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게 영원히 죽지 않고 살도록
인간은 창조되었었다.
그러나 생명의 법칙을 지키는 경우에만 한한다.
천사(영물/靈物)들도 그렇게 영광 중에 살도록 창조되었지만
범죄하니까 악령들이 되고
영원 멸망으로 운명지어져 있는 것을 보라!
똑같은 피조물인데 인간이라고 차별하시겠는가.
항상 공평공정 무사하시어 더 여기시고 덜 여기시는 일이
없으시니까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이다.
부모가 어느 자식은 더 여기고 덜 여기고 한다면
부모 자격조차 없다 할 것이 아닌가.
그럴 바에야 낳기는 왜 낳았는가 비난만 받을 것이다.
그래서 아담도 범죄로 인해 죽은 자
다시 말해 이런 현재와 같은 자연계 육체가 되니
그 낳은 소생들 즉 모든 인간이
영생할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린지라
그래서 오늘날 구원의 필요성이 생긴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과거를 짊어지고 있는 인생들이므로
현재의 이 자연계 몸의 처지는
사는 것도 아니요 또 기간도 당연히 잠정적이다.
그러면 이러한 인생들의 미래는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면
이렇게 죽은 아담을 대신하여
아담 역할을 하시고자
다시 말해 인생들을 아담 범죄 전의 정상 상태로
완전히 되돌리시고자 창조주 하나님 친히
부득불 사람되시니 이를 "임마누엘"이라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첫 사람 아담과 짝을 이루는 방법으로
"마지막(대칭/對稱을 이루었다는 뜻) 아담"(고전 15:45)이
되시어 인간 세상에 오시니 곧 메시야 구세주시다.
고로 이 세상은 이 대칭 아담을 통해
정상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회복되는 단계
그 이상 이하든 일체의 의미가 없다.
이것이 그러한 과거를 지닌 인류의 현재 위치다.
이러한 인생들인 고로 그 미래가 어떻게 될 것인가는
불을 보듯 훤하다. 영물들처럼 되는 것이다.
즉 범죄하지 않은 영물들은 "거룩한 천사"들로서 영원 생명 누리고
범죄한 영물들은 사탄을 비롯해
영원 멸망의 불 못이 장차 그들의 무대다.
끔찍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이것이 짝의 법칙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양자 중 택일한 결과이니까 필연적이다.
생명은 아니나 죽음의 멸망의 고통 고난 역시 아닌
그런 중간 단계가 일절 없다는 그 뜻이다.
오직 두 갈래로만 나누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생들이 처음부터 영원한 존재로 창조되었으므로
비록 아담의 범죄로 일시(이세상) 자연계 몸이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의 등장으로 현재는 완전 정상화되었은즉
모든 인생들은 예외 없이 원래의 모습인
초자연계 육체로 변환되어
생명과 죽음(영원한 고난 고통의 멸망)으로만 나누어짐이니
이것이 모든 인생들의 장차 맞게 될 <미래>인 것이다.
즉 구원 받아 거룩한 자들은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영원한 영광의 생명으로,
생명의 법칙에 어긋나게 행동하여 불법을 행한 범죄자들은
같은 자아중심을 선호하여 악령이 된 영물들과 함께
영원한, 참담한 고난, 고통의 바다인 불 못으로
그렇게 간단하게 처리되는 것이다.
요컨대 우리가 지금 <현재>에 머물러 있으니까
이 중차대한(영원 미래를 스스로 결정하는) 기간의
의미심장함을 충분히 인식,
장차 닥칠 <미래>를 준비하는 데에만
온갖 심혈을 기울일 일이요
방심이나 안일한 자세는 절대 금물이다.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고로 외쳐라!
무엇이라 외칠까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 모든 영광은 들의 꽃과 같아
마르고 시들고 지는 자연계 육체뿐이나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무궁하리라고 외쳐라!"(사 40:6-8)
고로 영원한 말씀의 복음(희소식)을
곧이곧대로 따르는 자만이 밝은 미래가 있고
그렇지 않고 반대로 나아가는 자는
암담하고 처참한 목불인견의 미래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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