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4일 일요일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신학이 성경에 철저히 기반을 두었다면(당연히 그러해야 하겠지만)
되풀이해서 신학의 반/反 성경적 실상을 강조해서 고발할 일이 없다. 
그러나 이 세상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처음부터 마귀에게 장악되어 온 탓에 
마귀가 성경에 대한 엉뚱한 해석을 꾸며대어 무차별로 퍼먹인 결과 오늘의 이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 또한 양면성으로서 마귀 일방적으로 되는 일이 아니니 
우리 자신의 성경 무시와 맞물려 이루어진 결과다. 
아담에 대한 살인 행위도 아담의 동조(범죄)에 따라 이루어진 쌍방간에 이루어진 범죄 행위다. 
바로 그 때문에 마귀가 이 세상을 지배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고는 
범죄자 사탄의 이 인간 세상 지배는 어림도 없는 일이다. 아담 자신의 범죄로 빚어진 참상인 것이다.

인간 문화의 전통성 또는 전통적 성경 해석이 지금까지 존재해 온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아담 이후 모든 것이 사탄의 지배 통치 아래 조성되어 온 비뚤어진 정신 문화인 까닭이다. 
그 단적인 예가 인류의 절대 다수를 지배해 왔던 무신론이다. 
그러나 지금은 악마 자신이 창조주로 가장하는 시기라 점차 유신론으로 제자리로 잡아드는 현상이로되 
<적그리스도를 추종하게 만드는 유신론>이다. 이 세상이 마귀의 관할 아래 있는 한 
유신론이든 무신론이든 한결같이 사탄의 입김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니 
유신론 세상이라 해서 좋아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고로 말의 요점은, 천 수백년간 정착되어 온 성경 해석이라고 해도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서 벗어난다면 그 "천 수백년"의 권위는 인정되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 하나의 예로 아담의 죽음이 "영적"인 것이라는 것은 이제 더 다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런 당치도 않은 성경 해석을 묵인해 오신 것은 그런 지식이 없어도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된"(마 18:3) 자에 한해서 구원은 얼마든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때는 마지막 때로서 더 이상 거짓은 용납되지 않는다. 
왜냐면 지금은 적그리스도의 때로서 온통 "창조주 하나님"으로 가장하기 때문에
(지금은 점쟁이도 기독교 하나님 이름을 빙자하는 때다) 
정확한 성경 지식이 필수불가결로 요망되는 때라 그러하다. 

가령 예를 들어 국가적 위기를 당하여 교회가 전국적으로 기도를 하는데 
"하나님"을 빙자하는 방언파들이 있어 절대 다수를 차지하여 세를 과시하며 "기도" 운동을 벌인다. 
악령들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대강 알므로 그 때에 맞추어 방언파
(이런 현상이 악령으로 났을 때에는 반드시 대세를 이룬다는 것은 상식이니 
오늘날 천주교가 세계 그 어느 종교보다 다수를 점하고 있는 것도 그런 보편적 현상이다)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여 나중에 말하기를,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심으로써 이렇게 국면 전환된 것을 보라, 
고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고 대대적인 선전에 활용한다. 
세상은 외형적인 힘을 숭상하므로 숫자가 많은 쪽이 대세요 대수라는 착각에서 그런 소리를 일삼는다. 
그러나 사실은 소수라도 그 기도의 능력(응답)으로 하나님은 이루신다는 사실을
성령 안에서의 기도자들은 충분히 알고 있는 터이다. 

그들의 소위 방언 기도를 보면 무슨 기도 말을 해놓고 그 끝에 전혀 무의미한 "아바바바바바바" 식으로 
혀가 돌아가는 대로 밑도 끝도 없는 막무가네식 소리를 해댄다. 
이런 것은 비신자들이 보기에도 듣기가 썩 거북하다.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인지 미친 짓인지 거룩함이라고는 일절찾아볼 수가 없다. 
초대교회 사도들 당시 성령의 은사로서의 방언을 하던 때에도
즉 자신은 알지 못하는 외국어를 성령으로 구사하던 때일지라도 
"무식한 자나 믿지 않는 자들이 들어와 너희를 미쳤다 하지 않겠느냐"(고전 14:23)고 말할 정도였을진대, 
더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마귀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다수, 대세가 진리는 아니다. 
  
거짓과 진실을 구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나무는 그 열매를 보고 안다 하신 그대로다. 
우리의 심성은 거룩함과 그렇지 못함을 구별해 볼 수 있는 지각을 주셨으므로 그대로 작동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귀신의 망동 망발을 얼마든지 가름해 식별할 수 있음을 명심할 일이다. 
이 마지막 때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자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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