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7월 6일 월요일
우리 구원은 범죄 후 아담 상태에서 범죄 전 아담 상태로의 회귀일 뿐이니 다시 또 아담처럼 되면 일사부재리/구제불능
"아담 이후 오늘날 인간은 정상이 아닌 비정상 즉 '죽은 자'('산 자'가 아닌)임을 깨달아("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죽은 자"ㅡ골 3.3) '영생(아담의 범죄 전 상태)'에 들어가는 날만 학수고대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마 7.21) 하루 24시간이 되도록 주님의 경고 말씀대로 "힘써야" 하는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을> 것이다"(눅 13.24) 하셨기 때문이다. 당장 여러분은 반박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의 '구원 받음'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가?" 하고. 답은 아주 간단하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가르치신 모든 말씀은 세상 불신자 상대가 아니라 교회 상대다. 우리의 '구원 받음'은 그러한 '교회'의 일원/一員 즉 "하나님 백성"(계 18.4)이 되고자 함이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시어 그 "몸"된 교회의 구성원 개개인은 지금 당장 목숨이 끊어져도 세상 사람들처럼 멸망의 대상이 아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기"(요 5.24) 때문이다. 단 여기서 유의할 것은 이 말씀을 소개한 요한 사도는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다"(요일 3.14)고 명백히 부연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심지어는머물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머물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15)고도 잘라 말한 것이다. "형제"라 했으니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다시 말해 성령 받은 자이나 그 자유의지를 따라 순종하지 않는 위치에 있어 회개 않는 한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히 10.29)는 삼엄하기 짝이 없는 경고의 대상이다. 이와 같이 당면한 현실적 문제이지 단순한 가상 이론이 아닌 것이다. 사탄의 속임수 바벨론 신학은 우리의 "구원 받음"을 마치 무슨 <회수/말소 불능의 천국 입국사증(비자)>인 양 착각하게 만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새 창조다. 무릇 창조는 모름지기 "언약"과 "계명"이다.
아담은 이 "언약을 어겼으니"(호세아 6.7) 용을 비롯한 영물들도 동일하게 어김으로써 악령들로 풀린 것이다. 언약(약속)을 어김은 필연적으로 계명을 지키지 않음 즉 자기 증심으로 끝나고 이것이 범죄 행각인 것이다. 우리의 경우도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눅 22.20)이라 하셨고 또한 "새 계명을 준다"(요 13.34) 하신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 같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거할"(15.10) 것이라 약속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도 부자/父子지간으로서 동일한 언약과 계명이시니 "독생자"(1.14/3.16,18/요일 4.9) 예수님이시기 때문.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고 분명히 하셨으므로(14.28) 파생자(낳으신 분)와 피파생자(낳아지신 분)로서 그리고 "크심"과 "작으심", "아버지" 와 "아들"로서의 "짝"(이사야 34.16)이신 것이다.2026년 7월 5일 일요일
지금까지가 '총론'이었다면 그 '본론 및 결론'
기도로써 세계 교회의 본이 된 한반도 교회사/史
영적 전쟁에서 <설교자>가 어린 아이 같다면
<기도자>는 완전무장으로 싸우는 어른으로
비유될 수 있음을 명심합시다.
이는 설교자가 기도에 별 관심이 없을 때를 말합니다.
초대교회 사도들처럼 "기도와 말씀 전함"(행 6.4)이라 하여 기도를 우선시할 때만
비로소 목회자/교역자답다 할 것이니,
오늘날 교회 강단에 선 어린 아이들 너무 많아
처음부터 <어린 아이>를 데려 오는
미국 신학자 조나산 에드워즈 목사는
3일3야 금식 기도후 일요 예배 때 힘없이
설교 원고만 읽어 내려가는데도
1907년 대부흥의 도화선이 된 선교사들은 하루에 1시간 이상씩
정오 기도회를 가졌으며,
부흥이 임박했을 때는 오후 4시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
자유롭게 기도에 전념했습니다.
이들은 4개월 이상 교파를 초월해 매일 모여
한국의 영적 부흥을 간구했습니다.
이들이 주도하거나 함께 한 구체적 기도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정오 기도회:
평양 지역의 장로교 및 감리교 선교사들은 매일 정오에 모여
1시간씩 집중적으로 기도했습니다.
오후 기도 모임:
일부 선교사가 한 달간 기도해도 효과가 없다며
개별 기도를 제안했으나,
대다수는 기도를 이어가기로 결의하고 집중도를 높이기 위해
기도 시간을 오후 4시부터 저녁 식사 전까지로 변경했습니다.
철야 및 통성 기도:
1907년 1월 장대현교회 사경회에서는
이길함(Graham Lee) 선교사 등의 인도 아래
전 회중이 소리 내어 함께 부르짖는 통성 기도가 도입되었고,
이후 새벽 2시까지 이어지는 철야 기도로 이어졌습니다.
새벽 기도회:
선교사들의 연합 기도와 더불어
당시 길선주 장로가 주도한 새벽 기도회가
부흥의 중요한 영적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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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