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15일 목요일

육하원칙에 의한 21세기 "표적과 기사"(요 4.48)



거룩하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명확히 육하원칙(六何原則)에 의해서 발표된 것은 유사이래 최초이자 마지막(주님 재림 전으로는)입니다. '육하원칙'은 기사나 보고서 등 신뢰성 있는 글쓰기에서 필수적으로 다루는 누가(Who), 언제(When), 어디서(Where), 무엇을(What), 어떻게(How), 왜(Why)의 6가지 핵심 요소를 말하는 바, 글의 기본적인 뼈대를 잡아주는 중요한 원칙(영어의 "5W1H[Who, What, Where, When, Why & How]")입니다. 이 6개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글을 구성하면 정보 전달이 명확해져 글의 완성도가 높아지므로 교육과 실무에 널리 활용됩니다. 

여기 "6하원칙 하나님 표적과 기사"는 다름아닌 "21세기 표적과 기사" 중 하나인 3운법칙을 말합니다.

• 누가(Who): 행위의 주체.....1. 하나님
• 언제(When): 사건 발생 시점.....2. 인류가 영생하는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으나 아담 범죄 결과로 "육의 몸"(고전 15.44) 즉 "죽은 자"로 돌연변이하면서부터 그 초자연적 특성의 기운이 한동안 잔존했던 현상으로서 그 결과 노아 당시까지도 천년 가까운 수명이었을 때
• 어디서(Where): 사건 발생 장소.....3. 시기심으로 가인이 아벨을 죽였던(창 4.6) 현장 및 "소년"이 라멕에게 달려들어 해치려 하자 라멕이 자기 방어로 엉겁결에 소년을 쳐 죽인(4.23) 두 살인 현장
• 무엇을(What): 사건 내용 즉 대상.....4. 아담 이후의 모든 인간 생애를 말함이니 다시 말해 일정 연령에 달하면(18,9세가 넘으면ㅡ프랑스의 쟌다르크 소녀가 현재 그 대표적 예)
• 어떻게(How): 사건 진행의 방식.....5. 만유의 기본 원리인 3위1체의 법칙에 기반한 3운법칙으로 LP(활동기, 전성기), DP(비활동기, 침체기), JP(유청소년기ㅡOT, SN형에만 적용되고 FS형은 3위1체 도식/圖式 다시 말해 성경에 "한 때, 두 때, 반 때"로써 미리 예언되어 있었던 형식에 맞추어져 제외) 따라 철저히 통제 관리됨으로써(그렇게 되도록 모든 인간의 운명을 처음부터 미리 정하심)
• 왜(Why): 사건의 이유 즉 원인.....6. 가인과 라멕의 경우처럼 어느 누구든 사람 목숨을 함부로 끊어 놓지 못하게 철저한 보호막 울타리를 쳐놓으신, 마치 이 모든 것을 카메라 렌즈로 "아담 영상(ADAM pix)"의 DPA(Devils' Practical Appearances), NSO(Nephilim Soul Orbs)가 촬영된 것처럼(사진처럼 완벽한 증거는 없어) "촬영된"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의 가시적/可視的 <실물 증거>인 것입니다.

따라서 이보다 격조 높은 "표적과 기사"는 없기에 이 "마지막 때" 유사이래 최초의 "21세기 표적과 기사"라 하는 것이니, 하나님의 <실존> 및 그 <역사/役事하심>의 200% 확증인 것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거듭 거듭 강조하신 것이 "구하면 이루어 주신다"는 역속이십니다. 물론 자아중심의 이기적 기도가 아닌(자아중심으로써는 이 하나님의 우주에 살 영적 존재가 없어ㅡ약 4.3) 오직 상대방중심의 "새 생명"의 "새 사람"인 경우에만. 왜냐 하면 악령들도 초능력으로 "기도 응답"인 양 얼마든지 속일 수 있으므로 오늘날 "응답" 자체에다 어떤 비중이든 두지 말아야 합니다(마 24.24). 내가 주님 은혜로 새 피조물이 되었는지 여부는 성령 친히 우리의 영혼과 더불어 증거하시니까(롬 8.16).










2026년 1월 14일 수요일

로마서 8장 26,27절의 <성령의 기도>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심이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기도할 바를"ㅡ개정개역)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이다"(롬 8.26).


"In the same way, the Spirit helps us in our weakness. We do not know what we ought to pray for, but the Spirit <himself> intercedes for us with groans that words cannot express."(NIV-1984) "Likewise the Spirit also helpeth our infirmities: for we know not what we should pray for as we ought: but the Spirit <itself> maketh intercession for us with groanings which cannot be uttered."(KJV)

"마음을 감찰하시는("살피시는"ㅡ개정개역)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심이니 이는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다"(:27).

"And he who searches our hearts know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the Spirit intercedes for the saints in accordance with God's will."(NIV-1984) "And he that searcheth the hearts knoweth what is the mind of the Spirit, because he maketh intercession for the saints according to the will of God."(KJV)

[아래 "새번역"은 권장할 만한 것이 못됨을 두 가지 점으로 지적한다. "위하여"를 왜 굳이 "대신하여"라 하나? "대신하여 죽으심"이라는 오역의 여파인 것 같다. 우리말 어감으로는 "하나님이 우리를 대신해서 기도해 주시니까 우리들 자신은 형제들이나 다른 사람 위한 기도에 그다지 관심 두지 않아도 된다"는 큰 일 날 소리가 되어버린다. 그리고 왜 "사람의 마음"이라 하나? 이 대목에서 가리키는 것은 '성부"와 "성자" 하나님이
신 바, '성부"께서는 사람의 마음은 물론 "성자'의 마음도 아신다는 의미이다.]

26.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약함을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알지 못하지만, 성령께서 친히 이루 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대신하여> 간구하여 주십니다. 27.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생각이 어떠한지를 아십니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를 <대신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ㅡㅡㅡㅡㅡㅡㅡㅡ

위 영역에서 NIV는 "친히 간구하신다"에서 "Himself"라 했고 KJV는 "Itself"라 했다. 흠정역은 원어에 충실하다는 정평이 있다. 필자는 성경을 반드시 열심히 읽어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을 때 원어 공부 생각은 일절 없었던 것은, 그렇게 되면 거의 사람마다 무조건 원어를 접하는 것이 상책이라는 불필요한 인식 조장을 정당화시킬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 하나님 친히 살피시는 성경 번역 사업이라 확신했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감리 감독하시니까 단지 영역(KJV)만 참고해도 충분하다 생각한 것이다.

KJV가 성령 관련해 인칭대명사(Himself)를 쓰지 않고(이런 경우에서만)
 "it"로 받은 것은 원문에 그렇게 되어 있음이라 보는 것이다. 그럼 원문 집필자인 바울 사도는 왜 그렇게 표현했느냐 하면,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것"(고전 2.11)이라 했듯이, 사람과 그 영혼을 분리해서 설명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둘 다 인칭대명사로 설명할 수 없어 부득불 "영" 관련해서는 "it"로써 구별할 수밖에 없음을 감안했던 무의식적 판단으로 그리 되었으리라 보아도 무방하다는 결론.

하나님께서도 그런 정도야 크게 흠 잡을 이유가 없다고 보셨을 수 있고. 필자의 과문 탓인지는 모르나 성령 관련해 이런 식으로 성령을 지칭한 예는 이 하나뿐으로 기억하는 것이다. "성령"은(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하나님 성부 및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심이다. 그러나 성자께서 성부의 형상 곧 <형체>이신즉 <실체>이신 성부보다 항상 전면/前面에 <나타나심>(말 그대로 "형상"ㅡ고후 4.4/골 1.1이시니까)을 감안할 때 이 대목에서도 "성령"은 바로 성자 하나님이시다. 곧 메시야 예수 주님께서 그와 같이 우리 각자를 위해 간구하심이다.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이니, 여기 탄식은 영역에서 "groans"이다. '고통, 불행 등으로 인해 내는 "신음(소리)"을 뜻하며 깊고 긴 소리로 아픈 소리뿐 아니라 극심한 심적 불편을 표현함'이다. 부흥 전도자 찰즈 피니 목사와 마치 그 그림자처럼 함께 하며 기도자로서 7년간 일관되게 동역했던 대니얼 내쉬(Daniel Nash) 목사 역시 그와 같은 기도의 표본이었다. 주님께서 
육체로 땅에 계실 때도 "심한 통곡과 눈물(strong crying and tears)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던"(히 5.7) 그대로다. 기도가 이 정도되면 자연스럽게 금식 기도로 진전하기도 하는 것이다. 

2026년 1월 13일 화요일

"그래도 이같이 내가 이루어 주기를 구하여야 할 것이다"

에스겔 36.36-37.
모든 일은 
기도로써 시작됩니다.
지금까지는 오늘날
전파되어야 마땅한
말씀의 윤곽이
정해진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며,
제는 이 말씀이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되어야 할
시점에 이르러,
가장 먼저
기도에 전념할
시간을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특별히 합심 기도입니다. 
"주님께서 저희 심령을
감화 감동시켜 주시기를,
저희 심령을
감화 감동시켜 주시기를
간구하옵니다."


성경의 서릿발 경고

성령울 선물로 받아 모심으로써 우리가 구원되는데 주님 친히 성부 하나님과 하나되시어 내 안에 오심으로 나와 "한 영"이 되시는 까닭입니다. 성령을 받기 전 회개의 세례를 받음으로 먼저 죄부터 용서가 되는 것은, 죄가 그대로 있는 더러운 자리에 성령께서 임하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때 죄 용서 받는 것은, 믈론 회개했으니까 즉 향후 절대로 죄짓지 않으리라(하나님 말씀에 절대 복종하리라) 하나님 앞에서 다짐했으니까 이를 근거로 용서하심이니, 실제로는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심으로 되는 모든 일이나, 우리의 회개를 믿어 주시고 수용해 주시어 앞당기시는 조처이십니다. 

여기서 명백히 나타나는 것은, 이후부터는 하나님 뜻대로 하겠다는 우리의 결의(회개)의 중요성입니다. 하나님 뜻대로 <행하겠다> 즉 "행함, 행위"의 순종인 것입니다. 멸망의 바벨론 신학 즉 사탄의 거짓말은, <죄인이지만 즉 죄 짓는, 죄 지을 수밖에 없는 그대로> 주님께 나아오지만 그래도 구원 받으니까 그래서 "은혜"라는 너무나 황당하기 짝이 없는 궤변에 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지어 즉 불순종힘으로 "죽은 자"가 되었으니, 이제 "산 자"가 되려면 불순종이 없어야 즉 죄 짓지 않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주님과 "한 영"이 된다는 점에 유의해야. 우리의 구원도 당연히 "짝의 원리"를 따름이니 즉 "하나"됨에서는 반드시 상대방중심입니다. 아예 처음부터 자아중심일 수가 없습니다. 남녀 "한 몸"됨에서 남자 몸이 여자 것이 되어 여자만 위하고 여자 몸 역시 똑같이 그러한 이치와 같습니다. 즉 주님과 내가 "하나"되는 원리를 따라 나를 구원하심이니,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이 내 것이 되도록 나를 위하심이었고, 나 또한 주님이 그 피값으로 사신 것이 되어 주님의 것이 되니까 절대 순종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머리는 몸 위하고 몸은 머리 위함으로 '한 몸', "하나" 됨입니다. 성경에 그래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남자에게서 여자가 났으니까)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성자 하나님이 아담을 지으셨으니까)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성부)이시라" 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머리이시니까 몸이 머리의 지시대로 따라 행동하는 것 자체가 생명입니다. 머리를 떠나서는 몸이란 것이 존재할 수 없으니까. 이러한 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행함, 행위"인 것입니다. 믿음으로써 "죽은 자"가 이제는 "산 자"가 되었으니 너무나 당연하게 산 자의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행함으로 구원되지 못한다" 한 것은, 유대인들이 하나님 앞에 "죽은 자"의 처지가 된 실상은 모른 채 따라서 구약시대에 그렇게 강조했던 희생제물의 <형체>적 의미의 그 <실체>이신 메시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산 자"됨이 급선무인데도 이를 무시하고 무식하게도 무턱대고 <계명 지키는 순종의 행위>를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죽은 자가 무슨 행동을 한단 말인가요. 손가락 하나라도 움직일 수 있나요. 

원래 하나님의 모든 계명은 우리 피조물의 안녕과 복지를 위하심이지 하나님 자신을 위하심이 아니니 이것이 3위1체로서의 생명의 법칙인 것입니다. 만사가, 만물이 이 원리에서 한 순간이라도 벗어날 수 없습니다. 벗어나면 서 지 못하고 무너지는 판이니까. 악마 사탄의 자아중심이
그리고 아담의 범죄가 어떤 폐악과 비극을 끼쳤는지 역사가 증언합니다. 동물성 육체가 자아중심인 것은 기계적이라 자유의지의 자기 선택에 따라 움직이는 생명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죄(자아중심)에는 예컨대 사탄처럼 고의적으로 짓는 것이 있어 이는 용서가 안됩니다. 반면 아담의 범죄로 "죽은 자" 즉 동물성 육체가 됨으로써 인간은 "죄의 몸"(롬 6.6)의 노예가 되어 있다는 불가항력적 측면이 있는데 
이는 메시야 우리 주님 친히 성령으로 우리 각자에게 임하심으로써 "하나"(요 10.30)됨의 이치를 따른 전적인 상대방중심의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함"(갈 5.25) 인지라 완전 극복됩니다. "주님께서는 영이시니 주님의 영(성령)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는"(고후 3.17)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자유의지에 따른 <사랑>과 직결되기에, 사랑이 식어지면 자아중심으로 흐를 수밖에 없어 성경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서릿발 경고를 발하는 것입니다.

"천사의 복음"과 "천사의 표적과 기사" (2)

"천사가 가진 복음으로 오늘날  백일하에 드러나는 사탄의 사악한 거짓말은  여러 가지로 간추릴 수 있지만 우선 네 가지로 정리하게 되는데, "아담의 <영적> 죽음"(아담이 산령한 몸으로 창조된 사실을 부인), "그리스도의 <대신> 죽음("함께 죽으심"인데도),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의 <거듭 난 이후>의 개인 체험"(롬 6.6의 "죄의 몸"의 비극을 극적으로 설명함에 불과한데도)이라고 하는 것, "우리의 구원 받음에서 믿음과 행함을 2분법으로 갈라내어 행위를 철저히 배제시킨(행함은 믿음의 당연 결과로서의 순종[행위]임에도) 억지 주장인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 은혜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은 말짱 헛것이 되어버립니다. 사탄은 이 점을 노려 이같은 거짓말을 주입시켜 왔던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사랑하여 성경을 부지런히 찾는 사람 즉 성령의 계시하심을 확신하는 이들은 이런 거짓에 쉽게 넘어가지 않습니다. 그렇지못할하고 소위 "신학"에 매달릴 경우 이같은 악한 자의 감언이설에 넘어가게 마련이며 따라서 백날 믿어도 소용 없고 백 번 "믿습니다" 외쳐도 허공의 메아리일 뿐 영생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그리고 천사의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임을 확인시켜 주는 "천사의 표적과 기사"에서 핵심이 되는 것이 3위1체이니 곧 "짝의 법칙"인 것입니다. "짝"이라는 말 자체가 3위1체 곧 "'상반'이 '상보'"(CONTRARIA SUNT COMPLEMENTA)임을 가리킴이라 "짝을 이룬 둘은 반드시 '둘'이 아닌 '하나' 즉 주님 친히 말씀하신 바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다"(요 10.30) 하신 그 "하나"가 언제나 주축을 이루는 것이 특징임을 우리는 기억할 일입니다. "남녀가 짝울 이룬다"는 말도 "한 몸"됨을 전제함과 같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덧붙이고자 하는 것은, 만물을 지배 운영하시는 하나님의 자연법칙도, 인간 생애를 주장/주관하시는 3운법칙도 서로 별개가 아니라 똑같이 이 3위1체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과연 한 하나님, "하나"이신 하나님의 부정할 수 없는 <뚜렷한 발자취>이심을 100% 단정하기에 충분하니 전도에 적극 활용합시다. 자연법칙에서는 '미시세계' 양자역학이 그러하고, 3운법칙과 짝의 법칙의 상호 검증은 같은 맥락으로 분명히 '거시세계'에서 그러합니다. 

이러한 3위1체를 최초로 과학적 견지에서 간파해낸 닐스보어였던 것입니다. 결정적으로 자기 평생의 업적 평가라 할 수 있는 <자기 가문 휘장에다가 위의 문구와 태극 문양을 대서특졀하듯 새겨 넣었다는 것>이야말로(아래 그림) 그가 얼마나 이에 대해 확신에 차 있었음을 웅변해 주는 것이기에 필자 개인의 소견으로는 현대 물리학적 측면에서나 인류사적 가치에서나 아인슈타인보다 더 혁혁한 공적을 쌓아 올린 인물이라 판단하는 것입니다. 




2026년 1월 9일 금요일

NSO (중복 게재)

 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

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

천사의 복음의 막강 무비의 권위

과학("자연과학"이란 말 그대로 초자연계 관련해서는 전연 무지몽매한)이 이루지 못한 대업적을 일구어 낸 것이 오늘날 "아담 영상/影像·映像(ADAM pix)"입니다. 왜냐면 과학이 감히 손도 대지 못한 <초자연계의 실존>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단박입증해내었으니까. 촬영자의 의도적 작품이 아니고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찍혀져 나온> 것이므로 이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길로 되어진 일이라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재림의 때인 오늘날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니 즉 천사의 "표적가 기사"의 일환입니다. 새삼스럽게 "천사의 복음"이니까 그 권위를 천사들 스스로 입증하는 차원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하나님의 아들들, 상속자)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히 1.14)이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어 왔다면 사도들의 초대교회 이후 장장 2천년이나 흘러 간 세월인데, 주님 재림에 즈음하여 난데없이, "천사가 큰 소리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 땅, 바다,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6,7)고, 마치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리듯이 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구원을 알고 직접 구원된 사람들이 그 받은 바 은혜를 알리는 것이 제격이고 당연 도리이지 천사가 직접 끼어든다는 것은 비상 사태에 처한 경우가 아니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연, <비상 사태>인 것입니다. 21세기를 지목하는 예언인 계시록에 느닷없이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12.7-9)고 한 것이 그 증거. 즉 천사 미가엘군/軍이 사탄 일당을 꺾고 승리한 여세를 몰아 "천사의 복음"(계 14.6)이라는 새 장/을 마침내 열게 된 사연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다니엘 예언 "마지막 때"("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신속히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이다"ㅡ단 12.4)와 겹칩니다. "봉함/封緘한다"는 것은 예고한 그 시기가 당도해서야 그 예언 성취의 시점을 정확히 알게 됨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21세기. 교통·통신 분야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첨단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거짓 속임수 "다른 복음"("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ㅡ갈 1.6)에 거의 2천년간이나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말함이니, 이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인 것으로 지금에야 알게 됨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니까 으레 사도들이 처음 전파했던 말씀 그대로인 줄로만 알았지 달리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 신/神"(고후 4.4) 사탄이 옛 에덴에서처럼 황당무의 거짓말로 "꾀어"(계 12.9) "영적 죽음", "대신 죽으심" 따위로 거의 2천년 간이나 세뇌시켜 왔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바율 서도 당시부터 이미 자행되어 온 "다른 복음"과 같은 이런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우리는 "바벨론 신학"이라 구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정작 요긴한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내가 전한 복음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ㅡ갈 1.15/눅 10.22)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인간의 학문(신학/神學)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유의하지 않은데 대한 당연한 대가/代價가 "바벨
론 신학"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의 말씀과 같이, 또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눅 10.21) 하심과 같이, 학문으로 접근하는 자에게는 과연 "숨기셨음"이 이로써 입증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때가 이르자 천사들이 직접 나서서 그와 같은 사탄의 방해 책동을 일전/一戰을 불사하면서까지 분쇄 제재했겠나요.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령의 계시가 아닌 학문으로만 일관하려 했던 고집, 인간들의 오늘날까지의 모든 오만함과 헛수고에 대한 결말은 이러한 사탄의 거침 없는 책동이었던 것입니다.

"영적 죽음" 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만 하게 만들었고 "삼위일체" 하나도 시원하게 그 의미를 풀지 못한 채 오늘 이 시간까지 사탄의 거짓말에만 질질 끌려 다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 전파"의 때에 와서야 모든 진실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천사의 복음"과 천사의 "21세게 표적과 기사"를 오늘날 처음으로 말한다고 해서 어떤 특이한("천사"와 관련된) 기이한 무엇을 접하거나 한 적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두드러진 상황은 있었습니다. 악령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증언도 직접 목도했기에, 주님의 뜻이라 믿어 세상 앞에 공개하는 것입니다.

천사(사람으로 변장한)를 대면한 사람들은 역사상 간혹 있었어도 마귀를 통째 실물로 구경한 사례는 유사이래 처음이므로 이를 세상에 공표하는 것은 실로 유의미하다 생각합니다. 악령들이 천사들과의 결전/決戰에서 완패한 후(계 12.7-9) 완전히 힘을 잃어 <천사의 의도대로 따를 수밖에 없이 되어> 스맡폰 카메라에도 찍혀졌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입니다.

영물의 생생한 그 육질/肉質"(천사든 악령이든 공통이니 사람도 악인이든 의인이든 똑같은 것처럼)까지 세상 앞에 여지 없이 드러나는 등 "사상 초유/史上初有의 초자연계 무대의 진기명기/珍奇名技"의 연출이기에 "아담영상/影像(ADAM pix)"도 가능해진 것이고 또 그만큼 그 의의가 대단한 것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trinia&from=postList&categoryNo=74

누가 과연 "이 세상 신"들의 거동을 세상에 <실물>로 구경시키는 등의 일을 할 수 있겠나요. 천사들이 개입되지 않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막중한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영적/초자연계 실존의 <실물> 증거임을 재차 강조합니다. 모두에서도 밝혔듯 세상 앞에 드러내는 초자연계 자체의 확증/確證 또는 물증/物證 바로 그것입니다.

3위1체가 말하는 "짝"으로서의 상반/相反성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하나님 창조임이 100% 입증되었으니 자연계 물질에만 머무는 현재까지의 과학의 한계까지 뛰어 넘고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해버리는 실로 경악할 최대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백 마디 천 마디 설명이나 이론보다 스맡폰 카메라의 비디오가 모든 것을 말하고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듯이 이보다 더한 "정확무오"는 있을 수 없습니다.

NSO(Nephilim Soul Orb, 네피림 망령/妄靈 구체/球體, 귀신의 원형/原形)가 카메라 렌즈에는 나타나도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영적인 것 즉 초자연계 속성임을 100% 입증합니다. 네피림(악령과 인간의 튀기[hyb-
rid]ㅡ창 6.4)이 아닌 아담의 씨로서의 사람의 혼백은 그렇게 떠돌아 다니지 않습니다(마 12.43).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의 주님 말씀대로 마지막 심판 전 일정한 형벌의 장소나 하나님 위로의 안식처에 당분간 수용되니까.

촬영자 본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천사의 복음" 전달이라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터에 하나님 앞에서 일말의 거짓이나 속임수가 개입될 여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공언/公言합니다. 이 모든 증언과 증거는 오직 믿느냐 안믿느냐, 그 하나로써만 좌우될 것뿐입니다. To belive, or not to believe, that is the only question.
 
무어니무어니 해도 "아담 영상"과 같은 성격의 모든 내용 중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첫째 1908년 6월의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충돌 사건 및 당시 용의 지상 추락 광경을 진술하는 그 곳 주민들의 목격담, 그리고 또 하나는 2001년 8월 미국 NASA 우주선 디스카버리호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용(거대한 뱀으로 나타난)의 실물 사진입니다. 전무후무한 것으로서 이 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다.

이상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며 이 이상의 실물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담 영상"은 단지 그 세밀한 부분을 증명해 주는 것뿐입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상반/相反성(짝을 이룸)은 3위1체 법칙으로 이미 입증되어 있는 것으로서 "아담 영상"의 역할은 단지 그 후속적인 추인/追認에 불과합니다.

이로써 (1)<창조주 하나님>과 그 말씀으로서의 (2)<성경의 진실성>은 거의 2천년 묵은 바벨론 신학의 거짓과 속임수를 궤멸시키는 "천사의 복음" 등장으로써 그 '절대'적 과학성/性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넉넉한 자세로 복음 전파에 전념할 일입니다. 세상이야 이를 제대로 인정하든 않든 우리가 괘념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만 확고부동의 믿음으로써 우리 임무 수행에 철저하면 나머지는 성령께서 다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고후 6.1).



육하원칙에 의한 21세기 "표적과 기사"(요 4.48)

거룩하신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가 명확히 육하원칙(六何原則)에 의해서 발표된 것은 유사이래 최초이자 마지막(주님 재림 전으로는)입니다. '육하원칙'은 기사나 보고서 등 신뢰성 있는 글쓰기에서 필수적으로 다루는  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