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1일 수요일

사람이면 모름지기 3운법칙을 알아야

이미 여러 차례 설명을 해왔으나 다시 간단히 요약하면, 선(좋은 것)과 악(나쁜 것)을 분별할 줄 안다는 의미의 나무가 선악과 나무. 이 뜻을 풀이하면 동물적 육체의 비상한 생존력. 거미 한 마리를 보아도 기가 막히는 공법으로 다른 벌레를 낚아 챙기는 거미집을 구축하는데 인간도 따라갈 수 없는 재주다. 이는 머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기계적인 것으로서 창조주의 지혜가 장치된 것이라 그대로 따르기만 하면 자동적으로 되어지는 일이다. 사악한 사탄에게 휘둘려 무신론을 고집하는 자들은 이런 거미의 천재적 건축술로부터 배우라. 이 지능 발달이 "진화"의 결과이던가? 그런 기술은 거미의 두뇌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로봇처럼 만들어진 대로 움직이는 것뿐인데 누가 그런 기계 장치를 했는가. 철학자 칸트는 두 가지 풀지 못할 경이/驚異가 있다고 했는데 하나는 창공에 빛나는 별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양심이라 했다. 양심도 기계 장치다. 악인도 양심 작용이 있기 때문. (오늘날은 3운법칙 역시 죽는 때가 미리 정해졌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ㅡ그 나머지는 천사들의 관장 아래 있어,그런 놀라운 기계 장치인 줄 알게 되었다). 인간이 만든 로봇은 인간의 지능이 대신한 것이라 하면서, 거미와 갗은 생체 로봇은 왜 딴 말을 하려는가.

인간을 위해 에덴을 만드셨다는 기록은 없이 에덴에 한 동산을 인간 위해 창설하셨다는 기록만 있으니 이미 존재하는 에덴이다. 외경-apocrypha-에도 그런 언급이 나온다. 다시 말해 "6일" 창조 이전에 있던 1차 창조가 풍비박산이 되고 2차 창조이셨다. 그래서 자연계는 "혼돈"과 "공허", "암흑"과 "깊음"과 "물"(창 1:2)만 잔존했던 것. 바로 "물로 망한 세계"(벧후 3:6). 자연계는 그렇게 허물어졌으나 함께 창조되었던 영계(신령한)는 영원성이 특징이므로 그대로 남아 있었던 것. 그랍과 스룹은 이 1차 창조 때의 창조물. 그룹 중 하나가 타락 방종한 끝에(사 14:12) 이 사달이 나버린 것. 2차 창조 역시 아담과 영물들의 범죄 타락으로 같은 운명에 처해지니 물과 대칭인 불로써(벧후 3:7) 그렇게 된 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최종 정리, 정착된다. 사탄은 역시 거짓말로 그 자신이 바로 그 그룹인 양 속여 온 것이니 하여튼 모든 것을 바벨론 신학으로 엉망진창을 만들어 놓은 것이다.

아담을 위해 신령한 세계인 에덴에 아담을 두셨다는 것은 아담이 이미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아담의 영혼을 조성하신 것이 그 때문. 영원성의 영혼인데 육체도 당연히 영원성을 지녀야. 영혼은 영원한데 육체는 썩어 없어지는 것을 갖다 붙이셨다고 선전하는 바벨론 신학이다. 언제까지 하나님께 감히 원수 노릇을 하려는가! 그래서 "바벨론에서 나오라"(계 18:4) 하신다.

선악과 나무와 생명과 나무는 이와 같은 인간의 생래적/生來的 복합 구조를 말함이다. 즉 처음애는 자연계 물질적 육체의 최고 절정으로, 그 다음 단계는 영적 존재로. 고로 현재는 에덴에 있어 신령한 몸으로 되어 있으니 이전의 동물적 육체로 되돌아감으로써 다시금 동물적 육체로 죽어버리는 꼴을 당하지 않도록 스스로 조심하라는 엄중 경고를 아담에게 하신 것이다.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려(눅 9:25) 동물적 육체가 됨으로써 영생 구원을 찾는 몸이 되었은즉 "믿음"의 의미가 "순종"으로 직결됨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은가! 또 은혜로 얻는 구원을 "믿기" 전에 즉 회개해야 하고(행 17:30), 그 증표로 회개의 세례 받음이 마땅하지 않은가. 회개는 아담처럼 범죄하지 않고 절대 복종하겠다는 언약 관계에 들어감이다. "어찌하여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느냐 이는 내 말을 들을 줄 알지 못함이다"(요 8:43) 하심과 같이 성경에 대한 무식은 성경을 읽을 줄을 모르기 때문이다. 성경보다 유식해 보이고 고상해 보이는 신학 서적, 남이 써놓은 주석서 강해서 나부랭이에만 죽자사자 매달리고 어린 아이 같은 심정으로 성령의 가르치심(성경을 통해서만 나타나시는 바가 되는)으로 성경 읽는 것은 유치/幼稚한 것으로만 취급하니 가증스럽기 짝이 없는 바벨론 신학의 도당/徒黨 밖에 되는 것이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언약 관계에 들어감을 뜻함이라(호 6:7)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요 "믿음"이요 "구원"이요 "자기 부인"이요 "십자가 지는" 것이요 "모든 것을 버림"(눅 14:33) 곧 자기를 위함이 아닌 하나님 위함, 이웃 위함인 것. 이런 철두철미한 공동체 정신이기 때문에 초대/初代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通用(공용/共用)하고 제 재물(財物)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행 4:32). 바로 이것이 교회이다. 지금은 그 전통과 본을 말짱 버렸으니 소위 "자유세계"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어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사이비 교회". 그러나 북한을 비롯해 지금도 핍박 받는 지역에서는 "재물"이라 할 것도 없이 모두 "없는 자, 약한 자, 천한 자"로 평준화가 되어 있어 그나마 "교회"로 남아 있을 뿐.

살 만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요 12:25) 하시는 것이 아니니, 살고 말고 할 것도 없고 생명이라고는 지푸라기 하나도 구경할 것이 없는데도(자연계 동물이 아닌 인간은 영광의 신령한 몸으로서 죽음 없고 고통 고난 없이 영원한 부유와 풍족을 누려야만 "사는 것", "삶"이라 할 수 있어) 이 세상 신/神으로 군림해 있는 원수 악령 사탄(고유명사가 아닌 "적대자/敵對者"란 의미의 별칭)이 아담 범죄의 결과인 우리의 현재의 이 동물적 육체를 본연의 인간 모습인 양 속여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는 거짓말로 합리화시킴으로써 거의 2천년간 속여 온 것이다. 초대교회 당시는 "영적 죽음"이라는 '바벨론 신학'의 용어 자체가 없었다. 단지 "이 새상에서의 헛된 삶"이라고만 인식시켜 그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인데 지금은 "축복 받아 잘 산다"는 미신에까지 빠져 자멸/自滅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니, 지체 없이 탈출하시라!

오늘날은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시대. 단 천사의 월등한 제압력으로써 이제까지의 악령들로 인한 온갖 거짓을 분쇄해 원래의 순수한 복음이 밝혀졌다는 의미이지, 무슨 초강력의 초능력으로 복음이 전파된다는 그런 뜻은 아니니, 이전과 같이 복음 전파자의 흘리는 피와 땀으로 말씀이 전달됨에는 변함이 없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고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 밝혀졌은즉 이 실상대로 세상에 전달해야 하고 여전히 바벨론 신학 그대로의 거짓말을 그냥 덮어두는 경우 그에 따른 엄중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 사사로운 것을 더 사랑헀다는 자아중심이라는 판정을 면할 수 없기에. 자아중심이 모든 죄의 뿌리이니까.

바벨론 신학의 횡포는 전세계적인 것이므로 눈치만 살필 일이 이니니, 최초로 사탄의 거짓의 아성을 쳐 깨뜨리고 뚫고 나가는 은혜의 특임/特任이 한국교회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알고 순종해 나가면 되는 것. 한반도 교회에 이 은혜를 베푸신 것은 거의 90년간(1935-2024)의 핍박 속에서 연단되고 다져진 믿음과 기도의 결실.

여차하면 인간의 자유 의지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시한폭탄 같은 동물적 육체라 눈 깜짝할 사이 인류 공멸/共滅은 절박한 시간 문제이기에 오직 새로 창조될 수 있는 최소한의 시간적 여유만은 주시려고 3운법칙을 정하신 것은 모르고, 구원을 모르는 자는 말할 것도 없고 "구원 받았다"는 자까지 <기도와 복음 전파>(새 창조의 재출생에만 마땅히 사용되어져야 할 금쪽같은 시간)는 젖혀 두고 제 멋대로 기분 내키는 대로 마귀가 부추기는 대로 세상과 짝하여 들떠 지냈으니 그 죄과/罪過가 크다, 때 늦기 전 회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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