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31일 화요일

거꾸로 말하느냐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롬 9.3) 했던 바울 사도가 언제 또 갑자기 변하여,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에 팔렸다. 내가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니 곧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행하면 내가 이로써 율법이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이제는 그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 줄을 아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바 악을 행한다.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이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으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음이다.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으로 나를 사로잡는 것을 보는구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세!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14ㅡ24) 하고 탄식했더냐!

로마서 7장을 바울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 하는 자들에게 묻노니 답하라! 어느 쪽이 바울이냐? 믿음의 초기일수록 믿음에 불타고 시간이 갈수록 혹 식어지면 식어지는 법이다. 너희는 거꾸로 말하느냐! 

일부러 설명하려 들지 않는 데에서 성경의 진실성은 다시금 드러나는 것


마귀가 애당초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을 지어낼 때부터 아담이 처음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음을 가리워 감추고, 현재의 이런 "자연계 믈질의 육체로 애초 만들어졌다"고 속여 놓은 다음 진화론 등 소위 "과학적 사실" 따위로 둔갑시킨 것으로써 교회를 마구 뒤흔들 계략이었던 것인데, 과연 많은 사람들이 이 수작에 속절 없이 끌려 넘어가 "믿음에 관해 파선했던"(딤전 1.19) 것입니다. 주님이 경고하신 말씀대로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어"(마 18.3) 어린 아이의 순수성에서 오는 본성적 사랑과 믿음(신뢰)대로 "그렇거나 말거나 변함이 없는 것은 우리 주님의 십자가 사랑뿐"이라고 자신을 다독인 이들만이 영적으로 살아 남았던 것. 그러나 21세기 오늘날 3위합1(trinia) 및 3운법칙(fashomo)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인간을 죽지 않는 영생자로 창조하심이 드러나자(사실 이것이 상식 차원에서도 너무나 온당하고 합리적 판단) 국면은 180도 전환이 됩니다. 따라서 "3운볍칙이 진화론을 무력화시켰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모든 거짓된 것들의 족쇄가 풀어지고 진화론과 같은 것이 더 다시는 힘을 쓰지 못하게 됨을 지칭함입니다. 진화론도 진화론 나름이니 여기서 거론하는 것은 무신론적 진화론 즉 진화론을 핑계대고 무신론을 끌어들여 고집 부리는 것을 말합니다.

소위 "영적 죽음"이라는 황당무계 헛소리도 이제는 "천사가 가진 복음"의 등장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될 운명입니다. 처음 믿음에 들어올 때 많은 사람이 "하나님이 선하시고" "사랑"이시라면 왜 인간에게 이런 고되고 허접 쓰레기 육체를 주시어 인간고/人間苦가 이다지도 심하냐"며 의혹을 품고 선뜻 믿음에 들어서지 못했었는데, "아담의 죄 때문"이라는 속 시원한 답을 주지 못한 우리의 불찰이야말로 엄청나게 큰 것이었습니다. 아담의 범죄로 이런 인간고가 왔는데도 하나님만 원망했습니다. 이제는 "천사의 복음" 전파로 그런 헛된 망념도 어느 정도
정리가 될 전망입니다. 

또한 이 시점 우리가 확인하고 즐거워해야 사실이 하나 더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주님 친히 그 "마지막 아담"(고전 15.45) 되심을 증명하심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에 또 다시 오심입니다. 그 오시는 이유/목적이라고 해서 성경 그 어디에도 밝혀 눟은 바가 없습니다. 바로 이것이 또 성경의 <진실성 증명>이 됩니다. 지어낸 것이라면 반드시 지지콜콜 설명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일절 설명이 없습니다. "마지막 아담"이시기 때문이라는 <굉장한 의미>의 설명이 필요한 대목인데도! 따라서 이런 설명이 전혀 없음으로 해서 무갈제국 영걸 악바르의 끈질긴 질문에도 당시 천주교 신부들은 한 마디도 대답 못해 쩔쩔매었던 것입니다. 사람으로 오심이 "마지막 아담"으로서 오심이었기에 아담이 그 죽음으로 채 이루지 못했던 인간세계 통치 차원에서의 "마지막 아담"의 천년 왕국이심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2026년 3월 30일 월요일

트리니아, 파쇼모(trinia, fashomo)

트리니아, 파쇼모(trinia, fashomo)는 라틴어로서 전자는 3위1합(또는 합1, 종전의 3위1체)을 의미하여 trinitas(영어 trinity가 여기서 나옴)의 변형이고, 후자는 3운법칙을 가리키는 것으로서 fas는 신의 법(divine law), homo는 Homo sapiens 즉 인간을 말하는 합성입니다. 전세계로 반드시 확산되어야 하는 하나님의 복음("천사가 가진 복음") 전파에서 자주 사용되어질 수밖에 없는 용어를 공통어로 묶어 미리 정해 둠으로써 앞으로 생길지도 모를 최소한의 국제적 혼돈이라도 피하기 위해서입니다. 현행 각국어가 아닌 라틴어가 가장 무난한 중립적인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 이 "마지막 때" 복음 전파에서 세계 어디에서나 통할 수 있는 중요한 비중을 차지할 용어들이기에 그러합니다. 더군다나 둘은 상호 검증 관계에 있어 더욱 그렇습니다.


trinia(3위1합 또는 합1, 종전의 3위1체)는 세계적으로 기독교 권내에서는 비교적 널리 알려져 있다 하겠으나 앞으로 세계 만방에 알려져야 할 새 개념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기에 아예 새로운 용어로 대체시킴이 보다 효율적이라 판단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의미라는 것은 trinia가 성부와 성자로서의 하나님 계시는 모습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더욱 놀랍고 흥미로운 것은 이 trinia로써 만유를 창조하셨고 또한 만유 운행의 기본 원리로 정하셨다는 것이 21세기 오늘날 이제서야 비로소 나타내셨다는 것이니, 따라서 만유의 기본 대법칙(the universal law of trinia)으로 알려져 복음 전파에 박차를 가해야 할 필요성에서 이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 증명도 되고 만물 창조도 입증되며 더더군다나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혜의 구원의 이치도 이로 말미암는다는 것으로서 그 확실성이 더욱 보증된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하시는 모든 일이 이 trinia를 기반으로 이루어지니까 이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fashomo(3운법칙)는 그 가장 대표적 사례이니까 상호 검증 관계에 있다는 것. 

바벨론을 산산 조각으로 만드는 천사의 철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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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합하여 한 영"으로서 내 안에 주님이 계심에서는 반드시 나타나게 되어 있는 것이  짝을 이룬 둘의 3位合/위합1(3위1체)입니다. 즉 이 '합1'에서의 특징은 "교차(엇바꿈ㆍ맞바꿈) 소유"입니다. "한 몸"에서는  남자의 몸이 여자의 것이 되고 아내의 몸이 남편의 소유가 됩니다. "한 영"에서는  갑의 삶이  을을 위함이 되고  을은 갑을 위해서만  살게 되는 것입니다. 어느 쪽도  자기를 위해 사는  법이 없습니다. 자
기를 위하는 자아중심 즉 "욕심"(약 1.15ㅡ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이 다름아닌 모든 죄와 악의  온상/溫床이요 밑뿌리입니다. 고로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중심이  용납되지 않습니다. 이는 애초 성부와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의 언약에서 출발했던 것입니다. 성부께서는  처음부터  언약을 하셨고  또한 "계명"(주님께서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 것이다" 말씀하신 것처럼ㅡ요 15.10)을 주셨던 것입니다. 즉 "내가  너를 위할 것이니까  너는 네 자신을 위하지 말라" 하신 것. 이것이 성자께서 받으신  성부의 계명이셨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도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이십니다. (이상은 중요하므로 반복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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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구원 받아 영생하게 되는 것도 영원하신 그리스도께서 나의 삶을 사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그리고 우리 역시 이 세상에서나 영원 세상에서나 오로지 주님을 위하여 사는 삶이라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빌 1.21)라 하는 것. 무릇 누구든지 자기를 위해 살았다는 자책감이 든다면 이제까지 주님께서 그 안에 계시지 않은 증거인즉(고후 3.5) 회개하고 "성령의 선물"(행 2.38)을 받아야만 합니다.
주님 친히 내 안에 임하여 오심으로써 주님과 "합하여 한 영"이 되어 "교차(맞바꿈)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더 다시는 자기 중심의 삶이어서는 안됩니다. 자기 중심은 멸망의 지름길입니다. 이것이 3위합1(또는 1합; 종전대로 '3위1체'라 해도 무방)이 오늘날 21세기에 전달하는 엄중한 경고인 것입니다.

그리고 역시 되풀이하지만 3운법칙(fashomo, 파쇼모)은 성경에서 아담부터 노아 당시까지 시대에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살았던 사실에 대하여(노아 홍수 자체까지도 포함해서) "황당한 거짓"이라 공격해 올 때, 그들의 무지무식을 단번에 꺾을 수 있는 소중한 유일의 무기이니 노아 생애 도표를 비롯 기타 몇 가지를 자기 스맡폰에 저장해 두었다가 대처하시기를. 우선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도 실제 그런 사실을 놓고 말이 오갈 경우 그런 사실을 해명/입증할 충분한 근거를 대지 못할 때 혹자의 믿음에 큰 치명타를 입힐 수도 있습니다. 하여간 명쾌한 해답을 주기에는 3운법칙만한 것이 없습니다.


2026년 3월 29일 일요일

모든 죄악의 뿌리는 자기 중심


 

로마서 7장의 부질없는 논의 종결



 


노아 홍수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이 천년 가까이 장수한 것도 (2)


우리 주님 메시야께서는 범죄로 죽은 아담의 빈  메꾸시기 위한 “마지막 아담으로서 세상에 오신 것이다. 아담과 대칭성으로 오셨으니까 아담의 역할 그리고 그 특성 그대로이셔야 했으니 단지 본질만은 상반/相反이셨던 것은 그래야 대칭(짝)이 되시는 까닭이요 그래야만 우리가 "성령으로 남"이 가능해져 우리 구원이 되실 수 있기 때문. “아담“("첫 사람 아담"이 아닌 그냥 아담)이 여기서 상보/相補이다. 즉 첫 사람 아담은 “육/肉“이요, 마지막 아담께서는 “영“(요 4.24) 곧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세상에 다시 오시어 천년간 세상을 통치하실 것도 그 때문. 주님의 부활도 그 까닭에서다. 만약 아담이 처음부터 신령한 몸이 아니었다면 주님도 최소한 제자들 앞에서는 부활의 몸을 결코 보이시지 않았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여러 가지 그럴듯한 이유를 들어 노아의 홍수도 지어낸 것이다, 아담부터 노아까지 천여년(노아의 500년까지 합치면 1,500여년이 되지만 노아는 뺀 것)에 걸쳐 천년 가까이 장수한 것도 거짓이다 할 때 우리가 그들에게 설명해 줄 아무 근거가 없었던 것이다. 아담이 셋을 130세에 낳았고 아담을 포함해 그 후대들이 그와 같이 장남을 낳았던 나이를 모두 합산하면 그렇게 천년 기간이 된다.

그러면 제3자의 위치에 있어 옆에서 듣는 이들은 결국 성경은 “그런 믿을 수 없는 황당한 말을 하기만 하고 신기한 무슨 색다른 얘기를 못하는 것을 보니 성경은 과연 잡쓰레기 지어낸 거짓말 빈 소리였군그래! 저런 책을 누가 읽어? 누가 믿어?“ 하고는 자리를 뜬다. 왜냐면 하나님은 사랑이다, 영생, 구원“ 등의 비교적 구미가 당길 만한 말 대신 “천년 넘게 천년 가까이 장수했다, 한 때 세상이 온통 물바다가 돼 망했다“ 등 허황한 소리만 잔뜩 듣고 일어났기 때문이다. “그런 거짓말들을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책에 가득 써놓았다니 웃기고 자빠졌네.“ 하지 않겠는가. 나는 이런 의제를 피하려고 하겠지만 사탄의 방해꾼이 의도적으로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면? 나는 당할 재주가 없다.

이 때 천군만마의 원군/援軍이 나타난 것이다. 절체절명의 위기를 수습해주고는 바람 같이 사라지는 “신병/兵이라 해야 옳겠지. 3운법칙 그리고 이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3위합1(짝의 법칙, 3위1체 )이 바로 그것이다. 인간 생애를 주장 주관하는 3운법칙이 이를 증명하여 확답을 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경우를 위해서도 3운법칙은 숙지해 두는 것이 좋다.

노아의 생애를 보면 500세에 이르러서야 세 아들을 낳기 시작했다. 그 조상 중의 에녹이 죽음을 보지를 않고 세상 뜬 것을 보고 젊은 노아는 믿음의 큰 도전을 받았으리라. 그래서 의인 노아는 그냥 독신으로 지내다가 천국으로 가리라 결심했을 수 있다. 그런데 500세가 되어서야 뒤늦게 아들들을 두는 갑작스러운 변화를 보인 것을 감안하면 이미 그 때 세상을 통째로 멸망시키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된 것으로 보아야. 그래서 인종을 퍼뜨려야 한다는 의무감에서 아들들을 두기 시작했고 노아 방주 건조를 시작한 것. 그런데 웬 백년이나 걸렸다는 말이냐 하겠는데, 당시 주변 환경을 생각해야. 얼마나 당시 사람들이 노아를 미친 인간으로 취급했겠는가! 더군다나 당시는 초대형 거인 네피림의 시대다. 노아를 미치광이 취급한 네피림은 완력으로 작업을 방해했을 것이 아닌가! 의도적으로 장난삼아서도 그랬을 것이다. 초대형 거인들 등쌀에 백년이나 지연되었다 한들 반론을 제기할 수 없을 것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믿음을 연단시키는 차원에서 또한 개입하지 않으셨을 수도. 이렇게 해서 가까스로 방주가 완공되자 이내 지체 없이 대홍수는 시작된 것이다. 



거꾸로 말하느냐

"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롬 9.3) 했던 바울 사도가 언제 또 갑자기 변하여,  "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