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14일 화요일

주님과 한 영(고전 6.17)으로 연합하여 있는 나

주님께서 몸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심과 똑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으로서는 지금 우리 각자와 함께 마치 사람으로 계시는 것처럼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 계시니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하나"(요 10.30)이시기 때문입니다.  무식한 사람들은 아버지 하나님이라 하셨으니 "어머니 하나님"도 당연히 존재해야 마땅하다며 마귀 노릇을 하지만(이렇게 말함이 마땅한 것은 이런 언사는 성령으로 말미암으면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ㅡ왜냐면 주님 친히 "아버지"라 하셨으니 그대로 수용하면 되므로) 첫 사람 아담을 기준하는 모든 표현이기에 그런 것. 아담은 남성이니까. 그냥 "어버이"라 해도 무방하겠지만 인간은 성별이 있기에 더욱 어색하므로. "<아버지 품속의 독생하신 하나님>"(요 1.18)이시라 했으면 충분한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하면 더 이상 성별이 없으니까(눅 20.35). 동물적 육체가 됨으로써의 성별인 것입니다. 신령한 몸은 초자연계 몸의 초능력다운 아담의 자식 생산 방법이 있는 것이었습니다. 동물적 육체의 낙이라고는 단순하고 기계적이라 식욕과 성욕뿐이나 신령한 몸의 쾌락은 한낱 "몸"에만 한정되지 않는 영적ㆍ정신적인 것을 총망라하는 무궁무진의 다양성인 것은 당연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마 16.28)가 비록 잠시 잠깐이나마 전개됨을 본 베드로가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으니 초막 셋을 짓고 있습시다" 란 말이 부지중 튀어나온 것도 그 단적 증거입니다. 디 엘 무디(1837ㅡ99)가 성령의 세례를 받을 때 "사랑의 파동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순간 그는 도저히 견디지 못해 "주님, 이러다가는 제가 죽습니다. 멈추어 주십시오!" 하는 간청이 터져 나왔고, 찰즈 피니(1792ㅡ1875)도 처음 믿음의 결단을 내렸을 때 그렇게 숲속에서 장시간 기도하고 자기 사무실(변호사)에 돌아와 홀로 앉아 있는데 "사랑의 파도(무디와 같은 표현)"가 물결쳐 오듯 밀려들었다고 합니다. 피니의 경우에는 이 때 주님께서 문자 그대로 옆에 서 계심을 느꼈고 피니는 그 발 앞드려 지난 날의 모든 죄를 낱낱이 자백하며 어린 아이처럼 목놓아 울기 시작했다는 것. 물론 사람마다 그 표현과 체험이 다릅니다. 주님은 우리 각자 앞에 계십니다. 이것만은 불멸의 진실입니다. 성령으로.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2026년 4월 13일 월요일

여성 생애 3운법칙(한국서 22년간 봉사한 서서평 미국 선교사)

 










여성 생애의 3운법칙

프랑스의 18세 소녀 잔 다아크는 13세 때 "신의 음성"을 듣기 시작할 때부터가 활동기 개시.
스웨덴 오페라 가수로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끌어 모았고 자선사업에 기부도 많이 했으나 독실한 자기 
신앙생활에 지장이 된다 하여 그 화려했던 무대를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뛰쳐나올 때부터가
놀라지 말라, 그 활동기(LP) 시작이었으니! 더욱 놀라운 것은 역사상 그와 똑같은 사례가 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이효봉 선사. 일제의 국권 침탈 시대에 판사로 재직 중 한 독립운동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후 번민 끝에 법복을 벗어 팽개쳐버리고 엿장수가 되어 전국 방랑을 시작한 그 시점부터그 활동기가 시작되었음을 그의 파쇼모(3운법칙) 생애 도표가 정확히 지적해내고 있는 것이다. 
(여성 생애 3운법칙 적용 사례를
여기에 가끔 올려 놓겠습니다.
위 제목에 분석 여성의 이름을 올려 두겠습니다.)




서서평 (Elisabeth Shepping, 1880~1934
ㅡ54세에서 3개월 모자람)
• 독일계 미국인 선교사. 
어린 시절 부모에게 버림받아 트라우마.
• 조선 와서 서구 생활 완전 포기, 무명 저고리·고무신 신고, 월급 전부를
 가난한 이·한센병 환자·고아·창녀들에게 씀.
• 유품: 동전 2개 + 찢어진 담요 반쪽. 장례식엔 천대받던 사람들이 통곡.
• → “성공이 아니라 섬김”이라는 문구처럼, 부와 명예 포기하고 무상·고뇌 속 헌신한 삶.

셰핑은 간호사로서 유대인 요양소, 이탈리아 이민자 수용소 등에서 봉사활동을 하였으며 간호전문학교 졸업후 미국 브루클린주 이시병원에서 근무했다. 1904년 뉴욕 성서교사훈련학교의 여행자를 돕는 선교회(Traveler's Aid Missionary)에서 1년 동안 봉사하였다.
간호사로서 셰핑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치료하려는 선교사로서 간호, 신학, 교육에 대한 지식을 결합했다. 신학교에 다니던 중, 그녀는 한국 병원에 간호사가 절실히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는 결국 그녀가 32세 때 미국 남장로교회 선교회에 합류하여 조선으로 가기로 결심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이 시기에 한국은 2년 전인 1910년에 일본 제국이 한국을 점령했기 때문에 불안정했다. 정부와 대부분의 사회는 약자들을 더욱 방치했다. 그 결과, 구걸하는 사람, 한센병 환자, 병든 환자의 수가 증가하여 굶주림과 질병으로 사망했다. 셰핑은 그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도움을 주고 싶었다. 1911년에 지원했고, 1912년 2월 20일 32세에 선교 여행을 떠나 여생을 그곳에서 봉사하는 데 바쳤다.
간호
1912년부터 1934년까지 셰핑은 광주, 군산, 부산, 서울 등 한국의 여러 지방에서 일했다. 특히 셰핑은 "여성, 과부, 고아, 한센병 환자 등"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을 돕기 위해 노력했다. 셰핑은 간호 활동에 가장 큰 우선순위를 두었다. 한국에 도착한 후, 그녀는 광주제중원, 구암 예수 병원, 세브란스병원, 그리고 한국의 다른 병원들에서 일했다. 간호사로서 그녀는 간호사들을 훈련하고 감독하는 책임도 맡았다. 셰핑은 한국에서 건강과 교육을 증진하기 위해 많은 간호 교과서를 출판하고 번역했다. 그녀가 저술한 간호 교과서 중 일부는 간호 교과서, 실습 간호 연구, 간호 지침서, 단순 위생법 등으로 번역되었다. 그녀는 1923년 조선간호부회(현 대한간호협회)의 설립자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10년간 회장으로 재직, 대한간호협회의 국제간호협의회 가입에 성공했다.
교육
간호 외에도 셰핑은 교육을 매우 중요하게 여겨 한국에 학교를 설립했다. 예를 들어, 셰핑은 한국 최초의 여성 성경학교인 '닐'성경학교를 설립했는데, 한때 매년 3~4만 명의 여성을 교육했다. 이 학교는 나중에 한일장신대학교로 알려지게 되었고, 오늘날까지 운영되고 있다. 설립부터 그녀의 사망까지, 셰핑은 이 학교에서 5~6과목을 직접 가르쳤다. 그녀가 다룬 주제 중 일부는 읽기, 쓰기, 찬송가, 성경 교육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 전체에 질병이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의학과 간호도 포함되었다. 교육을 장려하는 동안, 셰핑의 주요 헌신은 여성들을 기독교로 교육하여 효과적인 성경 여성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또한 셰핑은 '이일'이라는 여성 학교를 설립하여 여성들이 스스로를 부양하고 생계를 꾸리는 방법을 가르쳤다. 셰핑은 누에를 키우고 여성들에게 바느질 방법을 교육하여 학교가 자립할 수 있도록 했다. 낮에는 교사였지만 밤에는 전도 행사를 열고 여성들을 전도사로 훈련시켰다. 이를 통해 여성들은 기독교인으로서 더 강한 정체성을 확립, 성경을 전파하는 데 힘을 얻었다.
한국 문화에 동화하기를 힘써
다른 많은 선교사들과 달리, 셰핑은 한국 문화에 적극적으로 동화되려고 노력했고 자신을 한국 사람들과 동일시했다. 셰핑은 자신이 봉사하는 공동체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이는 그녀가 일상생활을 영위하는 방식에서 증명된다. 그녀는 전통 한국 의상을 입고, 한국 음식을 먹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말했으며, 한국의 풍습, 문화, 신념을 따랐다. 어떤 사람들은 셰핑을 "한국인보다 더 한국적인 외국인"이라고 불렀다. 셰핑은 한국에서 매우 검소한 삶을 살았다. 그녀는 34명의 가난한 과부들과 함께 살았고, 13명의 딸을 입양했으며, 된장국과 보리밥만 먹고, 함석 지붕이 있는 흙집에서 살았다. 이는 자신이 봉사하는 공동체와 분리된 호화로운 저택에서 살았던 선교사들과는 대조적이다. 또한 셰핑은 자신의 이름을 서서평으로 바꾸고 일본이 한국어 사용을 금지하는 정책을 수립했을 때도 오직 한국어로만 다른 사람들과 소통했다. 셰핑은 1934년 사망할 때까지 22년간 한국에서 봉사했으며, 영양실조로 사망했다. 그녀의 마지막 말은 자신의 시신을 세브란스병원에서 해부용으로 사용하라는 것이었다.
유산
셰핑은 미국 남장로교회 해외선교부에서 "위대한 선교사 7인"으로 선정되었다. 그녀는 광주에서 흡연, 음주, 매춘에 대한 금지 운동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셰핑은 닐 성경학교(앞서 언급)와 같이 그녀가 설립한 학교에 다니는 여성들에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 시기에 대다수의 한국 여성들은 문맹이었고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지 못했다. 여성 교육은 제한적이었고, 셰핑은 한국 여성들에게 배우고 성장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이러한 격차를 해소하고자 했다. 닐 성경학교는 그 지역의 여성 교육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곳을 졸업한 많은 여성들은 계몽 운동과 신여성 운동의 선구자였다. 셰핑은 여성 교육과 문해력을 증진함으로써 여성 계몽의 사심 없는 선구자로 여겨졌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었던 김모임은 셰핑을 "한국 여성운동의 선구자이자 사랑의 제자인 나이팅게일의 진정한 후예"라고 평가했다. 2017년에는 그녀의 봉사하는 삶을 다룬 기독교 다큐멘터리 영화 "서서평, 천천히 평온하게"가 개봉되었다.
(이상 전문, "서서평" 관련 인터넷에서 옮겨 옴)


이 서서평 선교사는 FS(아브라함형)에 해당되어
활동기가 30년(53×4/7)입니다. 생애 연보가 약사이기에 자세하지 않아 언제부터가 활동기 개시인지는 불분명하나 이전의 카톨릭 신앙을 버리고 장로교회 나가는 동료 간호사 소개로 "큰 깨우침을 받았다" 했고 그 후에 의료 전도와 선교에 관심이 깊어졌다 했으니 그 때부터인 것만은 확실합니다.



주제는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뿐

무엇보다 중요한 자녀 양육에 공을 들여야 하는 여성의 생애는 남성에 비해 대외적 활동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파쇼모 생애 도표상으로 드러나는 그 형적이 뚜렷하지 않다는 특점을 지닌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독신으로서 특정된 일에 몰두할 때는 당연히 그 윤곽이 선명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율곡은 신사임당의 4남3녀 중 셋째였고 맞딸은 어머니처럼 모든 면에 출중했다는데 그러나 율곡울 낳을 때부터 신사임당의 활동기(LP)가 시작되었음이 드러나 그 특징을 이루고 있다.

프랑스의 18세 소녀 잔 다아크는 13세 때 "신의 음성"을 듣기 시작할 때부터가 활동기 개시.

스웨덴 오페라 가수로 명성과 부를 한꺼번에 끌어 모았고 자선사업에 기부도 많이 했으나 독실한 자기 신앙생활에 지장이 된다 하여 그 화려했던 무대를 미련 없이 훌훌 털어버리고 뛰쳐나올 때부터가 놀라지 말라, 그 활동기 시작이었으니! 더욱 놀라운 것은 역사상 그와 똑같은 사례가 또 있다는 것이다. 바로 우리나라의 이효봉 선사. 일제의 국권 침탈 시대에 판사로 재직 중 한 독립운동가에게 사형 선고를 내린 후 번민 끝에 법복을 벗어 팽개쳐버리고 엿장수가 되어 전국 방랑(한 3년간)을 시작한 그 시점부터가 그 활동기 시작이었음이 그의 파쇼모(3운법칙) 생애 도표는 정확히 지적해내고 있는 것이다. 뒤에 승려가 되는 그 때부터가 아닌 것이다. 이 3운법칙을 파쇼모 즉 "신의 법칙"이라 하는 이유다. 점복(점술)이 아닌 것이다. 이런 놀라운 현상이 나타나기는 유사이래 처음이다. 창조주 하나님, 성경의 하나님 증명인 것이다. 주님 다시 오시는 이 "마지막 때"에나 나타날 수 있는 "표적과 기사"(요 4.48)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바벨론에서 시급히 탈출하라는 명령을 내리셨고(계 18.4) 새삼스럽게 "천사가 가진 복음"의 등장이라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 주시는 것과 정확히 맞물려 있어 설레는 가슴을 진정할 수가 없다. 하나님이 계신다는 증거 중 하나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그런 삶울 살았는지 아니면 그 둘이 그렇게 될 줄 아시고 그렇게 일정 규격에 맞추어 주셨는지 도무지 영문을 알 수 없는 <신비> 그 자체다. 



제니 린드는 18세가 되던 1838년에 데뷔하고 
11년 후인 1849년 29세에 무대를 떠난다. 
그 때부터가 그 생애의 활동기. 
일반적 개념과는 완전 거꾸로다. 
그 스스로가 기꺼이 무대를 버려 
후련하다는 듯 
털고 나왔기 때문이다. 
이런 것이 3운법칙을 
주저 없이 하나님과 결부시키는 
확실히 근거 있는 이유이다. 
인생들이여, 시끄럽다. 
여러 소리 말라. 
하나님 계시는 것 
하나만 알아도 족하다.
하나님 말씀 듣고 
영생 길만 찾으라!
그것만이 이 세상에서 숨 쉬고 있는
유일한, 오직 한 가지 이유이니까!
그리스도인들이여, 이 사연을 
주변에 널리 알려라!
혼자 영생하리라고는 
꿈에도 마음 먹지 말라!
전도하지 않는 자에게 영생은
아예 해당하지를 않으니까!







2026년 4월 11일 토요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나 죽음의 세상이라 생명은 아직 맛보지 못함의 분별력이 필수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하늘에 속한(이 땅에 속한 것이 아닌) 것을 시종일관 동경하며 추구하여 <생각하는> 나날이어야. 이는 우리가 <죽었고> 우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음>이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 비로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게 되어 있음이다.


그러므로 이 땅, 이 세상에 속한 욕구 곧 음란, 부정, 사욕, 악한 정욕, 탐심(탐심은 우상 숭배)을 "죽여야"(마음에 일어나는족족 뭉개버리고 지워버리고 묵살해치워야). 이런 욕심("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ㅡ약 1.15)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시니까. 이전에 믿지 않을 때는 그렇게 "산답시고 살았지만" 지금이야 아니지 않은가. 이제는 분, 악의, 훼방놓는 것, 입의 부끄러운 말, 서로 거짓말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벗어버려야. 즉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것이니 이는 나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그대로 닮는 전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로서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다.

오직 그리스도께서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시는 자답게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으로 옷입고 누가 누구에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심과 같이 그리 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해야.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인 것이다.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을 주장하시게 해야. 평강을 위하여 우리가 <한 몸>으로서의 부르심을 받았으니 또한 우리는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그리스도 우리 주님의 말씀이 우리 속에 풍성하게 되어(이는 성경을 부지런히 가까이 함으로써 되는 것)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또한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을 찬양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며 주님을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해야(골 3.1~15)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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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생명>은 그리스도이신데 이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으니까 우리가 <죽었다>고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생명은 생명이고 그 외 달리 무엇이 아니니까 생명이 감춰져 보이지 않는 판인데 그 어떤 것이든 이런 상황에서는 생명이란 것이 존재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생명이 감춰져 보이지 않으니 오직 보이는 것은 죽음뿐인지라 당연한 최종 결론입니다. 달리 다른 그 무엇도 있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아주 잘못되게 세뇌되어 온 것입니다. 온통 죽음인데 마치 생명인 양 크게 착각해 온 것. 이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부터가 화급합니다. 그런 착각 속에 더 이상 머물러 있다가는 생명 관련 모든 희망마져 안개처럼 날려버릴 위험이 있으니까!

주님께서 나타나셔야 그 때 비로소 우리도 그와 함께 영광(생명의) 중에 나타나게 되어 있음입니다. 이것 아주 중요한 과제이니 깊이 명심합시다. 죽음을 생명으로 보는 이런 영적 착시는 필연적으로 정작 생명을 생명 아닌 다른 무엇으로 착각하고야 마는 비극으로 십중팔구 끝나게 마련이라 그렇습니다. 죽음의 냄새, 이 세상에 꽉 차 있는 영원한 불 못의 냄새를 맡읍시다.



2026년 4월 9일 목요일

다시 정리하면 (3)

"미시세계에서는 양자역학, 거시세계에서는 3운법칙"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완벽한 '트리니아'(trinia, 3위1합 또는 3위1체)가 미시세계와 거시세계를 총망라해서 일관되게 관장하고 있다는 증거이니 곧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확실하게 증거하는 것이다. 이 이상 더 무엇을 말하겠는가. 우리의 구원도 당연히 바로 그 이치대로다. 즉 각자가 저마다 주님과의 개별적인 짝(대칭)을 형성하여 그 "하나"됨에서 이루어지는 "합1" 또는 "1합"의 놀라운 은혜인 것. 이런 구조에서는 다시 강조하지만 한결같이 "교차(맞바꿈) 소유"가 핵심이다. 너의 것은 내것이 되고 나의 것은 네것이 되고. "자기" 것은 단연코 용납되지 않는다. 어떤 경우에서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언약"과 "계명"으로써 생명세계를 시작하신 것이다. <약속>이라 함은 "내가 너를 위해 줄 터이니까" 하심에서 비롯된다. 다음에 오는 것이 당연히 명령 곧 "계명"이니 "그러므로, 너는 네 자신을 위할 생각을 품지 말라. 추호도."이신 것이다. 이것이야 너무나 마땅한 순리가 아닌가.


그러므로 애당초부터 모름지기 그 누구든 간에 "자기 자신" 관련 몫은 없다. 존재하지를 않는다. 이것이 생명이요 삶이다. 존재하지 않는 자기 몫을 억지로 챙기려드는 순간 죄와 악은 그 끔찍하고 흉물스러운 고개를 쳐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가인의 아벨 살해다. 사람 생기자말자 죽이기부터 먼저 시작하는 흉물이자 악물. 그 이름이 "인간". 아담 범죄의 결과물이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 "언약을 어김"(호세아 6.7)이었다. 그래서 그 <죽는 때>만이라도 정해 주자는 최소한의 하나님 응급 조처/수단이 3운법칙(파쇼모, fashomo)인 것이다. 바로 이것이 세상 실상이다. 사람 살 곳이 아닌 것이다. 말 그대로 맹수, 야수들의 세상, 정글의 법칙만이 난무하는 현재의 인간 세상이다. 고로 3운법칙 자체가 하나님의 강력하신 엄중 경고이신 것이다. 이 세상은 결단코 삶의 터전이 아니요 오로지 구원의 현장일 뿐이라는 뜻으로 오늘날 나타내심이다. 그러므로 우리 이야기는 거두절미 여기서 시작해야 함이니 구원 문제부터 곧바로 꺼집어내야 하는 것이다. 3운법칙의 오늘날 외침 그 절규는 오직 "구원!", "구원!", "구원!"뿐이다.





다시 정리하면 (2)

 천년 왕국에서는 범죄하고 회개에 이르는 사람은 생명과만 먹으면 신령한 몸으로 회복되며 "성령으로 다시 나는" 등의 일은 일절 없으니까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일도 더 다시는 없다. 하나님의 아들됨은 이 세대 우리가 주님을 성령으로 모시기 때문에 되는 은혜로서 이 세대만 끝나면 영원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사람이 혹 죄를 짓게 되는 것도 천년 기간에서만 있을 수 있고 그 후로는 영원히 없다. "마지막 심판"으로써 관련되는 모든 것이 종료되기 때문이다. 생명 세계에서는 영원히 생명이고 형벌의 사망 세계는 불 못의 고난 고통뿐으로서 영원한 대칭(짝)이다. 거지와 부자 나사로 비유에서 주님 친히 설명하신 그대로다.


이 세상에서 돈 많은 부자가 영생 길이 차단되는 이유가 고난 고통의 이 세계에서 저 홀로 그 고민을 면해보겠다는 철없는 생각에 젖어 있는 까닭이다. <상대 중심>이 아닌 <자기 중심>이 언제나 모든 일의 화근이다. 삶이란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고 모두가 그 <몸>을 이루어 있음을 의식하는 것이기에. 그렇게 되도록 처음부터 설계하신 것이다. 일부러 그렇게 만드셨다기보다 한(3위1합에 의한 하나이신) 하나님에 의한 창조 자체가 본시부터 그러한 특성을 지니게 마련이다. 아내의 머리는 남편, 남편의 머리는 그리스도, 그리스도 곧 성자 하나님의 머리는 성부 하나님. 이렇게 머리와 몸의 관계를 따라 사물을 조리 있게 관찰하면 만사 모든 이치가 너무나 명료해지는 법이다. 여자가 남자에게서 나는 등 모든 것은 인과 관계에서 일사불란하게 이루어짐이니까.


     "내 마음 그윽한 데서"

1.
내 마음 그윽한 데(에)서 내 마음 그 깊은 데(에)서
생명 샘(계 7:17)이 강물(요 7:38)되어 
흘러 흘러 넘치네
주님 안 '늘 평안'(요 14:27)되어 
주님의 '늘 기쁨'(15:11/17:13)되어
<주님께 노래하며>(엡 5:19) 흘러 넘치네
아아 오늘도 어제처럼 변함이 없는
아버님 품속(요 1:18)에서 강물처럼 흐르네

2.
내 영혼 그윽한 데서 내 영혼 그 깊은 데서
영생수/永生水가(계 22:1,2/요 3:16) 강물되어 
넘쳐 넘쳐(요 10:10) 흐르네
성령으로 거듭 나서(요 3:3,6,8) 주님과 한 영이(고전 6:17) 되어
<주님께 노래하며>(엡 5:19) 넘쳐 흐르네
아아 오늘도 어제처럼 변함이 없이
하나님 은혜 속에 영생수로 흐르네

3.
그대여 주님께 오라 하나님 찬양 드리자
영원하신 어버이님 사랑 노래 부르자
'늘 평안'(요 14:27) 내 평안되어 
'늘 기쁨'(15:11/17:13) 내 기쁨되어
<주님께 노래하며>(엡 5:19) 흘러 가노라
아아 오늘도 어제처럼 다함이 없는
그 은총 강물되어 넘쳐 흘러 가노라 


주님과 한 영(고전 6.17)으로 연합하여 있는 나

주님께서 몸으로는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와 같은 사람이심과 똑같이 하나님이십니다. 고로 하나님으로서는 지금 우리 각자와 함께 마치 사람으로 계시는 것처럼 계시는 것입니다. 주님 계시니 똑같이 아버지 하나님이 계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