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7월 31일 수요일

차례차례로 80억 인류가 멸절해 가는 참극의 심판만이 당장 앞에 가로놓여 있음을 온 세상에 알려야

한국이 승승장구하고 세계 중심이 된다는 말이 많은데 모든 "예언"은 성령의 이름으로 나지 않는 한 악령이나 귀신들로 인한 것이라 적대적이요 속임수일 뿐 선하고 의로운 말이 나올 수 없습니다. 과거사가 다 들어맞았더라도 그것은 맨마지막의 거짓말을 위한 위장술/僞裝術의 들러리일 뿐.


이 시기가 "마지막 때" 즉 세상 종말이란 것은 20세기 이후를 지목한 다니엘서로써 이미 확인된 것이고, "한 때, 두 때, 반 때"와 맞물려 나타난 3운법칙과 짝의 법칙과의 상호 검증으로 충분히 확증된 것입니다. 더 이상 증거가 필요치 않습니다. "하늘의 전쟁"(계 12:7)이 끝난 것도 1908년 6월 30일 시베리아 퉁구스카 사건으로 확인되었으니까. 오직 닥칠 일은 "마지막 아담"의 치세/治世의 시작. 이 주님의 재림 앞서 반드시 이루어질 "살아 남을 사람 숫자가 정금 보석보다 희귀해질 것"(사 13:12)이라 하신 대로의 예고된 하나님 심판의 성취뿐.

이 모든 것 전에 있을 대대적인 말씀 전파를 위한 짧은 유예 기간이 있을 것을,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계 7:3),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말하기릏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였다"(14:6 ,7)로 알리셨으니, 오늘 우리가 처한 바로 이 시점입니다.

우리가 이와 같이 오로지 말씀 전파와 교회 육성(충분하고 간절한 기도가 반드시 동반되는)에만 전념해야 하는 중차대한 임무와 사명 의식을 물타기 작전으로 희석시키려고 사탄은 앞서의 지적과 같은 방해 공작을 일삼는 것이니, 그 간악하게 부추기는 <세상 잠>에 휩쓸려 절대 한 순간이라도 한가히 조는 일이 없이 정신 똑바로 차려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한반도 교회가 가장 선봉에 서야 할 것을 아는 악령들의 이같은 훼방에 넘어가지 말아야. 주님의 다시 오심이 바로 눈 앞이든 아니든 복음 전파는 우리의 변함 없는 마땅한 책무이지만, 말씀을 받는 자의 인식 차이(지금의 세상이 끝난다는 것과 그냥 계속된다는 것과의)는 너무나 막중한 의미가 있는 것이니 이 점 우리는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온 세상 더군다나 기톡교 문화권이라는 구미 제국의 소돔 고모라 난장판(동성 성행위 합법화)이 극에 달해 있어 하나님의 맹렬하신 진노 앞에 이미 선/線을 넘었습니다. 사태는 이제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메시야 우리 주/主(나의 주인, 나를 소유하신 분이시니 고로 나는 주님만을 섬겨 그 뜻만을 따름이 생명이라 이는 주님 친히 나의 소유/所有가 되어 주시어 나를 "섬기시고"-눅 22:27 나만 위하시는 위치에 영원히 계심을 나 위한 십자가 죽으심으로써 단 번에 증명해 주셨으니까)님의 사랑과 우리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영원한 생명 자체로 역사/役事하시는지라 이 지식만으로도 더 없는 풍성이요 만족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이제 곧 지나가니까 환영/幻影에 불과합니다. 이 세상에서는 내면 깊이 영적 기쁨과 즐거움은 이같이 누려도 육체로는 고난 고통이 여전하니 인간 본연의 "영광의 몸"(빌 3:21 ), "신령한 몸"(고전 15:44)이 아니라 전연 어울리지 않는 동물적 육체의 비정상 상태에 아직도 갇혀 있기 때문인대 이제 그 끝이 이르렀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지금까지 알아 온 대로 단순히 동물적 생명을 연이어 가는 것을 말함이 아니니, 목적 의식이 투철한 삶의 영위가 영/靈으로서의 이지/理智적 생명인 것. 즉 삶의 낙/樂의 극대화를 꾀함이니 이것은 동물 같은 기계적 존재로서의 자아중심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으로서 오직 각자의 일상 자세가 상대방 중심일 때에만 즉 머리는 몸 위하고 몸은 머리 위하는 <한 몸>으로서의 이치로만 작동 가능합니다. 물론 동물의 생태/生態도 육체로는 '머리'와 "몸"의 구조이지만 기계적 작용일 뿐 이성적 판단의 자기 의지/意志는 아닌 것입니다. 여기서 이성적 판단이라 함은, '상대방의 동시성'인 사랑의 언약 관계를 말합니다. 즉 "나는 너만 위할 터이니 너도 나만 위함으로써 이웃을 위하고 네 자신을 스스로 위하지 말라"는 머리로서의 지시, 명령의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은 만유이시니까 넉넉히 각자 <개개인만을> 위하심과 동시 <모두를 한 사람 같이> 위하실 수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당시 화폐 단위)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치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않다"(마10:29)고 하심과 같습니다.

이 "언약" 관계는 친히 우리 피조물의 창조주로서 머리 역할을 자임/自任하신 하나님의 계명, 율법(법칙)으로
가동/稼動됨이니, 가장 이상향적인 삶의 유일무이의 방식인 것입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은 이 "언약/言約"(호 6:7)으로 좌우되어 유지 보전니다. 모든 피조물은 창조주 하나님을 머리로 모시는 한 몸의 각 지체/肢體, 각 부분에 해당되기에 저마다 하나님을 위하고 하나님은 그를 위하시니까 하나님과 머리 몸 관계를 형성해 "언약(약속)"으로 맺어지면 다른 사람도 동일한 관계로 하나님과 일치하게 맺어져 있는 고로 나는 나 자신을 위하지 않는 대신 모든 사람(이와 같은 언약 관계에 들어가 있는)의 위함을 받게 되므로 내가 나 자신을 위하면 단 1이지만 그런 이웃이 1억이면 100,000,000 갑절이나 내가 위해지는 것이므로 1억의 나 자신이 새로 생김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이런 언약 관계에 들어감을 뜻함이라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사랑"이요 "믿음"이요 "구원"이요 "자기 부인"이요 "십자가 지는" 것이요 "모든 것을 버림"(눅 14:33) 곧 자기를 위함이 아닌 하나님 위함, 이웃 위함입니다. 이런 철두철미한 공동체 정신이기 때문에 초대/初代 교회는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通用(공용/共用)하고 제 재물(財物)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던"(행 4:32)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교회입니다. 지금은 그 전통과 본을 말짱 버렸으니 소위 "자유세계"에서는 눈 씻고도 찾아 볼 수 없어 굳이 명칭을 붙이자면 "사이비 교회". 그러나 북한을 비롯해 지금도 핍박 받는 지역에서는 "재물"이라 할 것도 없이 모두 "없는 자, 약한 자, 천한 자"로 평준화가 되어 있어 그나마 "교회"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살 만한 세상임에도 불구하고 억지로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라"(요 12:25)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살고 말고 할 것도 없어요. 생명이라고는 지푸라기 하나도 구경할 것이 없는데도(자연계 동물이 아닌 인간은 영광의 신령한 몸으로서 죽음 없고 고통 고난 없이 영원한 부유와 풍족을 누려야만 "사는 것", "삶"이라 할 수 있어) 이 세상 신/神으로 군림해 있는 원수 악령 사탄(고유명사가 아닌 "적대자/敵對者"란 의미의 별칭)이 아담 범죄 결과인 우리의 현재의 이 동물적 육체를 본연의 인간 모습인 양 속여 아담의 "죽음"을 "영적 죽음"이라는 거짓말로 합리화시킴으로써 거의 2천년간 속여 왔습니다. 초대교회 당시는 "영적 죽음"이라는 '바벨론 신학'의 용어 자체가 없었습니다. 단지 "이 새상에서의 헛된 삶"이라고만 인식시켜 그 위험성을 경고했던 것인데 지금은 "축복 받아 잘 산다"는 미신에 빠져 자멸/自滅의 수렁 속에서 헤어나지 못합니다.

오늘날은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시대. 단 천사의 월등한 제압력으로써 이제까지의 악령들로 인한 온갖 거짓을 분쇄해 원래의 순수한 복음이 밝혀졌다는 의미이지, 보다 강력하게 복음이 전파된다는 그런 뜻은 아니니, 이전과 같이 복음 전파자의 흘리는 피와 땀으로 말씀이 전달됨에는 변함이 없으니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니까. 고로 이와 같이 하나님의 명백한 뜻이 밝혀졌은즉 이 실상대로 전달해야 하고 여전히 바벨론 신학 그대로의 거짓말을 그냥 덮어두는 경우 그에 따른 엄중한 심판을 피하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 자기 사사로운 것을 더 사랑헀다는 자아중심이라는 판정을 면할 수 없기에. 자아중심이 모든 죄의 뿌리이니까.

바벨론 신학은 전세계적인 것이므로 눈치 볼 것 전혀 없습니다. 최초로 이를 쳐 깨뜨리고 뚫고 나가는 은혜의 특임/特任이 한국교회에게 부여되어 있음을 알고 순종해나가면 됩니다. 한반도 교회에 이 은혜를 베푸신 것은 거의 90년간(1935-2024)의 핍박 속에서 연단된 믿음과 기도의 결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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