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19일 일요일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해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ㅡ이 경고 심각히 수용하지 않는 자마다 멸망길로 접어들어

어떤 표적을 지목할 때 손가락으로 가리키는데 이 손가락에 해당하는 것이 짝의 법칙, 3운법칙, ADAM(아담) 영상/映像 등입니다. 이 손가락이 가리키는 표적이 메시야 예수님 곧 우리의 최종 '아담'이십니다. 사람되신 '성자/聖子' 하나님께서는 영원히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로 계십니다. 이 하나되는 이치로 나를 구원하셨으니 "주님과 합한 자는 주님과 한 영"(고전 6:17)인 것입니다. 짝으로서의 하나됨이니 이를 "사랑"이라 합니다. 이것이 모든 '사랑'의 정체/正體 그 실상입니다. 그래서 "사랑과 삶의 법칙"이라고도 합니다. "마지막 아담" 즉 새 아담께서는 "영으로 다시 출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새 창조(옛사람의 옛 창조는 육으로 나는 것인데 첫사람 아담 범죄로 동물적 육체로 전락하는 비극적 결말로 끝났고)의 기본 바탕이 되시므로 각자 앞앞이 일일이 하나를 이루어 그 안에 계시니까 말 그대로 모두가 "머리"되신 주님 안에서 평등, 평준화가 되어 한 몸의 각 지체/肢體, 각 부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각자의 '삶'은 저마다 주님과의 매일 매시간 "사귐"(요일 1:3)에 있어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는"(고후 5:9) 여하에 따라 모든 것은 좌우됩니다. 주님을 사랑할수록 주님의 뜻대로 하려는 일편단심인지라 주님의 사랑과 은혜 또한 비례하여 넘쳐나시게 됩니다. 부모를 공경하여 믿고 순응하는 자식에게 더 에틋해지는 심경이 되는 꼭 그대로이십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을 주심은 부모가 바로 이 하나님의 모성애/부성애의 그림자이기에 그렇습니다. 메시야 칭호 가운데 "영원하신 아버지"(사 9:6)가 포함되고, 우리를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children)"(히 2:13)라 하셨듯이 만유의 창조자이시기 때문에 그러하시나, 또한 우리를 "형제"(:2)라 하심은 이제는 사람으로도 계시기에 하나님의 "많은 아들"(:10) 중 "맏아들"(롬 8:29)이 되신 까닭.

그리고 또 하나 유의할 사실은,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아무 사람도 육체대로 알지 아니하니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체대로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이같이 알지 아니하는 것이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다"(고후 5:16,17)고 한 것입니다. "육체대로 알지 않는다" 함은 "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다"(눅 20:35) 하신 대로 여자가 생기기 전 최초의 아담처럼 사람이 성별로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연계 동물처럼 생산을 위한 남녀 구별입니다.

창세기에, 여자를 만드신 것은 자녀 생산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담의 보좌역/輔佐役으로 창조하신 영물/靈物들의 그 생김새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서의 아름다움과는 동떨어져 도무지 아담의 마음에 드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부자지간(모든 아버지와 아들은 '닮은꼴'이니까)으로 짝이듯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아담에게도 그런 짝을 주시려 했던 것인데 아담이 창조자가 아닌 이상 자기를 닮은 자기의 형상을 낳을 수가 없기에 동물의 암수(자웅/雌雄) 방식으로 여자를 새로 창조하여 주신 것. 아담의 자식(인간) 생산은 신령한 방법으로(동물적 육체의 현재와 같은 방식이 아닌) 얼마든지 가능한 것인데(영물의 도움을 받아) 아담 스스로 원치 않으니 부득불 그렇게 성별/性別로 나누신 것입니다. 말하자면 아담은 자기와 같은 '닮은꼴'(여자가 남자에게서 나왔으니까)을 얻은 셈이나 자기가 직접 만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만들어 주셨기에 '부모 관계'가 아닌 '남녀 관계'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성/性 관계'로서의 자식 생산이 아니라 신령한 방식으로서의 자식 생산이나 범죄로 동물적 육체가 됨으로써 현재와 같이 된 것. 동물적 육체끼리 결합하자면 동물에게 장치하신 욕구가 작용해야 하므로 성적 매력이 요구되는 것일 뿐입니다. 이 생산 작용이 종료되면 욕구도 해변의 모래 사장 같이 말끔히 지워집니다.

신령한 몸으로 복구되면(부활의 몸이 되면) 더 이상 자식 생산이 필요하지 않아(인간의 숫자는 이세상에서 다 충족되었으므로) 성별도 사라지니까 사람마다 최초 아담의 남성미와 여성미를 두루 갖춘 완전한 아름다움을 발휘하게 됩니다. 다 똑같이 절세 미인, 가인/佳人이라면 어떻게 식별이 되나 하겠지만 모두가 신령한 초능력의 존재들이므로 그런 문제는 없습니다. 동물적 육체(이 육체는 안간에개 죽음과 썩음을 안겨 줌만 아니라 너무 단조하고 삭막하기가 이를 데 없는 것)의 현재 인식으로는 신령한 육체로서의 삶이란 가히 상상도 못할 꿈과 같은 것이라 하겠습니다. 이 육체가 범죄의 결과(아담의)이므로 하나님이 극도로 가증/可憎히 여기시는 대상/對象인 이 육체의 세상 삶을 마땅히 백안시/白眼視하고 사갈시/蛇蝎視해야 한다는 것이 성경의 엄중 경고인 것. 영원한 생명의 지극한 영광과 밎바꾸는 크나큰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 대가/代價가 이다지도 엄청난 것을 안다면 비상/砒霜 즉 독극물처럼 세상을 대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의 바울 사도의 말은, 이와 같이 새 피조물로 이제 탄생했고 장차의 신령한 몸의 삶이 그러할 것인즉 그 기준에 맞추어 지금이라도 얼마든 적응할 수 있다는 뜻인 것입니다. 더욱이 각자가 다 자기 안에 계시는 '사람' 예수님과 짝을 이루어 1년 365일 24시간 서로가 서로를 대면하여 의식하며 함께 삶을 누리는 에덴 천국을 이루어 있으니 당연히 이 실상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인간은 동물적 육체로 지으심을 받지 않았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동물적 육체로 지으셨으면 반드시 여자도 동시에 창조하시지 그토록 뜸을 들이실(에덴 생물 즉 영물들을 창조하시는 등)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거니와 하나님께서 '아버지와 아들'의 짝으로 계심을 따라 이 짝의 법칙으로 만유를 창조하셨고 만유를 유지 보존하시니, 인간 창조도 구원도 이 짝의 법칙 따라 빈 틈 없는 짜임새로 이루셨음을 아는 것이 오늘날 우리에게는 실로 생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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