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임>이 인간이나 영물과 같은 이지적 피조물에게는 그 이성적 판단에 상응하는 것이 생명의 법칙에 대한 자발적 순응인 것. 자연계 생물과 같은 기계적 순응과는 차원부터 다릅니다.
우리가 구원 받음은 새 창조를 말함이니, 지금 내가 죽었으니까 영으로 나서 살아나는 것이 시급하여(요 6:63) 그래서 "성령으로 난" (3:6) 것이나, 단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는 것은 우리의 머리되시는 "마지막 아담"께서 다시 세상에 오실 때 순간적으로 이루어짐이요, 그 때까지는 이 동물적 육체에 머물러 있음이 불가피한 것이라 나머지 구원될 이들의 숫자가 차기까지 기다림입니다.
이는 첫 사람 아담이 흙으로 처음 동물적 육체로 창조된 후 그 몸이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기 위해 에덴에 들어가기 전 일시 대기 상태에 있었던 것과 같은 양상/상태인 것입니다. 당시 아담이 동물성 육체로 있었으나 죽은 자가 아닌 엄연히 산 자였던 것과 같이 우리도 현재 그러합니다.
우리가 신령한 육체로 변환됨은 "마지막 아담" 영광의 우리 주님께서 재림으로 세상에 다시 나타나시는 순간이라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직 신령한 몸은 아니지만 그래서 비록 동물적 육체 그대로이나, 새로 창조된 터라 이는 아담이 처음 흙으로 지으심 받아 에덴(하나님이 새로 "창설하신")에 들어가기 전과 같습니다.
주님께서 세상에 오실 때 "불꽃" 중에 임하신다 함은 동물성 육체의 형체로(신령한 몸이시지만) 오신다는 뜻. 현란한 광채의 빛으로 오심(다메섹으로 가던 사울[후에 바울]에게 처음 나타나신 때처럼)과는 별개의 형체이십니다. 고로 우리가 현재 알기로는 인간이나 영물과 같은 영적 존재로서의 신령한 몸은 세 가지 형태로 변신됨을 알 수 있습니다. (1) 빛의 옷에 둘러싸인 몸, 다음은 동물과 같은 자연계에도 속하는 몸인 바 이는 (2) "불꽃 중에" 나타나는 형상과 (3) 순수히 동물과 같은 몸의 모양새로 나타나는 것으로 나누어집니다.
사탄은 아담을 항구적인 동물적 육체로만 되게 유인한 죄과로 더 이상 (1)빛으로써가 아닌 (2)로써만 <항구적으로> 나타나게 되는 형벌을 받게 된 것이고, 나머지 악령들 및 천사들처럼 (3)도 포함된 경우는 단 한 번, 인간(남자)으로 변신 자식(네피림의 하나)을 생산했던 때이니, 장차의 적그리스도로 예정되어 있는 자를 낳기 위함이었습니다(창 3:15). "사탄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다"(고후 11:14) 함은 실제로 그렇게 직접 나타난다는 뜻이 아니라 모든 악령들이 그런 식으로 인생들을 속인다는 것을 총칭해서 한 말입니다.
본론으로 되돌아가, "내가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하므로 나를 혼자 두지 아니하셨다" 하심은 다름 아닌 지금까지 강조해 온 "상대성의 동시성" 즉 <짝을 이룬 둘은 반드시 하나를 이룸>의 3위1체 법칙을 기반으로 하는 생명(삶)의 영원한 법칙을 말씀하심입니다. 다시 말해 무룻 살아 있는 자는 서로를 위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자기 부인의 사랑으로 하나로서 결속되는 만고불변의 이상향적 삶의 원리를 말씀하심입니다. 이 원리를 어긴 것이 사탄 및 악령들의 범죄요 아담의 불순종이며 우리가 처음 복음을 믿을 때의 회개 주제/主題인 것입니다.
바벨론 신학의 속임수는 하나님의 일방적 사랑만을 강조함으로써 거의 모든 기독교 교인을 멸망으로 몰아간 데에 있습니다. 그리하여 로마서 7장이 <믿어 거듭 난 바울 자신의 체험>이라는 등의 생사람 잡는 갖가지 거짓말을 꾸며내는 등 과거 에덴에서의 아담 부부에 대한 살인 행위를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하나님은 왜 이런 악을 방치하시느냐 모두 이렇게 간단하게 생각하겠지만, 하나님 창조의 모든 현상은 철두철미 인과성/因果性에 의해 관장됨을 알아야.
"주님께서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니...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음이니 어찌 원망하랴...우리가 스스로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범죄함과 패역함을 주께서 용서하지 아니하시고 진노로 스스로 가리우시고...처녀 내 백성의 파멸을 인하여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른다...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시기를 기다린다"(예레미야 애가 3:33,39- 50)에서 확인되듯이, 아담의 죄, 우리의 죄의 당연한 보응이니 곧 사탄의 이 세상 지배/압박인 것입니다(눅 4:6).
고로 주님 친히 경계하심과 같이 "돌이켜 어린 아이와 같이 된"(마 18:3) 자만이 구원에 들어가고 오만하여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아 스스로를 지혜 있는 자로 여겨 소위 "신학"이라 해서 "계시"가 아닌
학문으로서만 의존했던 모든 이들은 멸망을 면하지 못한 비극 앞에서 우리는 마땅히 "두려워하고 떨어야"(빌 2:12) 합니다.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합니다 옳습니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마 11:25,26).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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