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월 26일 일요일

명약관화














"개가 그 토한 것을 먹고 씻겨진 돼지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눕는"(벧후 2:22) 것이 세상 삶 사랑이니 요주의



고로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저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할까 염려하라"(마 7:6) 경고하신 것이니,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처지(죄)를 절감,
세상이고 무엇이고 아무것도 소용 없고
오직 "물, 물, 물!"만 찾는 자가 생명수 마시고,
세상이고 삶이고 아무것도 다 귀찮고
오직 병낫기를 일구월심 바라는 자만 명약 명의 찾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살인 독사에게 물려
죽음을 경각간에 마주 대하는 절박한 자만이
모세가 세운 구리 뱀을 보고서 살아나듯이
하나님 앞에서 이제는 꼼짝없이 죽는구나 하는
죄인으로서의 통절한 회개 없는 자에게
절대로 "나 위해 죽으신 독생자 하나님의 구원"을
말하지 말라는 것이 성경의 경고인 것이다.

영생이 탐이 나서 교회 문을 두드리는 자는
교회 전체 분위기를 망쳐놓기 십상이다.
이런 사람들이 구원받았노라고 믿는 자 행세하면
교회 타락, 속화는 순식간이다. 
하나님의 추상 같은 율법의 위엄을 구약시대에 먼저
교육, 교화시킨 연후에 십자가 사랑의 하나님 사랑이
신약시대에 비로소 나타나신 사실을 망각하지 말아야.
모름지가 전도 설교자(부흥사)는 
하나님의 율법의 단죄(롬 7:13/3:20)를 선포하기 전에는
은혜의 구원은 입도 뻥긋하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이 순서를 어기고 "싸구려" 구원을 남발한 탓에
아담이 용/사탄에게 굴복하여 이 세상 신/왕으로 만든 것처럼 
교회가 세상에 굴복하여 
오늘날의 "배도"(살후 12:3)의 요인이 된 것이다. 











자기 동족의 구원을 위해
자기 자신 멸망해도 좋다는 심정인데
그런 사람이 로마서 7장 24절의 탄식의 주인공이라고?
로마서의 "죄와 사망의 법"이란 것은
자아중심 즉 세상에서 어찌하든 살고자 하는 욕망에서
비롯되는 것임을 어찌 그리도 모르나, 신학자들아!
그런데 이 로마서 7장을 바울 사도 자신의 체험 피력이라니!
나를 위해 살지 않고 주님의 마음을 닮아
주님의 일을 하다보면 자연 주님의 심정이 되는 것이다
모세도 "제 이름 생명책에서 지워주십시오
이 백성 용서하실 수 없으시다면 저도 함께 멸망하고 싶습니다"
한 것과 똑같은 가식없는 사랑의 발로인 것이다(출 32:32) 



2020년 1월 25일 토요일

다윗처럼 하나님의 "품속"을 노래해야



여기서 "주의 생각이 내게 보배로우시다"(:17)고
우리말 번역으로 되어 있는데
뜻을 명확히 하여 "내게 관해 생각하심이 보배로우시다"는 것으로 
제대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무릇 생각하심이 모두 내게 소중하다는 말은 
뜬 구름 잡는 듯이 막연하여 피부에 와 닿지 않습니다.
Biblegateway에서도 대여섯 군데에서만 이같이 뜻을 명확히 하고
나머지는 그냥 얼버무리고 있는데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시편 40편 5절에 그 뜻이 분명히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시여 주의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도소이다 
내가 들어 말하고자 하나 주의 앞에 베풀 수도 없고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21세기에 주시는 시대적 은혜















2020년 1월 24일 금요일

오해 말 것은 마귀는 구원(성경) 관련해서만 인생들을 바보로 만든 것이니까

무신론도 인간을 그렇게 바보로 만든 현저한 사례 중의 하나다
그리고 교회, 신학자, 신학교가 주공격 타겟이었다









생명과 죽음은 짝이다.
이는 다시 말해 피조물 인간이 살도록 하신 이상
동시에 죽도록 하실 리는 절대로 없다는 증거이다. 
이것이 변개될 수 없는 영원한 짝의 원리의 골자다.
이것이 잘 납득이 안되거든 염치불구하고
초등학교 1학년 교실에 들어가 사고력의 기초부터 배우라. 

성령께서 친히 성경의 가정교사가 되시지 않는 한 모두 성경 문맹자/文盲者다




구원받으라 하면 설득력이 없다ㅡ아담 범죄로 망가진 창조이니 회개하여 다시 출생함으로 새 창조하심을 받으라 해야 보다 더 수긍하게 된다






죽은 자가 무슨 올바른 행위를 할 능력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꼼짝없이 죽어 있는 판에 기척이라도 할 수 있는가.
눈동자 하나 굴릴 수조차 있는가. 
먼저 사람부터(죽은 사람) 살려놓고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살려놓은 다음(구원된 다음) 올바르게 사는지 여부를 따질 일.
은혜로 믿기만 하면 되는 구원을 설정하신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그런데 살려놓고보니 졔 마음대로 해도 상관없다는 오만함의 극치가
난동을 부리게 되어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소위 "신학"의 교리이다.
미안하지만, 그런 인위적 교리로는 지금까지 아무도 구원된 적도 없다.
속았을 뿐이다. 단 이  한 마디밖에 없다.
오직  "돌이켜 어린아이 같이 되어", 신학이 그렇게 가르치거나 말거나
하나님의 사랑에 감화 감동되어 나도 하나님 사랑하여
그 모든 말씀에 어린 아이처럼 순종하기로 작정, 그대로 행한 자만이
무사히(가까스로든, 어떻든 간에ㅡ벧전 4:18) 천국행이었을 따름. 

"하나님은 인생을 영생하는 자로 창조하셨다!"
이 얼마나 수긍할 만한 조리 정연한 말씀 선포인가.
"그러나 첫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이 꼴이 되었으니
영생하려변 예외없이 모두 <다시 출생, 새 창조>를 받아야 한다!"
이 얼마나 긍정적인 논리의 전개인가. 사실적 묘사인가. 
새로 창조하시는데 죄 짓는 인간으로 만드실 리 만무.
"창조"가 죄 짓는 인간 만드심에 있을 턱이 없으니까.
죄는 욕심/欲心/慾心 즉 마음에서 잉태된다(약 1:15/마 5:22).
말에나 일에나 다 의식적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하는데(골 3:17)
다시 말해 살아도 주님 위해 죽어도 주님 위하는(롬 14;7-9) 마음에
죄가 잉태될 수 있겠는가 스스로 양심적인 판단을 해보라(고후 5:15).
고로 구원받은 자는 죄 짓는 것이 "불가능하다" 한 것(요일 3:9).

정상적으로는 "불가능"인데도 무리로 비틀어 자아중심이 되니
범죄가 구성되는 것이고 이러한 파괴 행위가 무사하랴?
당연히 죽음, 멸망을 자초함이 아니랴.
아담의 범죄, 사탄을 비롯한 악령들의 범죄, 모든 죄의 속성이다.
사탄은 이런 죄를 짓고도 천국갈 수 있는 양, 왕창 속여 온 것이고
미련한("미련한" 이유는 오만하여 성경을 가까이 않은 것 ) 인생들은
속절없이 마귀에게 당한 것분. 자연계 육체의 인간은 속성상
초자연계 존재인 악령들에게 애시당초 적수가 못되니까.
미련하기 짝이 없는 인생들이여, 돼먹지도 않은 오만함부터 버림이
그대들이 일차적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동작의 일순위에 든다.
명심하라, 사탄은 그 교만이 그 패망의 원인이라는 것을(딤전 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