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6일 일요일

교회 상징인 이스라엘 역사에서 예루살렘 성전의 훼파됨(범죄로 인한)과 다시 세워진 의미 그대로 오늘날 성전 재건은 3운법칙, 3위1체 법칙 등장으로 재현되고 있다

 



아담의 범죄로 비롯된 사탄의 이 인간 세상의 장악과 지배는

"말씀 혼잡"(고후 2:17/4:2)에 의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격하로 이어져

따라서 전체가 붕괴되는 지경에 이르렀으나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이 마지막 때 "예루살렘 성전"("성령의 전"-고전 6:19)이 중건되는 시점이니

이는 3운법칙과 상호관계에 의해 스스로 난공불락의 아성을 이루어 있는

3위1체 법칙(짝의 법칙)의 두 법칙의 등장과 때맞추어 된 일이다.


그러나 이 두 법칙은 어디까지나 그 본질상 성경과 함께 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높이는 곳에서만 그 위용을 나타내는 제한성이 있다.

성경을 높이는 자리에서는 높여질 것이요 그렇지 않으면 아는 자가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이런 법칙 자체가 인생들을 구원하는 것은 아니니까.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 같은 것이 온 지구상 인류에게 알려짐과는

전혀 다른 차원인 것이니 이로 인해 실족하지 않는 자 복이 있다.

이런 새로운 첨단 지식이 <온 세상>에 알려질 필요가 처음부터 없음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믿는 자에 한해 나타나는 은혜일 뿐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악인들에게는 한낱 그림의 떡이었음과 같다.


세례 요한이 메시야 오심을 알리는 "엘리야" 역할이었지만

유대 전체를 통해 이 사실을 믿는 자에 한해서한 알려졌고

그렇지 못한 나머지에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던 것과 같다.

세례 요한은커녕 메시야도 몰라보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했으니 말 다한 것.

그 이후 구원의 복음 전파도 같은 양상이었다. 믿는 자에게만 하나님 능력이지

그 외 절대 다수에게는 "미련해 보이는 것" 아니면 "거치는 것"일 뿐이었다.


3운법칙과 3위1체 법칙이 인간에게 특정 지식을 제공하기 위해

뒤늦게 이 20세기에 비로소 등장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직 하나,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단 하나의 목적이다.

받을 자는 받으라, 누구에게나 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러나 악인은 굳이 차단시켜버리시는 것처럼(행 28:27) 지금도 마찬가지다.

깨달을 자만 깨달을 것이다. 이는 각자 자기 운명을 정하는 이치와 같다.

두드리는 자에게만 열릴 것이요 그렇지 못한 자는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지체 없이 "마지막 아담"께서는 오실 것이다. 그러면 모든 것은 끝이다.


그가 오시기 전에 준비하라는 나팔 소리가 이 "천사가 가진 복음"(계 14:6)의 특성으로서

오늘날 3운법칙과 짝의 법칙 및 그에 수반하여 전달되는 모든 성경 풀이이다. 

귀 있는 자는 듣고 받을 만한 자는 받을 것이니 하나님 뜻은 차질없이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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