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21일 일요일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ㅡ다시 정리하면 (6)

다시 강조하지만(백 번 강조해도 좋은 것) 동물적 육체는 본시부터 기계적 생명에만 소용되어 이 "본능/本能" 작용은 자아중심일 수밖에 없고 그러나 그 움직임이 정밀성이 요구되는 기계적 작용이기에 인간의 자유 의지와 같은 욕심(지나침 또는 임의에 의한 궤도 이탈)이 없으니 자연계 동물들의 생활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있어 자유 선택이 가능한 인간에게 이 "육의 몸" (고전 15:45)이란 것은 죄/罪의 시한폭탄 그 자체입니다. 가인의 아벨 살인이 그 단적 증거. 그러니 3운법칙과 같은 강제 제약이 없으면 서로 죽이기 바쁘고 죽어 나가기가 바쁘니 이 현실을 오늘날 모든 사람은 뼈저리게 인식해야합니다. 처음부터 이같은 동물적 육체를 아담 즉 인간에게 창조해 주실 리가 만무한 것. 신령한 몸(영생하는)을 입히신 것인데 선악과를 먹어 이 꼴이 된 것입니다. 이런 극도의 험악한 살풍경 속에서 사람 삶을 꿈꾼다는 것은, 3운법칙을 나타내 주신 오늘날 몰라도 너무 모르는 철부지.


그러니 답은 뻔하니, 이같이 "죽을 때"를 정해 주신 것은 그 찰나같은 기간이라도 <살라>고 주신 것일 수가 절대로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봇물 터지듯 둑이 무너지듯 순간적으로 사태가 벌어지면 순식간에 쓰나미에 휩쓸려 떠내려갈 판이라 그 최종 비극의 최종 물살이 덮쳐 오기 전 피신하는 것 외에 달리 신경 쓸 틈이 없는 이세상의 현실입니다. 그 피신할 시간적 여유가 3운법칙의 의미인 것입니다. 자기 자신 그렇게 피신할 만반 준비를 갖추었으면 나의 이웃 즉 다른 사람도 그 위험을 알고 피신하도록 해 주는 바로 그런 시간적 여유 밖에 없는 것이 3운법칙으로 관장/管掌되는 이 세상의 유일무이의 의미인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다른 의미는 일절 있을 수 없습니다. 이제는 3운법칙을 통해서 알았으니까 이런 말이 얼마든지 통합니다. 이전에는 철저히 눈이 가리워져 있어(이 세상 신/神 악마의 눈가리개로 덮씌어져) 볼 수 없었던 것인데(하나님 말씀인 성경을 통해 이미 오래 전부터 경고를 받아 왔음에도 우리 스스로 교만해져 그 경고 말씀을 무시함으로써).

인간에게는 '시한폭탄'과 같은 이 위험천만한 동물적 육체를 떨쳐내는 방법은 너무나 과학적인 것입니다. 만유의 법칙(짝의 법칙) 그대로이기 때문. 즉 "영(성령)으로 난다"(요 3:6)의 "영/靈"은 "육/肉"과 대칭(짝)입니다. 그리고 이 '육(체)'은 썩음(죽음)으로써만 종결되니까 반드시 죽어야 끝나는 것이고 그렇게 끝이 난 죽음으로부터 다시 살아나는 방법 외에는 일절 해결책이 없는 고로 창조주 하나님 친히 그래서 나와 같은 사람이 되어 주시어 죄인처럼 죽으셔서(내가 죄인이니까)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내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것이 되게 하심이니 이 얼마나 섬세하심(과학적)이십니까. 이는 짝의 법칙에서 3위1체의 원리대로 하심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즉 그렇게 죽으셨다가 부활하신 후 성령으로 내 안에 내 영혼처럼 오시어 문자 그대로 나와 <둘이 하나됨> 이루신 것이니까.

메시야 우리 주님의 의/義(순종)가 내게 전가/轉嫁(imputation)되어 내가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이 아니고 오직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이 내것이 되어 내가 주님 안에서 실제 죽었기 때문에 나의 "죄의 몸"(롬 6:6)이 무력화되어 "죄와 사망의 법"이 더 다시는 나를 지배할 수 없는 고로 내가 하나님의 생명의 법칙(계명, 율법)(모세의 율법이 아닌)을 능히 지키게 됨으로 인한 의인됨입니다(롬 2:6,13). 물론 그 전에 의인으로서의 바탕이 되어 있어야 하는데 이는 주님과 함께 하나되어 내가 죽음으로써 이미 이루어진 것. 이렇게 의인된(이는 주님의 나 위하신 죽음으로 은혜로 된 것) <바탕> 위에서 순종(선과 의를 행함)하기 시작하는 것. 그러므로 나의 과거 죄가 주님께 전가되는 것 역시 있을 수 없으니 성경에 "전가" 개념이란 너무나 이질적인 것. 엉뚱하게 구약시대 그림자적 의미의 희생 제물의 의미를 그대로 도입하여 만든 바벨론 신학의 멸망의 교리일 뿐. 전가 즉 "대신 죽음"이 아닌 "함께 죽음" 즉 주님과 하나됨으로 인한 우리의 구원임을 알아야. 바벨론 신학의 이 전가 교리로 인해 "사람은 이 세상에 있을 동안에는 부득불 죄짓지 않을 수 없다"는 거짓말에 속아(에덴 당시처럼) 많은 사람이 멸망에 이른 것입니다.

성경 말씀의 빈 틈 없는 과학성/科學性은 오늘날 짝의 법칙이 알려짐으로써 "3위1체"의 의미가 명백히 드러나면서 만천하에 알려진 것입니다. 겸하여, 짝의 법칙에 의한 <삶과 사랑의 법칙>(가장 이상향적으로 사는 법) 또한 그 모습(정체)이 나타났으니 곧 "상대성의 동시성"입니다. 즉 짝을 이룬 "갑"과 "을" 둘이 하나("병")를 이루는 토대/근거가 밝혀진 것입니다. 다름아닌 '갑' 안의 '을', '을' 안의 '갑'입니다(요 10:38/14:10,11/17:21). 이는 갑은 갑 자신을 위하지 않고 그 상대(짝을 이룬)인 을을 위하고, 을 역시 을 자신을 위하지 않고 갑을 위함입니다.

⁶즉 자아중심이 철저히 배격되고 자기 부인으로 시종일관함입니다. 머리는 몸을 위하고 몸은 머리를 위함으로써 '한 몸'이 되는 이치 그대로입니다. 이 영원한 법칙을 어김으로써 범죄함이니 아담이든 악령이든 다 그러하고 따라서 우리도 이 시험의 기간(현재의 세상이 지속되는 동안은ㅡ이제 그 끝이 이르렀지만)에는 이같이 범죄할 때는 가차 없이 그 생명을 "잃거나 빼앗기는"(눅 9:25)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상 설명과 같이 성령으로 다시 나 새로 창조되어도 새 창조든 처음 창조든 창조는 똑같은지라 인간만은 차별 대우하실 리 없으니 영원 멸망뿐이라는 결론에 이의가 있을 수 없습니다. 악령 사탄은 바벨론 신학의 거짓말로 근 2천년간 그렇게 속여 왔지만. 그러므로 이 자아중심을 이제는 원수시함으로써 회개하여 버리는 결단만이 영으로 다시 나 새로 창조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흔히 말하는 바 "믿음으로 얻는 구원"입니다. 모든 창조는 예외 없이 다 창조자의 값없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시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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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신학/한과학 (3)ㅡ성령세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