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12일 수요일

짝의 법칙 도식/圖式을 3운법칙으로써 그리신 하나님의 그림

 






물론 천사가 작업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이름으로 모든 것을 하므로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이든 일이든 하는(골 3:17) 것이므로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니, 이것이 구원받은 증거 즉 새 생명의 새 사람으로서 새로 창조됨으로써 다시 출생했다는 증거입니다. 때문에 "우리가 어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하고 여쭈었을 때,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요 6:29)이라 대답하신 것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요 구원받음은 다시는 나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위하여 사는 것이기에 그러합니다. 자아중심이 되어 죄에 팔려 영원한 멸망만 기다리는 우리를 정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창조를 다시 시작하시는 중의 오늘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니 우리도 일합니다.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메시야 주님께서 하신 말씀 그대로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1) 것입니다.  

천사는 다니엘을 통하여 짝의 법칙 도식/圖式을 설명하기를 "한 때, 두 때, 반 때"라 했고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를 인용했던 그 "마지막 때"가 눈 앞에 다가 와 있습니다. 이것은 말(구변)로써 짝의 법칙 도식을 표현한 것이고 마찬가지로 3운법칙은 그 법칙의 내용을 담은 구조로써 아주 섬세하게 나타내신 바가 된 것입니다. 19라는 돌발적인 수치로써 그리고 FS형의 닮은꼴이 되어 있는 JP로써 회화/繪畫적으로 표현한 것이니 진실로 말 그대로의 하나의 "작품"을 대하고 있는 것이니, 아주 쉽게 어린 초등생 아이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만인을 위한 과학"입니다. 과학자들을 위한 과학이 아니라 글자와 숫자만 익힌 이라면 뚜렷이 각인시킬 수 있는 말 그대로 "만인 상대"입니다. 

어느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직접 스스로 살펴보고 창조주 하나님을 믿어 성경 곧 그 말씀을 따르라는 하나님의 뜻임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니다. 지극하신 은혜이십니다. "천사가...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외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6).  



21세기 우리 믿음의 위치는 말 그대로 확고 부동이요 만고 불변

 









성경의 허구를 보여 준다고 합니다. 피라미드, 나이테 등 7가지라 하는데, 우리는 당장 이에 대한 답변을 못합니다. 우리 자신 그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없으니까 그렇고 아니면 "6일" 창조의 "6일"을 우리가 아는 날로서 오해했듯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는 것이 둔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그와 같이 성경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편에서 잘못된 지식으로 말할 수도 있습니다. 기타 등등 이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굳이 그런 것을 꼬치꼬치 따지지 않아도 하나님 실존에 대한 그리고 그 말씀인 성경의 진실성에 대한 우리의 확신과 신뢰는 확고 부동입니다. 왜냐 하면 3운법칙과 짝의 법칙의 상호 검증입니다. DPA pix도 곁들여. "사람은 거짓되되(고의적이든 무지해서든)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롬 3:4)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고 명령합니다. 명령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명령은 의당히 그렇게 되어 있어야 할 것을 즉 우리가 마땅히 그러해야 할 것, 하고 있어야 할 것을 하라고 하는 것이 그 특징입니다. 억지로 없는 것을 있게 하라든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라든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기쁘지 않는데 어떻게 기쁨이 나오나요 하고 되묻겠지만 그것은 우리의 믿음 탓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인자를 인하여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좋은 것이 아니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다"(눅 6:22,23) 하심과 같이 우리가 그 말씀대로 "기뻐하고 뛰놀" 수 없을 때 그것은 우리 믿음이 거기까지 미치지 못하는 탓이지 다른 이유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는 우리 믿음 가꾸기에 마땅히 힘쓸 일입니다. 그 "가꾸는" 일이란 제상장적인(나를 위해서가 아닌 오직 남을 위해서 하는) 기도에 힘쓰고 말씀 가까이하고 모든 명령에 순종, 순응하는 것 외 특별한 무엇이 달리 있을 수 없습니다. "구하면"

어떤 이는 성경에 "회개하라" 한다 해서 "내가 모르는(잊어버린) 과거의 잘못도 일깨워 주십사고 열심히 기도한다"고 하는데 "회개"는 자아중심을 버리고 오로지 하나님 중심으로 나아가리라는 의지 여부에 달렸으므로 당장 자신이 알고 있는 "악함을 버리는"(행 3:26) 것으로 충분합니다. 이제부터는 일절 그런 악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마땅히 기억하여 버려야 할 것이 있다면 내가 그렇게 순종하는 가운데 어느 때든 기억나게 하시든가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고로 그런 것을 가지고 기도로 씨름하여 귀한 주님의 시간(주님께 바친)을 허비한다는 것은 온당치 않습니다. "구하면 얻게 되고 찾으면 찾게 되고 두드리면 열리게 된다"(마 7:7)고 약속하셨으니까, 그리고 약속대로 기필코 되고 말 터이니까, 문이 열릴 때까지 두드리는 오직 불굴의 집요함만이 요망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가르치는 이들에게 주는 조언


어디에 보니 "사람이 천국"이라고 하는데 말씀을 가르치고 전달하는 우리 모두는 힘써 성경의 표현대로 하고 말의 기교를 부리거나 하여 튀는 설교를 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바울 사도는 사람의 지혜로 가르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나타나심이 되도록 하기 위해 교회에서 가르칠 때 "약하고 두려워하며 심히 떤다"고 했습니다(고전 2:3,4). 이것이 정상적인 바른 자세입니다. 오늘날은 이런 모습을 좀체 구경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 않을 때 바울이 경고한 것처럼 "말씀 혼잡"으로 유도됩니다. 이것은 아주 위험한 일입니다


성경에 사람이 천국이라 한 예가 없습니다. "천국은 씨 뿌리는 자와 같다" 하셨으니, "사람이다"와 "그런 사람과 같다"는 것은 의미상의 현격한 차이가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자주 하셨으니 이는 당연하신 말씀입니다. 사람이 천국이라면 사람이 사람 안으로 들어간다가 되니 이런 식의 표현은 삼가해야 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너희 안에 있다 하셨으니 사람이 사람 안에 있다는 의미가 되므로 무의미한 것입니다. 튀는 언변과 표현은 말씀 전파에서 불필요한 때로는 심각한 암적 요소가 됩니다. 


복음 진리는 심오한 것도 아니고 난해한 것도 아닙니다. 단지 몇 가지 사실만 제대로 적시하면 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거짓말을 지어내어 퍼뜨렸기 때문에 그것이 화근이었습니다. 지금은 그런 거짓말을 벗겨내어 성경의 진실, 진리 그대로 전달해야 하는 때입니다. 아담의 죽음이 영적이었다는 거짓말, 대신 죽음이라는 거짓말, 에덴이 자연계 동산이라는 거짓말 등 몇 가지만 바로잡아 주는 것으로 그쳐야지 그 이상으로 나가면 도리어 화근이 될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