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항로의 북극성(polaris)
선장이 항해할 때 북극성을 보고 정확히 방향을 잡아 가듯이 인생 각자는 자기 자신을 운항하는 선장
2026년 2월 4일 수요일
2026년 2월 3일 화요일
3운법칙을 왜 적극 활용해야 하는가 (1)
사복음서에 기록된 것만이 주님의 말씀이시고 사도들의 목회 서신은 그들의 개인 생각에서 우러난 것이 아니라, 똑같이 하나님 말씀이시되 단지 후자의 경우 주님께서 성령으로 가르치신 것이라는 차이만 있습니다. <주목해 마땅한 것>은 바울 사도가,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따르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긴다"(갈 1:6)며 놀라워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 살아생전에 그 정도였으니 하물며 사도들이 세상 떠난 뒤에야 말해 무엇하리요. 바로 "바벨론 신학"이라는 암덩어리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지켜 주시어 제자들 통해 전파된 것이 고히 아무 손색 없이 그대로 전해져 왔다 생각하면 큰 착각입니다. 물론 기록된 말씀 성경만은 그대로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엉뚱하게 각색시켜 엣 에덴에서처럼 황당한 거짓말을 지어내어 그것을 더 믿게 만든(에덴 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탄의 거짓말을 더 믿게 만든) 것처럼 사악한 수작을 악마는 변함 없이 벌이고 있다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좀생이 같은 피조물이야 얼마든 없애버리시면 간단히 끝날 일이 아니냐 하겠지만 아담 자신의 범죄의 결과로 아담의 세상 통치권이 사탄에게 고스란히 넘어가버린(눅 4.6) 탓에, 아담이 자초한 재앙이기에, 사탄은 그 통치권 행사 차원에서 버젓이 저지르고 있는 거짓말이라 이 세상이 있는 동안에는 사탄의 거짓말은 감행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사탄의 거짓말을 제지하시면 아담의 범죄의 결과도 흐지부지되어야 마땅하다는 논리가 되고 하나님의 법질서는 자동으로 유야무야가 되는 판이니까. 주님께서 "마지막 아담"으로서 다시 세상에 오시는 그 날에서야 비로소 세상은 바뀌는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남아 있는 사람들이 구원 받아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은 당분간 지속되어야 하고 세상이 지속되자니 마귀의 이런 행패(하나님 교회를 핍박하는 등의 일도 포함해) 또한 연이어지게 마련입니다. 원리원칙의 하나님이시라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공평하게 생명의 햇빛은 당분간 두루두루 작용함과 같이. 세상 인간의 악도 그래서 여전히 저질러지게 됩니다."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다"(고후 6.2) 함은 어느 누구의(의인이든 죄인이든 간에) 자유 의지든 간섭•강제되는 때가 지금은 아니니까. 이것이 "구원의 때"라는 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물론 하나님께서 이를 방관만 하시고 때를 기다리기만 하는 것은 아니시니 비분강개하는 천사들로 하여금 사탄 일당들과 최후 결전을 감행하게 허락하셨고 그 승리 덕에 "천사의 복음"(계 14.6,7)이 오늘날 선포되게 하심도 그 일환입니다. 사탄의 모든 거짓말인 바벨론 신학의 그 정체를 드러내게 해 주심입니다. 그동안 이 황당무계의 거짓을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오직 주님의 경고대로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된"(마 18.3) 이들 즉 단순하게 하나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사 감격하여 어린 아이 본성으로 하나님께 순종한 자들이었고, 이 경계 말씀을 따르지 않고 "계시"가 아닌 학문 일색으로 접근한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심"이 되었던 것입니다"(눅 10.21).
비록 초대교회 당시에는 모든 진실 진리가 전파되어 알려졌어도 지금은 거짓의 가시덩쿨이 워낙 거세어 오늘날까지 계속되다가 이제 하나님 은혜로 처움 전해졌던 말씀이 다시 밝혀지면서 "천사의 복음"으로 별도 호칭이 될 정도이니 이 세대 사람들에게 이 진리 말씀은 생소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같은 경우의 생소함과 낯섦의 상황 타개를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 진리 전파에서 "표적과 기사"(요 4.48)가 뒤따르게 해 주셨으니 하나님께로서 났다는 증표였슴니다. 이제 "천사가 가진 복음"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표적과 기사"가 바로 "3운법칙"과 "3위1체" 등입니다. 고로 오늘날 21세기 천사의 복음이 전달될 때에는 3운법칙 등을 함께 알려야 하는 것입니다.
기존의 표적과 기사는 기적이 일어난 그 징소 그 시간 한 때만으로 끝나는 성격이었으나 이 "21세기 표적"은 말씀 전달과 끝까지 병행되는 특이성이 있습니다. 그만큼 중차대한 시대성도 감안해서이지만 피조물 악령들이 손도 댈 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영역이기에 이를 세상이 충분히 인지하도록 하심입니다. 사탄이 이 마지막 때의 최후 발악으로 하나님으로 자처하는 대단한 속임수 부림에 어부지리로 역이용하는 측면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그러나 이것은, "악한 자의 임함은 사탄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할 것이니 이는 저들이 진리를 사랑하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들 가운데 역사하게 하시어 거짓 것을 믿게 만드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다"(살후 2.9)라고 밝힌 것처럼 악령들로서는 파멸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천사의 복음이 첫 번째로 지적하고 있는 바벨론 신학의 횡설수설
성경은 "죽은 아담", 인간이 존재하는 한 마땅히 함께 존재해야 하는 "아담"임에도 범죄로 즉어 사라진 아담을 대신해, 독생자 하나님께서 "아담"의 이름으로 사람되심을 명백히 하고 있습니다. 즉 "마지막 아담"(고전 15.45) 곧 "첫 사람 아담"과 짝을 이루신 대칭/對稱아담이신 것입니다. 천년 왕국을 세우시고자 세상에 다시 오심도 순수하게 이 이유 때문입니다. 아담이 살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인간 창조의 계획과 섭리/경륜을 따라 천년간 세상을 통치하년서 악인과 의인이 드러나면 마지막 심판 때 이를 다 정리한 후 영원한 인간 세계에서 '머리'로 등극하게 되어 있는데 그 스스로 범죄함을 인하여 이 인간 세상은 도리어 악마 사탄의 세상으로 돌변해 '첫 사람 아담'은 폐기되고 '마지막 아담'께서 이제 아담 구실을 하심입니다.
따라서 마지막 아담께서는 첫 사람 아담의 지금까지의 행적을 따라 역순으로 거쳐 올라가시어 신령한 몸으로서의 처음 상황으로 복귀하심이 그 죽으심과 부활로서 그 일대기를 그대로 드러내심이었고, 때문에 부활 후 신령한 몸을 제자들 앞에 드러내신 체 하늘 위로 올라 사라지심은 바로 일련의 과정을 남김 없이 드러내어 입증하심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죽은 아담을 거꾸로 되짚어 거슬러 올라가심이 신령한 몸으로 종결되었다는 것은 첫 사람 아담이 범좌하기 전의 모습/상태가 다름아닌 이 신령한 몸이었음을 입증함 바로 그런 결론 그 외 달리 다른 설명이 있을 수 없습니다.
2026년 2월 1일 일요일
지금 전투가 한창인데 지휘관의 명령에 불복하는 자 군법회의 회부감(부분 보완ㅡ밑줄)
(부분 보완ㅡ아래 밑줄 친 곳)
"그러나 화 있을 것이다, 너희 부요(부유)한 자여! 너희는 너희 <위로>를 이미 받았다"(눅 6.24). "(부자에게) 아브라함이 이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는 것이다"(눅 16.25).
"천하에 범사(매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으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다"(전도서 3.1,2,4) 했듯이 지금 이 세상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장소도 때도 아닌데도(위로 받는 때와 장소는 천국에 들어가서야) 죽음과 사탄이 판 치는 이생에서 "하나님 축복 받아 부자로서 잘 산다"는 사람마다 축복커녕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 아래 있음을 알고 깨어나야 합니다.
생명의 법칙 즉 갑과 을 상대성의 동시성 곧 짝을 이룬 둘은 하나가 됨으로써 갑은 을을 위하고 을은 갑을 위함으로써 어느 쪽도 자기를 위하지 않는다는 철칙은, 하나님을 "머리"(역대하 11.22/고전 11.3)로 모신 모두가 그 "한 몸"됨의 각 지체됨을 기반으로 합니다. 몸이 하나이니 <평등하게> 그리고 <평균되게> 몸의 모든 지체에게 똑같이 임함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일에 모두가 하나 같이 되어 머리(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을 똑같이 위해 주시는)로서의 하나님께 그 몸의 각 지체가 '하나' 의식으로 순종하게 되면 그것이 바로 이상향적 삶의 사람 사회인 것입니다.
만인 평등의 행복이 구현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초대교회가 그러하여 <사도행전 432>(행 4.32)가 실천된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이런 점을 모방하여 대단한 이상주의적 이념처럼 나타나 한 때 젊은이들을 사로잡아 선풍적 인기를 몰았던 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러나 시행착오 끝에 독재자들의 먹잇감으로만 전락하여 한낱 환멸의 비애로 끝난 것입니다. 폭력으로 강제, 강요했기 때문. 자진자발적 사랑으로 시작되지 않는 한 실속 없는 헛구호에 지니지 않는 것이 공산주의의 기만성입니다.
초대교회 당시처럼 소규모 단위별로 그런 이상적 사회 운동은 가능합니다. 일종의 경제공동체적 성격이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을 머리로 모신 "한 몸"으로서의 언약(약속) 관계에 있었기에 한동안 유지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흐름에 따라 점차 타락하여 자아중심으로 마음들이 변질되면서 분위기가 바뀌어져 흐지부지가 되었고 지금은 흔적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당연 순서란 뜻이 아니고 슬픈 현실임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북한교회처럼 교회가 핍박의 대상이 되어 있는 경우에만 다 같이 '없고' '천하고' '약한' 자들이라는 공통점을 이루기에 오히려 형제 사랑이 굳건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때"를 말했지만 전체를 얘기할 때 사실상 이 세상은 모든 인간이 "죽은 자"(마 8.2)로서 "위로"가 전혀 부합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측복 아래에서야 위로가 가능한데 "죽은 자"에게 무슨 "축복", 무슨 "위로"가 해당되나요.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세상에서 이미 받은 위로"는 천국에 비하면 아이들 소꿉장난에 불과한 <부자로서 호강을 누리는> 것뿐인데, 바로 이 때문에 멸망하다니! 하나님 기준에서가 아니라 사람(세상) 기준에서 다루어지는 엄연히 냉혹한 현실이기에 그러합니다. 주님의 모든 말씀 및 이 엄중한 경고는 세상 불신자 상대가 아니라 교회에게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바벨론 교회는 "축복", "축복" 소리만 남발하며 많은 영혼을 멸망 길로 몰아 넣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자기의 구원 받음을 확신해도 "부자 호강"은 모든 논란을 잠 재우는 확실한 멸망 건목인 것입니다. 한 마디로 요약해서 세상 (삶의)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썩음과 죽음의 동물성 육체>에다 <악령들의 지배>하에까지 있는 세상을 직시하는 것, 바로 이것이 이에 대한 해답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세상을 창조하신 적이 없고 범죄의 결과물이니까, 이런 세상 사랑은 하나님의 진노만 촉발시키는 것이야 당연합니다. 이런 흉악 흉측한 세상인데도 그 삶을 사랑한다면 자기 자신 마귀 편임을 스스로 드러내어 선전하는 꼴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 알고"(딤전 6.8)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면"(히 13.5)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 이 세상입니다. 그 이상으로는 "부자"의 "이미 받은 위로"에 여축없이 맞추어지므로 경계해야 합니다.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까"(:5) 이 약속의 말씀이 자기 의지/依支가 되어 있는 자 실로 복 있는 자입니다. "복이 있다"고 해서 지금 받는 복이 아니라 장차 받을 복입니다. 지금 여기 세상은 어떤 경우에도 어떤 일에서도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 "위로"는 완강히 사절해야 하는 것이 주님의 경고 말씀으로 미루어 명백합니다.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해>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부자되기 위해 "선한 직업"을 갖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빈궁한 자 구제"가 구원 받아 하나님의 아들들이 된 자의 마땅한 도리이자 의무인 것입니다. 자급자족 생활은 그 다음 순서일 정도로, "먹을 것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하면" 모든 힘과 관심이 하나님 섬김, 하나님의 일 특별히 오늘날 천사의 복음이 전파되는 때에는 이 사업의 원활한 집행을 위한 기도가 요구되는 때입니다.
복음 전파의 일에 헌금하는 것도 충분한 기도 중에 인도하심을 받아 결정할 일이고 전도 책자 배포도 반드시 기도 중에 이루어져야 함이니, 하나님의 일이라고 해서 천사가 자동으로 개입되어 돕는 것이란 망상은 버려야 합니다. 반드시 "기도의 씨름"이 그 배경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인데, 대형 예배당을 지어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는 생각은 너무 무식하거나 "미친 마음"(전 9.3)입니다. 마귀의 연장이요 도구인 바벨론 교회당이나 그런 모양을 냅니다. 모여서 합심 기도에 힘쓰기에는 사도시대 교회처럼("저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ㅡ행 2.42) 집에서 모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 수가 많은 것에 주목하지 않으시고 기드온의 300명 용사와 같이 모인 각자의 진정성에 따라 함께 하시므로(사사기 7.2) "두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다"(마 18.20) 하신 약속 말씀은 불변이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부유)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다"(고후 8.9). 한 몸으로서의 <전체>가 부유해지기 위해 지금은 그 <전체>가 고난의 기간 중에 똑같이 예외 없이 산고/產苦, 산통 중인 것입니다. <전체>가 그런데도 자기 혼자만 예외인 듯 주님께서 경고하신 "위로"를 탐함은 한사코 피해야 합니다. 구약성경에서의 "축복"이나 기타 말씀은 장차 독생자 하나님께서 세상에 오시어 친히 가르치실 모든 것을 수용함에서, 그 예비 사전 교육 차원으로 즉 유치원생에게 초보 수준으로 가르치심이었던 것이고 신약시대 즉 어른이 되어 있는 상황과는 다를 수밖에 없으니 이를 구분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유함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때와 장소를 가린다는 뜻입니다. 이 세상은 그러한 때와 장소가 아님을 다시 강조합니다. 아담의 세계가 아니니 그런 세상은 주님 재림 후에야 이뤄지므로 그 때까지는 세상과는 <물과 기름> 사이를 반드시 유지해야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마귀는 북한교회 같은 곳만 건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현재 "우리와 함께"(마 28.20) 성령으로 계시는 우리 주님(사람이신 우리 군대 유일의 사령관)의 진두 지휘 아래 전투가 한창 치열한 때입니다. 다름아닌 성령 안에서 성령으로 간구하는 우리 기도자들 여러분이 그 휘하 병력이신 것입니다.
2026년 1월 31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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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마음 그 깊은 곳에"...이안삼의 최대 히트곡에 접목시킨 "내 마음 그윽한 데서" 이안삼은 " 독실한 기독교인"인으로 알려져 있 었으며 성가곡 '선하신 목자' 를 작곡하며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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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하신 것은 주님 당장 오시는 <때>를 말씀하심이고, 그 전에 많은 사람이 바벨론의 마수에서 벗어나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