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
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1월 9일 금요일
천사의 복음의 막강 무비의 권위
과학("자연과학"이란 말 그대로 초자연계 관련해서는 전연 무지몽매한)이 이루지 못한 대업적을 일구어 낸 것이 오늘날 "아담 영상/影像·映像(ADAM pix)"입니다. 왜냐면 과학이 감히 손도 대지 못한 <초자연계의 실존>을 카메라 렌즈를 통해 단박입증해내었으니까. 촬영자의 의도적 작품이 아니고 전혀 뜻하지 않은 순간에 <찍혀져 나온> 것이므로 이는 반드시 하나님의 손길로 되어진 일이라 단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재림의 때인 오늘날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을 뒷받침하는 것이니 즉 천사의 "표적가 기사"의 일환입니다. 새삼스럽게 "천사의 복음"이니까 그 권위를 천사들 스스로 입증하는 차원입니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하나님의 아들들,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히 1.14)이라 했습니다.
지금까지 복음이 제대로 전파되어 왔다면 사도들의 초대교회 이후 장장 2천년이나 흘러 간 세월인데, 주님 재림에 즈음하여 난데없이, "천사가 큰 소리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 땅, 바다,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6,7)고, 마치 처음으로 하나님을 알리듯이 할 리가 만무한 것입니다.
구원을 알고 직접 구원된 사람들이 그 받은 바 은혜를 알리는 것이 제격이고 당연 도리이지 천사가 직접 끼어든다는 것은 비상 사태에 처한 경우가 아니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과연, <비상 사태>인 것입니다. 21세기를 지목하는 예언인 계시록에 느닷없이 "하늘에 전쟁이 있었다"(12.7-9)고 한 것이 그 증거. 즉 천사 미가엘군/軍이 사탄 일당을 꺾고 승리한 여세를 몰아 "천사의 복음"(계 14.6)이라는 새 장/章을 마침내 열게 된 사연인 것입니다.
이런 내용도 다니엘 예언 "마지막 때"("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신속히 왕래하며 지식이 더할 것이다"ㅡ단 12.4)와 겹칩니다. "봉함/封緘한다"는 것은 예고한 그 시기가 당도해서야 그 예언 성취의 시점을 정확히 알게 됨을 말합니다. 바로 오늘 21세기. 교통·통신 분야의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고, 첨단 지식은 하루가 다르게 발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의 거짓 속임수 "다른 복음"("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신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ㅡ갈 1.6)에 거의 2천년간이나 사로잡혀 있었던 것을 말함이니, 이는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인 것으로 지금에야 알게 됨은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사실입니다. 지금까지는 단지 하나님의 말씀 복음이니까 으레 사도들이 처음 전파했던 말씀 그대로인 줄로만 알았지 달리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아니고 "이 세상 신/神"(고후 4.4) 사탄이 옛 에덴에서처럼 황당무계의 거짓말로 "꾀어"(계 12.9) "영적 죽음", "대신 죽으심" 따위로 거의 2천년 간이나 세뇌시켜 왔다니 이 얼마나 끔찍한 일인가요! 바율 서도 당시부터 이미 자행되어 온 "다른 복음"과 같은 이런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우리는 "바벨론 신학"이라 구별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과 관련된 정작 요긴한 성경 지식은 하나님의 "계시"("내가 전한 복음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이 누군지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가 누군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ㅡ갈 1.15/눅 10.22)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인간의 학문(신학/神學)으로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에 유의하지 않은데 대한 당연한 대가/代價가 "바벨
론 신학"이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위의 말씀과 같이, 또 "이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시어 말씀하시기를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눅 10.21) 하심과 같이, 학문으로 접근하는 자에게는 과연 "숨기셨음"이 이로써 입증된 것입니다.
오죽했으면 마지막 때가 이르자 천사들이 직접 나서서 그와 같은 사탄의 방해 책동을 일전/一戰을 불사하면서까지 분쇄 제재했겠나요.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성령의 계시가 아닌 학문으로만 일관하려 했던 고집, 인간들의 오늘날까지의 모든 오만함과 헛수고에 대한 결말은 이러한 사탄의 거침 없는 책동이었던 것입니다.
"영적 죽음" 따위 허무맹랑한 소리만 하게 만들었고 "삼위일체" 하나도 시원하게 그 의미를 풀지 못한 채 오늘 이 시간까지 사탄의 거짓말에만 질질 끌려 다니게 만들었습니다. 오늘날 21세기 "천사가 가진 복음 전파"의 때에 와서야 모든 진실이 알려지게 된 것입니다.
"천사의 복음"과 천사의 "21세게 표적과 기사"를 오늘날 처음으로 말한다고 해서 어떤 특이한("천사"와 관련된) 기이한 무엇을 접하거나 한 적은 당연히 없습니다. 그러나 두드러진 상황은 있었습니다. 악령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증언도 직접 목도했기에, 주님의 뜻이라 믿어 세상 앞에 공개하는 것입니다.
천사(사람으로 변장한)를 대면한 사람들은 역사상 간혹 있었어도 마귀를 통째 실물로 구경한 사례는 유사이래 처음이므로 이를 세상에 공표하는 것은 실로 유의미하다 생각합니다. 악령들이 천사들과의 결전/決戰에서 완패한 후(계 12.7-9) 완전히 힘을 잃어 <천사의 의도대로 따를 수밖에 없이 되어> 스맡폰 카메라에도 찍혀졌다는 것이 개인적 판단입니다.
영물의 생생한 그 육질/肉質"(천사든 악령이든 공통이니 사람도 악인이든 의인이든 똑같은 것처럼)까지 세상 앞에 여지 없이 드러나는 등 "사상 초유/史上初有의 초자연계 무대의 진기명기/珍奇名技"의 연출이기에 "아담영상/影像(ADAM pix)"도 가능해진 것이고 또 그만큼 그 의의가 대단한 것입니다.
아래 링크 참조:
https://blog.naver.com/PostList.naver?blogId=trinia&from=postList&categoryNo=74
누가 과연 "이 세상 신"들의 거동을 세상에 <실물>로 구경시키는 등의 일을 할 수 있겠나요. 천사들이 개입되지 않고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임을 감안할 때 우리는 이 모든 것의 막중한 가치를 느끼게 됩니다. 영적/초자연계 실존의 <실물> 증거임을 재차 강조합니다. 모두에서도 밝혔듯 세상 앞에 드러내는 초자연계 자체의 확증/確證 또는 물증/物證 바로 그것입니다.
3위1체가 말하는 "짝"으로서의 상반/相反성 즉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하나님 창조임이 100% 입증되었으니 자연계 물질에만 머무는 현재까지의 과학의 한계까지 뛰어 넘고 그 수준을 훨씬 능가해버리는 실로 경악할 최대 사건이라 할 것입니다. 백 마디 천 마디 설명이나 이론보다 스맡폰 카메라의 비디오가 모든 것을 말하고 증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문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 했듯이 이보다 더한 "정확무오"는 있을 수 없습니다.
NSO(Nephilim Soul Orb, 네피림 망령/妄靈 구체/球體, 귀신의 원형/原形)가 카메라 렌즈에는 나타나도 인간의 육안으로는 볼 수 없다는 것이야말로 그것이 영적인 것 즉 초자연계 속성임을 100% 입증합니다. 네피림(악령과 인간의 튀기[hyb-
rid]ㅡ창 6.4)이 아닌 아담의 씨로서의 사람의 혼백은 그렇게 떠돌아 다니지 않습니다(마 12.43). "거지 나사로와 부자" 비유의 주님 말씀대로 마지막 심판 전 일정한 형벌의 장소나 하나님 위로의 안식처에 당분간 수용되니까.
촬영자 본인은 거짓말하지 않습니다. "천사의 복음" 전달이라는 신성한 임무를 수행하는 터에 하나님 앞에서 일말의 거짓이나 속임수가 개입될 여지가 없음을 만천하에 공언/公言합니다. 이 모든 증언과 증거는 오직 믿느냐 안믿느냐, 그 하나로써만 좌우될 것뿐입니다. To belive, or not to believe, that is the only question.
무어니무어니 해도 "아담 영상"과 같은 성격의 모든 내용 중에서 단연 압권인 것은, 첫째 1908년 6월의 시베리아 퉁구스카 대충돌 사건 및 당시 용의 지상 추락 광경을 진술하는 그 곳 주민들의 목격담, 그리고 또 하나는 2001년 8월 미국 NASA 우주선 디스카버리호 카메라에 우연히 찍힌 용(거대한 뱀으로 나타난)의 실물 사진입니다. 전무후무한 것으로서 이 이상 가는 것이 없습니다.
이상으로써 성경의 진실성은 충분히 입증된 것이며 이 이상의 실물 증거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아담 영상"은 단지 그 세밀한 부분을 증명해 주는 것뿐입니다. 자연계와 초자연계의 상반/相反성(짝을 이룸)은 3위1체 법칙으로 이미 입증되어 있는 것으로서 "아담 영상"의 역할은 단지 그 후속적인 추인/追認에 불과합니다.
이로써 (1)<창조주 하나님>과 그 말씀으로서의 (2)<성경의 진실성>은 거의 2천년 묵은 바벨론 신학의 거짓과 속임수를 궤멸시키는 "천사의 복음" 등장으로써 그 '절대'적 과학성/性이 유감 없이 발휘되었습니다. 넉넉한 자세로 복음 전파에 전념할 일입니다. 세상이야 이를 제대로 인정하든 않든 우리가 괘념할 일이 아닙니다. 우리만 확고부동의 믿음으로써 우리 임무 수행에 철저하면 나머지는 성령께서 다 하시게 되어 있습니다(고후 6.1).
2026년 1월 8일 목요일
우리의 영적 전쟁의 속성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생각의 바탕)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다"(잠 4.23). "생명의 근원"이 마음의 생각이니 우리는 이 문구를 금지옥엽/金枝玉葉처럼 속에 아로새겨야 합니다. 여러 번 설명했지만 우리 자신을 철저히 이로써 세뇌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반복합니다. "<마음의 생각>이야말로 <생명의 근원>이다".
"쉬지 말고 기도하고(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매일 매사 인도해 주시기를 그리고 하나님의 일을 위하고 남을 위하는 제사장 기도로), 항상 기뻐하고(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나는 영원히 혼자가 아니기에 너무나 행복감에 겨워)" 이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하신다.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 및 "너희에게 평강이 있으라.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요 8.29/20.21) 하신 말씀으로 충분히 설명됩니다.
"모든 일에(궂으나 좋으나 간에 일체 불문하고), 하나님께 감사함(덮어놓고 감사함이 아니라 365일 24시간 매순간 나를 사랑하시어 눈동자처럼 살피시며 위하시는데도 우리는 오히려 이를 의식하지 못하고 무덤덤하게 지내는 것이 실상이니까)으로써(살전 5.16-18) 우리는 각자 우리 "마음을 지키는"(잠 4.23) 것입니다.
마음을 지킴이 이렇듯이 중요하여 "생명의 근원"이 되므로 원수 사탄의 공격 목표이기도 함은 당연 사실. 고로 이 사실 또한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요 13.2)에서도 확인됩니다.
"주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니> 기뻐하라. 너희 관용(절제 있는)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라. 주님께서 가까우시다(오실 때가 가깝다ㅡ이는 <예언>이 아닌 <부단한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자주 쓰는).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의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이제까지 응답해 주셨으니 계속 기도를 응답해 주실 것이기에)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知覺울 초월하시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다"(빌 4.6).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롬 12.3).
"종말로(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할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할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빌 4.8).
모든 <이론>을 파하며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파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케 하니"(고후 10.5). 어떤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그것을 그대로 따르는 것이 아니라 일일이 주님께 여쭙고 의논하고(에덴에서 여자가 자기 연장자인 아담과 먼저 상의 않고 독단으로 행하여 엄청난 파멸을 자초함과 같이 하지 아니하고) 모든 것을 하는 지혜스러움입니다. 시험과 유혹과 악이 넘쳐나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성경 시편 영역(Ps. 119.113)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I hate vain(원문엔 없다는 표시로 이탈릭체 표기) thoughts: but thy law do I love(KJV). 우리말은, "내가 두 마음 품는 자들을 미워하고 주의 법을 사랑하나이다"로 되어 있고 일부 영문 번역도 그러하나, 위 설명에서도 보듯이 "생각하는 것 자체를 미워한다ㅡto hate thoughts"입니다.
"사람이 생각 자체를 아니한다니 이게 말이 되느냐" 해서 그렇게 "두 마음, 운운"한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본 뜻은 명확합니다. 왜냐년 그 대칭구가 분명히 "<하나님의 법>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나의 생각> 대비/對比 <주님의 말씀>인 것이니 이렇게 되면 그 뜻이 명명백백히 드러납니다.
즉 스스로 생각해서 또는 생각나는 대로 시시비비를 가려내는 자세를 버리고 무조건 주님께 여쭈어 묻고(사람과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은 귀찮게 여겨 "네가 알아서 해라"로 일관하나, 우리 주님은 반대로 오히려 기뻐하시므로) 오로지 하나님 말씀을 기준하여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 점 우리가 마땅히 머음에 새길 일입니다.
하나님을 과거 믿지 않을 때처럼 그저 막연하게 의식해서는 안됩니다. 똑부러지게 즉 사람되셨으므로 사람 대하듯 얼마든지 인식할 수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전도할 때도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느라 끙끙댈 필요가 없습니다. 우주보다 크시어 도무지 볼 수 없는 하나님이 일부러 사람이 되어 주시어, 우리 각자와 가까이 하시게 되었으니 곧 예수님이시라고 설명하면 그가 믿든지 안믿든지 설명은 끝난 것입니다.
3위1체 법칙에서 짝을 이루는 것은 반드시 "하나"(요 10.30) 즉 제3위/位가 되어 있는 까닭에 사람되신 성자 하나님의 모습은 바로 성부 하나님의 모습이 되어 계심입니다.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또 보이라고 하는 것이냐"(요 14.9).
성자께서 육체(사람)가 되셨으나 그 영만큼은 사람 속성이 아니시고 창세 당시부터서의 성령이시므로("하나님은 영이시니ㅡ요 4.24) 여전히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사람, 사람-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진실과 진리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 은혜 안에서 한없는 느긋함, 든든함, 넉넉함, 그득함, 여유 만만의 기쁨, 평안을 누리고 전파하는 우리가 됩시다.
2026년 1월 6일 화요일
2026년 1월 5일 월요일
어느 시대에든 기도자는 존귀하다
카나다 피플 쳐치(People's Church)의 오스왈드 스미스 목사가 사도시대 바울 이후 가장 능력 있는 복음 전도자로 지목한 찰즈 피니(Charles Finney) 목사는 변호사로 있을 때(기독교와는 담을 쌓고 지낸 집안에 태어나) 법 관련 참고서로 성경을 자기 사무실 책상 위에 올려 두고 가끔 보,던 중, 마음 속에 가끔 파동 쳐 오는 것이, "이 모든 것이 진실이라면 '불이야! 불이야!' 소리 치며 교회당 종각에 매달려 밤낮 없이 종을 쳐대야 할 일이 아닌가"였습니다.
마침내 어느 날 이 심적 고뇌에 더 이상 견딜 수 없어 이른 아침 사무실 인근 숲에 들어가 무릎을 꿇고 기도를 시도했습니다. 눈을 감고 있는데 바삭 하는 소리가 들리자 피니는 황급히 눈을 떴습니다. 그 순간 "만우주의 창조자 하나님 앞에 기도한다는 자가 사람 눈치를 보다니!" 하는 자책감이 크게 휘몰아치면서 기도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거의 정오 나절 쯤에 기도가 잦아들면서 피니는 부시시 일어나 사무실로 향했습니다. 사무실로 가니 고객이 마침 찾아 왔습니다. 이 때 피니의 반응은, "이제 저는 예수 그리스도 변호를 맡았으니 다른 데 가보시기 바랍니다"였습니다.
크게 당혹감에 휩싸인 손님이 황망히 떠난 후 피니에게는 성령의 세례가 임했는데 그 양상은 이러했습니다. 즉 주님 친히 그 옆에 서 계신 것입니다. 그냥 그렇게 서 계셨을 뿐인데 피니는 그 영혼으로 이를 느낀 것입니다. 피니는 어린 아이처럼 목놓아 울며 그 입에서는 이제까지의 모든 죄가 낱낱이 고백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이후로부터 피니는 그 표정 하나로도 사람들을 죄 자백으로 휘몰아 넣는 성령 충만의 능력으로 일관해 갔던 것입니다.
특기할 것은 이 피니의 사역에는 다니엘 내쉬(Daniel Nash, 1763-1837)라는 막강한 기도 사역자가 항상 함께 했다는 것입니다. (피니가 29세의 나이로 회개한 후 복음 전선에 즉각 뛰어들 때 내쉬목사의 나이는 이미 50대). 내쉬는 한 작은 교회 목회(Episcopal priest)에서 어느 정도 잘 나가는 편이었고 아메리카 인디안들 상대로 선교 활동도 했지만 피니의 회심/回心 무렵 심각한 안질에 걸려 오로지 기도에만 매달리던 중 지금까지의 미적지근했던 믿음생활을 회개한 후로 피니의 사역을 위한 남다른 성령 충만의 기도(금식과 더불어) 사역에만 7년간 오로지 집중하다가 세상을 뜬 인물입니다.
그에게는 함께 기도하는 동역자(Abel Clary)가 있어 합심 기도했는데, 내쉬는 설교 대신 기도로써 피니의 강력한 복음 전도 사업에 전력으로 힘을 다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특별한 역사하심에는 반드시 기도 사역자를 정하시어 동역/同役하게 하신다는 사실이 확인되고 있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만신창이로 얻어 터지면서도 복음을 전한 바울처럼 오늘날도 외쳐야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사탄의 옛 "에덴/아담"[창 3:4,5]식 거짓말)의 폐해는, 그릇된 구원론 즉 <행위(행함)는 무조건 부정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이라는 주장의 속임수에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율법(계명)의 행위(순종 즉 계명을 지킴)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 3.20) 한 것은, 당시 유대인들이 교회 내에서 분탕질을 일삼았던 할례 등 "모세 율법도 지켜야" 한다는 주장 때문이니, 즉 <모세 율법이 생겨난 이유>를 밝힘인데 사탄이 이를 악용해 "말씀 혼잡"(고후 2.17/4.2)을 시킨 것.
고로 오늘날 "천사의 복음"(계 14.6) 전파자들은 이 점에 유의하여 주력해야 마땅합니다. 믿음은 순종을 유발시키기 위한 조건일 뿐이니, 다시 말해 순종은 오직 "산 자"와만 관계된 일로서 "죽은 자"와는 아무 연관이 없습니다. 죽었는데 무슨 "순종"이 필요한가요? 할 수나 있는가요? 하나님께서 구원의 은혜를 베푸신 것은(독생자 하나님의 죽으심이라는 엄청난 대가를 치르시면서까지), 오로지 이 "산 자"되게 하심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산 자"로서의 순종이라 이 순종이 우리를 하나님 앞 의인/義人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을 것이니"(롬 2.13)가 바로 그 뜻입니다. 이 뜻을 모르는 이들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데(5.1) 이 무슨 소리냐" 하고 어리둥절해 하겠지만. 문장 독해력이 문제이지 아무 어려운 것도 복잡할 것도 없습니다.
순종을 해야지, 양부의 말을 듣지도 않는데 양자로 입양될 수 있나요? 당장 파양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양자"(롬 8.15,23/9.4)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 그 말씀하시는 모든 분부는 피조물의 생존에 절대 불가결인 생명의 법칙입니다. 가장 이상적인 삶을 영원토록 향유할 수 있는 최고, 최선의 방법인 것입니다.
곧 상대방중심 즉 "사랑" 다시 말해 주님 설명하신 대로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즉 "사랑"이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ㅡ마 22.37-40)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머리>로서의 본을 보여 주었으니 그 <몸>으로서)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바로 그대로입니다.
그러므로 이상과 같이 생명 아닌 죽음의 마약/독극물을 지금까지 주입시켰으니 그 결과야 물으나마나입니다. 오로지 주님이 엄중 경고하신 대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된"("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ㅡ마 18.3) 자들만 살아남았을 뿐입니다. 어린 아이들은 본성으로 움직입니다. 엄마 품에서 생육되니까. 그래서 엄마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엄마의 모든 뜻에 <순종>하는 것이 생명 자체인 줄 터득했으니까.
따라서 "참고 선을 행함이...영생"(롬 2.7)임을 재차 강조해야 합니다. "믿음=구원(영생)"은 이미 거친 전단계이고, 마지막 끝 마무리 단계가 순종의 행함, 행위인 것입니다. 야고보가 거듭 거듭 경고한 대로 아무 짝에도 소용 없이 헛되이 믿어 자기를 속이고 멸망에 들어가는, 만고에 없는 미련한 자, 마귀에게 꺼둘리고 휘둘리는 자가 되지 말라고 온 세상에 경고해야 합니다.
NSO (중복 게재)
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 https://trinia5.blogspot.com/search?q=NSO
-
"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
"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