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4월 27일 월요일
2026년 4월 26일 일요일
항상 기뻐하고 만사 감사부터 하는 이유
구약과 신약을 구분 못하는 이가 많습니다. 말 그대로 구약은 메시야 오시기 전의 상태를 설명함이고 신약은 오신 다음의 일들입니다. 다시 말해 구약 성경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처음으로 소개하는 것이라 하나님이 시행하시는 인간에 대한 상벌과 저주 및 축복 등 기초 지식을 명시하여 가르칩니다. 반면 신약 성경은 메시야께서 사람되시어 세상에 처음 오신 사실과 관련해서입니다. 메시야께서 오시면 모든 것을 밝혀주실 것을 모두가 기대했었던 바로 그대로인 것입니다(요 4.25,26). 그래서 육체로 오시어 가르치신 모든 것이 기록되어 있고, 뿐만 아니라 성령으로 오시어 가르치신 내용 또한 소개되어 있으니 바울 사도의 목회 서신 내용이 그 대표적입니다.
고로 이 둘을 혼동해서는 안됩니다. 많은 사람이 이를 혼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오늘날도 수익의 십분의 일만 층실히 바치면 축복 받아 부자가 된다는 어처구니 없는 미신에 빠저 있는 것이 그 일례입니다. 물론 십일조와 하나님 축복 관련 성경 말씀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니 진실이고 진리이며 따라서 거짓이 아닙니다. 그러나 구약과 신약의 현저한 차이가 있는데도 이를 분간 못하고 마치 구약시대에나 사는 듯이 행동하니 미신이라 하는 것밉니다. 유치원생이 배우는 것과 대학샘이 사용하는 대학교재가 같을 수가 없습니다. 아담 범죄의 사실이 구약 성경에도 소개되나 정작 그 의미는 메시야께서 우리 위해 십자가 형벌의 죽음을 당하심으로써 비로소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 드러나는 진실 즉 아담의 범죄의 진상이 무엇이냐, 그 결과가 무엇이냐, 구약에서는 강조하지 않고 신약에서 역점을 두어 교육하는 것이 무엇이냐, 다름아니라 세상 모두가 인간읗 포함해 죽음 일색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이 모두 죽은 자라는 것입니다(마 8.22). 인간이 다 죽은 자인데 세상이 죽음이 아닐 수가 없고 세상이 다 죽음인데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한에는 이 죽음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거듭) 나는 것은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로 가능하지만 산 자로서 사는 것은 불가능이고(세상 자체가 죽음으로 이미 고착화된 까닭에) 오직 영생의 약속하심에 대한 믿음으로써만 구원 되는 은혜입니다.
세상 자체가 죽음이니만큼 이와 조화를 이루는 것은 성령으로 다시 남으로 인한 "성령의 위로"(행 9.31)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는"(골 1.24) "은혜"(빌 1.29)만이 유일한 것입니다. 이 <은혜>가 얼마나 굉장하고 엄청난 것인가 하는 것은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가벼운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고후 4.17)이라는 대목에서 충분히 음미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운다"라는 말 그대로 그리고 "은혜"라고 한 그대로 주님이 누구이신가요ㅡ만왕의 왕이 아니신가요ㅡ만주의 주가 아니신가요ㅡ세상의 최고 권력자라도 그와 함께 고초를 당했다 하면 비할 데 없는 명예와 존귀를 받는 법이거늘 하물며 하나님과 함께 함이리요!
2026년 4월 25일 토요일
이사야 40장
(이 대목의 처음 등장은 주님의 처음 오심을 예고함이었으나 지금 21세기는 주님의 재림을 예고하는 시대라 재등장의 재활용 의의가 큽니다.)
너희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너희는 정다이 예루살렘에 말하며 그것에게 외쳐 고하라! 그 복역의(죄수로서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용서하심을 입었다. 그 모든 죄를 인하여 여호와의 손에서 배나 받았다' 하라.
"외치는 자의 소리여, 말하라.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광야와 사막은 사람이 정상적 삶을 누릴 수 없는 죽음의 이 세상을 가리킴)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케 하라. 골짜기마다 돋우어지며 산마다, 작은 산마다 낮아지며, 고르지 않은 곳이 평탄케 되며 험한 곳이 평지가 될 것이요,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나고(주님의 재림의 영광) 모든 육체가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대저 여호와의 입이 말씀하셨다.
"말하는 자의 소리여, 외치라". "제가 무엇이라 외칠까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듦은 여호와의 기운이 그 위에 붊이라, 이 백성은 실로 풀이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설 것이다' 하라.
"아름다운 소식("21세기 마지막 때의 "천사의 복음")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하나님 앞에서의 교회, 바벨론 교회가 아닌)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천사의 복음"으로 전파되시는)을 보라' 하라.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주님의 재림)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천년 왕국), 보라! 상급(수고한 자에 대한 포상)이 그에게 있고 보응(거역한 자에 대한)이 그 앞에 있으며,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을 온순히 인도하실 것이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다 물을 헤아렸으며 뼘으로 하늘을 재었으며 땅의 티끌을 되에 담아 보았으며 접시 저울로 산들을, 막대 저울로 작은 산들을 달아 보았으랴.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누가 그를 교훈하였으며 그에게 공평의 도로 가르쳤으며 지식을 가르쳤으며 통달의 도를 보여 주었느냐.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작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레바논 짐승들은 번제 소용에도 부족하겠고 그 삼림은 그 화목 소용에도 부족할 것이다. 그 앞에는 모든 열방이 아무 것도 아니라 그는 그들을 없는 것 같이, 빈 것 같이 여기신다. 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에 비기겠느냐. 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세우는 것이다.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그는 땅 위 궁창에 앉으심이니 땅의 거민들은 메뚜기 같음이다. 그가 하늘을 차일 같이 펴셨으며 거할 천막 같이 베푸셨고, 귀인들을 폐하시며 세상의 실력자들을 헛되게 하심이니, 그들은 겨우 심기웠고 겨우 뿌리웠고 그 줄기가 겨우 땅에 뿌리를 박자 곧 하나님의 불어 버리심을 받고 말라 회리바람에 불려가는 초개 같구나.
거룩하신 자가 말씀하시기를,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하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셨다.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심이니 그의 권세가 크고 그의 능력이 강하므로 하나도 빠짐이 없으시다.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받아들이심이 되지 못한다' 하느냐?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이께서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할 것이다."
요한계시록 14장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14만 4천("천사의 복음"을 듣고 수용하는 모든 이들을 상징함이라 판단됨)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구나. 내가 하늘에서 나는 소리를 들으니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데 내게 들리는 소리는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것 같았다. 저들이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14만 4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었다. 이 사람들은 여자(바벨론 음녀)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였다.
("천사의 복음"으로 사탄의 모든 거짓말
곧 바벨론이 마침내 무기력화됨을 가리키는 듯)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기를, "무너졌다, 무너졌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다" 하였다.
("천사의 복음"이 선포되어 바벨론이 무너지자 그 당연한 반발 또는 그 필연적 다음 순서)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말하기를,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실 것이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을 것이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갈 것이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으니 저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인 것이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말하기를, '기록하라. 지금부터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다 하니 성령이 말씀하시기를, '그러하다. 저들이 수고를 그치고 쉴 것이니 이는 저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다' 하셨다.
(이로써 구원될 자는 다 구원됨)
또 내가 보니 흰구름이 있고 구름 위에 사람의 아들과 같은 이가 앉으셨는데 그 머리에는 금 면류관이 있고 그 손에는 이한 낫을 가지시고 있었다.
또 다른 천사가 성전으로부터 나와 구름 위에 앉으신 이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말하기를 '그 낫을 휘둘러 거두십시오. 거둘 때가 이르러 땅에 곡식이 다 익었습니다' 하니, 구름 위에 앉으신 이가 낫을 땅에 휘두르자 곡식이 거두어졌다.
(그 다음 남은 순서는 필연적인 하나님 심판)
또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날 선 낫을 가지고 있었다. 또 불을 다스리는 다른 천사가 제단으로부터 나와 날 선 낫 가진 자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불러 말하기를, '그 날 선 낫을 휘둘러 땅의 포도송이를 거두라. 그 포도가 익었다' 하였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니,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는데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1600 스다디온에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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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오직 "소리"일 뿐이다.
'소리'에는 눈에 띌 아무 '형상'도 없고
오직 전달하는 '메시지'만 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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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3일 목요일
참고ㅡ우리말 성경 번역 잘못된 것
잘못된 우리말 성경 번역(히브리서 1:8)
바른 번역은,
"아들에 관하여는 '창조신이여 너의 보좌가 영영하며 네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다'"(히 1:8)
이유는,
성자 하나님에게 성부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시니까.
잘못된 번역은,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개역개정)
밑도 끝도 없이 "규"가 무엇이란 말인가! 철저하게 감수를 하지 않고 대충 얼버무린다는 이런 흔적이 웬 말인가! 성경이라면서 더군다나 번역을 한다면서 이 정도 관심뿐이었던가! 개탄스러운 일이다.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가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홀은 공평한 홀이니이다"
(개역한글)
영역은,
"But unto the Son he saith, Thy throne, O God, is for ever and ever: a sceptre of righteousness is the sceptre of thy kingdom." KJV
"But about the Son he says, “Your throne, O God, will last for ever and ever; a scepter of justice will be the scepter of your kingdom." NIV(2011)
영어 셉터, sceptre(영국식) 또는 scepter(미국식)는 왕이 공식 석상에서 손에 쥐는 화려한 장식의 지팡이인 '왕홀(王笏)'을 뜻한다. 왕실이나 제국의 주권, 통치권, 권위를 상징하는 레갈리아(왕의 상징물) 중 하나.
• 주요 의미: 왕홀, 지휘봉, 왕의 권위, 통치권.
• 유래: 고대 유목/목축 민족의 권위를 상징하던 목동의 지팡이나 갈고리에서 유래된 것으로 추정. ㅡ나무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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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4월 22일 수요일
"바벨론에서 나와 그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바벨론 신학"(계 18.4)은 여러 번 강조했지만 아래와 같은 것이니 에덴 동산에서의 사탄의 거짓말 속성 그대로 드러나진 것.
1.■ "영적 죽음"이란 거짓말을 지어내어 퍼뜨림. 성경에는 이런 애매모호한 말을 결코 쓰는 법이 없고 따라서 그런 의미도 존재하지 않는다. 어린 아이도 믿고 구원되어야 하는 만인 상대의 구원의 메시지인 까닭에 성경이 어려운 낱말이나 개념으로 구성되어질 수 없음을 모든 사람은 명심해야.2.■ 신학자들이 말해 온 소위 "대신 죽음"은 3위1합(종전의 "3위1체") 또는 성령에 대한 무식무지의 결과다. 성경에서 주님은 "성령의 계시"(눅 10.22)만을 강조하시어 성경 이해는 학문에 속하지 않음을 경고하셨음에도 이에 유의하지 않음으로써 "심은 대로 거둔" 것이다. "(이런 육체로서는) 내가 너희를 떠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다"(요 16.7) 하신 대로, 육체로 계실 때는 유대 땅 갈릴리로 한정되어 계셨으나 지금은 성령으로 계시니까 한 날 한 시 지구상 그 어디든 우리 각자와 함께 계시고 언제 어디서나 그렇게 계심이다. <사람>으로서 그렇게 계심이다. 이 "사람"이시란 '사실'에 주목해야. 이 점 우리 각자 항상 의식해야. 다만 영으로서 하나님(사람의 영이 아니신)이시란 차이뿐이다. 그리하여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되심으로서의 성령이시다. 즉 예수 우리 주님이 성령으로 계심이다. 고로 "대신 죽으심"이라 함은 천부당 만부당의 소리. 바로 이와 같이 성령으로 친히 아버지 하나님과 하나되시어 내 안에 오시니까 이를 가리켜 "성령으로 남", "거듭 남(다시 남)", "구원 받음", "성령 세례", "성령 받음", "하나님의 아들(양자)됨"이라 하는 것. 지금 하나님 우편에 계심은 우리와 같은 육체로 계심을 말하는 것이요 그래서 스데반이 뵈웠다는 것(행 7.55)이고 성령으로는 한결같이 당시 스데반 안에, 당시 모든 믿는 자 안에, 지금 내 안에, 여러분 각자 안에 계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부활 후 하늘로 오르신 후 그 시각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일하고(고후 6.1) 계시니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마 28.20) 약속하신 그대로다.
3.■ 로마서 7장(24절)을 바울 사도 자신 즉 믿은(구원 받은) 후의 보편적 체험이라고 하는 것은 가장 악질적인 마귀의 거짓말인 것. 아직도 회개하지 않은 죄인 그대로의 자기 심령 상태를 어처구니 없이 "구원 받은" 자로 착각함으로써 이런 자기 체험을 기준으로 판단하는 몰지각의 극치인 것이다. 2.■ 에서 설명했듯이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계시는지 여부 부터 최우선으로 확인해야.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 너희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이다"(고후 13.5). 오늘날까지의 바벨론 신학의 특징은, <회개> 없이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인위적' 교리 일변도. '성경적'인 것은 회개가 핵심이기 때문이다.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믿어→회개→물 세례→죄 용서→성령 세례(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오시어 나와 합하여 한 영을 이루심ㅡ고전 6.17). 바벨론 신 학은, "믿어→물 세례→죄 용서(가 되었다고 스스로 인정)→주님 내 안에 오셨다(고 스스로 인정). 회개 없어 죄가 그대로인 추악한 자리에 주님이 임하여 오실 리가 만무. 따라서 로마서 7장(24절)이 그들의 매일의 악몽이 될 수밖에. 그러면서도 마귀의 거짓말에 속아 "그래도 나는 구윈 받았다! 하나님의 은혜로!" 하는 소름끼치는 종교적 환각에 빠져 있어.
죄인을, 죄인 그대로를 구원하는 것 즉 영생 얻게 하는 것이 "은혜"가 아닌 것이다. 지은 것은 죄 밖에 없는 나임에도 다시는 죄 짓지 않겠다는 나의 회개를 받아 주시는 것이 "은혜"이고 그래서 다시는 죄 짓지 않도록 거룩한 자로 새로이 창조해 주심이 "은혜"인 것이다. 나를 대신해 죽으셨다는 것은 나와 주님은 끝까지 별개외 존재란 뜻으로 그 죽으심이 일회용으로 끝나는 의미이지만,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계셔 나와 "하나" 곧 "한 영"이 되어 계실진대 그 죽으심은 항구적인 결과로 맺어지는 완벽한 것이라 나의 "죄의 몸이 파괴됨"(롬 6.6)은 철저하게 지속되므로 롬 7.24 같은 비명은 아예 생겨날 수가 없음을 알아야. 물과 기름 사이라 한데 섞일 수가 없다. 어느 쪽이든 반드시 둘 중 하나다.
4.■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고"(롬 2.6), "행위대로 판단하시고"(벧전 1.17) 따라서 모든 인간은 그 "행위대로 심판 받는데"(계 20. 13), 바벨론 신학은 이를 완전 무시, 마치 믿음 유무로만 심판하시는 것처럼 성경을 왜곡함이 도를 넘는다. 반복하여 강조하지만, 바울 사도는 "참고 선을 행함→영생"(롬 2.7,9)임을 분명히 하였고 동시에 문제점도 지적했으니,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으니 하나도 없다"(롬 3.11,12) 한 것. 선을 행함이 영생 길이기는 하나 이 근본 문제 해결 없이는 즉 "죄에서의 구원"(마 1.21) 없이는 아무리 선을 행한들 의미가 없음이니 아담 범죄로 인해 근본부터가 죄인이니까! 그래서 이 근본 문제 해결이 연이은 주제가 된다. 즉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롬 3.23, 24)는 결론. 그 다음부터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내력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우리의 행함이 아닌 오직 믿음(은혜에 의한)만이 유효함을 밝힌다. 여기서 바벨론 신학의 방해꾼 사탄은 그 특유의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통해 뒤죽박죽을 시도한다. 즉 "행함"과 "믿음" 관련해서다. 새 창조 즉 구원 받음에서는 하나님의 단독 창조이시니까 당연히 우리의 행함이 필요치 않다는 의미를 휙 돌려 구원된 후에도 여전히 필요치 않다는 뜻인 양 둔갑시킴이다. 이미 바울은 첫머리 말을 시작할 때부터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계명, 말씀)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롬 2.13)고 못박았으니 그대로 따르면 될 일이니 하나님 말씀이 이랬다저랬다 할 리가 없는 것이다. 근본 문제(아담 범죄로 죄인됐으나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를 해결했으니 이제는 본디로 돌아가 의와 선을 행하기만 하면 종결되는 것이다. 당연히 "참고 선을 행함=영생"이 아닌가. 선을 행하기 위한 필수 과정이 구원 받음이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하나님을 위함으로써(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니까)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선을 행함인 것이다.
6.■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이심을 강조하지 않아ㅡ주님 다시 오심의 이유를 몰라. "영적 죽음, 운운" 따위 소리만 하는 이유.
7.■ 3위1합(종전의 "3위1체")의 뜻을 몰라ㅡ"성령"의 의미도 따라서 설명 못함. 이런 것이 바벨론 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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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의한 자가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자(the sexually immoral), 우상 숭배자(idolaters), 간음하는 자(adulterers), 탐색하는 자[남색하는 자](men who have sex with men), 도둑(thieves), 탐람하는 자(the greedy), 술 취하는 자(drunkards), 욕하는 자(slanderers, 중상하는 사람", "비방하는 자", 타인에 대한 허위 사실 유포 또는 말로 헐뜯어 명예를 훼손하는 자), 토색하는 자(swindlers, 사기꾼)는 하나님 나라를 물려받지 못한다. 너희 중에 이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 거룩함,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고전 6.9~11).
"저들이 우리 주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지면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할 것이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리는 것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들에게 나은 것이다.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들에게 응하였다"(벧후 2.20~22).
2026년 4월 21일 화요일
21세기 진리의 철옹성/鐵甕城
호 검증 관계에 있으므로 둘 다 반드시 소개할 필요가 있습니다. 3위1합(또는 합1)은 만유의 기본 원리로서 애당초 창조주 하나님의 계시는 모습을 말하는 것으로 이를 기본 원칙으로 하여 만물을 창조하셨고 또한 운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3위1합(또는 합1)이 상세히 알려지면서 우리가 알게 되는 진실입니다. '3위1합'의 의미 또는 특징이 완연히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즉 왜 "3위"로서 "1합"인가 그 의미가 명명백백 밝혀졌기에 그러합니다. 다시 말해 "3위"의 뜻이 그 분명한 특이성을 갖추고 있으니, 다름아니라 짝을 이룬 둘이 둘로서가 아닌 둘이 "합하여" 하나로서 존재하고 기능한다는 사실에 있는 것입니다. 즉 이 둘은 복수를 의미하면서도(둘이 '합한 것'이니까) 동시에 3인칭 단수(둘이 합하여 된 '하나'이니까)로 지칭되는 것입니다.
둘이 합해 하나가 되어 있으니까 기존의 짝을 이룬 '갑'이나 '을'이 아닌 '병'으로서의 새로운 위치를 인정 받음입니다. 이 내용은 주님 친히 하신 말씀을 비롯해 성경에서 모두 나오는 것이니, "나와 아버지는 하나"(요 10.30)라 하셨고, 이렇게 "하나"로 계심을 "성령(보혜사, Comforter)"이라 하시면서 "우리"(요 14.23/창 1.26)라 하셨고 또한 "그"(요 14.26/15.26/16.7)라 하신 것입니다. 그 "우리" 안에 주님 친히 포함되시나 "나"라고 아니하신 것은 아버지와 합하여 계심이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 역시 주님과 "합하는 자로서 한 영"(고전 6.17)이라 하는 것이니, "3위1체"를 "3위1합"이라 함은 이 성경 용어를 따른 것이기에 올바른 표현으로서 당연한 것입니다. "3위1체"라 함은 몸을 가리키므로 "한 몸"(창 2.24)에는 해당되나 "한 영"과는 어긋납니다.
이 "3위1합"이 만유의 기본 원리라 함은 오늘날 회자되는 양자역학(상보성의 원리)의 등장에 정확히 때 맞춘 것입니다. 오늘날 "21세기 표적과 기사"를 위해 하나님께서 때 맞추어 주신 것이라 확신합니다. 파동성과 입자성 이 두 미립자 쌍둥이의 귀여운 놀음놀이가 "3위1합" 꼭 그대로이기 때문입니다. "양자 중첩", "양자 얽힘" 현상은 "3위1합"에서의 "1합" 바로 그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두 미립자는 동시에 관측되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느 하나로써는 전체가 설명되지를 않습니다. 이는 이 둘이 "1합"이라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동시에 나타나게 되면 '하나'가 아니라 '둘'이라는 뜻이 되어버리니까!
3운법칙은 이 특이성 즉 닐스 보어가 강조한 대로의 "contraria sunt complementa, 상반 곧 상보
2026년 4월 20일 월요일
모든 기쁨과 평강이 믿음 안에서 나의 기쁨과 평강이 되어
"외모(겉모양 즉 세상에서 인정해 주고 알아 주는 평판)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분이시다"(마 23.9).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아버지"는 우리로 말하면 "어버이"시나 또한 "어버이" 그 이상이심을 재차 강조합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그 어떤 어버이도 따라가지 못하는, 비할 바가 아니신 유일무이의 가장 이상적 어버이상/像이십니다. 바로 이 사실을 말씀하심입니다. 그러므로 그 "품속"에서의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제대로 인식하고 의식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 그저 막연한 우리의 구원의 대상 정도로 알다가는 구원마저 그 맥을 끊어 놓을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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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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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