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귀는 그동안 "온 천하를 꾀는"(계 12:9) 속임수로
(성경의 영역(領域)이라고 예외일 수 없어 아담 죽음을 "영적"이라 속임)
"계명 지킴"이라 하면 무조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만들었다.
그러나 구원된 자의 특성을 성경은 단호히 규정하여
"계명 지킴"(고전 7:19/요일 2:3,4/계 12:17)이라 확정한 것임을
누구나 글을 읽을 줄 알고 성경을 읽는 자마다. 부정할 수 없다.
이는 주님 친히 확언해주신 바로서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요 14:15)이라 하셨고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15:10)이라 하신 것이니
우리가 믿음으로 구원 얻는데 이 믿음의 본질이 사랑임을(갈 5:6)
바울 사도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믿음의 법을 역설한 바울 자신이
누누히 강조한 것으로서, 이 계명은 구약시대의 율법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법칙 즉 주님 말씀하신 "새 계명"인 것이다.
"온 선지자와 율법의 강령"으로서 내용은 같은데 왜 "새" 것인가.
주님 친히 십자가 죽으심으로 확증해 보이신 자기 부인이기 때문.
다시 말해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요 13:34)
그림자 성격인 구약 시대에는 이 자기 부인의 말씀이 생략되었다.
그 때는 "마지막 아담"께서 오시기 전이었기 때문이다.
영원불변의 생명의 법칙, 몸은 머리 위하고 머리는 몸 위하는
바로 이 이치이므로 어려울 것도 없고 소화하기 힘든 것 일절 없다.
내가 몸으로서 머리를 위하지 않는데 어찌 머리께서 나를 위하시랴.
하나 즉 한 몸으로서의 구원됨이라 주님 나 위해 죽으심이 구원인데
이 사실 외면하고 무슨 "의롭다 하심"이 가능하다는 말인가.
몸으로서 머리를 오직 휘하고 자기를 위할 수 없게 되어 있으니까
법칙이고 (율)법이고 계명인 것이다. 바로 이 생명의 법칙을 가리켜
주님도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킨다"(15:10) 하신 것이다
은혜와 율법 관계를 너무나 격 떨어지게 마귀는 그동안
가르쳐 온 것이니 그래서 "온 천하를 꾀는 자"(계 12:9)라 한 것.
사탄의 죄의 본질은 교만이다(딤전 3:6). 모든 죄의 뿌리인 자아중심의 특징이다.
혹자는 "하나님을 만나면 교만을 척결한다"고 가르치는데
바울 사도가 "하나님을 만나지" 않았던가. 우리 주 예수님을 직접 뵙고(행 26:13)
아라비아 사막에 3년이나 있으면서 성령의 친히 가르치심을 받아
12사도들로부터 아무 것도 성경에 관한 한 물려받은 것이 없다.
성령으로 계시는 우리 주 예수님 친히 가르치셨기 때문이다.
고로 바울 이상으로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 누구이겠는가.
그럼에도 바울이 교만할까 하여 육체에 가시를 주신 것을 보라(고후 12:7).
내가 주님과 함께 십자가상에서 죽었다(골 3:3)는 확신을 토대로 한 끊임 없는 자기 부인의 자기 편달만이 답이다(고전 9:27). 자기 부인 없으면 주님 제자가 못되니까. 즉 구원이 불가능이니까.
자기 부인은 내가 주님과 함께 죽었음을 믿어 구원될 때 이미 이뤄졌다. 그러나 그 이뤄진 상태로서의 처음 믿음, 처음 사랑을 지속시키는 것은 주님 은혜 가운데에서의 나의 사랑의 의지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내 의지, 이 둘은 항상 평행선이다. 이 레일 위로 달리는 열차가 우리 구원인 것이다. 하나님은 아무리 내 구원 완성시켜 놓으셔도 내가 이를 수용해 스스로 믿지 않는 한 그림의 떡일 뿐이니까. 믿음이 하나님의 선물이 아니라 구원이 선물인 것이다. 성경을 잘못 읽어 이 구분을 못하는 이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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