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보서 2.23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다" 했습니다. 이사야 41.8에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 역대하 20.7에도: "...주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하나님과의 벗"됨은 아브라함에게만 나타내신 것이 아니고 우리 모두가 누릴 수 있는 "사귐(교제)으로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요일 1.3) 함과 같습니다. 하나님과의 "사귐" 즉 "하나님의 벗"으로서의 아름다운 그 좋은 실례는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에 진노하여 그들을 멸망시키려 하실 때, 모세가 중보 기도하여 그 뜻을 돌이키시게 한 사건의 내용입니다. 이는 출애굽기 32장에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십계명 돌판)을 받는 동안, 이스라엘 백성이 아론을 앞세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고 예배했을 때(.1-6)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진멸하고 모세를 통해 새로운 민족을 이루겠다고 말씀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7-10),
이 때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멸망시키면 애굽 사람들이 "하나님이 백성을 끝까지 이끌어 가실 능텩이 모자라 다 죽였다"고 할 것이니,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약속을 기억해 달라고 간절히 기도한 것입니다(:11-13). 이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어 이스라엘을 진멸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14). 이는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저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 택하신 모세가 그 결렬된 중에서 그 앞에 서서 그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않게 했다"고 시편 106.23에서도 회상하고 있는 대목입니다.<이런 것이 기도의 힘 그 능력입니다>.
모세가 만일 여기서 자기만을 생각했다면 이스라엘을 위한 그런 중보 기도를 드렸을 리 만무합니다. 오히려 자기에게 영광이 되는 일이라 여겨 은근히 그렇게 하시기를 기대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늘 강조하는 바와 같이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그 지으신 모든 사람)의 유익(선)을 위하는 상대방중심(자아중심이 아닌)이어야 하는 것. 모세가 그러했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벗"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