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심이니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다.
사람이 젊었을 때(인생 삶의 초기 즉 영원세계로 치면 이세상)에
멍에를 메는 것이 좋으니 혼자 않아 잠잠할 것은
주님께서 그것을 메우셨음이다.
입을 티끌에다 대는 것은 혹 소망이 있을 것이기에 그러하다.
때리는 자에게 뺨을 갖다대며 모욕 받는 것으로 배불릴 것이니
이는 주님께서 영원토록 버리지는 않으실 것임이라
그가 비록 근심케 하시나 그 풍성한 자비로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다.
주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
(애 3:25-33).
단식으로 괴로움을 자청하는 "금식 기도"도
이러한 일환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가까이 따름이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금식 기도를 "예배"로 인식했다.
주님께서는 금식을 기도와 같은 수준에서 말씀하신 것이다(마 6:16-18).
초대교회는 금식과 기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행 13:2,3/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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