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죄와 그 파멸의 속성과 의와 선의 생명에 이르는 특성을 알려면 임진란의 이순신, 원균의 행적이 그 교과서다

 





사람들은 "나 하나쯤 그런다고 해서"의 타성에 젖어 있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에 대한 당치도 않은 과소평가입니다.

나 하나쯤 달라진다고 해서 국가, 사회가 달라지겠느냐 

또는 나 하나쯤 잘못되었다고 해서 세상이 망하겠느냐 어쩌겠느냐ㅡ.


"나 하나만이라도!"야말로 사람을 사람되게 하는 고귀함입니다.

이공 순신 한 사람이 홀로 나라를 지탱했음은 청사에 빛납니다.

그가 들어 원균 한 사람 때문에 박살이 나는 국가 운명을 건졌고

그 틈에 의병들이 처처에서 일어날 수 있었고 권율의 관군도 그러했고

명나라 군대도 왜의 칩입을 겨우 면하자 원병이랍시고 설친 것입니다.

이공이 있었기에 한반도만 아니라 중원 천지를 전화에서 막았습니다.


바다의 길목을 지켰다는 특수 환경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사람'입니다.

나라 관문의 수문장이었다는 위치가 원균으로 하여금 

한반도 전체를 말아먹을 뻔했던 경우와 대조되는 이치와 같습니다.

이공의 의/義로움은 <한 몸>으로서의 국가 유기체에서  

각 지체 각 부분으로서의 역할 수행에 충성으로 임했다는데 있습니다.

반면 원균의 경우 사사로운 승패 여부에만 매달린 이기적 판단에서

승산 없는 전투는 일찌감치 포기함이 좋다는 막된 생각의 화신(化身)이라

때문에 그 많은 병선(兵船)을 다 자침 (自沈)시키고 병력을 자진 해산시키고

몸만 빼어 뭍으로 오르다가 이공의 승전 소식에 도주를 멈춘 것입니다.

그러고서도 그런 이기주의는 득커녕 해만 끼쳐 이공을 축출

자기가 그 자리에 대신 들어앉아 필경에는 조선수군이 전멸됩니다.


한 몸에서의 각 지체 각 부분으로서의 충실한 역할 수행이 바로

성경에서 가르치시는 의와 선입니다. 어느 지체도 자기를 위하지 않아

이것을 자기 부인이라 하는 것뿐입니다. 자기 위함이 자아중심입니다.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도 이기적인 욕심을 비난합니다. 

그 폐해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아중심이 미증유의 전란에서

그 본색을 드러내고 또한 자기 역할 충실이 그 진가를 발휘하되

그 가시적 교훈이 너무나 또렷하기에 원균, 이순신을 논함뿐입니다.


죄는 한 마디로 이런 사사로운 자기 의식, 의/선은 공공(公共) 의식이니

죄는 자타 공멸의 지름길이고 의와 선은 그 반대라 건설적입니다.

죄 그리고 의와 선 모두 그 결말이 뻔하여 이해함에 혼동이 없습니다.

고로 이런 자아중심(모든 죄과의 뿌리)을 "회개하라"(행 17:30)

명령하심이요 이는 너무나 당연하고도 당연한 분부이십니다. 

죄란 것은 나 하나의 파멸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고 전체 파멸입니다.

암세포는 그 자체로만 끝남이 아니고 전이를 통해 전체 파괴입니다.


그 한 편 드라마의 영상(映像)을 임진란의 이공과 원균을 통해 

본다는 것은 후세의 우리로서는 크나큰 축복입니다.

세계적으로 내놓아도 이만한 충실한 내용의 시청각 교육이 없습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경의 교훈이 이에서 더 지나지 않습니다. 

마귀는 지금까지 이 사실을 숨겨 옴으로써 아담의 범죄로 죽음이 왔고

아담 한 사람의 암적인 죄로 전체 인류가 암환자가 되어 옴을 감추고

죄는 이 세상 사는 동안은 안지을 수 없고 때문에 그런 죄 가운데서도

용서받고 영생에 이른다는 가당치도 않은 거짓의 허무맹랑한 교리를

만들어 퍼뜨려 거의 모든 교회를 파멸로 몰아부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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