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 되시고자 함이다.
아담이 되시는 필수 요건이, 아담의 범죄로 인한 죄인으로서의 죽음을
꼭 그 의미대로 죽으심에 있기 때문. 그래야 죽은 아담이 다시 살아남과 같은 의미가 되므로.
또한 아담의 죽음은 우리 모든 인간의 죽음의 시초이였기에
바로 그 맥락에서 나 위한, 내 죄 때문의 죽으심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앞 뒤 순서를 제대로 가려야. 먼저 머리이고 다음이 몸통, 나중에야 다리다.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이 의미는 고전 15:45에만 있지 않다.
롬 5:12를 비롯해 여러 번 언급하는 성경이다.
성령의 가르치심을 사모하여 성경을 읽지 않고
먼저 "사람의 교훈으로 가르친"(마 15:9) 것만 의존해서
그 색안경으로 모두 성경을 읽으니 "하나님을헛되이 예배한다"(:9).
이제 우리애게는 만세반석 아담이 계시는 것이다.
나와 똑같은 사람이신데 자연계 몸이 아니신 초자연계 몸, 영광의 몸이시니
이는 애초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실 때 바로 그러한 몸으로 살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친히 그렇게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바로 그 몸으로(사람되심으로써 죽어) 다시 살아나신 것뿐이다.
성경이 이런 몸으로 부활하심에 대해 일언반구라도 설명이 있었던가?
만일 사탄의 거짓말대로 처음부터 이런 육체로 사람을 만드시고 살게 하셨다면
반드시 현재 우리와 같은 몸으로 부활하셔야 마땅한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일관성이 없는
경천동지할 일대 사건이 되는 까닭에 반드시 그에 상응한 설명이 필요불가결이다.
그러나 일절 해설이 없다. 이는 설명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설명이 필요치 않다는 것은 이제는 명실 상부한 아담이 되셨다는 의미 외 달리 없기 때문.
바로 이 영광의 몸이 인간 본연의 몸, 아담 범죄로 상실했었던 초자연계 몸이다.
이런 거짓말로 인간을 내쳐 속인 사탄이 악하기보다
이따위 거짓말에 잘도 속아 넘어가 포로된 인간의 어리석음과 오만이 더 가증스러움을 알아
이제는 모두가 회개해야 하는 것이다. 다시 새 마음으로 주 하나님께 나아가야.
내가 육肉으로 출생하여 범죄한 아담(범죄하지 않은 원래의 아담이 아닌)의 육체의 옷을 입었으나
이제 "마지막 아담"의 영(성령)으로 다시 나
성령(성령으로 계신 메시야 아담 또는 성자聖子 하나님과 하나되어 계시는 성부 하나님)의
옷을 입고 있는 것이다.
그럼 도대체 어느 쪽이냐 할 것은 없다. 주 예수님 셰상에 오신 그대로의 모습이니까.
나도 "마지막 아담"의 모습이 되어 그 하신 일을 본받아 따르면 되는 간단 명료한 일이다.
메시야 예수님은 성부 하나님과 하나이신 모습이시나(요 10:30)
우리와 또한 하나되시기 위해서 죽은 아담의 옷(육체)을 입으셔야 했던 것.
우리 역시 우리가 기도하고 전도해 살려야 할 심령들과 하나되는 이치로써
머리 따라 머리께서 하신 대로 행하는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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