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료를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너희가 각각 중심으로 형제를 용서하지 않으면 내 천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마 18:33 -35). "다 마음을 같이하여 인자스러우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벧전 3:8).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엡 4:32).
우리의 모든 언행심사는 그 기준이, 이내 곧 사라져 없어지게 될 일시적이고 임시에 불과한 동물적 육체인 이 세상에 있지 않고, 영원한 정상 세계인 장차 오는 세상의 "신령한 몸"(고전 15: 44), "영광의 몸"(빌 3:21)에 있음을 항상 염두에 두어 스스로 <인식 전환>하기를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돌아보는 것(즉 관심사)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깐'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고후 4: 18)하기 때문이니 <가치>와 <무가치>와의 차이입니다. 후자에는 무관심이요 정작 관심사는 전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삶(생명)은 당연히 미래의 영원성에 있지, 찰나적인 이 보이는 세계에 있지 않음은 한밤 중에 불을 보듯 너무나 뻔한데 어찌하여 <내일 죽을지도 모르는> 이생에 마음과 몸이 매달리고 있는가요?
동물적 육체에 매여 허우적거리는 인생들,연민/憐憫으로 대합시다. "불쌍히 여깁시다".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용서 못하는 마음은 <생명의 정상>일 수 없으니 버립시다. 완전하신 하나님은 완전한 것을 만드셔서 인생들로 완전하게 살도록 하셨습니다. 죽음이 있는 것은 완전한 것이 아닙니다. 생명과 죽음은 짝으로서 "하나" 를 이루기에, 무릇 하나된 것은 동시에 한꺼번에 나타나는 법이 없습니다. 아름다움과 추함은 공존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둘 중 하나로만 나타나게 마련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죽음이 있으면 죽음 일색이지 생명(삶)은 섞여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양자역학 실험에서 입자의 성질이 '파동성'을 띄면 그 상반/相反인 '입자성' 은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생명이 반드시 먼저 오지 죽음이 먼저 오는 법도 없습니다. 짝을 이룬 둘은 인과/因果, 주종/主從, 대소/大小, 선후/先後의 질서를 지키게 되어 있는 까닭입니다. 이는 태초에 성부/聖父 하나님이 성자/聖子 하나님을 낳으심으로써 만유 창조를 시작하심에서 비롯됨이니, <하나님 당신 자신>을 소재/素材로 하여 당신의 형상과 모양을 창조하신 것을 "낳으셨다"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부께서는 성자와 약속(언약)을 하셨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위하지 않고 너만을 위할 터이니 너도 네 자신을 위하지 말고 나를 위하라" 하신 것입니다. 이 약속을 또한 성부께서 성자에게 주신 "계명"(요 15:10/10:18)이라고도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계명이 이 취지를 따릅니다.
이를 가리켜 또한 "하나"(10:30)라고 하는 것이니 육체일 경우 "한 몸"(창 2:24)이라 하여 남녀 한 몸이 되면 남자의 몸은 여자의 것이 되고 더 다시는 남자의 소유가 되지 않으며(고전 7:4) 여자 또한 그러하고, 영/靈의 경우 "한 영"(고전 6:17)이라 하여 주님과 내가 "합하면"(:17) "내게 사는 것이 주님"(빌 1:21) 이 되어 오직 주님만을 위하고 나 자신을 위하지 않으며, 주님은 그 사시는 것이 내가 되어 주님 자신을 위하지 않으시니 그 증거가 바로 나 위하신 십자가 죽으심인 것입니다. 이 원리로 우리가 구원되었은즉 이 불변의 이치로써 우리 구원이 향유/享有됨으로써 영원히 지속됨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다시 말헤 하나님 계명에 대한 절대 복종입니다.
이 하나됨이 곧 생명/삶의 법칙이라, 기계적 삶의 자연계 동식물을 제외한 신령한 몸의 모든 초자연계 영물(인간을 포함하여)은 창조주 하나님과의 이러한 언약 관계에 있기에 성경은 아담 범죄를 설명하여 "언약을 어겼다"(호세아 6:7)고 한 것입니다. 성경을 신약(새 약속)과 구약(첫 언약또는 옛 약속)으로 분류함도 이 뜻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새 언약에 속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피로 세우신 것(눅 22:20/히 8:12, 13).
그러므로 값 없이 은혜의 선물로 거저 받은 구원이라 하여 마치 우주 만유를 무조건 다 얻어 현재 누리게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 오늘날까지의 거의 모든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의 착각인데, 생명의 법칙을 준수하는 언약 관계에 들어가는 것이 새 창조임을 모르는 무지무식에서 옵니다. "언약을 어긴" 아담처럼 되면 또는 사탄 및 악령들처럼 자아중심 즉 하나님 위한 삶이 아니고 제멋대로 자기를 위함으로 생명의 영원한 법칙에서 벗어나는 경우 파탄은 필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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