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30일 목요일

"회개"가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가름한다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세아 6:7).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회개는 "언약/言約"입니다. 생명은 언약입니다. 사랑은 <약속>입니다. "너만을 사랑할 테니 너도 나만을 사랑하겠지?"입니다. 즉 "우리의 하나됨을 너도 나도 깨뜨리지 말자"는 것입니다. 영생도 물론 하나님과의 약속입니다. 이 쌍방간의 약속을 가리켜 "계명(명령)" 그리고 "순종"이라 합니다.

성자 하나님께서도 성부 "하나님의 계명"(요 15:10)을 지키심으로써 "아버지의 사랑 안에 있다" 하신 것이니 계약 관계이십니다. 홀로 살지 않고 함께 사는 모든 것이 그러합니다. 이 모두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니 부모의 자식 사랑은 자기를 다 바치는 사랑인 것입니다. 어버이가 자기 "눈동자처럼 위하는"(시 17:8) 자식이니, 자식이 자기 자신을 위하려고 할 필요가 없고 자식도 그 어버이를 그렇게 위함으로써 순종하면 즉 어버이의 "뜻대로 행하면"(마 7:21ㅡ"나더러 주님, 주님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되는 것이라 전연 이상할 것도 어려울 것도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아들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심이 생명의 영원한 법칙으로 정해진 것이니, 하나님 계시는 모습으로서의 "3위1체"가 만유 존립의 기본 대법칙이 되어 있음과 같습니다. 회개가 약속이 됨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겠다는 다짐이니까 그렇게 회개한 후에는 반드시 그 약속 이행이 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세례 받기 전의 회개도 당연히 그렇습니다. 세례 받음으로써 죄 용서되고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됩니다. 무조건 세례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회개"가 성경대로 진지하게 되어졌느냐로 좌우됩니다. 이 회개가 부실/不實함으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입으로는 "구원을 확신한다"지만 실제는 헛된 아니, 치명적인 자기기만으로 끝나게 됨이니 <엄중 경고>입니다. "회개"가 최대 관건(열쇠)입니다.

회개가 정상적으로 되지 아니하면 죄 용서도 없고 죄가 용서 안되면 죄 많은 추잡한 곳에 성령 임하심이 이루어질 리 만무합니다. 그러면 평생 구원된 줄로만 착각하다가 그 영혼은 영원히 불 못 밖에 갈 데가 없으니 크게 각성해야 합니다. 이 시간에라도 이것부터 바로잡는 것이 화급하고 생명이니 이 경고에 주목하시기를!

생명의 법칙대로 하지 않음을 뉘우침이 회개이니 즉 자기만을 위했던 언행심사를 뉘우침입니다. 삶의 법칙은 그 누구든 자아중심을 버리고 상대방 중심 즉 하나님만 위하고(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ㅡ마 22:37) 이웃을 위함("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ㅡ22:39) 곧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것입니다(:40).

즉 구원된 다음의 약속 이행입니다. 다시는 자아중심이 아니라 이웃을 위함으로 나타나게 마련이니 "참고 선을 행함"(롬 2:7)이지 않을 수가 없게 됩니다. 필연적으로 나타나지게 마련이므로 이 필연적인 것이 보이지 않음은 오직 하나의 결론, 거짓 없는 진단은, "믿음이 없다"는 쪽으로 나오게 되어 있기에 여고보는 확정적으로 아래와 같이 단언한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약 2:17).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20).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다"(:26). 너무나 옳은 지적이라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성경 각 대목은 보는 관점 따라 크게 요동치게 되어 있습니다. 때문에 <성령의 계시, 친히 가르쳐 주심>으로 성경을 읽게 되어 있습니다. 

2025년 10월 29일 수요일

21세기는 전무후무의 입증과 확증의 시대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이사야 9:2)ㅡ메시야 송가

https://youtube.com/playlist?list=RD3V_ZZ6ENu-E&playnext=1&si=REM-j1FDmEIqvpQK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다.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 위하여 죽음이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소유/所有)이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롬 14:7-9).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바벨론을 벗어나라" 하심은 <바벨론 교회>의 모든 거짓말을 떨쳐버리고 그 거짓말을 믿음으로써 천연덕스럽게 멸망의 죄를 짓고도 영생 구원이라 믿는 미신(주님 경고하신 바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한다" 하신 대로의 모든 인위적 교리ㅡ마 15:8,9)에서 화급히 탈출해 나오라 하심입니다. 

사탄의 이 세상 통치는, 에덴에서 아담을 죽였던 그 동일한 거짓말을 퍼뜨림을 주무기로 삼는 데 있습니다. 온갖 핍박의 환란을 일으킴은 일시적 위협으로 냉탕 온탕울 번갈아 쓰는 악마의 수법입니다. 박해는 외려 견딜만 하다 해도, 거짓말에 걸려 넘어지게 하면 그것은 필살/必殺로 끝나기에 더욱 여기에 마귀 사탄은 집중합니다. 세상 시작되자마자 지금까지 그러했고 특별히 주님 오신 후의 이 2천년 기간에 더욱 그러합니다.

이미 누차 설명하여 강조했재만 "믿음"과 "행함"의 주제에서 마귀는 그 맹렬한 독아/毒牙를 번뜩이고 있습니다. "구원 빋았음을 확신한다"는 표방 아래 자행되는 이 사탄의 교리에 극소수의 택하심 받은 자 외에는 거의 전부 휩쓸려 있습니다. 여러분, 이것 보통문제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영원 운명의 생사/生死가 지금 이 하나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 따르느냐 아니면 "넓은 대로와 큰 문"의 사탄의 인기 높은 거짓말을 아담 부부처럼 더 순종해서 끌려가느냐 그 분깃점에 놓여 있습니다.

"주님께서 무엇을 행하라 명령하심은, 우리 인간이 그렇게 행할 수 없음을 스스로 절감하도록 하기 위해서다"라고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자들은 일률적으로 일관되게 속여 온 것입니다.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는 대목을 사탄은 악용하는 것입니다. 앞선 글에서도 밝혔지만 왜 <율법 아래> 있을 때(메시야 주님 오시기 전)와 <은혜의 믿음 아래> 있을 때(주님 오신 후)를 혼동하고 구별을 못하는 것인가, 참으로 답답한 일입니다! 지금 이 대목은 후자가 아닌 전자 관련인 것을 왜 모르나요.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믿음으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 받음>은 새 창조를 말함입니다. 하나님이 죄인을 창조하실 리 없잖아요? 다 의인이고 다 거룩한 자들인 것입니다. 인간이든 영물(천사)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바로 그러한 상태로 우리도 복귀하니까 즉 새로 창조하심이기 때문에, 거저 주시는 "선물"로서의 "은혜"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렇게 의롭고 거룩한 자로 만들어졌으니 당연히 무엇이 요구되겠나요?

당연히 우리로서는 순종이 필연입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에 대한 무조건적인 복종이 향후의 삶에서 필수이기에 그렇습니다. 몸이 머리의 지시에 불복하고 제멋대로 놀아나는 꼴을 감히 상상할 수 있나요? 기계적 작용인 동물과 달리 사람이나 천사는 영적 존재이기에 자유의지로 스스로 알아서 그렇게 한다는 그 차이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장치하신 양심이나 지성적 판단에 의해 충분히 관련된 선악(좋고 나쁨을 구별해 인식하는)의 지식이 구비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의지로 생명의 법칙에 불복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이며, 반면 동물들은 기계적인지라 불복종하는 일도 없거니와 죄도 성립되지 않습니다. 아담도, 사탄 등 악령들도, 이 자기 판단 따라 스스로 행동하여 죄를 지은 것이며 그 당연한 보응을 받은 실례인 것.

그러므로 인간의 새 창조는, 아담 이후 모든 후대가 다 영생이 불가능한 동물적 육체가 되었은즉, 영생하는 자로 먼저 창조됨이 최우선이고, 그래서 은혜로 그렇게 창조됨을 가리켜 "구원"이라 하는 것뿐입니다. "구원되었다"고 무조건 영생을 차지하는 것이 아닙니다. 새 창조나 아담 때의 창조나 창조는 같은 것이니까, 검증하는 절차로서의 <시험>이 불가결인 것입니다.

그러면 새 창조로서 영생하는 자로 복귀되었으면 왜 지금 첫사람 아담처럼 신령한 영광의 몸이 아니냐 하겠는데, 아담도 처음부터 신령한 몸으로 출발한 것이 아님을 염두에 두어야. 즉 아담도 동물성 육체로서 하나님 형상과 모양으로 처음 창조된후 다음 단계로 영원성의 영혼이 조성된 것이며, 그 결과로 신령한 몸이 될 필요성 내지 필연성에서 에덴에다 아담 위해 한 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 아담을 두심으로 아담이 신령한 몸이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받아 모심은, 아담에게 영(혼)이 처음 조성되었음(창 2:7)에 해당되는 것으로서 그래서 "성령으로 다시 난다" (요 3:3,5,6) 하신 것입니다. 이 "성령"은, 나의 죽음과 부활을 그 몸으로 이루시고 나와 하나되심을 위하여 예수님 친히 내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을 가리킵니다. <몸>은 사람이시나 <영>은 하나님이시므로 또 영으로는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로 계시는 까닭에 넉넉히 이러한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되신 것입니다.

이렇게 각 사람이 성령으로 나는 것은 아담이 처음 영이 조성되었던 당시 상황을 반복하는 의미와 같기에 "새 창조"라 하는 것이며(각 사람마다 마치 아담 창조를 되풀이함과 같아), 이제는 육체로 나는 것(이미 첫사람 아담으로 인해 동물적 육체는 받아 있으므로)이 아닌 "성령으로 다시 나는"(3:3,5,6) 것입니다.

이는 맨처음 아담이 동물적 육체로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애초 창조되어 있었던 모습 그대로이고, 이후 아담 속에 하나님이 숨을 불어 내쉬심으로 아담에게 영(혼)이 생겨나고 이로써 에덴에 들어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는 순서 그대로인 것입니다. 이같이 성경의 기록 하나하나가 빈 틈 없이 짜여진 진실 그대로임이 입증되고 있음은 놀라운 일입니다.

때문에 주님 부활 후 제자들을 "향하시어 숨을 내쉬며 성령을 받으라"(20:21) 하셨으니, 이는 아담을 창조하셨을 때의 모습 그대로를 재연/再燃해 보이신 것으로서, 부득불 새 창조로 우리를 다시 나게 하심을 극적으로 증명해 보이심이라, 이 역시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는 것이니 때때로 음미하여 우리 믿음을 새롭게 활성화할 일입니다.

재삼/再三 강조하지만, 이는 성경의 진실성의 자체 증명에서 단연 압권입니다. 창세기 아담 창조의 광경에서의 극적인 순간을 창조주 친히 그것도 부활이라는 극적인 순간에 극적으로 친히 묘사해 나타내어 주셨으니까! 그것도 단 한 마디 설명도 없으신 채! 성경이 꾸며낸 것이라면, 천하의 거짓말쟁이 사탄이라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일입니다. 진실이 뚝뚝 묻어나는 성경의 명장면의 이 최고봉을 우리는 수시로 기억하고 수시로 입 밖에 내어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기리고 찬양할 일입니다.

반복하거니와, 아담의 그 영의 조성에 해당되는 것이 우리의 성령 받아 모심입니다. 또 아담의 육체에 영이라는 새 존재가 들어찼어도 금방 신령한 몸이 되지 않고 별도로 에덴에다 한 동산을 창설하셨던 것과 똑같이,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하신 것입니다. 즉 주님 재림 때 우리도 신령한 몸으로 즉각 변형됩니다.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사람으로 태어나신 후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 보내신 이의 일을 온전히 이루신 것처럼, 우리 각자도 새 창조를 받아 구원된 즉시 "보내심을 받은"(20:21) 터이므로, 주님처럼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라"(4:34)고 말할 수 있는 꼭 그 위치에 지금 있다는 이 엄숙한 사실 앞에 마음을 가다듬읍시다.

다시 말하면 영원히 주님을 위하는, 주님의 사랑의 종으로 섬기는 것으로서, 머리되신 주님 친히 머리로서 우리를 위하시고 종으로 선기심과 영원히 맞물리는 생명의 법칙 준수인 것입니다. "앉아서 먹는 자가 크냐, 섬기는 자가 크냐. 앉아 먹는 자가 아니냐. 그러나 나는 <섬기는 자>로 너희 중에 있는 것이다"(눅 22:27).

그러므로 진정한 사람 삶은 머리되시는 우리 주님을 위시해서 서로가 서로에게 종으로 섬기고 동시에 똑같이 섬김을 받는 가장 이상향적 삶의 향유임을 알았으니, 항상 주님의 평안과 기쁨을 내것으로 삼고 그 생명수가 흘러 넘치는 넘쳐 흐르는 강들("rivers")이 되게 합시다. 그 환희와 희열의 풍성함을 이 지구상의 현재 죽음의 때일망정 만판으로 누리고 주변을 흥건히 적시는 우리 각자의 심령이 되어 있기를!


2025년 10월 28일 화요일

21세기는 전무후무의 입증과 확증의 시대 (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나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저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고전 10:31-33).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성경에 소개된 대로의 모든 사도 서신들을 통해 당시 샤도들이 말한 일체의 것은 사도들 자신이 말한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말한 <성령의 말씀> 곧 하나임의 말씀이심을 우리는 반드시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오늘날의 이름 있는 누구누구의 말과는 결코 동격이 아닙니다. 성격이 완연히 다릅니다. 품격이 틀립니다. 그야말로 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우리 주님의 하신 말씀과 똑같은 비중입니다. 똑같이 성령으로 난 말씀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성령"이시라 함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의 "하나"(요 10:30)로 계심을 의미하는 까닭에 성부 하나님이 말씀하심이란 뜻이 됩니다. 사람으로서의 성자 하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도 "아버지의 말씀을 받아서 말씀하심"(요 14:10)임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토록 있음이다, 아멘"(벧전 4:11). 성자께서는 모든 말씀과 일을 성부께 받아서 하시고 대행/代行하심이니, 성자께서는 성부의 이름으로 하시고 성부께서는 성자로 <말미암아> 모든 것을 하심입니다.

이것이 "머리"와 "몸"의 "한 몸"됨인 바,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의 각 지체/肢體 각 부분)은 머리를 위함입니다. 머리가 모든 것을 알고 또 살피고 기획하는 것이지 몸 스스로로는 일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구조/체제로써 만유는 운영되고 있음은 당연합니다. 이것이 모든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머리는 전적으로 몸을 위하고 그리하여 몸의 이름으호 하는 격이며 몸 또한 그렇게 머리를 위함으로써 머리의 이름으호 하는 것이니 서로가 서로에게 불가분이라 "하나"가 됩니다. 이 하나됨을 가리켜 사랑이라 하고 바로 이것이 "생명의 법칙"으로 운용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사랑을 강조함이 이 이유에서입니다. 즉 생명의 법칙대로 살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가장 이상향적으로 생을 꾸려 갈 수 있는 유일무이의 방략이기에 그러합니다. <삶>이란 것이 전적으로 이로써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이 곧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바로 이 법칙 준수를 말함입니다. "사랑의 하나님", "하나닠은 사랑이시라"(요일 4:8) 함은 다름아닌 이 <법칙의 창조주>시라는 뜻입니다. 사랑하지 않음은 이 사랑과는 정반대인 자아중심으로서 사랑과는 대척점에 있는 것이라 죄를 "불법"(요 3:4), 범법이라 함이니 이 삶의 법칙을 준수하지 않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자께서도 성부께서 낳으신 독생자(독자/외아들)로서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실체와 형체로서의 대칭 관계)이시요(골 4:4)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골 1:15)이시니까 엄연히 <머리>와 <몸> 관계입니다. 뚜렷한 인과/因果성입니다. "3위1체"로 설명하면, '머리'는 1위, '몸'은 2위, '한 몸' 즉 "하나"(요 10:30)되심은 3위입니다. 이래서 3위1체 법칙(짝의 법칙)을 만유 생성(창조)과 운행/運行의 <기본 대법칙>이라 함은 마땅합니다.

미시세계에서도 이런 똑같은 법칙의 양상대로 움직임이 가장 확실한 실험 관찰로 확인되었으니, 곧 오늘날 21세기에 불현듯 부상하여 나타난 양자역학입니다. 즉 모든 물질이 입자성과 파동성의 2중 구조임이 판명났고, 입자와 파동 이 둘 중 하나가 1위에 해당하고 그 나머지가 2위로서, 둘 사이는 인과, 주종/主從, 선후/先後, 대소/大小로서의 "하나"로 "얽힘(entanglement" 그리고 "중첩"(superposition)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이렇게 하나로 존재함이 <제3위>를 이룸입니다.

따라서 이 또한 만유의 창조자 하나님 실존 증거입니다. 인류사상 최초의 물리학적 증명인 것입니다. 3운법칙을 통해 입증된 3위1체의 법칙이 이 "마지막 때" 21세기에 등장함으로써 이루어진 획기적인 실로 경천동지할 만한 일대 사건입니다. 가히 "21세기 표적과 기사"라 일컬을 만합니다. 하나님께서 3운법칙을 나타내심으로써 이 사실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 3운법칙을 제대로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 친히 나타내신 것입니다. 온 세계인은 이제까지의 인생관, 세계관, 우주관을 송두리째 뒤엎어 생의 혁명을 일으키지 않는 한 미래는 없다는 사실, 오직 영원무궁의 참담한 죽음(생명과 대칭)인 고난 고통만을 직면하게 될 것이니 이를 직시해야 합니다. 



2025년 10월 26일 일요일

내 잘못으로 멍에를 메어도 하나님께 맡기면 그 인자하심이 그것을 친히 메워 주심이 된다



내 잘못으로 멍에를 메었어도, 하나님께 맡기면, 그 인자하심이 그것을 친히 메워 주심이 된다ㅡ반드시 "모든 것이 합력해 선을 이룬다(유익되게 하신다)"...롬 8:28.

바벨론 신학의 "휴거"는 미신

"너희는 애곡하라 여호와의 날이 가까왔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다...여호와의 날 곧 잔혹히 분냄과 맹렬히 노하시는 날이 임하여 땅을 황무케 하며 그 중에서 죄인을 멸할 것이니...내가 세상의 악과 악인의 죄를 벌하며 교만한 자의 오만을 끊으며 강포한 자의 거만을 낮출 것이며 <내가 사람을 정금보다 희소하게 하며 오빌의 순금보다 희귀케 할 것이다"(이사야 13:6-12).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의 나라가 영원히 끝도 없이 펼쳐지게 되는 순간의 마지막 심판의 때를 말씀하심이 아니다. 인간이 "희소, 희귀케" 하심이라 이는 다름아닌 "마지막 아담"의 천년 통치 전의 사탄으로 지배되어 오는 이 세상의 멸망과 심판인 것이다. 금세기 세계 인구 절반 또는 그 이상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네피림의 정리가 주내용일 수 있기에 그러한 것이다.

이 네피림(엘로힘 즉 "신/神<들>과 같은 복수의 의미)은 사탄이 이 세상 통치권(아담 범죄로 "넘겨진"ㅡ눅 4:6) 행사 차원에서 저지른 불법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불법이지만(이 짓거리를 한 악령들은 무저갱에 유폐ㅡ유다서 1:6. 단 사탄은 세상 통치와 직결돼 그 씨가 아비 대신 무저갱에 들어가 있다가 적그리스도로 나오는 바 그래서 "짐승"이라 하는 것) 묵인하시듯 되어버린 것.

이 때 구원 받은 자 즉 성령을 모신 이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어 공중으로 들려지는데(살전 4:17) 이것이 소위 말하는 "휴거"이다. 고로 이 "끌어올려짐"은 주님 재림 순간에 일어나는 것이요, 적그리스도로 인한 환란 때를 피해 가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니 속지 말 것이다. 이미 그 이전에 구원된 많은 사람들이 짐승에 대한 경배를 거부함으로 인해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으니까. 살아남은 자는 극소수이고 이들이 휴거되는 것.

그리고 그런 휴거 대상자가 아니더라도 주님 재림 직전에는 이미 지구상의 인류 그절대 다수가 진노하심에 소멸되어 앞에서 지적한 대로 "희소, 희귀"에 속할 것인즉 실로 처참을 극하는 끔찍스러움뿐이라 지구는 그야말로 만신창이일 것. 그러니 이 21세기 "마지막 때"는 유일의 관심사가 첫째도 구원 받음이요, 둘째도 구원 받음, 셋째도 구원 받음임을 명심해야. 그리고 나 먼저 구원되었으면 유일의 과심사가 내 이웃 영혼 구원임을 부디 마음에 아로새겨야 하는 것이다. 


"세미한 소리"ㅡ"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왕상 19:13)

 



신인학(fashomology)








 



"회개"가 구원 받았는지 여부를 가름한다

  "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호세아 6:7). "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