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에서 잘못 들으면 성경을 읽고 구원 받은 후에
주 예수님을 사랑하여 절대 순종의 미덕을 백분 발휘한 것으로
보일 수 있는데 죄 의식과 그에 대한 회개을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다.
죄인임을 자각하여 회개함이 없이 처음부터 선행 위주라면
이런 것이 바로 (율법) 행위로 구원 받으려는 것ㅡ이것 밖에 더 없다.
이공은 자기 재산을 흩어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때 성경의 삭개오 얘기
즉 남의 것을 갈취한 것이 있으면 그 네 배나 갚겠다고 한 대목에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되어 있지만 그것이 자기 회개의 결실인지
아니면 재산의 소중함보다 영생에 대한 갈망을 높이 사서인지
자세한 얘기가 없으므로 후자 쪽으로 보게 되는 것이다.
이공의 제자인 이현필이 세상을 뜰 때 제자들에게 불현듯이
"예수님의 피 공로로 구원을 받는다"는 말을 힘 주어 말했다는데
왜 임종시에 그런 말을 느닷없이 하게 되었는지
이상과 같은 해석에 무게를 실어준다고 할까.
기도에 남달리 열중했던 이용도, 선행에 그러했던 이세종(이공).
종교적 열정과 주님께 대한 사랑, 이 둘을 혼돈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은 것이 특별히 오늘날의 현실이다.
구원 받은 증거는 다시는 나를 위해 살지 않는 자기 부인.
오로지 살든지 죽든지 주님 위하여 존재한다는 의식으로써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 하고 하나님 뜻을 행하려는 일편단심.
여기에 남다른 기도가 가해지고 선행이 가해지는 것이야 당연지사.
자기 부인 없이는 그 어떤 열심도 오히려 걸림돌이 된다는 사실
자기 기만에 빠질 수 있는 함정, 덫, 올무임을 인식함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다시 강조하는 것이다.
내게 사는 것이 과연 주 예수님인지(빌 1:21) 여부는
그 누구보다 나 자신이 잘 아는 것이므로(고후 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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