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월 22일 목요일

"씨름하는" 기도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창피스럽기 그지없는 동물성 육체가 되어버린 비극의 주인공 인생들을 장악하여 멸망 길로 끌어들이기에 광분하는 사탄 왕국(악령들의 징글징글한 씨앗들인 "네피림"이라는 별개 인종들이 설쳐대는)인 <백해무익>의 현세상임을 우리 마음에 아로새기어 하나님 앞에서 기도의 씨름을 하십시다. 메시야 예수 우리 주님(아담 즉 "마지막 아담") 재림 세상이 되어야 비로소 살 만한 인간 세상, 세상다운 세상으로 회복됩니다. 하나님 은혜로 새로 지으심 받아 다시 나서 새 피조물된 우리는 이 현실을 똑바로 직시해 항상 의식하는 중에서야 마땅히 대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소위 "과학 문명"이 발달하여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세뇌되어 왔으나 천만의 말씀! 신령한 몸의 초자연계적 작동(삶)에 비하면 아이들 소꿉 놀이에도 미치지 못하는 어림없는 <눈 속임>에 불과합니다. 실상대로 말하면 이 모든 것은 "악한 자" 적그리스도 출현을 위한(손쉬운 적그리스도 세계 통합을 꾀하는) 악령들의 짓거리의 일단일 뿐입니다. 사실상 아무 의미가 없어요. 이런 비극적 동물성 육체는 여전히 그대로인데에 이보다 더한 "진보 발전"이 있은들 그게 무슨 대단한 것인가요.

하나님의 애초 창조의 초자연계적 "영광의 몸"(고전 15.44/빌 3.21)에 비하면 전적으로 무의미, 무가치 그 자체입니다. 초자연계 속성의 모든 아름다움과 그 경탄스러움은 아담 부부만이 체험한 것이라 우리야 꿈도 꾸지 못하는 것이니까 상상조차 못합니다. 이런 비참한 실태를 우리는 마음에 깊이 아로새김으로써 <천국에서의 탈락>을 한사코 면해야 합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막 10.15) 하셨으니까. 세상에 연연하여 미련을 접지 못하는 사람마다 "어린 아이 같은 받듦"이 아님을 누구나 알 수 있으니까!

어린 아이는 다소곳이 그 원하는 하나에만 골똘히 집중하는 순수한 특성이 있습니다. 천국에서의 영생도 원하고, 세상에서 밑지지 않게 남 부럽지 않게 사는 것도 원하는 <양다리 결치기>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 "천국"입니다. "장가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 시집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님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꼬 하는 것이다.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마음이 갈라져 요동치는 것)이 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려 함이라"(고전  7.33-35).

이렇게 요동치는 마음으로는 얍복강 가에서의 야곱의 "기도 씨름"이 불가능합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말하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말하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습니다...그 사람이 망하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다...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그가 말하기를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창 32.24-30)는 뜻이었습니다.

기도는 "씨름"이요 따라서 "이기는 자"가 축복을 받아 기도 응답이 되는 것이니 실로 "결심하고 기도에 임하는 것" 이상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림>이 없다고 보는 것입니다. "천사의 복음" 전파에서 이를 위하여 기도로써 씨름하시는 기도의 동역자 여러분이야말로, 이 <21세기 하나님 역사>에서의 주역들인 것입니다.

모름지기 이 세상은 나부터 화급히 구원 받았으면 다른 많은 이들도 화급히 구원 받아야 마땅하니까 달리 딴 것에 마음 둘 틈이 없는 것이 정상입니다.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다"(눅 9.62) 하심은 그런 자세의 사람들은 자아중심이므로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뜻입니다.

"구원"의 전제 조건은 "회개"("<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ㅡ막 1.15,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ㅡ행 3.19,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 <회개에 합당한 일을 행하라>"ㅡ행 26.20)이기에 자아중심을 버리는 것이니 그러한 회개의 결단은 주님과 하나됨으로써 자아중심의 "죄의 몸"(롬 6.6)이 "멸해지는"(:6) 것이 현실화함인데도 여전히 이전처럼 자아중심이 되었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 다시 그 중에 얽매이고 질 때 그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더 심할 것이니 의의 도를 안 후에 받은 거룩한 명령을 저버림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도리어 저들에게 나음은 참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그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응하였다"(벧후 2.20-22)가 될 뿐입니다. 

이 <죽음>의 세상에서는 주님 위해 주님의 이름으로 고난의 <죽음>의 대상이 되는(골 1.24) 것 이상의 최고 영예는 없어

 



이 죽음의 동물성 육체는 미력이나마 주님의 고난과 함께 할 수 있다는 뜻에서는 최대의 가치


성경에 "한 때, 두 때, 반 때"로 상징된 "천사의 복음"(계 14.6)을 통해 전파된 하나님 말씀을 듣고 믿어 참으로 성령을 받아 모신 각자 "성령의 성전"(고전 6.19)이 되어 있는 사람들은(종전과 같은 사탄의 거짓말에 속아 자칭 "구원 받은 자"라는 자기 기만이 아닌), 위의 계시록 12.14에 적시한 대로 하나님 은혜로 "양육 받아" "새 생명"(롬 6.4)의 "새 사람"(엡 2.15/4.24/골 3.10)되어 "성령으로 살고 성령으로 행하는"(갈 5.25) 상대방증심의 일관된 자세일진대 모두가 "성인들(saints)"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거룩함"은, "또 <저들을 위하여 제가 저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들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입니다"(요 17.19) 하신 것처럼, "<상대방을 위하여> <내 스스로 노력하는> <내 의지력>과 관련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게 "사랑"의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 가능한 일이 "거룩하게 됨"이니 어려운 일도 힘든 일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다"(요일 5.3) 함과 같습니다. 

사탄의 속임수로 인해 비정상이고 병적인 자아중심에 너무나 매몰되어 있기에 "거룩함"을 마치 어마어마하게 불가능한 무엇인 양 여기는 당치도 않은 선입견에 우리는 더 이상 휘둘리지 않아야 합니다. 무턱대고 "살았으니 이왕이면 잘 살아야 한다"는 맹목적인 세상("삶"에 대한) 사랑이 그 원인이라, "돈을 사랑하는" 탐욕에 멋모르고 빠져 허우적거리기 때문에 그런 것뿐입니다. 새파란 청춘이라도 오늘 내일 어찌 될지 그 누구도 모르는 실로 덧없는 이 육체로서의 기막힌 처지에, <살고자  몸부림치고 발버둥치는 것이 실로 "미친 마음"(전도서 9.3)이 아니면 무엇인가요! 

이런 마음을 "미쳤다"고 인식하면서도, 이방 여인들에게 빨려들어 세상 사랑에 허덕이고 빠져 나오지 못해 감히 하나님 앞에 못할 짓을 자행한 솔로몬왕 그 자신! 다윗은 그럴 경우 통회 자복을 했다지만 솔로몬 자신은 그런 기록조차도 찾아 볼 수 없으니! "나"라고 해서 그보다 나을 것 없습니다. "별 수 없이 죄 지을 수밖에 없는 인생"이란 뜻에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우리의 과거 "죄의 몸"(롬 6.6)이 "멸해진"(:6) 것을 너무나 잘 알지만, 애초 거룩하게 의롭게 창조되었던 아담이요 용/이건만, 그렇게 처참한 꼴이 된 것을, 바로 그 사실 앞에서, 우리는 경악하고,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 구원을 이루고 있는"(빌 2.12) 이런 현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과 나을 것 없다는 뜻입니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과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바쳐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결국)'은 영생이라"(롬 6.22).

"너희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로서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어 주셨으니"(롬 6.22).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은 것이다"(고전 6.1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4).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한다"(살전 3.1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살전 4.3).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은 것이다"(히 10.10).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따르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 음행하는 자와 혹 한 그릇 식물을 위하여 장자의 명분을 판 에서와 같이 망령된 자가 있을까 두려워하라. 그가 그 후에 축복을 상속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다. 너희는 말씀하신 자를 거역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하라. 땅에서 경고한 이를 거역한 저들이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이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그러므로...은혜...로 말미암아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길 것이니 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다"(히 12.14-29). 

거룩함의 본질을 이상 말씀에서 파악할 수 있습니다. 오늘날 "천사가 가진 복음"을 통해 처음부터의 복음(사탄의 거짓말인 "바벨론 신학"이 아닌) 듣고 믿는 "하나님의 백성"(계 18.4)들은 이 글 모두에서 밝혀진 대로 곧 닥칠 적그리스도 아래에서 영광의 순교를 할 것이 예정되어져 있습니다. 바꾸어 말하면 그런 환란의 날이 오기 전 하나님 백성을 단련/정련 시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이십니다.

고로 "천사의 복음"으로 "양육 받음으로써"(계 12.14) 연단된 우리는 마지막 복음 전파의 이 황금 시기에 가일측 기도/전도에 총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이 때가 지나면 곧장 주님 재림의 영광의 날이 오므로 더 이상 "일할(하나님 앞에서 온 천하보다 소중한 영혼을 건져내는)" 기회가 오지 않으니까 실로 막중한 무게의 이 시간들인 것입니다.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하나님의 택하심은 하나님의 미리 아심에서 비롯되는 것

 


"(나사렛 예수)...그가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어 주신 바 되었거늘 너희가...못 박아 죽였으나"(행 2.22,23).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해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니"(벧전 1.2).

하나님의 "미리 정하심"("택하심")/"예정"은 "미리 아심"을 근거로 하심입니다. 즉 구원 받을 사람이 복음을 듣는 경우 자기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게 될 것을 <미리 아시기>에, 아무쪼록 그 "믿은" 대로 순조롭게 진행되어 아무런 불가항력적 방해나 장애를 부당하게 받는 일이 없도록 사전에 조처해 주시는 것이 미리 "택하심", "예정"이신 것입니다(행 3.20/4.28/엡 1.5,9/3.11). 이는 어버이로서의 창조주되신 위치에서 너무나 당연하신 일입니다.

따라서 "내가 택하심을 받지 못했다면 또는 혹 네피림 중 하나라고 한다면 아무리 믿으려고 또는 믿음 지키려고 용을 써보아야 헛수고가 아닌가" 하는 망상에 젖어 있을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런 잡념은 악령들이나 집어 넣어 주는 것이니까. 내가 내 자유 의지로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여 순종하는 한 그것이 바로 내가 택하심 받았다는 증거인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이와 같이 그 만드신 모든 피조물들을 샅샅이 꿰뚫어 보시고 미리 아시는 분이므로 인간 생애를 관장하는 3운법칙도 인간 창조 당시부터 얼마든지 정하실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아담을 신령한 몸으로 만드셨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범죄하여 애초의 동물적 육체로 회귀해버릴 것을 아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인과 라멕의 살인 행위를 보시고 나서야> 인간 생애를 이같이 주관하는 조처를 취하심이 아닌 것입니다.

먼 훗날 이 세상 "마지막 때" 21세기에 이르러, "천사의 복음"이 선포될 필요성을 미리 아시고 그에 상응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를 위해서 미리 준비해 두셨던 일련의 작업이셨던 것이니, 즉 3운법칙을 정하시게 된 이유 그 배경적 상황을 이같이 <일부러> 보이시는 그 명백하신 자취와 흔적을 나타내심으로써 이 세대에 각자 직접 하나님을 확증하도록 해 주심이었던 것입니다. 이 깊은 의미를 마땅히 제대로 음미하고  바로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 "천사가 가진 복음"이 하나님께로서 난 것임을 전지구 인류에게 확인시켜 주시기 위한 가시적 증표이셨던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동선/動線(움직이심)과 동기/動機(그 움직이심 또는 역사/役事하심의 목적) 그 자체를 목도/目睹케 하심입니다. 이를 명명백백히 입증하여 확인시켜 즈심이니, 이보다 더 정확한 족집게 하나님 <실존>과 그 모든 <말씀의 진실성> 확증이 또 있으리요! 이러한 면에서 가히 인류사 최대의 "표적과 기사"(요 4.48)라 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할 것이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요 14.12) 하신 대로, 이 모든 "표적과 기사"가 주님께서 친히 (이제는 성령으로) 행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마지막 때 마치 실제로 우리가 하나님을 직접 뵙는 것과 같이 새롭게 하나님을 확인하게 해 주셨으니, 때문에 계시록에 이 사실을 가리켜, 새삼스럽게 전지구적 규모와 범위로 하나님 소개를 이제 비로소 하는 듯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고 한 것입니다. 2천년 가까운 사탄 일당의 "바벨론 신학"의 "영적 죽음", "대신 죽음", "로마서 7장", "행함과 믿음에서의 '말씀 혼잡'" 등 첩첩이 쌓인 엄청난 온갖 거짓말을 깨뜨리고 뒤늦게 진실과 진리를 정상적으로 확립하는 것이 보통의 작업이 아니기에, 이같은 미증유의, 일찍이 없던 "표적과 기사"를 준비하신 것입니다. 

2026년 1월 17일 토요일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을 <발휘>하는 21세기 "표적과 기사"

 


세상은 아담 범죄의 결과로 "거짓말의 아비"("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자아중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함이다. 그는 처음부터 살인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자아중심]>으로 말함이니 이는 그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다"ㅡ요 8.44) 사탄이 세상을 주름잡고 있음을 항상 의식하는 것이  진리(거짓이 아닌)를 아는 우리들의 <세상 거짓과 속임수>에 대처하는 크나큰 자산(밑천)임을 알아야 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니엘의 21세기 예언("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빠르게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ㅡ단 12.4)대로 교통 통신 등 분야의 급속 발달(이 모두 주님의 재림에 대처/대비하는 사탄의 초능력의 일환)로 인해 사탄의 거짓말/속임수가 어지러울 정도의 소위 "정보 홍수"를 이루어 범람하고 있는 이 때 그 계략에 속절없이 말려드는 낭패를 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탄 일당들은 거짓말만 나불거리는 것이 아니라 그런 수작을 통해 우리의 소중한 시간과 정력을 낭비/소모시키는 것도 그 전략 중 하나이기 때문. 따라서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의 충성된 전파자인 우리들로서는 성경상으로 충분히 밝혀진 천사의 "표적과 기사"(요 4.48) 즉 3운법칙 관련의 방패(shield)만을 들고 있어도 우리 소임을 다하는 오늘날 전투 현장에서 일보도 밀릴 이유가 없습니다. 창조주 하나님의 <실존>과 그 말씀이신 성경의 <진실성> 관련해서만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위력입니다.

고로 흔들림 없는 요지부동의 자세로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to give ourselves continually to)할 수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악령들은 중점적으로 기도를 방해합니다. 그들에게 가해지는 기도의 실질적인 위협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복음 전파에서 교회 사상 괄목할 만한 업적을 기록한 역대 인물들은 예외 없이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배경이었고 기도의 산실/産室(birthplace)로부터였습니다.

"너는 범사(매사)에 그를 인정("쉬지 말고 기도함으로써"ㅡ살전 5.17)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잠언 3.6). "In all thy ways acknowledge him, and he shall direct thy paths."(KJV)


본격적인 기도자는 "하나님을 돕는 자"

기도에 본격적으로 힘쓰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스스로는 "구원 받았다" 또는 <대형교회 교역자>라 하여도, <싸울 줄>도 모르고 <일할 줄>도 모르고 그냥 무용지물. 세상에서 무용지물이라 천국에도 무용지물일 터이니 그냥 천국 입국 사절. 그냥 '놀고 먹는' 사람이 많은 것이 오늘날 "교회"의 일반적 특징이니 그대여, 너무 늦기 전에 각성하시라. "여호와의 사자(使者)의 말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강한 자, 이스라엘의 원수)를 치지 아니함이라" 하였다"(사사기 5.23). 영적 전쟁이 한창 치열한이 시대에 기도로써 "하나님을 돕는" 것이다. 성령으로 오늘도 우리 인간 위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신음 중에) 간구하시는" 성자 하나님을 도와 드림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 매우 늙었다. 그가 출가한 후 7년간 남편과 함께 살다가 과부된 지 84년이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에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하나님을) 섬기더니 마침 이 때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구속됨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예수님)에 대하여 말하니"(눅 2.36-38).

이처럼 지극 정성으로 하나님 섬긴(기도로써) 하나님의 여종이라(19세에 결혼했어도 당시 나이 100세를 넘겨), 하나님이 기억하시고 세상에 오시는 구주님을 영접해 맞는 지구상 단 두 명의 영접사 중 하나로 뽑아 주셨으니 그 영예/영광이야 하늘을 찌르듯 드높다. 과연 당시로나 지금으로나 기도하는 심령을 얼마나 소중히 보시는지 그 좋은 본보기라 할 것이니, 그렇지 않다면 성경이 이런 설명을 덧붙일 리 없다. 이를 통해 오늘날도
<성령의 메시지>를 우리는 듣게 된다. 그대여, 이 교훈의 소중함을 부디 마음 속에 새겨 두시라. 




2026년 1월 16일 금요일

기도 않는 것은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무지무식의 극치


3운법칙이 아담 범죄 직후 즉 세상("세상"이라 함은 인간이 아담 범죄로 부득불 동물적 육체로 움직여 구차히 명맥을 이어가기 시작할 때부터 지금까지의 '지구상의 무대'를 가리킴)이 갓진행되기 비롯하던 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는 데에 이 대목에서의 6하원칙 적용의 중요성이 드러납니다. 다름아닌 그 "누가(HO"의 정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점을 아주 강력하게 입증하기 때문입니다.

즉 인간이 동물성 육체의 본능 곧 "죄의 몸"(롬 6.6)에 지배되어 짐승처럼 설쳐대는 판인지라 이 "인간 짐승들"을 3운법칙이라는 운명의 우리(cage) 안에 가두어 두심이니, 인간의 이 야수성을 제재하는 역할만 아니라 이로부터서의 보호 구실도 겸하여, 시도 때도 짬도 없이 죽음을 당하는 만행(가인의 아벨 살해와 같은)의 비극이 없도록 조처하심입니다. <죽을 때>가 되어야 죽도록 "죽음의 때"를 정해 주심입니다. 실로 살벌하기 짝이 없는 살풍경의 인생 무대입니다. 이런 짐승 같은 날파리 목숨이지만 그마저 '삶'이 아닌 '죽음'의 비탄스러운 연출 공간이 이 세상. 


이같이 <세상에서 나그네>된 우리의 실상을 알려 주고 경고하기를 성경은 게을리 하지 않습니다. 나그네는 일구월심 자기의 근본인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마음뿐 달리 다른 마음은 눈곱 만큼도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고향"이라 함은 애초 인간을 창조하셨던 그 <신령한 몸>. 이 세상은 주님이 실상을 밝히신 대로 "죽은 자"(마 8.22)들의 집합소. 뿐 아니라 악한 영물 용/의 지배 아래 있어(아담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악마의 거짓말을 더 추종함을 인해 자초한 것) "이 세상 신/"(고후 4.4)의 왕국. 따라서 세상 삶에 연연하여 "남 밑지지 않게" 살려고 "개밥의 도토리 신세" 면하겠다고 끙끙대는 이마다 "천국"(신령한 몸으로의 환원/복귀ㅡ눅 9.27) 영구 탈락입니다. 결과론적으로 죽음과 사탄의 세상에 속하려고만 애썼으니 그 원대로 사탄과 함께 불못으로 들어가는 것뿐. 


그러하나, 이 엄청난 비극의 현장인 세상 실상을 알리기 위해 그리고 하나님의 자비로우신 구제책인 "은혜의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도리를 만인간에게 화급하게 알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알려 주기만 하면 되는 일이라면, 왜 주님께서 세상 계실 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히 5.7)을 올리셨던가요? 왜 지금 성령으로 계시면서도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롬 8.26)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심"인가요? 마치 우리 구원이 아직 <미완성>인 것처럼? 


그렇습니다. 여기에 초점이 맞춰져야 합니다. 머리이신 주님께서 그리하셨으니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 되어 있는 우리 각자도 머리되신 주님과 동일 보조를 취하지 않고는 모든 것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는 엄중 경고임을 반드시 <뼈저리게> 인식해야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초대교회 당시 말씀 전파의 업무를 전담하던 사도들은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專務하리라"(행 6.4) 한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기도를 아 세웠슴니다. 왜 그렇게 기도가 필수이냐, 우리가 아는 대로 사탄이 이 세상 신으로서 세상을 직접 지배함이 그 이유입니다. 치열한 전쟁 상황인 것입니다. 그 현격한 예시가 오늘날 드러난 "바벨론 신학"의 엄청난(거의 2천년간에 걸친) 횡포입니다. 


"하나님의 일에 감히 일개 피조물인 악령이 훼방을 놓다니?" 하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아담의 범죄>가 벌어들인 화근이요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범죄가 하나님의 말씀보다 범죄자 사탄의 거짓말을 더 따른 당연 결과가 "죽은 자"됨 곧 '동물성 육체로의 전락"과 '사탄의 인생 지배'인 것입니다. 


따라서 현재의 인간 세상이 존속하는 한 사탄의 인간 지배는 존속하는 것이요, "바벨론 신학"과 같은 거짓말은 그 기세를 떨칠 수밖에 없는 세상 구조임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더군다나 현재 구원의 은혜는 다름아닌 <하나님(성자) 친히 '죽은 아담'을 대신해 아담 역할을 하시는> "마지막 아담"으로서의 역사이시므로 그래서 사람되셨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원수 사탄과의 전쟁"(창 3.15) 중이신 것입니다. 아담 스스로가 자기 범죄로써 사탄의 명맥을 이어 주고 기승을 부리도록 만들어 준 꼴입니다.


우리의 영적 전쟁의 양상은 원수에게 먼저 발꿈치를 물리고 그 뒤에 그 머리를 발로 으깨어버림으로 끝남이기에 지금까지 그 물린 고통 중에 있는 전황이요 마침내 주님 다시 오심으로써 전세가 역전되어 머리를 밟아버리게 되므로 사탄(그 패거리 악령들과 함께)은 무저갱에 천년간 유폐되고 네피림 무리들은 불못으로 모조리 들어가 영구 청산되는 그런 전투인데 아직 재림파시지 않은 것입니다.


왜 "천년"이냐 하면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세상을 통치할 기간이 천년이었기 때문에 그 기간을 "마지막 아담"께서 비로소 채우심입니다. 아담이 범죄 않고 살았다면 그 천년간 세상을 다스리며 악인과 의인 및 악령과 거룩한 천사를 "마지막 심판"으로 가려내어 악한 자들을 불못에 던져 넣어 세계를 완전 정리해 변치 않는 영원한 왕국이 비로소 전개하게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아담이 범죄로 수행하지 못했던 바로 이 일을 새 아담 즉 "마지막 아담"으로서 이행하심이 메시야 예수("구원자"란 뜻의 히브리어) 우리 주님의  "천년 왕국"입니다. 사탄 일당이 무저갱에 있다가 이 천년 말에 방면되어 난동을 피우게 되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범죄하지 않아 세상을 통치했더라도 천사 가운데 용과 같은 악령들이 생겨 기회를 엿보다가 천년이 끝날 즈음에 필연적으로 반란을 노리게 마련이므로 이와 대응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현실이 사탄 일당(숱한 악령의 씨들인 네피림 포함)의 지배 아래 놓인 세상이라 그리고 이것이 아담 범죄의 불가항력적 결말인지라, 이들 악의 세력이 <사생결단하고 인생 구원을 막고 방해>하므로 하나님 친히 그 크신 사랑의 구원을 이루셨다고 전부가 아니니 절대 <안일한 생각은 금물>입니다. 여기서 기도의 필요성이 절대적입니다.


발꿈치 물린 상황의 치열한 싸움의 발로가 이 "기도"로써 표출됨이니 이것이 지금 거론되는 기도의 중요성인 것입니다. 기도가 없다는 것은 전투를 포기하고 적에게 바로 투항하는 것이니까. 기도 없이 말씀 전파만 강행하는 것은 심각한 백해무익의 자기 기만임을 알아야 하는 것. 


이 경우 사탄 일당의 세력을 아예 싹쓰리 제거하시면 되지 않는가 한다면 그렇다면 아담의 범죄도 인정하지 않아야 한다는 논리가 되기에 원리원칙대로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이 기도의 의미와 그 중차대함을 마음 깊이 아로새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의 마술에 걸려 대부분 아이들처럼 굴었던 <철부지 코흘리개>였던 것입니다. 



"씨름하는" 기도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창피스럽기 그지없는 동물성 육체가 되어버린 비극의 주인공 인생들을 장악하여 멸망 길로 끌어들이기에 광분하는 사탄 왕국(악령들의 징글징글한 씨앗들인 "네피림"이라는 별개 인종들이 설쳐대는)인 < 백해무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