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4일 화요일

거듭남과 세례


거듭남(再生, regeneration)과 세례(물세례, baptism)의 관계는 개신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교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보수적·복음주의 개신교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1. 거듭남의 본질: 성령의 주도적 사역 (믿음으로 받음)
• 거듭남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직접 행하시는 영적 새 탄생입니다. (요 3:3-8, 딛 3:5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
• 이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일입니다. (엡 2:8-9, 요 1:12-13)
• 사람이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 대부분의 개신교(특히 개혁주의·침례교·복음주의)에서는 거듭남이 세례보다 선행하거나 동시에 일어나지만, 세례 자체가 거듭남을 일으키는 수단은 아니라고 봅니다.
2. 세례의 역할: 표징(sign)과 인(sign seal) – 거듭남을 “증거·선포·확증”하는 것
• 세례는 거듭남의 외적 표징이자 하나님의 약속을 확인하는 인(印)입니다. (롬 6:3-4, 골 2:11-12)
• 세례 받는 순간 거듭남이 반드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듭난(믿는) 사람이 공개적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함을 선언하고 교회 공동체에 들어가는 예식입니다.
• 요 3:5의 “물과 성령”은 성령의 정결·새롭게 하심 전체를 가리키며(딛 3:5), 물 자체가 세례를 직접 의미한다고 보지 않고 상징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3. 개신교 주요 입장 비교 (대부분의 경우)
침례교·대부분 복음주의
거듭남 → 믿음 → 세례 (순서: 믿고 거듭난 후 세례 받음)
신앙고백 후 침례
세례는 순종의 행위, 거듭남의 증거. 세례 없어도 구원 가능 (강도에게 예수님 약속처럼)
개혁주의·장로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거듭남은 성령의 사역, 세례는 그 표징과 인 (sign & seal). 보통 동시에 또는 세례 전후
유아세례 가능
세례가 거듭남을 “보증”하지만, 세례 자체가 자동으로 거듭나게 하지는 않음
루터교
세례가 거듭남과 밀접 (baptismal regeneration 요소 있음), 하지만 믿음이 핵심
유아세례
세례의 말씀과 물이 함께 역사
대부분 한국 개신교 (장로교·감리교·성결교 등)
거듭남은 믿음으로, 세례는 공개 고백·입교 예식
신앙고백 후 침례
“세례 받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가 주류
4. 중요한 성경적 예외와 적용
• 강도에게 예수님 (누 23:43): 세례 받지 않았지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 세례가 구원의 절대 조건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 행 2:38 (“회개하라 … 세례를 받으라 … 성령을 받으리라”): 회개·믿음 → 세례 → 성령의 역사 순서로 보이지만, 세례가 거듭남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따르는 것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부분 개신교 관점 요약
• 거듭남 = 성령의 초자연적 새 창조 사역 (믿음으로 받음)
• 세례 = 그 거듭남을 외적으로 증거하고 선포하는 예식 (순종의 행위, 교회 입교)
• 세례가 중요하고 명령이지만, 구원의 본질은 믿음이며 세례 자체가 구원을 주거나 거듭남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고 세례를 받으라”(막 16:16)는 말씀은 믿음이 우선이고 세례는 그 믿음을 따른 순종으로 보는 것이 주류입니다.


이상은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하는 말입니다.
성령께서 누구이신지 모르는 판이니 제대로 설명이 될 리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중구난방 뒤죽박죽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어떻게 가르치는가?

이미 앞서 설명했지만 세례 요한이 강조한 대로 "성령의 세례"가 핵심이요 관건입니다. 주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 명실 공히 "거듭(다시) 나는" 것입니다. 그 전에 반드시 세례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죄 용서가 되고("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ㅡ행 2.38). 고로 순서ㆍ단계가 명확합니다. 즉 회개세례
죄 용서→성령 세례. 왜냐면 죄 용서가 된 깨끗하게 된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이런 급격한 변화는 직전의 회개에 있습니다. 회개가 철저치 못하면 죄 용서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 되니까. 아직 거듭 난 것도 아닌데 단순한 죄 회개로써 죄 용서가 됨은 성령 세례 받기 직전의 특별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다시금 강조하거니와 회개가 이 정도로 중요합니다. 회개가 전체를 좌우합니다. 지금까지는 그 정반대로 일관해 온 것입니다. 사도시대 초대교회 당시는 초창기라 성령이 임하시는 가시적인 확증이 필요했고 필수였습니다. 때문에 방언 말하기, 예언 등이 뒤따랐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성령께서 임하심이 충분히 확인된 후로는 그런 가시적인 증거가 필연적인 것이 아니게 됨은 당연했습니다. 그리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당시처럼 회개를 강조하나요? 위에 소개한 글 내용과 같습니다. 엉망진창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경고 말씀은 한결같습니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18.3).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어 있는" 이는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들은 "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다...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시어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시어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시어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심이니"(고전 1.26-28).

지금이라도 늦지는 않으니 회개하시기를!

2026년 3월 23일 월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4)


이 상대방중심의 삶이 하나님이 애초 정하신 삶의 규범인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언약 위에 세워진 것으로 "내가 너를 위할 것이니까 너는 나를 위하라"는 약속과 함께 명령(계명)을 주셨던 것이며 이는 최초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와 새우신 언약과 계명 바로 그대로입니다. 주님은 그 동일한 것을 우리와 맺으셨으니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라" 하셨습니다(눅 22.20). 바로 이 최초의 "삶의 상호 교차(맞바꿈)"에서 즉 하나님의 언약과 "계명"(요 15.10)에서 최초의 '3위1체'가 시작되었던 것이며, 3위1체는 이로써 만유의 기본 대원리가 된 것이고 이 만유의 법칙을 따라 만물이 창조되었고 지금껏 운영되고 있으며 영원히 그러할 것입니다. 거시세계에서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가 3운법칙으로 철두철미 관장되고 있음이 이 3위1체로 인한 것입니다. 때문에 이 3위1체와 3운법칙은 자연스럽게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이 둘은 충분히 자체 증명이 되고도 남습니다. 다른 무엇이 감히 개입할 여지가 없습니다. 미시세계에서는 여러번 강조하지만 양자역학(상보성 원리)이 그 대표적 예시/例示입니다. 때문에 3위1체의 패턴 그대로이기에, 입자나 파동 둘 중 어느 하나에서 파생된 둘로서 인과성이 있다고 말을 던져보면 과학자들은 극구 부인합니다. 동시에 생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쌍으로서 동시에 출현하는 것은 이 우주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해주어도 듣지 않습니다. 무턱대고 실험을 통한 증명 하나에만 매달리는 그들의 운명적 한계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직관입니다.

이 3위1체 원리는 위에서 언급했듯이 확고한 삶의 방식으로서 유일무이 최고입니다. 3위1체에서만 이야기되는 "교차/交叉 삶"입니다.
영생 구원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 "거룩함"(히 12.14)의 증거 없이는 천국 입국 차단이기에 그같이 단언할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를!
삶은 상호간의 약속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둘만 모여도 전쟁>입니다. 아담 범죄는 "언약을 어김"(호세아 6.7)에 있었음을 명심하시기를!
사랑으로 "하나"됨도 약속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인간 관계도 언약(약속)이기에 "신약"과 "구약"입니다. '언약'과 '계명'으로 시작된 인류사!

여기서 한 가지 지적할 것은 고린도전서 15장 42-45절에서 우리말 잘못된 번역입니다. 즉 고린도전서 15장 47절의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다"는 "하늘에서 났다"로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이 "둘째 사람"은 그리스도를 가리킴이 아니라 "성령으로 난 사람"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42-45절)을 잘 읽으면 "육으로 남"과 "성령으로 남"을 구별하여 설명하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고로 첫 사람 아담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성령으로 남"을 "위에서 났다"는 등으로 말함과 같습니다. 성령으로 남이기 때문이지요.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합니다.



42.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남이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다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셨으니
46.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다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난 것이다
48. 무릇 흙에 속한 자들은 저 흙에 속한 자와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들은 저 하늘에 속한 이와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을 입을 것이다
50.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을 수 없고 또한 썩는 것은 썩지 아니하는 것을 물려받지 못한다
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52. 나팔 소리가 나면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53.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
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을 삼키고 이기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55.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3)



구원 받음은 주님과 "합하여 한 영"(고전 6.17)이 됨을 말합니다. "한 영" 곧 "하나"(요 10.30)가 되는 것은 부자지간이신 하나님께서 "하나"이심과 똑같은 것입니다. 즉 성부의 것은 성자의 것이요 성자의 것은 성부의 것이 되십니다(17.10). 그리고 이것은 성부 안에 성자, 성자 안에 성부께서 계심으로도(10.38) 표현됩니다. 주님과 나와의 관계도 동일합니다. 모름지기 하나님의 3위1체에서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되는 특징은 이같이 같은 이치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죽움과 부뢀이 됨으로써 내 구원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지금까지 그렇게 믿어 온 대로, 그런 의미로 "간주/看做"해서가 아닙니다. 실제 그와 같이 나 위하여 내 이름으로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써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주님과 <합하는> 자는 <한 영>이라"(고전 6.17) 한 그대로입니다. 이제까지 "바벨론 신학"에만 사로잡혀 성령과 3위1체에 대해 전혀 무지무식한 탓에 "대신 죽으심"이라는 천하의 웃음거리만 만들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입니다.

무릇 범죄한 자는 모름지기 당자가 처벌을 받는 것이지 <대신> 무엇이 누구가 처벌 받는다는 것입니까. 이런 천하에 둘도 없는 해괴망측한 거짓말을 지어내게 만든 마귀의 맹랑한 장난질에 놀아나 장단만 맞추어 온 기독교 신학자들, 하나님의 거룩하신 구원의 진리 말씀을 가로막고 한낱 세상의 웃음거리로 만든 거의 2천년간이나 쌓아 온 허물을 다 어찌 할꼬! 하나님의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오직 "계시"(눅 10.22) 밖에 없다 하신 말씀을 비웃고 죽자사자 학문시/學問하더니 거두어들인 결과가 그뿐이던가!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21). 하나님께서 일부러 숨기시는데 이런 기막힐 저주 가운데서 헤어날 수 있나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모이기를 폐하는(말씀을 제대로 전달 않는 장소에야 백날 가도 소용 없으니 이 점을 가려 읽어야)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우리가 진리를 아는 지식을 받은 후 짐짓 죄를 범한즉 다시 속죄하는 제물이 없으니 모세의 법을 폐한 자도 두세 증인으로 말미암아 불쌍히 여김을 받지 못하고 죽었거든 하물며 하나님의 아들을 짓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가 당연히 받을 형벌이야 얼마나 더 무겁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또 다시 주께서 <그의 백성을 심판하리라> 말씀하신 것을 우리가 아니 살아 계신 하나님의 손에 빠져 들어가는 것이 무서울진저"(히 10.24-31).

우리가 저질러 놓은 죄이니까 마땅히 우리 각자가 그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이지 누가 대신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닌 것입니다. 이것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공의/公義이십니다. 그러나 한 번 죽으면 그만이고 속절없이 끝나버리는 인생. 때문에 나를 살리시려고 나와 <함께> 죽으시는 방법을 택하신 것이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의 의미입니다. 함께 "하나"(요 10.30)가 되어주시어 함께 부활하심이 됨으로써 나를 살리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 "하나"가 됨 즉 "한 영"이 됨에서는 "한 몸"(고전 7.4)이 됨과 마찬가지로 이 글의 모두에서 미리 밝힌 것처럼 "교차/交叉 소유"가 반드시 이루어지게 마련입니다.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3위1체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제3위로서의 특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이 "하나"됨에서 마치 둘을 잡아 묶는 끈과 같은 것입니다. 즉 갑은 을의 것이 되고 을은 갑의 소유가 됩니다. 아내의 몸은 남편의 것이 되고 남편의 몸은 아내의 것이 됩니다. 마찬가지로 "한 영"에서는 각자의 삶 자체가 그렇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과 "한 영"이 됨으로써 구원 받음이 된 이상 그리하여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됨으로써 이루어진 하나님 은혜이시니, 나의 이후 삶은 애오라지 주님을 위한 일편단심에서만 영위되는 것임을 우리 모두 항상 가슴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이를 회개하지 않는 한 나는 영생 구원에서 가차없이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날까지 많은 사람이 바벨론신학의 거짓됨에 속아 이 심각한 경고를 받지 못한 채 서성거리다가 자기도 의식 못한 사이 멸망길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성경 애독하기를 게을리한 결과라 보아도 틀린 말이 아닙니다. 몹시 뜨거운 것에 피부를 노출시켜 놓고도 데인 것을 후회해보아야 소용 없습니다. 때는 늦은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으니(죽어버렸으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어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님의 소유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인, 임자, 소유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이 교차/交叉 삶이 바로 다름아닌 영생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자아중심이 아닌 상대방중심의 삶이니 이 상대 중심에서는 죄가 성립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것이 "거룩함"입니다.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하리라"(히 12.14).

2026년 3월 22일 일요일

“성령으로 난다”(요 3:6) 하신 말씀의 의미를 질의하니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직접 주도하시는 영적 탄생(거듭남, 중생)'을 의미한닥. 쉽게 말해,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영(靈)을 새롭게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인 것. 예수님은 니고데모와의 대화에서 여러 표현으로 설명하셨다. 즉
• 3절 → 거듭난다(위로부터 난다, ἀνωθεν)
• 5절 → 물과 성령으로 난다
• 6절 → 성령으로 난다(영으로 난다)
• 7절 → 다시 거듭나야 하겠다
위의 네 표현은 모두 같은 한 가지 사건을 가리킴이니, 육체적 출생(엄마 뱃속에서 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영적 출생이라는 것.

“성령으로 남”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 주체가 성령이시다.
사람이 스스로 노력하거나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주도적으로 새 생명을 주시는 창조적 사역이다. (바람이 임의로 부는 것처럼 보이지 않고 알 수 없는 방식으로 일하심).
• 결과가 ‘영’이다.
• 육으로 난 것 → 육(肉) → 여전히 죄성, 세상적 본성을 가진 존재
• 성령으로 난 것 → 영(靈) →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새로운 본성을 가진 존재 즉, 본질이 바뀐다. 단순히 도덕적으로 좋아지는 수준이 아니라, 영적인 정체성 자체가 새로워지는 일이다.

• 어떻게 그렇게 되는가?
성경 전체를 종합하면, 성령으로 나는 것은
•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는 믿음
•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 죄 사함 + 새 생명 + 하나님의 자녀 됨을 주시는 과정
그래서 “성령으로 난다”는 말은 결국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께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는 것을 가리킨다. 요약하면 성령께서 주도적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우리 영을 새롭게 창조하시어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시는 일이니, 이것이 바로 거듭남이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유일한 길이다(요 3:5).

3위1체와 성령 관련해 아는 것이 없으니 
동문서답식 답변일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라 분명히 나누어 말씀하심은 주님이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즉 "육으로써" 사람이 나는 방법과 "하나님의 성령으로써" 나는 방법이니 명백히 대칭(짝)을 이룸입니다. 다시 말해 첫 사람 아담이 직접 움직여 사람이 났으니 "마지막 아담"께서도 <친히> 움직이셔서 새 사람이 생겨나야 "대칭(짝)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친히 어떻게 움직이셨는가ㅡ말 그대로 "성령으로" 움직이신 것입니다.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은 범죄로 죽어버린 아담을 대신해 아담이 되시려고 그 대칭(짝)으로서의 "마지막 아담"으로서 오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와 "하나"되시려고 아담의 죽음 그대로를 이어 받으시어 죄인 사형수처럼 십자가형을 당하신 다음 성부 하나님의 다시 살리심울 입어 부활하신 그대로 하늘로 오르시니 원래부터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신지라 (육체로 현재 "영광의 몸"이심과 동시에) 성령으로 또한 계시어 세상에 임하시어(요 14.23) 활동하십니다. 바로 이렇게 성령으로 지금 일하시는 예수 우리 주님께서 믿는 각자 안에 임하여 오심이 우리의 "성령의 선물 받음"이요 "성령 세례"입니다. 물론 이 경우 성령으로 존재하심은 항상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되어 계심입니다.

그리하여 믿는 각자에게 예수님 친히 성령으로 임하시어 말하자면 "새 사람" 다시 말해 2중/二重사람, 복/사람(주 예수님과 나)처럼 되어 있는 형국입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남"입니다. 육신으로 난 우리의 육체가 아담의 육체인 것과 같이 이제 성령으로 난 나는 내 안에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의 영으로서의 성령을 모시고 있으니 명실공히 다시 남, 성령으로 남, "마지막 아담"으로 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하시는 모든 일은 원리원칙을 따라 빈 틈이 없고 허술한 데가 없으십니다. 만유의 대법칙을 따라 철두철미 진행되는 모습이십니다. "마지막 아담"께서 이와 같이 성령으로 친히 움직이시어 "성령으로 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 영광입니다.


"물과 성령으로 남"의 의미

 

요 3:5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예수님 말씀 관련 여러 해석이 있어 죄의 씻음·정화·중생의 씻음으로 받아들여져
• “물” = 죄로부터의 정결·씻음을 상징. 구약에서 물은 자주 하나님께서 마음을 깨끗이 씻어주시는 상징으로 쓰임 (에스겔 36:25 “내가 정한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깨끗하게 하리니”, 시편 51:2,7 등)
• 성령 → 새 생명 창조·새롭게 함
죄 씻음과 동시에 새 생명을 받는 거듭남 전체를 의미함이라 해석하나, 성령과 물은 하늘과 땅 차이인데 어찌 함께 논한단 말인가! 아무리 성경에 무식해도 분수가 있지.

여기서 말씀하신 "물"은 "불"과의 대칭성적 의미로 전자는 아담의 씨 즉 자연계 물질로 된 육체, 후자는 네피림 곧 처음부터 영물로서 인간이 된 자들인 바, 워낙 엄청나게 네피림이 세상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이 구분하신 것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 "불꽃 중에 임하신다"(살후 1.7)는 등의 표현이 바로 이를 가리킴이다.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영계)의 차이를 "물"과 "불"로 나타내심이다. 아담 범죄로 동물성 육체로 전락해버려 그렇지 원래 아담은 초자연계 존재였고 천사(영물)들이 이 아담을 위해 아담을 기준하여 창조되었던 것이며, 아담의 씨로서의 모든 인류도 이같은 영적 존재로 "불"로서의 속성임을 알아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2)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 되심은 창세 전 성부께서 독생자를 낳으신 때부터 즉 성자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부터입니다. 성자께서는 성부 하나님의 "형상"(고후 4.4)이시므로 "성자로 말미암아 성부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성자께서 우리 구원 위해 우리를 위하여 사람 되시는 때만 제외하고는 처음부터 줄곧 "하나"로서 계시니 십자가 고난 당하실 때도 물론 하나로 계심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주 만물에 충만하시고 또 만유이시고 이는 성자 하나님께서도 똑같으시나 단지 성부께서는 "만유 위에 계신다"는 말도 하게 되는 그 차이만 있습니다. 다시 말해 성부 하나님께서도 성자께서 십자가상에서 당하시는 모든 고초를 다 함께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독생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시는 때부터 두 분께서는 분리되셨으니, 성자께서 사람되심을 성경이 "(아버지께서) 그 아들을 내어주셨다(to deliver) 함이 그 뜻입니다. 그리하여 예수("구원자"라는 의미의 히브리 말) 우리 주님께서 우리와 같이 되시려고 친히 세례를 받으시는 순간 임하여 오신 성령이 바로 아버지 하나님의 성령으로서 그 때부터 다시 성부와 성자께서 이전처럼 "하나"가 되신 것.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선물)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롬 8.32).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성령으로 각자에게 임하심은 성부 하나님께서 또한 똑같이 임하여 오심이기에, 첫사람 아담은 육신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간을 생산했음에 반하여 "마지막 아담"께서는 아담으로서의 똑같은 일이시지만 성령으로 말미암으심인즉 성부 친히 함께 "하나"로서 임하심으로써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아들로서 탄생함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단 우리는 "양자"들이고 주님은 친아드님이시며, 나는 하나님의 "많은 아들" 중 하나이고 주님은 그 "맏아들"이 되십니다.

사람이라고 다 구원 받을 수 있는 대상자가 아니니 아담 범죄가 사탄의 말을 따름으로써 된 것이라 이는 곧 하나님보다 마귀에게 더 순종한 의미가 되어 아담이 마귀 앞에 무릎 꿇은 꼴이므로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사탄에게 고스란히 넘겨진 것입니다(눅 4.6). 해서 사탄이 이 세상 통치 차원에서 악령들의 씨를 마구잡이로 세상에 퍼뜨려 세상이 모두 "네피림"(창 6.4) 천하처럼 된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네피림을 분간하게 되어 있지 않으므로 마치 네피림이 아예 존재하지 않는 듯이 그리고 하나님의 미리 택하심이 없는 듯이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아담 한 사람의 불순종(범죄)이 얼마나 악을 일파만파로 확산시켰는지를 신물나게 체험 중이니 죄 짓지 않기로, 각자 순종의 삶이 되도록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대로 "힘쓰는"("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ㅡ눅 13.24) 것 밖에 없습니다. 바벨론 신학에서 얼마나 사탄의 거짓말로 세뇌되었으면 오늘날 소위 "구원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 무조건 "힘쓴다"는 식의 말을 기피하고 있는데 이상 주님의 말씀대로 단언하거니와 그런 이들은 "헛되이 믿음'(고전 15.2)이요 멸망 길로 직진하고 있음울 알아야 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은 구원된 자들에게 <미리 주시는 경고>이심을 왜 인식 못한단 말인가요. 도대체 성경울 어떻게 읽는 겁니까. 우리 위해 죽어주신 메시야 우리 주님께서 우리 각자 안에 성령으로 오심으로써 비로소 그 죽으심과 부활이 내 것이 되어 구체화, 현실화하는 것인 바 이는 순수히 "다시(거듭) 남" 즉 "성령으로 남"이기에 순전한 하나님의 창조에 속하여 여기에만큼은 우리의 그 어떠한 "힘씀"도, 순종의 그 어떠한 "선을 향함"(롬 2.7)도 개입될 여지가 없다는 것은 초등생도 능히 이해하는 너무나 상식적인 것입니다. "행위로 구원 얻지 못한다" 함이 이 때문입니다. 문제는 이렇게 창조된("구원된") 이후가 아닌가요! 그런데도 왜 이런 것 하나 구별 못한다는 것인가요. 무엇을 착각해도 꽉 막히게 꼼짝도 못하게 착각하고 있는 겁니다. 구원 관련 너무나 엄청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아담의 범죄로 모든 인류가 죽은 자가 됨으로 인한 불가피한 결과에서 나온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담 범죄 전 상태로 되돌려 놓으시기 위함입니다. 따라서 그동안 사탄이 많이도 퍼뜨려 놓은 "네피림"(창 6.4)은 여기서 제외됩니다. 네피림은 시초에는 초대형 거인이었으니 이는 영생하던 아담이 동물성 육체로 도로 돌아가버렸어도 천년 가까이 살았던 것과 같은 맥락으로서 영물들의 씨(후대)는 장수하기보다 신체 골격이 초대형으로 장대함이 그 특징이었습니다. 그대신 수명은 "120년"(:3)에 그쳤습니다. 그러나 이런 거인족은 모세 당시까지도 간혹 남아 있어(민 13.33) 이스라엘 백성을 놀라게 했습니다. 이 네피림족은 그 망령은 얼마든 인간의 태에 들어가 소위 "환생"을 할 수 있어 지금은 보통 인간의 체격으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소위 "전생, 윤희" 따위가 이래서 발생하는 것인데 악령들의 씨(후대)에만 해당되니 속지 말아야 합니다.

아담 범죄로써 죽음이 왔고 이제 영생의 길로 접어들려는 것이므로 반드시 모든 죄의 "회개"(행 2.38)가 필수입니다. 회개는 과거 지은 죄를 뉘우침에 그치지 않고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즉 하나님의 모든 뜻(말씀)에 순종하겠다>는 굳건한 결의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앞에서의 약속인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는 세례 백 번을 받은들 무의미뿐입니다. 로마서 7장을 바울의 믿은 후 체험이라고 믿는 자에게서 세례 받음도 같은 결과일 뿐이니 그런 경우 회개 여부를 꼼꼼히 따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인이 진정 회개하는 자세인 경우 하나님께서 이를 몰라보실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이런 회개의 세례가 아닌 때에는 죄 용서가 되지 않으므로(:38) 성령께서 임하실 수가 없습니다. 미국에는 무조건 "믿으면 구원"이라 하여 세례를 아예 생략, 폐지하는 집단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공공연히 드러내는 마귀 짓입니다.

미국내 개신교 종파가 많지만 모두가 한결같이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의 믿은 후 개인 체험이라고 믿는 점에서는 똑같습니다. 미국이 그러하니 다른 나라야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아담이 범죄하여 이 모양 이 꼴이 되어 구원이 필요하게 된 마당에 "죄와 사망의 법이 나를 사로잡아 온다"(롬 7.23)니 웬 말인가요!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마 1.21)입니다. 영생 얻게 하는 것이 구원이 아닙니다. '죄에서 해방"되니까 그 <결과>가 자연적으로 '영생/구원'인 것입니다. 범죄로 영생을 잃었는데 여전히 죄 가운데 매여 있다니요! 사탄이나 할 수 있는 말이지요! 믿어도 "헛되이 믿는"(고전 15.2) 것이 됩니다.


2026년 3월 21일 토요일

필자의 자기 소개(프로필) 최초 공개

화가는 그림으로 말하고

음악가는 리듬으로 말한다.

Kwon Tayseek이란 인생은
3위1체·3운법칙으로 말한다.
그 외로는 일절 말할 것이 없다.
세계적으로 이 한 이름으로만
영문 알파벹 11자로 알려지길 바람이니
온세계에 복음이 알려져야겠기에!
최초로 주님 오실 때의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주님 다시 오실 때의 "그 소리" 되길 원한다.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을 말한다.
21세기는 "천사의 복음"의 시대다.

"3위1체·3운법칙"은 대외적으로 "trinia, fashomo/fashomo, trinia로 알려지기 바라며
이유를 설명하면 'trinia'는 라틴어 trinitas의 변형으로 3위1체를 의미하고,
'fashomo'는 3운법칙을 의미하여 'fas'는 '신의 법(divine law)'이란 뜻이며
'homo'는 'Homo sapiens'(인간), 모두 라틴어 합성이다. 국가적 반발로 영어를 쓸 수 없기 때문.
(각나라 말로 3운법칙ㆍ3위1체를 표현해야 할 터이니까 미리 그 공통 용어를 정해 놓는 뜻.)
3위1체는 "3위1합/合"이라 해도 좋다.

"마지막 때" 기도와 말씀 전파에 의한
21세기 범세계 복음 운동이다.
3운법칙은 이 천사의 복음을 보증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않을 것ㅡ요 4.48).
3위1체는 오늘날 "천사의 복음"의 대명사요
3위1체는 곧 만유의 기본 대원리인 것이다.
'만유의 법칙'이 뒤늦게나마 알려진 것이다.
이 21세기 "마지막 때"에 마침내.

우리의 구원도 이 원리로 이루신 것이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도 그러하시어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사 34.16) 하셨다.
이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하신 결과가 곧
만유에 3위1체의 원리가 스며든 이유다.
속속들이 깃들여 있음이 여지없이 드러난 것.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인간의 생애를
관장하여 그 죽음의 때를 지정한 3운법칙으로,
미시세계에서는 상보성 원리와 양자역학으로
"대서특필"되듯 드디어 드러난 것이다.
천사들이 마침내 나섬으로써다.
그리하여 장쾌하게 사탄의 세력으로
무릎 꿇게 만들어(계 12:7-9) 획득한 총결산이다.
천사의 복음의 특징은 2천년 전통의 바벨론 신학
그 사악한 사탄의 거짓말들을 궤멸시킴에 있다.
사탄은 복음 전파의 벽두부터 즉 초대교회가
시작되자마자 곧장 방해공작에 들어가(갈 1.6)
바벨론 신학의 철옹성을 구축해 왔던 것이다.
아담 범죄가 사탄에게 무릎 꿇은 결과라
아담의 세게 통치권이 송두리째 넘어간(눅 4.6)
탓으로 세상 통치 차원에서 저지르는 행위이기에
손을 대지 못했었던 것이나 천사들이 해낸 것.
그간 한동안은 때문에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는"(마 18:3) 한 구원되는 자가 없었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진리를 알 것이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할 것이다"(요 8.32)
하신 대로 온전한 진리로서의 복음 전파 시대다.

3운법칙과 3위1체가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이것만으로도 두 법칙의 넉넉한 자체 증명이라,
하나님의 실존하심을 만천하에 공표함이 되고
우리 구원의 원리 또한 그같이 훌륭히 입증되어
그 찬연한 진리로서의 광영을 드러냄에서다.
"만유는 수(All is number.)"라 한 피타고라스.
이제는 "만유는 3(All is three.)"이라 할 시대.
노자의 "萬物/삼생만물" 바로 그대로다.
3위1체 과학시대인 오늘날 혁명적 삶도 가능하니
애초부터 이런 삶을 하나님은 요구하신 것이다.
3위1체는 그 요지가 "교차/交叉 소유"에 있어,
하나님의 3위1체적 특성을 가리켜 주님 친히
"아버지의 것은 제것, 제것은 아버지 것"(17.10),
"아버지는 제 안에, 저는 아버지 안에"(10.38)
라 말씀하심으로써 이를 명백히 하신 것이다.
이같은 서로의 '교차'는 교차적 삶으로 직결되어
갑은 을의 삶을 살고 을은 갑의 삶을 살게 되니
상대방 중심의 삶이요 자기 중심의 삶이 불가능.
이것이 삶의 기본 원리임에도 이룰 어긴 인생들.
이 비극적 불행은 아담의 불순종에서 비롯된 것.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세아 6.7). 

아담 등 모든 이성적 존재의 생명(삶)은
'언약'과 '계명'으로 시작되었으니 즉 하나님께서
"내가 전적으로 너를 위하겠다. 약속한다. 그런즉
너도 전적으로 나를 위하고 네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명령(계명)을
주셨음이다. 독생자 하나님도 예외가 아니셨다.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요 15.10)이라 하신 것.
그러나 아담은 이 '약속'과 '계명'을 어긴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는 똑같은 '약속'과 '계명'을
구원 받은 우리 각자에게 주신 것임을 오늘
이 시간 깨닫고 마음에 깊이 깊이 아로새겨야!
이것이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의 골자이다.

오늘날 이 "천사의 복음"은 이 일을 위해 간구하는
기도의 동역자들이 유일한 대들보가 되어 있다.
(대들보는, 한옥에서 기둥 사이에 건너지르는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수평 구조재로
지붕의 무게를 지탱하여 기둥으로 분산시키는
핵심 역할을 함으로써
조직을 지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가장 중요한 인재들을 뜻한다.)

"(천사가) 큰 음성으로 외치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


거듭남과 세례

거듭남(再生, regeneration)과 세례(물세례, baptism)의 관계 는 개신교 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주제이며, 교파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대부분의 보수적·복음주의 개신교 에서는 아래와 같이 말합니다. 1. 거듭남의 본질: 성령의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