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는 것이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는 것이다"(고전 15:44). '육의 몸→신령한 몸'의 순서/단계는 지금 우리에게만 비로소 적용되는 것이 아니고 이미 아담 창조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지금의 우리는 그 짝을 이루어 있는 것뿐입니다. 즉 "첫사람 아담"(:45)과 "마지막 아담"(:45)의 대칭성과 같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령한 몸으로 회복되는 때를 가리켜, "보라...비밀을 말하니 우리가 다 잠잘(그리스도인들의 죽어 장사지내짐을 가리킴ㅡ행 7:60)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이니 나팔 소리가 난즉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할 것"(고전 15:51,52)이라 했습니다. 즉 주님의 재림이 그 <때>입니다.
소위 "휴거"라는 것은, 세상 끝이 되어 주님 다시 오실 때 거의 모든 이들이 죽음을 맞았지만("짐승"의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자마다 죽임을 당하므로ㅡ계 13:15) 그래도 소수 살아 남은 자 중 일부에게만 해당됩니다. 이렇게 공중으로 들려 감을 받는("휴거") 이들은 신령한 몸으로 변환되었기 때문이나 그 나머지 사람들은 현재의 육체 그대로라 천년 왕국(아담 때처럼 천년 가까운 수명을 누리는 시대)에서 자식들을 낳고 살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 죄인으로서 멸망의 대상자는 물론 제외하고.
이들이 신령한 몸으로 변화되지 않은 것은 절대 다수가 젊은이들로서 장차 천년 왕국을 구성할 인원/人員이기 때문. 여기 속하는 극소수(이사야 13:12) 청춘 남녀는 주님 재림시 멸망은 면한 터이지만 신령한 몸에서는 제외되었으니 구원은 받은 몸이나 주님을 위해 이렇다 할 고난은 받지 않아서입니다. "(주님과 함께 고난을)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딤후 2:12)이라 한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이들은 천년 왕국에서 부조/父祖 역할로만 한정될 뿐이고, 왕권/王權 행사의 자격은 없습니다. "천년 왕국"이란 것은 반복 설명이지만, 아담이 범죄하지만 않았다면 잠깐 즉 천년간 세상을 다스림으로써 마지막 심판을 실시했을 필연적 과정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폐기, 유보되었다가 "마지막 아담"께서 "첫 사람 아담"을 이제 대신함으로써 그 순연/順延, 보류되었던 아담의 세상 통치가 지금 비로소 진행됨에 있음을 뜻 합니다.
아담 자신은 비록 범죄하지 않았더라도 그에게서 난 소생들 중에는 분명 선악과에 손대는 자들이 일부 생기게 마련이고 그것도(아담의 통치 중이라) 벼르고 벼르던 끝에 일시에 집단적으로 저질렀을 것이고 오늘날과 같은 동물적 육체가 생겨나 한 세상을 이루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실을 상정/想定한 것이 "마지막 아담"의 이 "천년 왕국"인 것입니다.
일부가 그런 범죄 행위를 했을 것이고 나머지는 그에 가담하지 않았을 것이며,
그럴 경우 지금처럼 아담도 신령한 몸일 것이요 또한 가담치 않은 자들 역시 그러한 아담의 소생들이니까 신령한 몸 그대로일 것입니다. 따라서 그 때에도 신령한 몸을 가진 자들은 동물성 육체가 되어버린 범죄자들에게 신/神과 같고 왕/王과 같은 존재였을 것. 다만 차이가 있다면, 지금은 우리가 성령으로 다시 출생한 터라 "마지막 아담" 즉 사람의 아들들이 아닌 성부 하나님의 아들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우리 인간이 애초 신령한 몸으로 창조되었다는 사실은 이런 유추/類推를 통해서도 너무나 명백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환란 받기 전에 소위 "휴거"를 통하여 그 재앙을 비켜 간다는 자아중심적 망상은 아주 버려야 합니다. 성경은 그런 이기적이고 저속한 탐욕적인 그 어떤 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 받아 구원된 사람의 특징은, 한 사람이라도 더 주님께 인도해내고 믿음을 붙들어 주고 세상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합심 기도에 항상 몰입해 있어 그런 넋 나간 잡념에 빠져 있을 여가가 도무지 없으니까. 이렇게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고후 6: 1) 바로 이것이 "깨어 있음"(마 24:42, 43/25:13)임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입니다.
일단 구원 받았으니 이는 영구 불변이라 이제는 마음 놓고 태평스럽게 지내도 좋다는 말은 성경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고후 13:5)라는 경고만이 명백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너희로 <악을 조금도 행하지 않게 하시기를> 구한다"(:7) 했듯이 쉬지 않는 상호간의 기도를 역설한 것은,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절절한 경고와 맞닿기 때문입니다.
즉 "교회로서 모이기를 폐하지 말고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않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너희 중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고전 11:18/히 10:25/ 3:12,13) 한 그대로입니다. 히브리서도 그 문맥과 내용 등으로 판단컨대 바울 사도의 글일 확률이 높습니다.
이상 모든 것은 구원 받음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구약의 핵심이 되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짚트 탈출과 가나안으로 향하는 광야 여정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의 교회'를 묘사함이요 관련된 모든 경고/경계이기 때문입니다. 이짚트의 압제를 알단 벗어났으니 이는 우리의 <구원 받았음>에 해당합니다. <기정 사실>입니다. 그러나 광야 통과는 절대 무시 못하는 <현실>이요 실제 난관이었던 것임에 우리는 유의해야 합니다.
이짚트(애굽)를 탈출한 장정/壯丁(20세 이상)이 60만(출애굽기 38:26)이었는데 그들 중(장정 수에 들지 않은 이후 성장한 나머지는 제외) 실제 가나안에 들어간 자는 여호수아와 갈렙 오직 둘뿐이었으니 그 함축하는 의미가 실로 엄청난 것입니다. 바벨론 신학의 사탄의 거짓말은 이같은 성경의 경고를 무시하고 "안전하다", "평안하다"는 말만 남발해 왔고, 그리하여 모든 각종 비극으로 유도해 온 것입니다.
아담이 범죄하지만 않았어도 마귀가 인간 세상을 지배하는 일은 없었을 것인데 범죄 형벌 차원에서도 악령들의 개입이 당연시되니 오호라! 곤고한 인생들입니다. 핍박과 탄압만 아니라 온갖 거짓이 난무합니다. 바벨론 신학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험한 광야 길이 그 명백한 상징입니다. 광야 자체가 이 세상 상징입니다. 사람 살지 못할 황무지 일색이 현세의 가감 없는 특징적묘사입니다. 사람 살 만한 곳으로 착각하면 영혼의 영원한 삶을 잃거나 빼앗깁니다. 오직 성령의 "불 기둥, 구름 기둥" (민수기 14:14)의 인도하심 따라 일보씩 조심해서 전진해야 하는 것입니다.
2025년 9월 10일 수요일
불 기둥과 구름 기둥의 인도 아래 광야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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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기도문 명상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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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전 명칭인 DPA pix를 ADAM pix로 변경하였습니다 . ADAM은 Angel and Devil's Actual Manifestati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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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해가 심하여 한 달 넘게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아직도 이전처럼 움직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우리의 합심 기도로만 이루어집니다. 여러 형제자매의 합심 기도로 이길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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