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 말씀하신 하나님의 "계시"(마 11.27)는 <하나님이 알게 해주심으로써 알게 되는 직관/直觀>에 속합니다. 필자가 "상보성원리"나 "양자역학"을 부지런히 강조해 오는 것도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는 확신에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은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 .7/계 12.14)에서도 확연히 드러납니다. "상반/相反이 상보/相補" 또는 "상합/相合"이라는 의미의 도식/圖式도 그 문자화/文字化인 "한 때, 두 때, 반 때"도 그 때문. 이 21세기에 드러나지게 될 상보성원리를 일종의 언어 기교/技巧로 예언한 것이라 할 수 있으니(아래 그림), 필자는 이것을 모든 이론에 두루 통하는 도식/圖式이라 믿고 있습니다. 그 가장 으뜸가는 예가 3운법칙입니다. 그 얼개(structure, 구조) 자체가 바로 그런 꼴(형태)을 직접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니 고로 "만물(만유)의 구조 도식"이라 해도 전혀 손색이 없습니다. 거듭 말하지만 오늘날 "마지막 때" 이 21세기를 겨냥한 것이 다니엘서(7.25/12.7) 및 요한 계시록(12. 14) 예언일진대 이 "한 때, 두 때, 반 때"("a time, times, and an half" KJV)라는 표현이야말로 오늘의 이 현장을 가리킴이라 해서 결코 지나친 말일 수 없습니다. 이 "3위1합의 "1합"에서는 "교차 소유"가 그 생명, 핵심입니다. 이는 인간 삶에서뿐만 아니라 물리법칙에서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으니 "양자 얽힘"이 바로 그것으로서 "얽힘"이 확정되자말자 곧장 "상반/相反" 현상이 지체없이 일어나는 것을 보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삼위일체"(3위1합)를 말하건대 성경은 처음부터 "독생하신 하나님" 관련해 명백히 밝히고 있습니다(요 1. 14,18/3.16,18/요일 4.9). 따라서 부자지간 두 분 하나님이 분명하신데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 하셨기 때문에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는 말씀과 더불어 살피면 그 윤곽이드러나게 마련입니다. "한 때, 두 때, 반 때"를 지금까지 그 누구도 해석한 적이 없고, 주님 다시 오실 날이 바로 눈 앞이라 이미 오래 전에 100% 만족할 대답이 나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과연 나타나 있습니다. 다름아닌 '3위1합'의 도식으로서! 미래의 특정한 때를 겨냥하는 예언은 실제로 그 때가 오기 전에는 누구도 그것을 상상조차 못한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 때가 마침내 이르러서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한 때, 두 때, 반 때"는 오늘날 사람들이 말하는 "3위1합(종전의 '삼위일체')"을 가리킨 것으로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3위1합"을 만유의 기본 대법칙으로 정하셨다는 그 확증(이제까지 필자가 누차 설명해 온 대로)인 것입니다. 비단 물리법칙에서만 아니라 전지구적 우주적으로 그러하다고 단언합니다. 따라서 이 "한 때, 두 때, 반 때"로써 구현된 "3위1합" 도식/圖式은 상보성원리만 아니라 모든 것에도 적용되어 마땅합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와 더불어 "3위1체"가 입에 오르내리게 된 것이고, "둘(상반/相反)"이시면서 "하나" ("상보/相補" 또는 "상합/相合")이시니까, "둘"에다가 "둘로서의 하나"이시라는 그 색다르신 면모를 보태면 "셋"이 되실 수밖에 없습니다. 복잡하게 생각할 것 없이 부자지간 아버지와 아들로서 계시는 하나님이 또한 "하나"로 계시니까 정녕 '3위/位'이십니다. 또 말씀하시기를 "저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제 것"(요 17.10)이라 하셨으니 바로 "교차 소유"입니다. "1합"이 되는 '요건'이요 그 '결과'입니다. 고로 "3위1합('삼위일체')"은 아버지와 아들로 계시는 하나님이 '교차 소유'의 "1합'' 즉 "하나"(10.30)로서 계심을 의미한다는 결론입니다.
만유가 다 이 법칙으로 작동되므로 따라서 우리 구원도 예외일 수 없어 그리스도와 "합하여 한 영"(고전 6.17)됨이 우리 구원인 바 반드시 "교차 소유"로 마무리되게 마련이라 따라서 죄를 지어서는 안되는 것이니 예컨대 로마서 7.24가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의 체험이 결단코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전히 죄 지음"과 연결 지으면 그것은 "바벨론"(계 18.4)입니다. 21세기 "천사의 복음"(14.6)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성령"은 <아버지와 "하나"(요 10.30)되어 계시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그 죽으심이 자기의 죽음이 되어 있는데 어찌 "죄의 몸"(롬 6.6)이 "멸해지지"(:6) 않고 아직 그대로 있어 죄를 범한답니까! 주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면 "성령으로 다시 난"(요 3.6) "새 창조"(고후 5.17)라 <하나님께서 죄 짓는 인간을 창조>하실 리 만무한 것입니다. 죄로 엎치락 덮치락할 인간이라면 아예 그런 것을 "창조"라 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므로 정직하게 성경을 읽고 성경대로 믿읍시다. 바벨론의 함정에서 벗어납시다(계 18.4). 우리 구원은 "죄에서의 구원"(마 1.21), 아담의 죄로부터서의 구원이니 아담을 인해 신령한 몸을 잃어("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더니"ㅡ롬 3.23) 이런 어처구니 없는 동물성 육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우리 구원의 확실성을 삼위일체(3위1합)와 결부시켜 지금까지 상세히 설명했으니 확고한 믿음과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감사 찬송하면서 기도와 말씀 전파에 힘쓸 일입니다. 믿는(구원된) 자마다 만왕의 왕이시요 만주의 주이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있으니 피차간 대하기를 주님 대하듯 하여 서로 사랑하고 위하며 "섬기는"("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가운데 있다"ㅡ눅 22.27) 자세, 목회자는 그 본보기(벧전 5.3)가 되는 자세로 일관할 일입니다.
"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 하시는 이 "천사의 복음"(14. 6) 시대의 비상 국면에서는 북한교회를 본받아 교회당, 성직자(목사) 등에 얽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가나안" 신자로 남아 있지 말고 가정에서 모이는 "집교회"(골 4.15/빌레몬 1.2/고전 16.19)를 <반드시> 운영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영적 자살 행위가 됩니다. 북한교회처럼 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이상으로 요구하시지 않습니다. 이 적그리스도에 대처하는 때는 여러 가지 정황상 집교회 시대이어야 합니다. 교회당 건물을 구비해 있어도 집교회 형태로 변형해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소명 의식이 있으면 누구나 목자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단 바울 사도의 교회 운영 지침 따라 여성은 제외되니 순종해야 합니다(고전 14.34). 하나님의 인간 창조에서 남자인 아담이 먼저였고(11. 3) 범죄 행위에서는 여자가 먼저였던 것입니다(딤전 2. 11-14). 그러나 이 구별은 동물성 육체의 때에만 그러하고 신령한 몸으로 부활한 정상 상태에서는 성별 자체가 멊어집니다.
아담 범죄로 세상이 "죽은 자"가 됨의 의미는 이런 동물적 육체만 아니라 이 세상의 양상마저 바꿔 놓았습니다. 다시 말해 악령 사탄이 이 세상을 압제하게 만든 것입니다.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고스란히 사탄에게 넘겨진 까닭입니다(눅 4.6). 그는 인간의 "원수"(창 3.15)라 해악만을 일삼기에 인생들에게 복음(복된 희소식) 심지어 우리 주님까지도 "부끄러워하도록"(막 8.38) 만들고, 핍박 받게 하고, 세상에서 행세하지 못하게 꼼짝없이 만든 것입니다. 이는 주님과 함께 당하는 고난이기에 그 반대급부로 받는 크나큰 영광이 따르게 마련이라 부정적인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룸이니"(고후 4.17). "하나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히 11.25). "자녀이면...후사(상속자)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해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롬 8.17).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고 나 위해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을 것이다"(마 10.3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