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9월 29일 화요일

교회에 보내는 사도 서신 인삿말에서 "성부", "성자"와 달리 "성령"의 이름이 번번히 빠지는 이유


이번 게시글에서 불필요하게 반복되는 부분도

없잖아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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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턱대고 자기를 부인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창조하시어 나를 누구보다 더 잘 아시고 따라서 더 잘 위하시는 하나님 친히 나를 위하시니 내가 굳이 나를 위하지 않아도 되니까 공연히 자기를 위하는 쓸데없는 헛수고를 해야 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같은 피조물로서의 사람끼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를 상대해주는 내 이웃이 나란 존재를 나 자신보다 더 잘 인식하니 나를 위함에서도 그러한 내 이웃이 나 자신보다 더 잘 나를 위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도 "네 <이웃>을 사랑하라"이십니다. 모두가 한 "머리"(대상 29.11/대하 13.12)이신 하나님의 "몸"으로서의 "각 지체 각 부분"(고전 12.27) 역할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나는 그 모두를 위함과 동시 그들 모두의 위함을 받습니다. 내가 사랑하면 그만큼 나도 똑같이 모두의 사랑을 받는 빈 틈 없이 짜여진 구조요 완벽한 체계입니다. 바로 이 완벽한 짜임새(구도)로 최초의 언약(약속)과 계명이 지켜진 것이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셨으니, 이를 주님 친히 밝히신 그대로입니다(요 15.10ㅡ"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즉 "내가 너를 위하여 너를 위하는 것은 네 자신이 아닌 나이니까 너는 네 자신을 위할 필요가 없고 그대신 오직 나만 위하라"이시므로 "내가 너를 위한다"는 <약속>과 동시에, "너는 네 자신을 위하지 말라"는 명령 곧 <계명>이신 것입니다. 한 편 성경은 이와 관련해 

"아담은 언약을 어겼다"(호세아 6.7)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그 동일한 <약속과 계명>인데 아담은 이와 같이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따르지를 않았던 것입니다. 두 하나님(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었으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는 문제가 생겨 최초의 인간 범죄입니다. 머리되시는 하나님과의 약속도 계명도 아담은 (처음부터) 지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 사람 아담"으로 인하여 완전 파탄이 나버린 인간 창조라(이 아담 범죄로 모든 인간이 죽었은즉ㅡ골 3.3/롬 5.12) 새로 다시 창조하시되 '3위1합'(종전의 "삼위일체")의 짝의 법칙에 의한 "영(성령)으로 나는"("육으로 나는" 것과는 대칭인)으로 나게 하는 방법 밖에 없어 부득불 이를 위해 하나님 친히(모든 피조물의 어버이로서의 하나님 사랑과 은혜는 형용할 길이 없어) "마지막 아담" 즉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이는 나와 함께 죄인 사형수처럼 형벌 받는 죽음을 죽으심으로써 죽은 자로서의 나와 하나되신 부활하심을 통해 또한 나를 부활한 자 즉 산 자로서 하나되게 하심으로 나를 살리려 하심이었던 것입니다. 진실로 하나님께 무한 찬양과 감사를 드립니다! 

이렇게 세상에 오시기 전과 후를 구분하여 그 전단계가 "구약"시대, 후속 단계가 "신약"시대입니다. 따라서 성경은 이상 설명과 같은 '언약 및 계명'에서의 그 변천사라 하겠습니다. 여기서 확실하게 해두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 관련 올바른 지식입니다. 바벨론 탓에 성경 해석이 지금까지 중구난방이 었는데 성경은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바벨론이 무엄하게 침범을 못합니다. 고로 알아야 하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부자지간이십니다. 혹자는 삼위일체(오늘날 바벨론을 벗어나 정확히 말하면 "삼위일합") 관련 무지를 인해 하나님을 동등하시다 하는데, 부자 관계이시며 따라서 아버지는 아들보다 당연히 "크심"(요 4.28)입니다. 이 모두 "말씀 혼잡"(고전 2.17/4.2)에 속하니 경계해야. 그리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심을 의미합니다. 이 "하나" 개념은 상보성 원리에서 "상보/相補"입니다. 하나님 계시는 모습의 "3위1합"을 창조와 그 모든 운영 원리로 삼으셨다는 강력한 증거인 것입니다. 미시세계가 이 원리를 따른다는 것은 거시세계 즉 만유의 원리로 작용한다는 의미이니 이는 오늘날 양자역학으로 드러난 진실임을 명심해야. 다시 말해 만유는 짝으로 되어 있고 이 짝의 특징은 그 둘의 "하나"됨인 것입니다. 상반/相反(성부와 성자) 즉 크시고(파생/하셨고) 작으심(파생되심)의 대칭을 이루셨고(contraria), 상보/相補(성령, complementa)로서 존재하심입니다. "상반"으로 짝을 이루셨으니까 대등하시지 않습니다. 어버이 자식 관계가 어찌 동등인가요? 성경에 씌인 대로 읽어 이해하면 되고 성경은 조금도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알기 어려우면 멜기세덱의 경우처럼 솔직하게 "어렵다"(히 5.11)고 안내해주는 성경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안내해 준 것도 이제는 다 밝혀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21세기 "마지막 때"에 와서 이해 못하는 성경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3운법칙도 나타내어 주셨으니까 더욱 그러합니다. 주님 다시 오시는 세상 끝이 다가왔으니까. 성경대로 하나님은 "독생자"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따로 두 분으로 계시지 않고 "하나"로 계심이 핵심의 특징이십니다."성령"이시라 할 때는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되어 계심을 말하고 성자께서 성부의 형상이시니까 성자 하나님을 가리키는 경우입니다. '3위1합'에서 둘이 하나일 때는 "교차 소유"로써 그렇게 됩니다. "한 몸"으로 하나일 때 아내 몸은 남편의 것, 남편의 몸은 아내의 소유가 되는 것이 그 예입니다(고전 7.4).  이와 대칭되는 "한 영"(고전 6.17)에서는 일상 삶에서 철저히 그렇게 됩니다. 고로 우리 구원 받음의 결과물은 반드시 주님을 위한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지(롬 14.7) 나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것(믿기 전의 자기 중심과 같은)으로는 나타나지 않고 용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함이 "생명" 그 자체라고 인식함이 옳습니다. 앞에서 설명한 대로의 "머리"와 "몸"의 "약속(언약)과 계명" 관계가 이루어져 영원히 이것이 우리 구원의 본질인 것입니다. 둘이 "합하여 한 영"(:17) 즉 "상반이 상보"라는 원리에서 벗어남이 없습니다. 주님께서 자기 목숨 즉 자기 전부를 다 바쳐 죽은 나를 살리셨으니 친히 내 안에 계셔 나와 하나가 되심으로써입니다. "우리 중에" 즉 구원 받은 자 중에 "누구든지"이니까 "구원 받았다"면서 아직도 여전히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있다면 그는 여태껏 단 한 번이라도 구원 받은 역사가 없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입니다. 한 점 거짓도 의혹도 있을 수 없는 성경적 결론이니 우리 모두 각자 자기 자신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구원 못받았으면 지금 당장 모든 죄 회개하고 주님과 "합하여 한 영"됨의 '교차 삶'을 살면 됩니다. 오직 문제는 여기에 동의하지를 않고 이의를 제기하는 데에 있습니다. 하나님 친히 명령하신 "바벨론 탈출"(계 18.4) 순종 여부가 여기서 가려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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