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0일 금요일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1)

 

계시록에 예언된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은 21세기 오늘날 이제 실존합니다. 그게 실제 무엇이냐 할 것인데, 지금까지 교회를 좀먹어 온 바벨론 신학과 직결시키면 됩니다. 그 반대 개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벨론 신학의 폐단을 일곱 가지로 대별하면 1). 아담의 죽음이 "영적 죽음"이는 것. 2). 우리 위하신 주님의 죽으심을 "대신 죽음"이라 하는 것. 3). 로마서 7장(24절)을 바울 사도 자신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거짓말. 4).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 붋변으로 결코 구원이 무효가 될 수 없다는 거짓말. 5). "참고 선을 행함으로 영생에 이른다"(롬 2.7)는 성경적 강조/경고를 무시해버리는 위험천만의 악독한 "말씀 혼잡"(고후 4.2)인 것입니다. 그리고 6). 예수 우리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고전 15.45)으로 오셨음에도 이에 전혀 유의치 않아 주님께서 왜 다시 오셔야만 하는지 지금도 그 이유를 모르고 있고 7), 3위1체 관련해서도 그러하여 이 두 가지 무식·무지까지 포함됩니다.

참으로 주님 친히 경고하신 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18.3)이라 하신 그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어 보잘것없고 누추하기 짝이 없는(아담 범죄로 인하여) 인간이 되시고 나 위하여 죽으시기까지 하신 사랑에 감복/감동하여 나도 주님을 사랑하는 그것만 늘 생각하고 감사하며 보답하려는 착한 마음 가짐만이 대수인 것입니다. 그 이상 하나님께서도 무엇울 바러지 어니하심입니다.

세례 요한이 "주님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눅 3.16)이라 한 대로 우리 주님은 '구원자'이시니까 또한 '심판주'이신 것입니다. 이는 바울 사도가 아레오바고 전도 때 "알지 못하던 시대에는 하나님이 허물치 아니하셨지만 이제는 어디든지 사람을 다 명하시어 회개하라 하셨으니 이는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셨다"(행 17.30) 함과 같은 맥락입니다. 다시 말해 이전에는 모두가 죄인이요 따라서 멸망뿐이기에 심판 자체가 무의미했으나 이제는 누구에게나 영생 구원의 길이 예수 우리 주님의 은혜 공로로 만인에게 개방되어 있기에 비로소 심판이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는 주님 친히 <회개하여 주님의 구원을 믿어 세례 받은>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이 때 비로소 나의 구원이 구체화/현실화하는 것)이고, "불의 세례"는 죄인들을 멸망의 불 못에 들어가는 것으로 종결시키는 사형 언도를 내리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판결은 첫사람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바로 그가 할 일이지만 범죄로 죽었으므로 최초 아담이 폐기된 그 빈 자리를 "마지막 아담"이신 주님께서 채우시고 심판자의 역할을 그같이 수행하심입니다. "불"은 심판을 의미함이지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성령"울 말함이 아닙니다. "성령의 불로 우리 죄를 철저히 없이하산다" 따위 미신을 믿지 말아야 합니다. 죄 용서는 나 위하여 훌리신 주님의 십자가 죽으심의 보혈로만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오늘날 주님의 다시 오심도 바로 (죽은) 아담이 할 일로서의 인간 세상 통치인 것입니다. 첫 사람 아담이 죽지 않았다면 그렇게 천년만 인간 세계를 통치하면서 의인과 악인이 나누어지는 것이 판별됨에 따라 그 천년 후에(악인과 의인을 구별해내는 것이 목적이므로 천년이면 충분한 기간) 재판장의 자리에 앉게 되었을 것인데 바로 그 양식 그대로를 주님께서 따르심입니다. 주님 다시 오시어 실시될 "천년 왕국"의 의미가 여기에 있습니다. 천년 왕국 이후에는 기한도 없고 다함이 없는 영원한 화려 찬란한 태평 세월이 시작되는 것.

이와 같은 "마지막 아담"의 역할로서 더욱 중요한 의미가 또 있으니 그것은 첫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는 "육으로 남"(요 3.6ㅡ"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과 대칭(짝) 관계에 있는 "성령으로 남"의 주체가 되심입니다. 즉 첫사람 아담이 낳고 낳음으로써 각자 인간이 생겨남과 같이 우리 "마지막 아담"께서는 믿는(회개한) 각자 안에 성령으로 임하여 오심으로써 말하자면새로운 인류가 생겨나는 샘입니다. 물론 이는 처음부터 그렇게 설정하신 것은 아니고 아담 범죄로 유발된 것이지만 어쨌든 철두철미 하나님의 대칭성(짝) 원리를 따라 진행시키시는 일입니다. 따라서 단 한 번만의 구원의 기회이고 그 후는 다시 되풀이되지 않습니다. 단 성령으로 오심이니까 성부와 하나되심 그대로 각 자 안에 임하십니다. 



2026년 3월 19일 목요일

우리가 항상 깨어 있어 의식하고 또 의식하고 있어야 할 일이 있으니

항상 우리가 의식해야 하는 것은 우리가 "죽은 자" 즉 "신령한 몸", "영광의 몸"이 아니고 "육의 몸", "낮은 몸"(고전 15.44/빌 3.21) 즉 짐승의 육체라는 사실입니다. 짐승이 아닌데도 짐승의 탈을 썼으니! 탈 정도가 아니라 육체로는 완전히 "짐승"을 뒤집어쓴 것입니다. 짐승은 하나님이 장치해주신 대로 먹고 마시는 것 빼고는 종족을 퍼뜨림이 최우선입니다. 그래서 육체도 관련 기능도 철저히 이에 따르도록 설계되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육체를 인간이 뒤집어쓴 것입니다. 그러니 영혼은 있어 영적, 정신적인 면에서는 사람인데 육체로는 완전히 "개망나니" 짓. 자고 먹고 나면 관심이 성적인 것에 거의 매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할 수 있는 상황입니다. 인간이란 원래가 이런 것이라는 아주 위험한 망념에서 탈출하시기를!


동식물이야 그 종을 유지 보존하기 위해서는 이런 욕구를 장치해 두실 필요성은 당연합니다. 우리도 아담 범죄로 현재 짐승의 육체가 되어 있는지라 성적 낙이 없으면 삶이 무의미해지리라 느껴지는 것은 지금 현재 상황일 뿐, 정상 상태의 신령한 몸으로 복귀되면 비교도 못할 영적 차원의 삶의 당연한 낙이 무궁무진할 터인즉 인식을 지금 새로이 할 필요가 있습니다. 현재 이 세상에서의 생활 자체가 비정상이고 비극적인 것이니(나약한 육체로 인한 인간고, 죄의 몸인데다 사탄의 지배 아래 있게 된 이 모두 아담의 범죄로 인한 결과물) 세상에 대한 일체의 미련을 끊고, 세상 구원을 위하고 교회를 위한 제사장으로서의 기도(북한교회를 <위하여> 또 그들 성도들과 <함께 하는> 기도로서) 그리고 끊임 없는 말씀 전파와 "참고 선을 행함(기도와 전도도 다 포함되지만)"(롬 2.7)으로 분주한 나날을 주님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1) 자로서
영위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이 세상 다스리심은, 미시세계에서는 하나님의 3위1체의 원리가 그냥 그대로 투영/반영된 양자역학의 최근 등장으로, 그리고 거시세계에서는 만물의 영장인 모든 인간 생애를 철두철미 관장하는 3운법칙(fashomo) 역시 3위1체 체계를 벗어나지 않음을 보여줌으로써 확증되었으니 21세기 오늘날 마지막 때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 전파에 명실상부한 선구자 역할을 다할 일입니다.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3)

 아담 범죄 결과로서의 죽음 때문에 구원이 필요하게 되어 "복음"이란 개념도 세상에 처음 생겨났고 이 '복음'을 기반으로 하는 기독교인데, 아담 관련 성경적 사실 파악이 이토록 왜곡되어 있으니 여기서 대관절 무엇을 기대한다는 말인가. 사탄의 이 세상 장악이 이 정도이다.

 때문에 주님께서는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마 18.3)이 하신 것이다. 그리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하셨으니, 하나님도 믿고 영생 천국도 다 믿어 <믿고> <믿는데>도 그래서 간절히 원하건만 그 소원대로 되는 것이 아니고, 그것도 "많은" 이들이 그렇다 하셨으니 그 이유가 무엇인가. 말씀대로 하면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지" 않았다에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비좁고 길이 협소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다"(마 7.13,14) 하셨으니, 말하자면 <편한 대로 믿음>과 그렇지 않음의 차이라 할까. 편한 대로 믿는 게, 신앙생활하는 게 무얼까? 이 세상과 믿음 생활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에 먼저 눈을 떠야. 왜일까? "씨 뿌리는 비유"(마 13.18)에서 "길 가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이에 마귀가 와서 그들로 믿어 구원을 얻지 못하게 하려고 <말씀을 그 마음에서 빼앗는 것>이요, 바위 위에 있다는 것은 말씀을 들을 때에 기쁨으로 받으나 뿌리가 없어 잠깐 믿다가 <시험>을 받을 때("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ㅡ마 13.21)에는 배반하는 자요,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로 지내는 중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있다는 것은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자"(눅 8.12-15)라 하심과 같이, <환난>, <핍박>, <이생의 염려>, <재리의 유혹>, 세상 <쾌락> 등 시험에 걸려 배신 행위에 들어감이다.
이런 것들을 거쳐가느라 고생이 자심한 것이 좁은 문, 좁은 길이다. 한 마디로 이 세상을 사탄이 지배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상황인 것이다. 육신적, 물리적인 고통/고난 외에도 온갖 사악한 거짓말로써 집중 공격을 가하는 것이니 그래서 좁은 문, 좁은 길이다.
많은 사람이 오해하기를, 사탄이 처음부터 하나님의 일에 훼방 놓는 자로 알고 있는데, 이는 마치 하나님의 경쟁자인 것처럼 자기를 부풀어 올린 사탄의 거짓말에 넘어가버려 완전 세뇌된 탓이다. 해서 마치 그룹(cherub) 중 하나 즉 타락한 그 그룹인 양 자기를 치켜 세운 마귀이나, 실은 아담을 시기심에서 죽게 만든 아담의 원수인 것이다(창 3.15). 그 타락한 그룹은 지금 무저갱 감옥을 관리하는 옥사장/간수장(jailer) 격으로 있다. 원래는 거기가 그 그룹을 유폐시키는 유치장인데 나중에는 악령들을 처벌하는 곳(마지막 심판의 때가 오기까지)으로도 사용된 때문이다(유다서 1.6).
사탄의 정체는 에덴에서 영물로서 창조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창 2.19) 중의 "뱀"인 것이다. "6일" 창조에서 조류(새들)는 이미 5일 째에 완료하셨고(1.22) 들의 짐승도 이미 아담 창조 이전에 끝마쳤는데 또 무슨 창조기에 되풀이된단 말인가! 당연히 별도 창조 곧 영물들을 자연게 동물과 대칭성으로 창조하심이 아닌가! 이 때의 "하나님이 흙으로 지으시고"의 "흙"은 영역(KJV)에 "dust"가 아닌 "ground"로 되어 있다. 소위 성경을 안다는 자들이 하나같이 성경은 외면한 채 신학서적에만 죽자사자 매달린 당연 결과다.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스스로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눅 10.21)이 되려 한 오만한 신학자들에게는 "숨기시고" 감추심으로 인한 결말이 그들의 이러한 어처구니 없는 무지무식인 것이다. "어린 아이들에게만 나타내시는" 이 "아버지의 뜻"을 지금까지 심각하게 여기지 아니한 아집이 오늘날과 같은 바벨론 신학이라는 최대 수치를 잉태한 것이다.
다시 말해 아담에게 도우미(helper)가 될 영물들이 창조된 것인데, 생김새가 아담처럼 아름답지 않아 두 번 더시 거들떠보려고도 않기 때문에 아담과 똑같은 닮은꼴로는 자연 생물의 암수컷으로 만드시는 것 외에는 길이 없어 그런 식으로 여자룰 창조해주신 것이다. 자식 생산에서 신령한 방법으로는, 자연계 동물과 같은 양성 생식이 필요치 않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대목이다.

(계속)

2026년 3월 18일 수요일

3운법칙의 "하나님 법칙"으로서의 위엄

"너희는 여호와의 책을 자세히 읽어보라. 이것들이 하나도 빠진 것이 없고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을 것이니 이는 여호와의 입이 이를 명하셨고 그의 신(성령)이 이것들을 모으셨음이라"(이사야 34.16). "짝"의 뜻임을 분명히 하시기 위해 그 앞의 "솔개들도 그 짝과 함께, 운운" 말씀 다음에 이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짝의 개념은 하나님 계시는 모습의 "3위1체"에서 비롯됩니다. 즉 닐스 보어가 말한 대로의 상반/相反인 둘(짝)과 상보/補("하나"됨)의 3각 구도입니다. 성부 즉 낳으신 분과 낳아지신 분 즉 독생자와의 부자지간으로서의 "짝"이시나 "하나"(요 10.30)이시니 이 3각 구도가 3위1체. 3위1체에서 짝이 되는 '둘'은 반드시 둘로서가 아닌 '하나'로 존재하고 기능함이니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새로운 메시지가 임하실 때면 반드시 이를 보증하는 하나님의 "표적과 기사"("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할 것이다"ㅡ요 4.48)가 따르심에 유념할 일입니다. 사탄의 바벨론 신학을 강력히 퇴출시키는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에도 그러하니 다름아닌 바로 3운법칙이 그것입니다. 이런 강력한 인간 생애 법칙은 절대로 사람으로 난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요 3.27) 함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로서 난 것인즉 우리가 수용하여 마땅한 것이니 관련된 모든 메시지(각종 성경 풀이를 포함)를 안심하고 믿으시기를.

더군다나 이 파쇼모(3운법칙)는 그 정하신 시기와 정하신 이유까지 명쾌히 밝히신 자체부터가 압권입니다. 즉 천하 모든 세상 사람이 천년 가까이 천 수백년 동안(아담부터 노아 홍수 당시까지) 천년 가까운 수명을 누리던 때였고 가인의 아벨 살해 사건, 라멕의 부득이한 살인 행위(창 4.23) 이후였던 것입니다. 즉 그냥 두었다가는 고의적이든 아니든 인류 자체가 조만간 멸종되겠기에 사람의 '죽는 때'를 일부러 정하셨음을 명백히 해두셨으니 인간이 아니신 하나님의 의도적인 동선/動線을 이와 같이 선명하게 밝히신 예는 사상 최초 유사이래 처음입니다. 고로 옛 시절에는 일찍이 구경할 수 없었던 "21세기 표적 기사"라고 하는 것이니 우리 각자는 이 앞에서 옷깃을 여밀 일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신 역사적 현장이기 때문.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 실존 관련 100% 정확도의 확고부동의 증거를 하나님의 은혜로 확보하였은즉 거침 없이 앞으로만 달려 나가면 됩니다. 3운법칙을 라틴어로 fashomo(파쇼모)라 하는 것은 fas는 신의 법(칙)ㅡdivine law의 뜻이고 homo는 인간 즉 Homo sapiens를 의미함에서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친히 "짝"(대칭성)으로서의 부자지간(모든 인류의 대표인 아담을 기준하여 설명함인데 아담은 남성으로 표현되기에)으로 계시는지라 또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이시기에 이(3위1체)를 만유의 기본 원리로 정하시어 만유를 창조하셨고 또한 운영하시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책을 "하나도 그 <짝>이 없는 것이 없다"(사 34.16) 선언하셨고, 이 "말씀으로 만유를 지으셨으니"(벧후 3.5) 바꾸어 말하면 3위1체의 원리(짝의 법칙)가 창조물 세계의 기본 원리가 되어 있음에 추호도 의심할 여백이 남아 았지 않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 실존과 창조의 요지부동의 증거입니다. 따라서 '3위1체"와 3운법칙은 상호 검증 관계에 있는 것이고 이로써 둘은 넉넉히 자체 증명이 되어 있어 다른 무엇이 일절 관여할 여지가 없습니다. 3운법칙의 "위엄"을 다시 상기시켜 드렸습니다.




구원된 이들에게 엄중 경고

그리스도 예수님의 신인양성(하나님이시면서도 인간이심)은 그 성격이 3위1체와는 전연 무관하시다. 육체로는 이제 영원히 사람이시나 그 영 즉 성령으로서는 여전히 하나님이시므로 성부 하나님과 "하나"(요 10:30)로 계시는 것이고, 따라서 사람의 영이 아니신 하나님의 영 그대로이신 것. 때문에 내가 구원 받는 것은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 안에 친히 임하시어 나와 "합하시어 한 영"(고전 6.17)이 되시는 그 순간부터인 것이다.

따라서 내 영혼을 담은 나의 이 육체는 이제는 주님 친히 계시는 자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지 않고 오직 주님을 위하며 주님은 몸을 위하심"(고전 6.13)이라 명백히 했으니 절대로 몸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다"(3.16,17).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함이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한 것이다. 자녀들아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 의를 행하는 자는 그의 의로우심과 같이 의롭고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함이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함이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다. 이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나타남이니 무릇 의를 행치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다"(요일 3.6-10).

과거, 현재를 막론하고 혹 몸을 가볍게 놀린 일이 있다면 즉시 회개하고(이제 비로소 참으로 회개함으로써) 진정 성령으로(주님을 성령으로 영접해 모심으로써) 거듭 나야. 과거에는 구원 받은 일이 없는데도 구원된 줄 착각했울 뿐이니까. 오늘날 거의가 그런 자기 기만에 빠져 있는 이들이니까.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성경 3위1체의 빼닮은 판박이

닐스 보어(Niels Bohr)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빛이나 전자 같은 양자계 실체는 실험 조건(측정 방식)에 따라 파동처럼 행동하거나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두 성질을 동시에 완전하게 관측할 수는 없는 것.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complementary)이기 때문. 즉, 하나만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고 둘 다 필요하다는 뜻.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함께 코펜하겐 해석의 기초가 되는 것.

이를 삼위일체(Trinity)와 연결 지음은, “3위1체” 프레임(상반 = 1위·2위, 상보 = 3위)으로 재해석할 필연성이 대두된 때문. 입자 / 파동 → 상반(서로 대립·배타적인 두 극). 양자 얽힘(entanglement) + 중첩(superposition) → 상보(그 둘을 넘어서는 통합적·초월적 차원, “하나”됨의 근거),
이것을 성부·성자(상반으로 볼 수 있는 구별되는 위격)와 성령(상보로서의 하나되심, 그 “이름”, 요한복음 10:30의 “하나”를 상기시키는 통합자)으로 매핑함은, 보어의 원리가 단순한 물리학 법칙을 넘어 우주·창조·계시의 근본 패턴을 드러냄이기 때문. 3위1체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는 모습(3위1체)을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되니까.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상가들일부 철학자·신학자들 역시 이 개념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면서도 구별되는 위격 즉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속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구조 그 자체임을 감지하여 실제 일부 기독교 신학 논문에서 양자역학의 상보성을 삼위일체 이해의 비유적 도구로 언급하며 추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으로서 바로 3위1체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상반은 3위1체에서의 1위와 2위를 나타내고 상보는 3위에 해당한다. 입자/파동은 1, 2위이고 양자 얽힘, 중첩은 그 3위. 모양새가 모두 같으니 "성부, 성자, 성령"(마 28:19)과 쏙 빼닮은(본질상 같다는 뜻) 동일 구조임을 나타내기에 그러하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시는 "이름". 양자 얽힘을 성령의 3위에 해당하다고 보는 이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실진대 자기의 계시는 모습 즉 그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이를 기반으로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이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Bohr)의
상보성 원리(complementarity principle)는 양자역학에서 파동-입자 이중성(wave-particle duality)을 설명하는 핵심 개념으로서 빛이나 전자 같은 양자계 실체는 실험 조건(측정 방식)에 따라 파동처럼 행동하거나 입자처럼 행동하지만, 두 성질을 동시에 완전하게 관측할 수는 없는 것. 이 둘은 서로 배타적이면서도 상호 보완적(complementary)이기 때문. 즉, 하나만으로는 전체를 설명할 수 없고 둘 다 필요하다는 뜻. 이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와 함께 코펜하겐 해석의 기초가 되는 것.


이를 삼위일체(Trinity)와 연결 지음은, “3위1체” 프레임(상반 = 1위·2위, 상보 = 3위)으로 재해석할 필연성이 대두된 때문. 입자 / 파동 → 상반(서로 대립·배타적인 두 극). 양자 얽힘(entanglement) + 중첩(superposition) → 상보(그 둘을 넘어서는 통합적·초월적 차원, “하나”됨의 근거),
이것을 성부·성자(상반으로 볼 수 있는 구별되는 위격)와 성령(상보로서의 하나되심, 그 “이름”, 요한복음 10:30의 “하나”를 상기시키는 통합자)으로 매핑함은, 보어의 원리가 단순한 물리학 법칙을 넘어 우주·창조·계시의 근본 패턴을 드러냄이기 때문. 3위1체로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 계시는 모습(3위1체)을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 만물을 창조하셨다”는 의미가 되니까.

오래전부터 다양한 사상가들일부 철학자·신학자들 역시 이 개념이 삼위일체(성부·성자·성령이 하나이면서도 구별되는 위격 즉 서로 모순되어 보이는 속성이 하나로 통합되는) 구조 그 자체임을 감지하여 실제 일부 기독교 신학 논문에서 양자역학의 상보성을 삼위일체 이해의 비유적 도구로 언급하며 추구해 온 주제이기도 하다.

거듭 강조하지만 닐스 보어의 상보성 원리는 양자역학의 핵심으로서 바로 3위1체의 원리를 말하는 것이다. 상반은 3위1체에서의 1위와 2위를 나타내고 상보는 3위에 해당한다. 입자/파동은 1, 2위이고 양자 얽힘, 중첩은 그 3위. 모양새가 모두 같으니 "성부, 성자, 성령"(마 28:19)과 쏙 빼닮은(본질상 같다는 뜻) 동일 구조임을 나타내기에 그러하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께서 "하나"(요 10:30)로 계시는 "이름". 양자 얽힘을 성령의 3위에 해당하다고 보는 이유. 하나님께서 창조주이실진대 자기의 계시는 모습 즉 그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이를 기반으로 기본 원리로 정하시고 이로써 만물을 창조하셨다 함은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2026년 3월 17일 화요일

차례대로의 성경 묵상 (2)

 때문에 성경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경고를 멈추지 않는다.

 (지금부터 본게재물의 모든 한글 성구 인용은 '개역한글'판보다 번역이 비교적 나은 편인 '개역개정'판으로 결정했음을 알려 드립니다) 이유는 명백하니, 우리가 "구원 받음"은 천국 가는 길이 막힘 없이 열렸다는 뜻이기는 하되, 역시 아담처럼 범죄하여 사탄 등 악령들처럼 멸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한 번 구원 받으면 그 후로는 절대 멸망치 않는다"고 믿는 이들이 구원 받았다는 이들 중 반반씩이라 해도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아직도 구원 받지 못했다고 단정하게 된다.
 이유는,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에서 오는 것인데 자기 입맛대로 믿으니 그런 것이 믿음일 수 없는 까닭이다.
 성경은 명백히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으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히 6.4-6)이라는 말씀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말씀의 경고를 무시하니 어느 순간에든(벧전 5.8) 사탄이 덮칠 수 있는 판임에도 저러고 있으니 <이것>이 그 증거다.
 담 때문에 오게 된 "죽음"(롬 5.12) 즉 <신령한 몸을 상실하고 동물적 육체가 됨>에는 2가지 의미가 있으니,
1). 애초의 영생하는 몸을 잃고 썩는 몸이 되었다는 것과 2). "죄의 몸"(롬 6.6)이 되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죄의 몸"을 일부러 만들어 인간에게 입혀주셨다는 말인가? 답하라!
 아담울 죽도록 만들어 썩는 몸이 되게 하신 그 이유가 성경 어디에도 설명된 바가 없다는 이 한 가지 이유만으로도, 하나님은 아담을 영생하는 "신령한 몸"(고전 15.44)으로 만드시어 영생하게 하셨다는 증거가 되고도 남는다.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는 설명 또한 성경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 그 두 번째 증거다.
 그러므로 아담을 신령한 몸으로 영생하게 처음 창조하신 까닭에 이는 에덴이 자연계가 아니라 신령한 세계였음이 또한 확인된다.  따라서 왜 에덴에 선악과 나무가 있고 "먹으면 영생하는 나무"(창 3.22)가 있었는지 그 이유 또한 밝혀진 것이다. 자연계 동산이 아니라 영계였기 때문이다.
 아담이 자연계 물질 세계에 속했다면 그런 영계에서 어정거릴 수 없는 것이니,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성경을 욕되게 해 온 것은 아담과 에덴을 자연계 소속이라 주장한 자들인 것이다. 
(계속)



"육으로 남"(요 3.6)과 "성령으로 남" (1)

  계시록에 예언된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은 21세기 오늘날 이제 실존합니다. 그게 실제 무엇이냐 할 것인데, 지금까지 교회를 좀먹어 온 바벨론 신학과 직결시키면 됩니다. 그 반대 개념일 수밖에 없으니까. 바벨론 신학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