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모든 인류의 삶이 가시적으로 요리/料理되는 장관/壯觀을 우리는 구경한 적이 없는데 인류 역사가 뚜껑을 연 이후로 오늘날 최초로 3운법칙을 통해 목도하고 있으니 때는 비상 시국이다

 







21세기 복음 전파의 최고 정상

웅장한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준봉(峻峯)이

다름아닌 3운법칙이다. 인간 생애를 주장, 주관하는 법칙.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누가 이런 작업이 가능하랴.

모든 인간 생애를 단 3가지 규격에 맞추어 마름질하는 

그 누가 있으리요,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외에. 

느닷없이 이 21세기,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기 바로 직전에

이런 깜짝 선물을 내리신 이유는 하나님 말씀의 올바른 해석,

오늘날까지 마귀가 온갖 먼지를 날려 덮어씌워 

그 형체마저 분간 못하게 해놓은 청명한 말씀의 거울(鏡, mirror)을

본연의 찬란한 모습 그대로 깨끗이 씻어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3운법칙과 더불어 당연히 함께 나타나게 된 것이 3위1체의 법칙

곧 짝의 법칙으로서 이야말로 성경을 제대로 풀어 나가는 열쇠이다.

보라!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봉우리를 보라! 오직 하나뿐으로서

그 누구든 잘못 볼 이유가 없으니 보고 깨달으라, 하나님 말씀을.

짝의 법칙에 의해 현세가 있으니 내세가 있고

현세가 불완전하고 시한부인즉 내세는 그 짝으로서 영원, 완결이다.

메시야의 유일한 성격은 죽은 아담 대신의 "마지막 아담"되심에 있다.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오직 지름길이다.

여기에 모든 성경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짝의 법칙으로써가 아니면 어떤 일도 하시지 않는 까닭이다.

"마지막 아담"은 대칭/對稱 아담 즉 "아담과 짝"이라는 성경적 표현이다.

"본질은 같되 성질은 정반대로서의 둘의 하나됨"이 짝의 개념이다. 

곧 만유의 법칙이니 누구도 범접 못할 위엄과 위세이다. 

저 세계의 최고 정상 에베레스트가 오늘날 상징하는 바라고 여겨

하자가 없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 친히 주신 것이니까. 


이 "에베레스트"를 손으로 가리켜라.

그러면 끝나는 일이다. 

일찍이 인류에게 이런 웅장한 선물을 주신 일이 없다. 곧 3운법칙.

모든 인류를 한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실체가 이제 나타난 것이다.

3운법칙과 상호 검증되는 3위1체의 법칙이니 짝의 법칙(Pairs' Principle).

이들 법칙으로써 모든 산과 들과 바다로 비유되는 만민을 정복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으로써 정복하라. "마지막 때" 천사의 복음(계 14:6).

20세기 이후를 겨냥한 다니엘서 12:4와 함께 이 때를 가리켜 천사가 말한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7)를 맞받아친 요한의 계시록(12:14).

바로 이 때이다. 그래서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에 비유한 것이다. 


질풍노도와 같이 내달려라, 메시야 예수님의 군병들이여.

바울 사도는 믿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곧잘 비유했다.

사탄을 위시한 모든 악령들과의 전쟁, 아담 때부터의 치열한 전투다. 

무적의 군대이므로 오직 지금은 "약함"으로써만 승리의 종결이다(고후 12:9).

 고난, 고통을 자청, 자원하는 여기에 우리의 개선문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 누구든지 이 문을 통과하는 자는 복이 있다.  


기도의 군대. 말씀의 군대. 

"약함"을 "강함"으로 전환시키는 역전/逆轉의 군대이다. 




늑대가 우글거리는 세상에서 양들은 살 수 없고 오직 일하기 위함인데 특출한 지혜가 필요함은 물론이도 이 지혜 얻는 방법이 바로 주님과 먼저 의논하는 것 즉 기도









 위 그림에서 주고 받는 질문은 다름아니라,

"자연법칙이 우주를 지배한다는 것은 맞다.

그러나 인간을 지배하는 법칙은 없지 않으냐.

창조주가 남녀 인간을 지배하는 증거는 없으니까

(인간을 지배하지 않는데 무슨 창조신이 있단 말이냐의 뜻)." 


"천만에! 여기를 보라(이 3운법칙을 보라)!"

(시계가 여러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이

인생들의 3운법칙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는 것을 보라는 뜻). 


3운법칙의 <난공불락 아성>으로서의 근거는

노자로 집대성된 음양이론으로써 옛부터 보편화된 

짝의 법칙을 구조 도식 그대로 묘사하고 있어

3위1체 법칙(짝의 법칙)과 상호검증 관계에 있고

초등생 저학년 정도의 산술만 가능하면 

누구나 직접 검증할 수 있다는 것. 






외경(the Apocrypha) 중 솔로몬의 지혜서(the Wisdom of Solomon) 및 에스드라후서(2 Esdras)에서도 인생의 죽음이 아담의 범죄가 원인임을 명시하고 있다(2)

 









위에 연번호 14까지가 각 구절마다 붙어 있는데 해당 구절을 설명하면,

①계명, 명령, 지시, 분부 한 가지를 내리셨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

그러나 이를 어기자(그것을 먹자) "즉시" 죽음을 내려셨다는 것은

선악과  및 생명과의 성질이 초자연계와 자연계를 상징하는 것인데

자연계 속성인 선악과를 먹자 아담의 초자연계 속성의 육체가 

금방 다시 말해 수 시간 내에 말씀처럼 죽음의 자연계 육체로 변한 것.

그것도 즉각 변환되었다면 이를 본 아담이 먹을 리 없지만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되어 선악과를 먹은 여자가 무사태평한 듯 보여

덩달아 아담도 담대해져 선악과를 입에 넣게 되는 것이다.


당시는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지을 수 없어 바로 자기 몸, 자기 분신이라

그냥 "아담"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단지 남자, 여자로만 구분됐으나

범죄 후 아담이 여자 이름을 지은 것은 영물[靈物]들의 이름 지을 때처럼

아담의 지배 아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

여자가 범죄하여 둘 모두를 망쳐 진정한 내조자 역할을 상실한 때문.

즉 "둘의 하나됨"의 조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대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됨.

여자가 먼저 먹고 남자에게 자기를 따라 먹으라 했으니 

이는 아담과의 사이가 부모 자식 관계 또는 머리와 몸 관계인즉

(아담에게서 여자가 났으므로 즉 아담을 소재로 하여 여자를 창조하셨으므로)

마땅히 남자와 의논해야 했음에도 독단으로 결정했던 것은 

머리로서의 남자를 자기가 지배하는 듯한 형국이 되어버림.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의 원인 제공.

여자에게 내리신 저주인데 "여자가 남자 사모 운운"은 오역.

좋은 의미인 "사모"가 아니라 "넘본다", 권위 도전의 의미. 

머리는 어디까지나 머리인 것이다. 악한 영물 즉 악령 사탄의 범죄도

아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시기심, 교만함에서 연유된 것처럼.


"사모, 운운"은 "죄의 소원이 네게 있다"(창 4:7)의 경우와 같은 단어, 같은 표현법.

즉 "죄가 너를 덮치려 하니 너는 그 죄를 다스리라"는 말씀이신데

다스리고자 하나 불가항력이 돼 있음(자연계 물질의 육체라)을 암시하심.

여자가 범죄 않고 먼저 남자(아담)와 의논했더라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지도.

(이는 "마지막 아담"의 신부로서의 교회 즉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육함이니 주님께 쉬임 없이 기도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는 일 처리가 그것)

허나 자기가 먼저 저지르고 자기 죄에 남자도 동참하기를 요구/명령하듯

한 데에서 머리와 몸으로서의 남녀 질서를 억지로라도 확립하게 하심인데

억지가 됨을 인하여 저주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은 불가피. 

아름다운 한 몸 관계가 이같이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비정상에서 출발.


아담과 아담의 후대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음을 이 구절이 명시하듯이

이 죽음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②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바

노아 홍수로써 전인류를 죽음으로 멸망시키신 것을 들어 

아담에게 (범죄로 인해) 죽음을 임하게 하심과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의 인류 멸망을 가리켜 "영적" 멸망이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③, ④, 이는 지금까지 누누히 지적한 것처럼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⑥사탄이 아담을 죽여 "처음부터의 살인자"(요 8:44)가 된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아담을 시기한 탓이다. 

사탄이 만일 그룹 중 하나라면 격이 다른데 사람을 시기할 리가 없다.

같은 "6일" 창조의 피조물로서 동료로서의 동격이니까 시기한 것이다.  

이로써도 에덴 동산에서 창조된 각종 "짐승들"(창 2:19)이 영물임이 드러난다. 

⑦이 구절은 아주 구체적으로(숨길 것도 또는 상징화해서 말할 

아무 필요도 없지만) 여자 때문에 이 비극적 불행이 왔음을 밝힌다.


⑧, ⑨, ⑩이 구절들은 우리 인생들의 죽음이 죽기로 운명지어지고 

바람에 날아가는 티끌같음을 말함인데 하나님께서 아무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인생들을 그같이 만드셨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소설이지 않은가. 오

직 죄 때문에 오는 비극인데 범죄는 창조 후에 생긴 일이다. 

악령의 범죄도 창조 연후의 사건들인 것이다. 


⑪, ⑫성경에 짝의 법칙에 대한 명쾌한 언급은 

구약 이사야서를 통해 말씀하신 것과(사 34:16-17) 외경에 나오는 이 구절.

후자의 경우 부엉이 말씀을 하시다가 마치 문득 생각이 나신 듯이

(마치 이 내용만은 빠뜨리지 않고 인생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끼시듯)

"모든 말씀이 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시듯 하심에 유의해야.

말씀이 그렇게 짝으로 되어 있으시다는 것은 

하나님 하시는 모든 것이 다 이 법칙 테두리 내에서 되어짐을 알리시는 것.

   

⑬이미 설명한 바 있듯이 이생과 내생이라는 두 세계가 이루어진 이유가 

소수만이 구원 얻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아담 범죄 이전에는 하나의 세상 곧 

아담 주재의 정상적인 세계였다가 아담이 죽어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자

남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이 당분간 지속됨이 불가피하기에

이루어진 양상임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렇게 기본적으로 되어지는 일은

다 창조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하나님이 의도하셨든 아니든).


그리고 소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적>이라는 뉘앙스를 여기서 풍김은

네피림 때문이니 인생들이 적정한 숫자대로 구원 얻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네피림을 무진장으로 깔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상식에 속한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 단절이므로 상대적으로 구원되는 이들은 적을 수밖에. 

고로 두 세계의 양립은 악령의 인간 세계 지배 때문이요 

이는 아담의 죽음 때문이고 아담의 죽음은 아담의 범죄로 기인한 것.  


⑭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에덴 동편에 동산을 창설하셨다" 했으니

기존의 에덴 동쪽이라는 것은 초등생도 알 수 있는 극히 평범한 대목이다. 

그런데도 에덴이 마치 아담 창조 후에 생겨난 것으로 다들 믿고 있으니 

얼마나 성경을 형식적으로 건성으로만 들여다보는지 실상이 드러난다. 

이 구절은 바로 그런 에덴 선재(先在)의 사실에다 아주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초자연계(영계)가 언젯적 시기의 창조물이었나 하면

그룹과 스랍 창조에 대해서는 성경이 일절 함구하고 있으니 

바로 그들과 관련된 창조요 이는 "6일" 창조에서 제외된 것이 명백하다. 

당장 구원 받음 즉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됨이 급하고

이 소식을 만천하에 알리는 업무가 바쁜데 이런저런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성경은 몰라도 좋은 것은 과감히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생략하는 것이,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함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거짓말로써 지어낸 것이 성경이라면 거짓말이라는 평판을 막기 위해 

그래서 사실인 것처럼 철저히 꾸미는 것이 거짓말쟁이들의 피할 수 없는 수법.

고로 그런 탄로가 두려워 "생략하는(빠뜨리는)" 일이 감히 있을 수가 없게 된다. 

빈 틈 없이 채워놓아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려고 하는 바로 이런 습성이 

자기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이 되는 것인데 과연 성경은 그런 속성과는 전연 별개다.


그냥 창세기 초두에 "물이 넘쳤다. 혼돈과 흑암"뿐이다. 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뭍이 물에 잠겨져 있으니까 그런 것인데 그 물의 출처, 그리고 뭍이 잠긴 이유,

일절 말이 없다. 이런 것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임이 명백하시다. 

성경의 진실성 자체 증명은 성경을 애독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체 증명은 그 어떤 태풍이 불어닥쳐도 꿈쩍도 않는 

웅장한 산악의 만세반석임을 명심하시라. 

외부적인 것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을 찾는 이는

사탄이 한 번 작심하고 그 비상한 지식으로써 허물기로 결정하는 그 날

안개처럼 낙엽처럼 풍비박산이 되는 것으로 알면 충분하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다"(롬 5:12)고 한 마디로 매조지한 것을 외경에서 이 정도로 다

양하게 다른 목소리들로 일치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도 이 중요 사실

에  대하여 모두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한 것은 사탄이 입을 틀어막은 

증거이니 이보다 더 훌륭한, 기막힌 증거가 없다. "바벨론" 신학으로

부터 한시라도 빨리 탈피함이 시급하다.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외경(the Apocrypha) 중 솔로몬의 지혜서(the Wisdom of Solomon) 및 에스드라후서(2 Esdras)에서도 인생의 죽음이 아담의 범죄가 원인임을 명시하고 있다(1)


In both 2 Esdras and The Wisdom of Solomon we read that death came upon all men through Adam's sin(에스드라후서와 솔로몬 지혜서 둘 다 모든 인류에게 죽음이 온 것은 아담의 범죄 때문이라고 적혀 있다). 출처: https://www.biblestudytools.com/encyclopedias/isbe/adam-in-the-old-testament-and-the-apocrypha.html   이 글에서 소개자의 말투가 "we read that ..."("...라고 적혀 있다") 식이니 아담의 죽음이 "영적인 것"이라는 고집스러운 관념이 아주 머리에 박혀 요동을 못하고 있다. 요한 웨슬레도 인생의 죽음이 아담의 범죄 때문이라는 말을 하면서도 이 고질화된 병폐를 깨뜨리기 싫어 동시에 말하기를 "영적인 요소도 있다" 식으로 나가니, 우리 몸이 성령께서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했다가 동시에 예배당 건물도 "하나님의 성전"이라 말하는 것과 같다. 듣는 사람들이 확실한 성경 지식이 없으면 어느 쪽으로 기울어지겠는가. 요한 웨슬레가 그런 말을 했다고 대단한 것이 아니라 누구나 초등생이라도 아무 편견 없이 성경을 읽으면 그렇게 결론되어질 일이다. 그만큼 사탄에게 세뇌 당한 것이 뿌리 깊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이런 문제도 사탄이 범죄로 죽은 아담 대신 또는 아담 스스로가 저지른 짓에 의해 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음을 알면 간단히 이해할 수 있는데도 이마저도 믿지를 않으니 우왕좌왕일 수밖에 없다.  







§ 솔로몬의 지혜서(2:23,24)에는 아래와 같이 기술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실 때 당신께서 영원하신 것처럼 영원히 살게 죽도록 하시지 않았다. 그러나 세상에 죽음이 임한 것은 마귀의 시기심 때문인 것이다"


 마귀가 아담을  시기하여 아담을 꾀어 죽게 만듦으로써 죽음이 왔음을 의미하는 것.  

"마귀가 꾀어서 죽게(아담이) 만들었다" 하지 않고 

"마귀의 시기 때문"이라고 한 점에 특별히 눈이 가는 것이다.  

  1.  이 구절은 이미 소개했지만 그 중요성을 감안하여 중복 계재하는 것임.


  2. 아래는 그 몇 가지 영역

  3.  

Good News Bible
When God created us, he did not intend for us to die, he made us like Himself. It was the Devil's jealousy that brought death into the world, and those who belong the the Devil are the ones who will die. 

KJV
  1. 23 For God created man to be immortal, and made him to be an image of his own eternity.

  2. 24 Nevertheless through envy of the devil came death into the world: and they that do hold of his side do find it.


OREMUS BIBLE BROWSER
for God created us for incorruption,
and made us in the image of his own eternity,
but through the devil’s envy death entered the world,
and those who belong to his company experience it.

RSV
for God created man for incorruption,
and made him in the image of his own eternity,
24 but through the devil’s envy death entered the world,
and those who belong to his party experience it.




§ 스드라후서(3장 4~7, 10절)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다

흙으로 사람을 지으신 다음에는 땅이 형성되기 전에 조성하셨던 에덴으로 인도하시고 계명을 하나 주셨는데(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이를
지키지 않자 즉시 그와 그 후대들을 죽음에 처하셨다..... 아담에게 내리신 것과 같이 범죄한 자들 모두에게 죽음과 파멸을 내리셨다. 

창세기에 에덴 동산을 창설하셨다고 되어 있는데 위 대목에서 지적하는 것과 같이 
<이미 존재하고 있는> 에덴의 동편에다 아담을 위해 따로 동산을 만드셨다는 의미. 
노아 홍수 때 범죄자들에게 죽음을 내리신 것은 아담에게 죽음을 내리신 것과 같이 
되었다고 명백히 했으니 아담의 죽음이 범죄로 된 것임을 확인해주는 것. 


아래는 그 몇 가지 영역

BIBLE SOCIETY 

“O Lord and Master,” I said, “you, and you alone, spoke the word at the beginning of creation and formed the world. At your command the dust produced the lifeless body of Adam. Then with your hands you shaped it, you breathed into it the breath of life, and he began to live. You brought him into the Garden of Eden, which you yourself had planted before the earth was made. You gave him just one commandment, but he disobeyed it, and you immediately made him and his descendants subject to death.

“From Adam were born more nations, tribes, clans, and families than can be counted. All the nations did whatever they wished; they sinned against you and rejected your commands. But you did nothing to stop them. Then again, after a while, you brought on the flood and destroyed the world's population. 10They all suffered the same fate: as death had come to Adam, so now death came to a whole generation in the flood. 


NRSV

“O sovereign Lord, did you not speak at the beginning when you planteda]" style="font-size: 0.625em; position: relative; vertical-align: text-top; top: auto; display: inline;">[a] the earth—and that without help—and commanded the dustb]" style="font-size: 0.625em; position: relative; vertical-align: text-top; top: auto; display: inline;">[b] and it gave you Adam, a lifeless body? Yet he was the creation of your hands, and you breathed into him the breath of life, and he was made alive in your presence. And you led him into the garden that your right hand had planted before the earth appeared. And you laid upon him one commandment of yours; but he transgressed it, and immediately you appointed death for him and for his descendants. From him there sprang nations and tribes, peoples and clans without number. And every nation walked after its own will; they did ungodly things in your sight and rejected your commands, and you did not hinder them. But again, in its time you brought the flood upon the inhabitants of the world and destroyed them. 10 And the same fate befell all of them: just as death came upon Adam, so the flood upon them.

 

KJV

4O Lord, who bearest rule, thou spakest at the beginning, when thou didst plant the earth, and that thyself alone, and commandedst the people,

5And gavest a body unto Adam without soul, which was the workmanship of thine hands, and didst breathe into him the breath of life, and he was made living before thee.

6And thou leadest him into paradise, which thy right hand had planted, before ever the earth came forward.

7And unto him thou gavest commandment to love thy way: which he transgressed, and immediately thou appointedst death in him and in his generations, of whom came nations, tribes, people, and kindreds, out of number.

8And every people walked after their own will, and did wonderful things before thee, and despised thy commandments.

9And again in process of time thou broughtest the flood upon those that dwelt in the world, and destroyedst them.

10And it came to pass in every of them, that as death was to Adam, so was the flood to these.



이렇게 정경이나 외경이나 아담의 죽음의 성격(썩는 것, "영적"이 아닌)을 명시하

고 있음에도 마귀는 감쪽같이 지금까지 속여 온 것을 보면 자연계 육체의 상대적

 허약성을 통감하게 된다. 멀쩡하게 세워놓고 코 베어가도 속수무책인 것이다 (이

 외경은 70인역(the Septuagint)에서는 정경으로서 주 예수님 오시기 전후해 사

용되어졌던 것이나 그 후 이 "70인 역"은 용도 폐기인 양 별 볼일 없이 되고 성경

이 현재처럼 66권으로 확정될 때에는 외경으로 아주 밀려났다. 외경이 푸대접 받

는다고 해서 우리의 믿음에 미치는 영향은 없다. 심지어 마리아 승천 따위까지 말

하는 위경(僞經, Pseudographia)이 아닌 다음에야 외경을 읽는다고 해서 그렇

게 심각한 폐해를 주는 것도 없다.  그렇다고 외경을 정경에 포함시키자는 주장은

 더더욱 아니다. 외경이 아니더라도 정경만으로 충분히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배

우고 있는 터이다. 다만 여기서 이러한 외경 구절들을 개하는 것은 정경에서 가

르치는 바 아담의 범죄로 인생의 죽음이 유되었다는 여러 대목과 내용과 일치

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 사실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우리는 외경의 위상을 재

고해보는 것뿐이다. 


(僞經)
30여 편의 구약 외전과 신약 외전으로 된 전거(典據)가 확실치 않아 성경에 수록되지 않은 문헌

 

이세종(이공)과 이현필

 









이 이야기에서 잘못 들으면 성경을 읽고 구원 받은 후에

주 예수님을 사랑하여 절대 순종의 미덕을 백분 발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죄 의식과 그에 대한 회개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죄인임을 자각하여 회개함이 없이 처음부터 선행 위주라면 

이런 것이 바로 (율법)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것ㅡ이것 밖에 더 없다. 

이공은 자기 재산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때 성경의 삭개오 얘기

즉 남의 것을 갈취한 것이 있으면 그 네 배나 갚겠다고 한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이 자기 회개의 결실인지

아니면 재산의 소중함보다 영생에 대한 갈망을 높이 사서인지 

자세한 얘기가 없으므로 후자 쪽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공의 제자인 이현필이 세상을 뜰 때 제자들에게 불현듯이

"예수님의 피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힘 주어 말했다는데

왜 임종시에 그런 말을 느닷없이 하게 되었는지 

이상과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고 할까. 


기도에 남달리 열중했던 이용도, 선행에 그러했던 이세종(이공).

종교적 열정과 주님께 대한 사랑, 이 둘을 혼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 특별히 오늘날의 현실이다. 

구원 받은 증거는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않는 자기 부인.

오로지 살든지 죽든지 주님 위하여 존재한다는 의식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려는 일편단심.  

여기에 남다른 기도가 가해지고 선행이 가해지는 것이야 당연지사.

자기 부인 없이는 그 어떤 열심도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

자기 기만에 빠질 수 있는 함정, 덫, 올무임을 인식함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내게 사는 것이 과연 주 예수님인지(빌 1:21) 여부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아는 것이므로(고후 1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