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탄의 이 세상 사랑과 관련된 시험은
특별히 부귀영화를 탐하는 자들에게 한정된 시험이 아닙니다.
세상 삶을 즐기고자 하는 즉 세상을 삶의 무대로 착각하는
모든 사람을 상대하는 것으로서 모두가 이에 해당됩니다.
세상 삶에 관심을 두니까 원수를 사랑하지 못합니다.
세상 삶에 관심이 없으니까 주 예수님처럼 스데반처럼 기도하기를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눅 23:34/행 7:60)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삶에 관심 없고 영혼들 구원에 관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내 삶을 망가뜨린 원수로 생각치 않고 영원 멸망에서 아우성치는
저들의 영혼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들도 진리를 알면
얼마든지 새 사람, 새 피조물이 될 수 있음을 믿기 때문입니다.
세상 삶에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고전 7장에서
"동정(남녀 불문 동정(童貞)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처녀"는 오역/誤譯)애
관해서는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다"(:25,26) 했습니다.
"아내(/남편)에게서 놓였으면 아내(/남편)를 구하지 말라"(:27),
"아내(/남편) 있는 자들은 없는 것같이 하며"(:29)
"우는 자는 울지 않는 자처럼, 기쁜 자는 기뻐하지 않는 것같이,
물건을 매입하는 이들은 그 물건이 없는 것같이,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함같이 하라"(:29,30) 했으니,
바울이 시대를 잘못 짚은 것도 아니고 이 세상 자체가 그러합니다.
오늘날만 핍박(적그리스도가 가할)이 있는 것이 아니고
야고보 사도와 스데반 집사가 죽임 당하던 때부터 오늘날까지
사탄이 장악한 이세상 기류/氣流 는 변한 적이 없습니다.
사탄에게 무던히도 속아 왔습니다. 이제는 때가 찼고 다릅니다.
성경상의 무지무식은 더 이상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오라"(계 18:4) 명하셨기 때문입니다.
살려면 부귀영화 가운데 살아야 사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일부만이 향유하고 나머지는 빈한한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 창조 당시부터 뜻하신 바가 아닙니다.
악령이든 거룩한 천사든 영물들은 그런 차별이 없습이다.
원래 창조된 그대로 이상적 삶의 체제로서의 초자연계 몸이기 때문.
자연계 육체인 짐승들마저도 그런 구별이 없습니다.
오직 비정상적 자연계 육체(원래는 초자연계 몸이었던)의 인간만이
이런 불합리 속에서 갖가지 인간고를 겪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마귀에게 꺼둘릴 대로 꺼둘리고 휘둘릴 대로 휘둘렸습니다.
철벽같이 깜깜한 무지 속에서 천지를 모르고 지내 온 것입니다.
이제는 "천사가 가진 복음"(:14:6,7)이 전파되는 때가 당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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