를 둔다는 명백한 사실입니다. 멜기세덱 자신도 오직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아야 하는 피조물 중 하나이니까.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사실상 "마지막 마담"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가 첫 사람 아담의 육체를 입고 있는 것처럼 "마지막 아담"의 영(성령)을 내 안에 영원 불가분으로 모시고 있음이니 나는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됨이 우리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어 계심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때문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 (마 25.45)이라 하셨으니, 그 "지극히 작은 자 하나"의 모습이 "3위1합" 원리의 "1합"에 따라 동시에 주님 자신이신 까닭입니다. 모두가 예외없이 주 예수님을 모시고(소유하고) 있으니 이것이 완벽한 만인 평등인 것입니다. 서로가 서로를 대하기를 주님 대하듯 하니까 온 누리에 화평과 기쁨, 희락뿐입니다. 이것이 이상향적 삶인 것입니다. 오직 홀로 머리되시는 주님 한 분만이 계시고(그 위로는 아버지 하나님) 그 외엔 모두가 다 <한 몸>의 지체들이기에 그러합니다. 세상 그 어느 종교도 이 완벽한 삶의 구도를 모방할 수 없습니다. 거짓이 진실을 모방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 종교가 많은 것은 세상을 지배하는 악령.사탄이 인생들을 속여 멸망길에 들어서도록 일부러 지어낸 속임수 짓거리일 뿐이니까. 


"3위1합"의 "1합" 핵심이 "교차 소유"에 있음을 명심합시다. 갑은 을의 소유, 을은 갑의 소유인 것입니다. 주님과 나의 이 교차 소유에서 주님은 나 위해 자신의 전부를 다 바치신 것입니다. 나 위해 죽으신 뒤 스스로 살아나신 것이 아닙니다. 먄일 그러하셨다면 그 죽음은 거짓이게 마련이니까. 자기가 자기를 위함이 되는 자기 중심이니까. 아버지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우리와(나와) "1합"이 되시기 위해 죽으셨지만 이미 아버지와 "1합"이 되어 계시는 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이 태초 "1합"은 "언약"과 "계명"에서 설명한 그대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세계는 빈 틈 없이 짜여져 있습니다. 이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 악이요 불법, 불의, 범죄인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죽은 자"(마 8.22)로서 새로 창조되고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이니 따라서 "죄에서의 구원"(1.21)이라 구원된 자는 다시는 "죄 짓지 못함"(요일 3.9/롬 8.1,2)이 핵심입니다. 죄를 짓는다면 아직도 구원되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함입니다. 로마서 7장24절을 그리스도인의 직접 체험이라 생각하는 이들은 마땅히 각성해야 합니다! 바벨론 사탄에 매여 있다는 증거이니까! 어거스틴, 루터, 깔벵 그 이상의 이상이라도 그들은 "다른 복음, 다른 예수, 다른 영"에 불과하니까! 바로 그런 것이 "탈출해야 할 바벨론"(계 18.4)입니다. 그 근거는 명백하고도 남습니다.   

주님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받아모신 이마다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된 것이므로 이 3위1합에서는 "교차 소유" 즉 "교차 삶"이 핵심이고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자기 중심이 아닙니다. "죄를 잉태하는 것은 욕심"(약 1.15) 즉 자기가 자기를 위하는 모든 욕구인데 자기를 위하지 않는 삶에 무슨 그런 악한 "욕심"이 생기나요? 주님과 합해 주님의 죽음이 내 죽음이라 내가 죽었는데 무슨 내가 또 있어 시퍼렇게 살아 그 욕심을 부린답니까? 말로만 믿는다는 것뿐이지 실제로는 믿지 않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스스로의 믿음을 정직하게 점검하시기를! 성령 받아 주님과 "합해 한 영"이 되면 반드시 "교차 소유"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원인이 있으니 결과가 있게 마련이고 결과가 없으면 원인도 없다는 증거입니다. 감사와 기쁨, 평안 중의 교차 삶, 가장 이상향적 삶인 것입니다.




적그리스도에 대처해야 하는 이 때는 "집교회" 시대

주님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시"(마 11.27)는 <하나님이 알게 해주심으로써 알게 되는 직관/ 直觀>에 속합 니다. 필자가 "상보성원리"나 "양자역학"을 부지런히 강조해 오는 것도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