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17일 토요일

모든 인류의 삶이 가시적으로 요리/料理되는 장관/壯觀을 우리는 구경한 적이 없는데 인류 역사가 뚜껑을 연 이후로 오늘날 최초로 3운법칙을 통해 목도하고 있으니 때는 비상 시국이다

 







21세기 복음 전파의 최고 정상

웅장한 히말라야의 에베레스트 준봉(峻峯)이

다름아닌 3운법칙이다. 인간 생애를 주장, 주관하는 법칙.

창조주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누가 이런 작업이 가능하랴.

모든 인간 생애를 단 3가지 규격에 맞추어 마름질하는 

그 누가 있으리요, 우주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외에. 

느닷없이 이 21세기, 적그리스도가 출현하기 바로 직전에

이런 깜짝 선물을 내리신 이유는 하나님 말씀의 올바른 해석,

오늘날까지 마귀가 온갖 먼지를 날려 덮어씌워 

그 형체마저 분간 못하게 해놓은 청명한 말씀의 거울(鏡, mirror)을

본연의 찬란한 모습 그대로 깨끗이 씻어 나타내시기 위함이다. 


3운법칙과 더불어 당연히 함께 나타나게 된 것이 3위1체의 법칙

곧 짝의 법칙으로서 이야말로 성경을 제대로 풀어 나가는 열쇠이다.

보라! 에베레스트의 웅장한 봉우리를 보라! 오직 하나뿐으로서

그 누구든 잘못 볼 이유가 없으니 보고 깨달으라, 하나님 말씀을.

짝의 법칙에 의해 현세가 있으니 내세가 있고

현세가 불완전하고 시한부인즉 내세는 그 짝으로서 영원, 완결이다.

메시야의 유일한 성격은 죽은 아담 대신의 "마지막 아담"되심에 있다.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서만 이해하는 것이 오직 지름길이다.

여기에 모든 성경의 내용이 함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짝의 법칙으로써가 아니면 어떤 일도 하시지 않는 까닭이다.

"마지막 아담"은 대칭/對稱 아담 즉 "아담과 짝"이라는 성경적 표현이다.

"본질은 같되 성질은 정반대로서의 둘의 하나됨"이 짝의 개념이다. 

곧 만유의 법칙이니 누구도 범접 못할 위엄과 위세이다. 

저 세계의 최고 정상 에베레스트가 오늘날 상징하는 바라고 여겨

하자가 없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 왜냐면 하나님 친히 주신 것이니까. 


이 "에베레스트"를 손으로 가리켜라.

그러면 끝나는 일이다. 

일찍이 인류에게 이런 웅장한 선물을 주신 일이 없다. 곧 3운법칙.

모든 인류를 한 손아귀에 넣고 주무르는 실체가 이제 나타난 것이다.

3운법칙과 상호 검증되는 3위1체의 법칙이니 짝의 법칙(Pairs' Principle).

이들 법칙으로써 모든 산과 들과 바다로 비유되는 만민을 정복하라.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으로써 정복하라. "마지막 때" 천사의 복음(계 14:6).

20세기 이후를 겨냥한 다니엘서 12:4와 함께 이 때를 가리켜 천사가 말한

"한 때, 두 때, 반 때"(단 7:25/12:7)를 맞받아친 요한의 계시록(12:14).

바로 이 때이다. 그래서 우뚝 솟은 에베레스트에 비유한 것이다. 


질풍노도와 같이 내달려라, 메시야 예수님의 군병들이여.

바울 사도는 믿는 우리를 "그리스도의 군사"로서 곧잘 비유했다.

사탄을 위시한 모든 악령들과의 전쟁, 아담 때부터의 치열한 전투다. 

무적의 군대이므로 오직 지금은 "약함"으로써만 승리의 종결이다(고후 12:9).

 고난, 고통을 자청, 자원하는 여기에 우리의 개선문이 놓여 있는 것이다.

"마지막 때" 누구든지 이 문을 통과하는 자는 복이 있다.  


기도의 군대. 말씀의 군대. 

"약함"을 "강함"으로 전환시키는 역전/逆轉의 군대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