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8월 10일 월요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거니와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의 일점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않고 다 이룰 것이다 (마 5:18/계 22:18,19/시 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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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그림은 종과 주인 관계를 묘사한 것으로서
우리 말로 하면 몸종이라 할까
종은 항상 그가 섬기는 주인을 그 그림자처럼 되어
함께 하며 섬기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는 일절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위의 것은 고대 로마시대, 아래는 고대 그리스. 




놀라운 것은 우리를 값(나 위해 흘리신 보배로우신 피) 주고 
사시어 자기 소유로 만드신 우리 주인님께서는
생명의 법칙을 따라 나를 항상 섬기시는 종으로서(눅 22:27)
내 앞에 계심을 선언하신 것이 성령의 선물의 믜미 즉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치 않게 하기 위해 내 우편에 계신다"(행 2:25)이니
이는 성령의 감동으로 베드로가 말한 것으로서
나 위해 일체의 모든 것을 하신(자신을 몽땅 주신 십자가 뜻)
영원 무궁 한량 없는 사랑을 표현한 것인데
원래 이 구절은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므로 내가 요동치 않으리라"(시 16:8)
의미를 성령께서 생명의 법칙을 따라 약간 바꾸신 것. 

다시 말해 후자는 우리가 하나님 섬김을 말하고
(우리르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섬김이야 당연하다)
전자는 하나님 친히 나 위해 일체를 선물로 주심으로써
나를 섬기시는 어버이 사랑을 나타내심이니
엄마 품에 안긴 아기는 엄마의 섬김을 받는 것이다.
엄마의 절대적인 종노릇을 통해 자라나는 아기인지라
사랑을 가장 잘 이해하는 연령이다.
그래서 "돌이켜 어린 아이 같이 되지 않으면 천국행 불가"다.
생명의 법칙은 곧 사랑의 법칙이기 때문이다(마 18:3). 

그래서 나는 주님을 섬기기 위해 주님을 모시어
주님을 떠나지 않는 것이 "말에나 일에나 주님 이름으로"
그리고 "먹든지 마시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고전 10:31)
하는 것으로 나타남이고(골 3:17),
주님께서는 나를 섬기시려고 나를 떠나시지 않는 것이 
성령으로 계심이니(요 14:16) 엄마 품 떠난 아기를 보았던가.
그래서 만유를 창조하신 독생자 하나님이시라도 
"아버지 품속"(요 1:18)*이 그 계시는 위치라고 한 것. 
성부와 하나되어 계시는 성자의 모습을 가리켜 
바로 "성령"이라는 "이름"(마 28:19)으로 나타내심이다.

종이 주인의 얼굴을 항상 맞대고 있어
한 시라도 떨어지지 않는 모습을 
묘사한 시각적인 것이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는데
마침 좋은 그림이 있기에 소개하는 것. 
우리의 구원은 이같이 생명과 사랑의 법칙을 따라
"마지막 아담"(아버지의 형상이시므로 아버지 또한 계셔)을
이상 그림과 같이 한 시도 떠나지 않는 것을 말함인즉
지금처럼 내 구원됨만 의식하고 특정일, 특정 의식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것을 예배라 착각하지 말 것이니
바울 사도가 명시한 대로 우리의 합리적인(이치에 맞는) 예배는
우리 자신을 산 제물로 드리는 매일 매순간의 
의식 생활(롬 12:1)인즉 우리의 마음에 아로새겨야 할 것이다. 

우리말 "영적 예배"란 번역보다 "합리적 예배"라 함이
의미가 더 정확하다고 하겠다.
나를 부인하는 것이 생명의 법칙이요
그리고 우리 위해 하나님의 희생 제물이 되신 
메시야 주님을 머리로 모신 몸의 각 지체 각 부분으로서
그와 같이 주님을 닮아 십자가 지고 주님의 뒤를 따름이 
이 세상에서의 유일의 보람이니 곧 사람 살리는 일의
밑뿌리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래서 "이치에 맞는" 예배라고 한 것이다.

"마지막 아담"이신 메시야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생각하지 말 것이며 또는 왔다갔다 하여
대중을 못잡아 방황하지도 말고
사람으로서 확정할 일이다. 사람이 아니시고는
범죄로 죽은 아담 대신 아담이 되실 수가 없음이다.
다만 머리와 몸의 구분에서 머리가 특이한 존재하는 것을
우리 모두가 잘 알듯이 아담 역시 우리와는 달라
하나님 친히 만드신 유일한 존재였음과 같이
유일하게 사람-하나님, 하나님-사람이실 뿐이다.
더 구체잭으로 말하면 
성부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계심이므로 또 그 형상이시므로
하나님이심은 명백하되 <움직이시는> 면에서만
하나님이시라 하면 될 것이니 우리 각자의 속에
우리 영혼처럼 자연스럽게 계심에서는
사람이 아닌 "영이신" 하나님이셔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한 날 한 시 어디에서나 똑같이 계심은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이 아니시고는 불가능한 일이다.

Biblegateway의 60 종의 영역본에 보니 
"영적 예배"라고 번역한 데가 18, 
나머지가 "합리적" 또는 그 비슷한 뜻으로 되어 있다.

"종의 눈이 그 상전의 손을,
여종의 눈이 그 여주인의 손을 바람 같이
우리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며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기를 기다립니다"(시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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