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 받는 첫 요건으로, 하나님의 실존을 알아야 하고 그래서 현재 죄인으로서의 상태가 정상이 아닌 심각한 비정상임을 알아야 즉 영원 멸망으로 들어가는 운명임을 본능적으로 자각하여 회개해야 하는 것이니 그래야 구원 받아 영생하게 되는 것이다. 구원은 다름아닌 아담이 범죄 전 누렸던 정상 상태로의 복귀를 말함인 것. 그래서 "새 창조"다. 하나님의 두 벌 창조 또는 재창조가 아닌 것. 처음의 아담 창조의 영광을 아담이 그 범죄로 상실했기에 그 처음 창조의 영광을 이제는 "마지막 아담"을 통해 즉 대칭성 원리를 따라(그러니까 전혀 새롭게 일신/쇄신하여) 다시 아담 범죄 전 상태로 "회복"(행 3.21)하심이다. 빌립보 간수(16.30)가 하나님의 능력을 보고 본능적으로 사도들에게 매달린 것이 그 예ㅡ"내가 어찌해야 구원 얻겠는가" 하며. 그 다음 곧 마지막 단계가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것인데 여기서 분명한 것은 당시 이 빌립보 간수는 로마서 7.24와 같은 영적 고민을 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다는 사실. 그래서 사람들은 로마서 7장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믿은 후 체험이라는 근거를 여기서도 찾으려 할지 모르나 그렇지만 여기서 유의해야 마땅한 것은 이 로마서 7장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예외 없이 거쳐야 하는 필수 과정이 아니라는 것.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음"(롬 8.1~39)을 <설명함>이지, 이같은 과정을 <누구나 거치게 되어 있음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아닌 것이다.
좌우지간("설명"으로서 믿든, 안믿든) 분명한 사실은 무릇 그리스도와 "합하여 <이제> 한 영"(고전 6.17)이 되어 있는 이들은 <예외 없이> '죄와 사망의 법' 아래에서의 "오호라!"(롬 7.24)의 탄식이 더 다시는 없다는 것. 여기에 이의 없이 일치하는 한, '한 아버지'의 "품속"에 있는 '한 형제'요 '한 머리' 아래의 '한 몸'인 것이다. 고의적 범죄의 멸망이 아닌 한, 해방된 후 또다시 얾매이는 법은 없으니까. 성경에 "하니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않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해져 미련한 마음으로서 어두워진"(롬 1.21) 경우도 명백히 있다고 했으니까, 이 때는 마지막 단계 즉 "믿음"에까지는 이르지 못하는 크나큰 아쉬움이 남는 것은 사실이다.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을 알면서도 마땅한 반응이 없다는 이야말로, 이런 것이 "영적으로 죽은" 것! 즉 한 마디로 치유 풀능, 구제 불능의 교만이라 보면 될 것. 이런 것이 영적 죽음인 것이고 "첫 사람 아담이 죽은 것"(롬 5.12)을 무식하게 아무렇게나 이름 지어 불러 "영적 죽음"이라 해서는 안되는 것. 백해무익의, 사탄으로부터 난 바벨론 신학(계 18.4)의 "말씀 혼잡"(고후 2.17/ 4.2)일 뿐이니까.
여기서 바울사도가 말한 것은 말 그대로의 죽음 즉 아담 범죄 전의 "영광의 몸"(빌 3.21) 다시 말해 "육의 몸"(고전 15.44) 곧 현재 우리 모두와 같은 "낮은 몸"(빌 3.21)이 아닌 "신령한 몸"(고전 15.44)"을 말함이다. 이런 신령한 몸이 처음부터 있어, 아담을 보좌하도록 창조된 모든 천사도 다 이러한 신령한 몸이 되어 있는데도 굳이 격이 훨씬 낮은 동물성 육체로 아담만 창조하실 리 만무한 것임을 부디 명심하시기를! 그러므로 이제 우리 구원의 성경적 의미(아담으로 인한 범죄의 비극적 돌발 사고로 인해 인간 창조가 일체 무위/無爲로 돌아가버린 것을 원상태로 "회복"(행 3.21)시키시되 하나님은 철두철미 일사부재리/一事不再理ㅡ한 번 정하신 것은 영원하시어 "하나님은 그 약속과 그 뜻이 변치 않으시고 또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치 못할 사실을 인하여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하여 가는 우리로 큰 안위를 받게 하려 하심"ㅡ히 6.17,18)를 알고 뿐 아니라 뭇천사들이 아담 아래 통일된 일사분란의 체제 아래 있어 하나님을 섬기고 있음을 알고 있는 이상, 우리도 확고하게 주님과 함께 자리잡아 주님의 이름과 그 권위로 범사에 의엿이 언행심사 일체를 할 수 있게 됨이다.
성경에 설명한 모든 그리스도의 능력과 권위는 범죄 전 아담이 행사하게 되어 있는 아담 고유의 것이고 이를 행사하심임을 똑바로 인식하고 있어야! "만물을 그의 발아래 두셨다 하셨으니...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신 때에는"(고전 15.27,28). "모든 정권과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또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이의 충만이신 것"(엡 1.21 ~23/히 2.8). 이상 모두가 다 그러한 것이다. 성경에서 설명하는 "그리스도"의 뜻은 다름아닌 "마지막 아담"(고전 15.45)이심을 모두 알아야. 아담은 "산 영"이요 "마지막 아담께서는 "살려주시는 영"(:45)"으로서의 차이다. 창조주와 피조물로서의 엄청난 차이이기는 하나 서로 "상반/相反"이라는 점에서는 여지 없이 듣어맞아 일절 하자가 없다. 즉 아담과는 전혀 별도의 존재로 오신 것이 아닌 것이다. 아담으로부터 나는 것을 "육으로 나는"(요 3.6ㅡ태어나는) 것이라 하고 마지막 아담으로 인하여 "새 사람"("옛 사람"이 아닌)되는 것을 서로 구분하는 것도 같은 의미다.
아담이 만일 범죄 않고 자식들을 낳았다면 그 자식들은 모두 성별 구별이 없는 신령한 몸의 존재들을 초자연적 방법으로 낳았을 터(단 자식들은 생산 활동을 않고 아담 부부만의 독자적 수단에 의해ㅡ물론 짐승과 같은 성적 접촉과는 무관하게ㅡ여자 창조는 생식이 목적 아닌 단순한 도우미-helper-역할 때문이었음을 기억해야ㅡ생식이었다면 아담 창조 즉시 여자도 창조하셨을 것). 성욕(쾌락)이란 것은 종족 보존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요소라 동물에게 장치하신 것. 아담에게 처음 여자를 붙여주신 것은 자기와 똑같은 모양새가 아니면 아담이 만족치 않음이 드러났으므로 부득불 암수컷 원리를 적용하심에 불과(창 2.20). 범죄하여 동물 육체가 되다보니 생식작용메 쓰인 것이고 그렇지 않았다면 아담 범죄와 동시 여자도 곧장 만드섰을 것. 그런즉 결론은 이제 우리도 하나님의 막중하신 은혜로 "마지막 아담" 곧 새 아담 아래 그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이 돠어 있은즉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하여" "함께 하늘에 앉히신 바된"(엡 2.6) 이 엄청나고 놀라운 새 사실에 눈 떠야 함이니 바꾸어 말하면 우리도 이 아담의 권위와 권세를 곧이곧대로 100% 햄사할 수 있게 됨이다.
아담이 범죄하지 않았다면 신령한 몸으로서의 그 초자연적 권세를 그 아들들된 이들이 얼마든 행세할 수 있었을 바로 그대로의 이치인 것이다. 우리도 주님이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마 16.23) 호령하신 것처럼 할 수 있으니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도주(flee from youㅡKJV, NIV)하리라"(약 4.7) 함과 같다. 이 21세기 바벨론 신학(계 18.4)을 대적하는 천사의 복음(14.6)시대에서는 더욱 남다르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어 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으시라 하리라 하셨고 스룹바벨의 손이 이 전(성전)의 지대를 놓았은즉 그 손이 또한 그것을 마치리라 하셨으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다.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다림줄(벽돌을 쌓거나 기둥을 세울 때 벽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고 똑바로 수직이 되었는지 눈으로 확인하는 데 사용되니 성전 건축의 시작됨을 강력 암시)이 스룹바벨의 손에 있음을 보고 기뻐하리라"(스가랴 4장 7~10). 다시 말해, "태산(마귀의 각종 방해 작업)아! 무너져 평지가 되라!" 명령하게 되는 날이 이제 이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