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26일 토요일

개나 소는 그 종류를 한 개체로 잡을 때 천사들의 나이보다 더 많다 하물며 하나님 형상과 모양인 인생이 이 지경인데 어찌 삶이라 하랴

하나님,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렇게 죽는 썩는 육체로 만드시지 않았습니까
이런 인생을 살라고 하셨는데 이런 인생 살자니 힘듭니다 그래서요
힘든 삶을 사느라고 저지르는 각종 연약함의 범죄이오니 하량해주시와요

내가 언제 이 세상 살라고 하였느냐 
도리어, 네 목숨까지 미워하고
사형수로서 십자가 형틀을 매일 지고
네 모든 소유를 버리라고 하지 않았느냐
사형장으로 나가는 사형수가 무슨 재물이 소용이더냐
생명은 이 십자가 죽음 다음에 오는 것인데
너더러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없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라고 할 리가 있느냐
지금은 천사든 인간이든 죽어가는 인생들 살리기 위해
즉 새 생명 탄생시키기 위한 산고, 진통의 때라
만물이 다 함께 이 산통(birthpangs) 중에 있는데(롬 8:22)
만유의 주 하나님도 친히 이 고통 가운데 위치하거늘(행 26:14)
어찌하여 삶의 낙을 꿈 꾸는 헛된 생각에 젖어 있는고












하나님의 말씀과 우리 구원이 직결되어 있다는 것은
<순종>이 구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아담의 불순종이 범죄가 되고 이같은 비극이 온 것처럼ㅡ.
사도신경을 낭송하는 것은 종교행위의 한 단면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말씀을 애지중지, 묵상하는 것은 
믿어 구원 얻은 자의 핵심 기본 자세입니다.
사도신경에 기록된 그 이상의 것을 알고 
매일 매시 순종의 생활을 영위해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 하나하나는 다
(그렇다고 구약의 모세 율법까지 지키려는 이는 없겠지만)
우리의 순종을 요구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의 생사가 좌우된다 한 것입니다.

"사도신경" 같은 것으로 "믿는다"는 고백(말)만 하면
구원이 되는 것으로 아는 이가 많은데
이런 것이 구원 없는 전형적 종교 유형입니다. 
종교는 이 세상 신인 사탄으로부터 난 것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에 대한 물타기 작전의 일환일 뿐
그래서 거짓말로 속이기 위한 것으로서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가 없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단지 이 세상이 사탄의 소속이라는 증거만 될 뿐입니다.
거짓을 일삼는 사탄이 이 세상이 자기 아래 있다는
일종의 영역 표시인 셈입니다.
세상이 말하는 "기독교"도 자기의 것을 만들어놓고
운영하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바벨론"
즉 천주교 그리고 다소간의 일부 개신교입니다. 

몌시야 예수님을 "나 위한 죽으심"으로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이시자 사람("마지막 아담")이시므로
우리 위해 죽으심과 동시 나 위해 죽으심인즉(갈 2:20)
하나님 친히 이 나를 자기 전부를 다 바쳐 사랑하시어
나를 구원하셨다는 이 엄청난 사실을 믿는 것이고
따라서 나는 잠에서 소스라쳐 깨어난 것처럼
이 놀라운 사실에 호응하여 나의 마땅한 자세를 취함이니
곧 나를 이처럼 사랑하신(요 3:16) 주님을 사랑하여
그 모든 말씀의 뜻이 나(우리)를 위하심인 줄 알아
그 분께서 지시하시는 대로 이의 없이 100퍼센트 순종함입니다.
아이가 엄마를 믿고 순종하여 따름과 똑같은 것입니다.

여기서 다른 생각하고 불복종할 때 아담의 범죄처럼 되고
따라서 아담처럼 그에 상당하는 보응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구원만 받으면 모든 것이 종결인 양 착각하는 이가 많은데
이제까지 잘못 배운 것입니다. 성경을 배우지 않고
종교를 배운 것뿐입니다. 그래서 성경과 친숙하라는 것입니다.
구원은 대속, 구속이라는 말 그대로 
원상태로 회복되어 새로 시작한다는 의미일 뿐입니다.
죄는 아담이 지은 것인데 우리까지 엮여 함께 휩쓸리다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고로 우리도 아담의 범죄 전의
상태로 돌아가 아담의 죄와는 상관이 없도록
아담으로 인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일체의 허물/죄는 용서 받고
범죄 전 아담과 같이 의인(더 다시는 죄인이 아닌)으로
새 삶의 출발을 시작하는 바로 그 뜻입니다. 
따라서 아담처럼 고의적으로 범죄할 경우
아담처럼 동일한 운명에 처해짐은 당연합니다. 
거룩한 천사들처럼 사랑 가운데 충성할 수도 있고 아니면
악령들처럼 교만해져 범죄하면 악령과 똑같은 운명입니다.
천사와 악령이 우리에게 모본임과 동시 반면교사입니다. 

아담으로 인하여 현재 내가 자연계 육체로 있어 불리한 듯하나
구원자 메시야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내 안에 내 영혼처럼 계셔
그 자연계 육체라는 불이익이 충분히 상쇄되고도 남습니다. 
범죄 전 아담이나 거룩한 천사들은 우리처럼 이런 
육체적 고난 고통은 당하지 않았으나 우리는 당하는데
그 대신 우리는 그들과 달리 직접적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는 
무한 영광으로 보상되니까 이 역시 충분히 상쇄되는 의미입니다. 
나중에 우리는 하나님의 친 아들들로서 
천사들도 우리의 판단 아래 있게 되니(고전 6:3)
신분이 높으면 그만큼 시련도 혹독하다는 뜻이니
우리로서는 불만이 없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고난이 크면 클수록 영광도 크니까(고후 4: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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