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연번호 14까지가 각 구절마다 붙어 있는데 해당 구절을 설명하면,
①계명, 명령, 지시, 분부 한 가지를 내리셨다는 것은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것.
그러나 이를 어기자(그것을 먹자) "즉시" 죽음을 내려셨다는 것은
선악과 및 생명과의 성질이 초자연계와 자연계를 상징하는 것인데
자연계 속성인 선악과를 먹자 아담의 초자연계 속성의 육체가
금방 다시 말해 수 시간 내에 말씀처럼 죽음의 자연계 육체로 변한 것.
그것도 즉각 변환되었다면 이를 본 아담이 먹을 리 없지만
시간을 두고 진행이 되어 선악과를 먹은 여자가 무사태평한 듯 보여
덩달아 아담도 담대해져 선악과를 입에 넣게 되는 것이다.
당시는 아담이 여자의 이름을 지을 수 없어 바로 자기 몸, 자기 분신이라
그냥 "아담"이라는 동일한 이름 아래 단지 남자, 여자로만 구분됐으나
범죄 후 아담이 여자 이름을 지은 것은 영물[靈物]들의 이름 지을 때처럼
아담의 지배 아래 있음을 상징하는 것이었으니,
여자가 범죄하여 둘 모두를 망쳐 진정한 내조자 역할을 상실한 때문.
즉 "둘의 하나됨"의 조화가 아니고 하나님의 저주대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됨.
여자가 먼저 먹고 남자에게 자기를 따라 먹으라 했으니
이는 아담과의 사이가 부모 자식 관계 또는 머리와 몸 관계인즉
(아담에게서 여자가 났으므로 즉 아담을 소재로 하여 여자를 창조하셨으므로)
마땅히 남자와 의논해야 했음에도 독단으로 결정했던 것은
머리로서의 남자를 자기가 지배하는 듯한 형국이 되어버림.
그래서 남자가 여자를 "다스리게" 되는 비극적 결말의 원인 제공.
여자에게 내리신 저주인데 "여자가 남자 사모 운운"은 오역.
좋은 의미인 "사모"가 아니라 "넘본다", 권위 도전의 의미.
머리는 어디까지나 머리인 것이다. 악한 영물 즉 악령 사탄의 범죄도
아담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은 시기심, 교만함에서 연유된 것처럼.
"사모, 운운"은 "죄의 소원이 네게 있다"(창 4:7)의 경우와 같은 단어, 같은 표현법.
즉 "죄가 너를 덮치려 하니 너는 그 죄를 다스리라"는 말씀이신데
다스리고자 하나 불가항력이 돼 있음(자연계 물질의 육체라)을 암시하심.
여자가 범죄 않고 먼저 남자(아담)와 의논했더라면 이런 비극이 없었을지도.
(이는 "마지막 아담"의 신부로서의 교회 즉 우리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지를
교육함이니 주님께 쉬임 없이 기도하지 않고 내 뜻대로 하는 일 처리가 그것)
허나 자기가 먼저 저지르고 자기 죄에 남자도 동참하기를 요구/명령하듯
한 데에서 머리와 몸으로서의 남녀 질서를 억지로라도 확립하게 하심인데
억지가 됨을 인하여 저주의 의미가 되어버리는 것은 불가피.
아름다운 한 몸 관계가 이같이 처음부터 삐걱거리는 비정상에서 출발.
아담과 아담의 후대에게 죽음이 미치게 되었음을 이 구절이 명시하듯이
이 죽음이 "영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은 ②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바
노아 홍수로써 전인류를 죽음으로 멸망시키신 것을 들어
아담에게 (범죄로 인해) 죽음을 임하게 하심과 같다고 했기 때문이다.
노아 홍수의 인류 멸망을 가리켜 "영적" 멸망이라 할 사람 아무도 없다.
③, ④, ⑤이는 지금까지 누누히 지적한 것처럼 너무나 상식적인 것이다.
⑥사탄이 아담을 죽여 "처음부터의 살인자"(요 8:44)가 된 것은
앞에서도 설명했듯이 아담을 시기한 탓이다.
사탄이 만일 그룹 중 하나라면 격이 다른데 사람을 시기할 리가 없다.
같은 "6일" 창조의 피조물로서 동료로서의 동격이니까 시기한 것이다.
이로써도 에덴 동산에서 창조된 각종 "짐승들"(창 2:19)이 영물임이 드러난다.
⑦이 구절은 아주 구체적으로(숨길 것도 또는 상징화해서 말할
아무 필요도 없지만) 여자 때문에 이 비극적 불행이 왔음을 밝힌다.
⑧, ⑨, ⑩이 구절들은 우리 인생들의 죽음이 죽기로 운명지어지고
바람에 날아가는 티끌같음을 말함인데 하나님께서 아무 처음 창조하실 때부터
인생들을 그같이 만드셨다는 것은 그것이야말로 소설이지 않은가. 오
직 죄 때문에 오는 비극인데 범죄는 창조 후에 생긴 일이다.
악령의 범죄도 창조 연후의 사건들인 것이다.
⑪, ⑫성경에 짝의 법칙에 대한 명쾌한 언급은
구약 이사야서를 통해 말씀하신 것과(사 34:16-17) 외경에 나오는 이 구절.
후자의 경우 부엉이 말씀을 하시다가 마치 문득 생각이 나신 듯이
(마치 이 내용만은 빠뜨리지 않고 인생들에게 알릴 필요를 느끼시듯)
"모든 말씀이 짝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시듯 하심에 유의해야.
말씀이 그렇게 짝으로 되어 있으시다는 것은
하나님 하시는 모든 것이 다 이 법칙 테두리 내에서 되어짐을 알리시는 것.
⑬이미 설명한 바 있듯이 이생과 내생이라는 두 세계가 이루어진 이유가
소수만이 구원 얻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아담 범죄 이전에는 하나의 세상 곧
아담 주재의 정상적인 세계였다가 아담이 죽어 사탄이 세상을 지배하자
남은 이들의 구원을 위해 세상이 당분간 지속됨이 불가피하기에
이루어진 양상임을 설명하는 것인데, 이렇게 기본적으로 되어지는 일은
다 창조의 영역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하나님이 의도하셨든 아니든).
그리고 소수일 수밖에 없는 것이 <운명적>이라는 뉘앙스를 여기서 풍김은
네피림 때문이니 인생들이 적정한 숫자대로 구원 얻지 못하게 할 목적으로
네피림을 무진장으로 깔아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역시 상식에 속한다.
그러면 그들은 구원 단절이므로 상대적으로 구원되는 이들은 적을 수밖에.
고로 두 세계의 양립은 악령의 인간 세계 지배 때문이요
이는 아담의 죽음 때문이고 아담의 죽음은 아담의 범죄로 기인한 것.
⑭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에덴 동편에 동산을 창설하셨다" 했으니
기존의 에덴 동쪽이라는 것은 초등생도 알 수 있는 극히 평범한 대목이다.
그런데도 에덴이 마치 아담 창조 후에 생겨난 것으로 다들 믿고 있으니
얼마나 성경을 형식적으로 건성으로만 들여다보는지 실상이 드러난다.
이 구절은 바로 그런 에덴 선재(先在)의 사실에다 아주 못을 박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그 초자연계(영계)가 언젯적 시기의 창조물이었나 하면
그룹과 스랍 창조에 대해서는 성경이 일절 함구하고 있으니
바로 그들과 관련된 창조요 이는 "6일" 창조에서 제외된 것이 명백하다.
당장 구원 받음 즉 다시 출생하고 새로 창조됨이 급하고
이 소식을 만천하에 알리는 업무가 바쁜데 이런저런 지식이 무슨 소용인가.
그래서 성경은 몰라도 좋은 것은 과감히 생략해버린 것이다.
이렇게 생략하는 것이, 성경의 진실성을 입증함인가, 아니면 그 반대인가.
거짓말로써 지어낸 것이 성경이라면 거짓말이라는 평판을 막기 위해
그래서 사실인 것처럼 철저히 꾸미는 것이 거짓말쟁이들의 피할 수 없는 수법.
고로 그런 탄로가 두려워 "생략하는(빠뜨리는)" 일이 감히 있을 수가 없게 된다.
빈 틈 없이 채워놓아 이야기를 완벽하게 만들어내려고 하는 바로 이런 습성이
자기 스스로가 파놓은 함정이 되는 것인데 과연 성경은 그런 속성과는 전연 별개다.
그냥 창세기 초두에 "물이 넘쳤다. 혼돈과 흑암"뿐이다. 땅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없다.
뭍이 물에 잠겨져 있으니까 그런 것인데 그 물의 출처, 그리고 뭍이 잠긴 이유,
일절 말이 없다. 이런 것은 알 필요가 없다는 뜻임이 명백하시다.
성경의 진실성 자체 증명은 성경을 애독하는 자들만이 누리는 특전이다.
그리고 이러한 자체 증명은 그 어떤 태풍이 불어닥쳐도 꿈쩍도 않는
웅장한 산악의 만세반석임을 명심하시라.
외부적인 것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을 찾는 이는
사탄이 한 번 작심하고 그 비상한 지식으로써 허물기로 결정하는 그 날
안개처럼 낙엽처럼 풍비박산이 되는 것으로 알면 충분하다.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다"(롬 5:12)고 한 마디로 매조지한 것을 외경에서 이 정도로 다
양하게 다른 목소리들로 일치하게 설명하고 있는데도 이 중요 사실
에 대하여 모두꿀먹은 벙어리로 일관한 것은 사탄이 입을 틀어막은
증거이니 이보다 더 훌륭한, 기막힌 증거가 없다. "바벨론" 신학으로
부터 한시라도 빨리 탈피함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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