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0월 20일 월요일

주기도문 명상 (10)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롬 8:28) 것으로 종결된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다. '상대성'의 '동시성'이다. 사랑에서는, 상대를 이룬 쌍방이 동시에 움직인다. 지금까지 바벨론 신학에서는 하나님의 일방적 사랑만 강조하여 왕창 속인 것이다.


사랑은 짝을 이룬 둘의 "하나"(요 10:30)됨을 말하는 것이다. 이 하나됨의 의미를 성경은 "한 몸"(창 2:24/고전 6:16)의 하나됨으로써 충분히 설명하고 있다. 즉 "아내가 자기 몸을 주장/主掌(주관)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이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니"(고전 7:4) 이를 어기면 붋의, 불법이 되어 간음자가 되고 멸망에 이르는 심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죄 곧 <하나님 창조와 그 창조물 운영의 법질서에 어긋남>에서는 경중의 차별이 없고 지극히 작은 일 하나도 지극히 큰 범죄 행위와 똑같은 결말로 이어지는 것이다. 똑같은 자아중심이 그 본질이기 때문이다. "한 몸"의 "하나"됨과 대칭되는 것이 "한 영"(6:17)됨인 바, 여기서 적응되는 법질서를 가리켜 <생명(삶)의 법칙>이라 한다.

다시 말해 갑은 을의 것이 되고 을은 갑의 소유가 되어 피차간 똑같이 자기 자신을 위하지 않고 짝을 이룬 자기 상대를 위한다. 머리와 몸은 짝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짝이다. 파생/派生한 자와 파생된 자로서의 대칭. 이 짝을 이룬 둘의 하나됨이 물질 세계에서 상보성 원리로 표현되는 바 "상반/相反은 상보/輔"(CONTRARIA SUNT COMPLEMENTA)인 것이다.

이와 같이 짝의 법칙이 만유의 기본 대법칙이 되는 이유가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 독생자/獨生子를 낳으심으로써 창조를 시작하심에 있으니 '실체'와 '형체'를 형성하심이다. 형체(형상)는 여럿이 필요하지 않고 하나만으로 충분한 것. 그래서 파생자와 피파생자. 몸과 머리. 고로 성자 하나님께서 만유를 창조하셨고(요 1:3,10),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로 말미암아 창조하셨다>(히 1:2)라고 말하게 되는 것.

자연/물질계가 있으니 초자연계 즉 영/靈계가 반드시 있게 마련이고 또 영물이 생존하는 바, 후자는 불변이요 영존하는 불가시/不可視성이나, 전자는 가시적이며 파괴되기도 하고 다시 조성되기도 함이니 "6일" 창조는 전자에 속한다. 반면 에덴은
후자 속성으로서 스랍(seraphim)과 그룹(cheruphim)은 "6일" 창조 전 피조물로, 당시 창조되었던 '영계'가 "6일" 창조까지 존속됨을 말하고 바로 그 세계를 가리킴이다(에스겔 28:13-18).

"6일" 창조 전에 이미 "땅"과 "물"(창 1:2)이 존재하고 있었음이 그 증거다. 하나님 창조의 "천지"(:1) 곧 하늘과 땅은, 1:8의 "궁창을 하늘이라 칭하시다" 할 때의 그 "하늘", 1:10에서 "뭍을 땅이라 칭하시다"의 그 "땅"을 가리킴이다. 성경이 애매모호하게 기록된 것이 아니라 성경을 우리가 너무 성급하게 읽는 탓이다. 선입 관념에 사로잡혀 <우리 식>으로 읽으려고 덤비는 데에 명백한 허물이 있다.

"물"과 "땅"이 "6일" 창조보다 먼저 있었다는 것 즉 그 이전에 창조되었다는 것은 만유의 기본 원리 다시 말해 짝(대칭)의 법칙에서 확인된다. 망하는 세계와 망하지 않고 영존하는 세계와의 대칭이다. 망하는 세상은 물로 망하는 세상과 불로 망하는 세상과의 대칭이다. 영원불변의 세계는 그 자체가 영원하므로 나누어지지 않는다. 우리는 지금 불로 망하는 세상에 속한다.

이는 베드로가 잘 설명하고 있다.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창 1:9,10)...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벧후 3:5-7). 베드로가 여기 지적한 "물의 넘침"은 노아 홍수를 말함이 아니다. "스랍"과 "그룹" 즉 "계명성(새벽별)"들의 세상을 말함이다. 그 때 그룹 중의 하나가 하나님께 반역하여(겔 28:13-18). 바로 이 그룹으로 인한 파멸이 "물의 넘침"인 것이다.

이제 곧 닥칠 "불사름"은 사탄을 비롯한 악령들 및 악인(죄인)들의 난동을 인함이니, "마지막 심판"으로 막을 내린다. 사탄 등 악령들은 현재의 "거룩한 천사들"과 속성이 똑같은 영물로서 단지 죄를 지어 악을 행했기 때문에 "악령"이라 하는 것분이다. 인생들 중에 악인이 있고 의인이 있듯이.

"아담 영상/影像(ADAM pix)"이 그 증거. 거룩한 천사들은 그렇게 마구잡이로 나타나지 않고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하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므로 필자의 스맡폰에 찍힌 것은 반드시 한 악령의 육체의 일부이나 "천사와 악령의 실질적 현현/顯現(Angel and Devil Actual Manifestations)이라 이름 붙인 이유다. 천사도 그 신령한 몸의 육질/肉質은 똑같기 때문이다.

만유가 짝으로 되어 있음은 미시세계 실험(양자역학)에서 모든 물질이 파동성과 입자성의 2중으로 구성되었다는 널라운 사실이 오늘날 전자의 2중슬릿 실험으로 밝혀짐으로써 확증되었으니, 그 '상반'성은 '상보'성임이 즉 짝에서의 "하나"임이 제대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파동성과 입자성이 동시에 구현되지 않고 반드시 둘 중 어느 하나만 나타나기 때문인ㄷ데 이것이 그 확고한 증거다. 이것은 3위1체로서 "하나"이지 않고는 결단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 "마지막 때" 거의 2천년 해묵은 사탄의 바벨론 신학 그 사악한 거짓을 드러내시고 처음부터 말씀하신 복음의 진리 그 확고부동의 기반을 밝혀 주신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에덴이 자연게 한낱 동산이 아니고 영계를 말함이며 그 가운데 한 동산을 창설하시고 거기서 "신령한 몸"(고전 15:44)으로 영원히 살도록 인간을 창조하신 것이며, 따라서 우리는 영생을 얻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영생을 빼앗겨 잃게 된 그 직접 원인인 불순종 척결에 오로지 집중함이 마땅한 것이다.

그리고 원래의 우리 모습이었던 "영광의 몸"(빌 3:21)으로 회복하자는 일념뿐이니 나 먼저 그 복귀의 첫 걸음을 시작했으면 나머지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되도록 그 목적으로 "보내심"(요 20:21)을 받음인고로 이것이 아직도 이 어색한 구차한 몸으로 세상에 남아 있는 유일한 이유다. 이런 실상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나 이 죽음의 세상 살겠다고 난리고 아우성이지 이제 하나님의 막중하신 은혜로 모든 진실에 눈 뜬 우리 중에 누가 이 죽음의 세상살이에 감히 연연하겠는가.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에 전념/專念하기 위해 우리 각자는 이 세상 일정 기간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의 이 세상에 남아 있으려면 "영광의 몸", "신령한 몸"으로는 불가능하다. 생명의 몸으로는 이 죽음의 세상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부득불 죽음의 몸으로 죽음과 어울려야만 하는 것이다. 그래서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골 3:3)이라 한 것이다. 예수 우리 주님께서 애초 그러하셨듯이.

그 분과 <머리와 몸으로서의 한 몸>(고전 12:26ㅡ"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스러워지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함이니")을 이룬 우리이니만큼 당연히 그러하다. 이 육신 및 이 세상과 관련되어 부유하다는 "부자/字"를 입에 올리는 사람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 뜻을 행할 수도 없음을 알아야.

영적 부유함이야 말해 무엇하리요마는 비록 새상에서 3환/環법칙(3자간경제순환/三者經濟循環 법칙)을 따라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줄 것이다.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다"(눅 6:38) 하신 대로 "죄인의 재물이 의인을 위하여 쌓이는"(잠언 13:22) 일이 있어도, 여기서 "의인"의 정의/定義는, "없는 자에게 베풂으로써 자기는 없는 자가 되는 것"에 있으니 혼돈스러워하지 말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모든 사람의 생활이 "평균"(고후 8:13 14)하게 하심에 있다. 삶의 평준화이므로, 초대교회는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공유/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행 4:32). 크고 작음(으뜸과 버금)의 차이는 있어도, 누가 보다 많은 사람을 보듬고 섬기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일이다(막 10:44).

주님 가르치신 기도에서 "시험에 들지 않게 구하라" 하신 그 "시험"에 이 세상 사랑이 포함되는 것은 너무나 명백하다. 사탄은 "내게 절하라(눅 4:5-7), 그래서 자아중심의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라"고 쉬지 않고 유혹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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