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찬양하며
(엡 5:19)
짝의 원리에 의한 우리 구원은 아래 사실로도 입증된다. 즉
성자 하나님과 성부 하나님께서 둘이 "하나"(요 10:30)이시지 않으면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위해 죽으신 성자 하나님을 살리실 수 없어
그래서도 구원은 불가능이 된다.
둘(갑과 을)이 하나되심(병)의 이치를 따라
우리 위해 죽으신 주님을 살리실 수 있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은 원리원칙에 따라 움직이시는데 아무리 아들이시라도
일단 죽으시면 다시 살리실 수 없는 것은
그것은 죽음이라는 사실 자체를 부정하시는 것이 되기 때문.
그러나 짝의 원리에서 두 분이 하나이시므로 살리심이 합법적인 것.
이 하나되심은 성부 친히 성자와 더불어 똑같은 죽음의 고통을 함께
받으셨다는 의미가 되므로 성자 홀로 받으신 죽음의 고난이 아니란 뜻.
다음 두 번째로는 똑같은 짝의 원리에서
내가 주님과 하나되어 있지 못하면 역시 구원은 영원히 불발이 된다.
하나가 되어야 주님의 죽으심이 옛 아담의 죽음이 돼 내가 죽음이 되고
그 부활이 또한 직접적인 나의 죽음이 되므로 이 곧 "구원"인 것이다.
그렇게 우리 위해 죽으신 그 때 그 당시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내가 자동적으로 구원됨이 아니고
지금 내가 이 사실 앞에서 회개하고 세례 받음으로 죄 용서 받을 때
주님 친히 성령으로 내게 임하심으로써 나와 하나됨으로 인해
그 죽으심 내 죽음, 그 부활 내 부활, 그 승천 내 승천
그리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하나님 아들로서의 권위가
내 권위와 위세와 신분이 되어 마귀도 물러가는 것이다(약 4:7).
"약해서"(고후 13:4) 우리가 고난 받지만 우리 스스로 자청해서
즉 불쌍한 영혼들 건지기 위한 직접적 수단으로서의
고난(머리이신 주님의 몸된 교회로서)이기에 스스로 받는 고난이다.
주님께서 "내 스스로 버린다"(요 10:18) 하신 꼭 그대로다.
고로 이렇게 주님과 내가 하나됨은 성부, 성자께서 하나되심처럼
문자 그대로 하나인 의미이므로 나를 보내신 주님께서
내가 세상에서 당하는 모든 고난을 똑같이 받으시는 결과가 된다.
아, 그대들이여, 이것이 사랑의 하나됨이다. 숭고함이요 거룩함이다.
"대신 죽음(전가)"이라는 유치원생만도 못한 지극히 유치한 것으로써
마귀는 지금까지 교회를 농락해 왔었다.
그러나 이렇든 저렇든 "돌이켜(겸손해) 어린 아이 같이 된" 이들은
그래서 하나님 사랑하여 그 말씀 지키고 계명 지킴이(요 14:15,21,23,24)
낙이 되고 사랑의 기쁨 평안이 된 이들은
구원 받음에 하등 지장이 없고 주님과 더불어 함께 고난 받음이 되어
영광 가운데로 들어가는데 전연 지장이 없었다.
오직 그런 자아중심적인(주님 홀로 고난 받고 나는 편안한) 교리에
얽매인 사람마다 자기 기만이 되어 악마의 거짓에 걸려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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